“즐겁게 수다 떨 듯 기록하고 질문을 남겨야 해요. 그 질문을 썼다는 것만으로도 그다음 날 계속 생각하게 되고, 똑같은 상황이 오더라도, 그 질문이 나에게 자산이 되거든요.”
김선 사다리연극놀이연구소 대표는 수업이 끝난 뒤에도 ‘생각이 계속 자라는 순간’을 소중히 여긴다. 또한 질문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그 질문이 새로운 생각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러한 태도는 연극놀이를 처음 접했던 순간과도 닮아있다. 사다리연극놀이연구소는 1998년 설립 이후 유아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세대를 만나며, 연극과 교육이 만나는 지점을 꾸준히 탐구해 왔다. 참여자뿐 아니라 예술교육가를 위한 연수와 워크숍을 지속해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선 대표는 이론과 현장이 함께 부딪히며 생기는 감각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다리연극놀이연구소의 수업에는 늘 ‘실험’과 ‘나눔’, 그리고 ‘피드백’이 함께 한다.
현장에서 얻은 감각과 배움의 공유
김선 대표가 연극놀이를 처음 만난 것은 책을 통해서였다. 이후 외국 유학을 다녀온 선생님들이 진행한 짧은 워크숍을 보며 “신기하고 너무 재밌겠다”라는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책에서 제시한 다양한 방법과 효과를 접할수록, 그것이 실제 현장에서 가능할지, 그리고 그 가치가 실제로 구현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그 답답함을 풀기 위해 직접 아이들을 만나보기로 결심했다. 수많은 아이와 부딪히는 과정에서 그는 ‘우리 현실에 맞는 연극놀이’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작은 시도가 점차 구체화해 지금의 사다리연극놀이연구소(이하 연구소)로 이어졌다.
현장 경험이 쌓이자 수업의 방향도 조금씩 정리되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경험을 다른 교사들과 공유할 필요를 느꼈다. 당시 학교 현장에는 연극놀이에 관심을 가진 교사 모임이 생겨나고 있었고, 김선 대표는 자신이 현장에서 얻은 감각과 배움을 이들과 공유하기 시작했다. 연극교육을 ‘책으로만’ 배웠던 시절의 막막함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처음 시작하는 교사들의 답답함을 덜어주고 싶었다. 그렇게 현장에서의 경험이 교사 워크숍으로 확장되었다.
“그런 답답함을 느낄 것 같았어요. 당연히 느끼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경험한 걸 알려주고 그 답답함의 기간을 좀 줄여주고 싶었죠. 저의 올챙이 적 시절을 생각하면, 그런 욕망이 제일 컸어요.”
연구소는 아이들을 위한 수업만큼이나 예술교육가를 위한 교육도 함께 성장시켜 왔다. 이곳은 단순히 프로그램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라, 교사와 예술가가 함께 현장을 실험하고 배우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수업을 통해 얻는 경험과 깨달음을 서로 나누며, 각자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연구소는 꾸준히 확장되어 갔다. 김선 대표에게 예술교육은 완성된 답을 전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고민과 시도를 통해 길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교육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교사 워크숍이 자리 잡으면서 연구소의 핵심 가치도 더욱 분명해졌다. 하나는 이론과 실기의 융합, 다른 하나는 공부가 즐거워야 한다는 믿음이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언제나 진심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역사, 사회 과목을 연극놀이로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것처럼 연극놀이도 연극놀이 방식으로 재미있게 배울 수 있어요.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은, 우리만의 방법론이에요. 그리고 저는 연구원들에게 늘 얘기해요. 예술교육가의 삶의 가치관과 철학이 함께 가야 그 진심이 나온다고요. 사기 치면 안 돼요. (웃음) 자신은 그렇게 살지 않으면서 그걸 가르치는 것은 사기라고 생각해요.”
‘사기’라는 단어를 말하며 김선 대표는 웃었지만, 그 안에는 단단한 신념이 담겨 있었다. 연구소가 말하는 연극놀이는 단순한 교수법이 아니라 삶의 태도이자 사람을 대하는 방식으로 느껴졌다. 이런 태도는 자연스럽게 예술교육의 철학으로 이어진다.
점검과 평가가 아닌 성찰과 성장의 과정
그는 예술교육을 한 사람의 상상력과 창의력, 그리고 스스로 꿈꾸는 힘을 존중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상상하고 만들어가는 게 예술의 본질인데, 거기에 서열을 매길 수는 없잖아요.”
그에게 연극놀이는 경쟁이나 평가가 아닌, 각자의 고유함을 발견하고 인정하는 과정이다. 이런 철학은 연구소의 운영 방식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었고, 연구소는 오랜 시간 함께한 동료들과 수업과 고민을 꾸준히 나누며 성장해왔다. 김선 대표는 연구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으로 ‘자기 고민의 완결’을 꼽는다.
“프로그램에 관련된 자료들을 정리하지 않고 그냥 가져와서 ‘이거 어떻게 프로그램으로 짜면 좋을까요?’ 하는 건 자기 고민의 과정 없이 답을 구하려는 태도죠.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일단 완결하는 게 중요해요. 그걸 함께 보고, 정말 고민되는 지점들을 중심으로 서로 토론이 시작되죠. 그리고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더라도 리더가 의도를 설명할 수 있다면 해보게 둬요. 우리는 그걸 밀어주는 역할을 해요.”
그는 늘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프로그램을 기획해보라고 말한다. 이렇게 각자의 시도가 완결된 뒤에는 반드시 피드백 시간이 이어진다. 그가 말하는 피드백은 타인을 평가하는 절차가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는 과정이다.
“이건(피드백)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에요. 이제는 너무나 당연해서 서로 기분이 나쁘거나 자존심이 상할 일은 없지만 만약에 그런 일이 있더라도, 서로를 이해하며 걸어가야 해요. 그게 프로죠. 우리는 프로니까요.”
수업 후 이어지는 연구원들의 피드백 시간은 언제나 차를 마시며 수다를 나누는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시작된다. 이야기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주제가 떠오른다. ‘그때 그 아이가 왜 그런 반응을 보였을까?’ ‘이번엔 내가 리더로서 뭘 놓쳤을까, 뭘 잘했을까?’ ‘이렇게 변화를 주었더니 아이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더라’ 대화가 오가는 동안 피드백은 단순한 점검이 아니라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성찰과 성장을 이어가는 또 하나의 수업이 된다.
연구소는 다양한 수업 평가 혹은 피드백 시스템을 시도하고 있다. 최근에는 팀원들이 한 학기 동안 했던 수업을 돌아보며 스스로 하나의 테마를 선정하여 발표하고 이야기 나눈다. ‘인상 깊었던 순간’ ‘시니어 수업에 나에게 준 의미’ ‘98세 아버님과의 연극놀이’ 등. 그 발표의 시간에는 세대와 역할의 경계를 넘어, ‘삶과 연극놀이가 만나는 순간’을 발견하게 된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김선 대표와 연구원들에게 연극놀이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언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좋은 비평의 시작
연구소는 곧 30주년을 앞두고 있다. 김선 대표는 이제 현장을 이끌던 세대에서 후배 예술교육가들의 성장을 돕는 세대로 나아가고 있다. 그는 사회 곳곳에서 연구소를 거쳐 간 사람들이 활발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며 “의도하지 않았지만 책임이 생겼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연구소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힘들어하는 후배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를 자주 고민한다.
첫 번째 방향은 연구소가 가진 콘텐츠를 잘 정리해 공유하는 일이다. 두 번째는 후배들이 편하게 와서 이야기를 나누고, 수업의 고민을 함께 풀어갈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언제든 차를 마시며 수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따뜻한 공간 말이다. 또한 예술교육가의 전문성을 기를 수 있는 아카데미의 심화·확장 필요성도 강조했다. 2년 과정의 커리큘럼을 구상하며, 수업 비평과 성찰, 질적 분석을 통해 예술교육가 스스로 자신의 수업을 돌아보고 성장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의 말에서 예술교육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무엇보다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고, 사람을 키우는 일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서 후배 예술교육가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냥 잘 놀고, 자기가 읽고 싶은 책 읽고, 그거면 돼요. 꼭 뭐 더 배우려고 자기를 계속 몰아붙일 필요 없어요. 우린 늘 부족하다고 느끼잖아요. 그래서 자꾸 자기를 채찍질하고 괴롭게 만들고. 그런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배우고 싶으면, 자기 일과 관련된 한 가지를 정말 깊게 공부하면 돼요. 그게 훨씬 좋아요.”
그의 말에는 자신을 몰아붙이는 완벽주의보다, 자기 안에서 천천히 깊어지는 배움을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가 담겨 있었다. 이어 미래의 예술교육에 관해 묻자, 김선 대표는 단호히 말했다.
“창의성과 개인의 상상력 부분에서 예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죠. AI 시대라 하더라도 인간의 창의성과 상상력을 길러주는 건 결국 예술교육이에요. 저는 특히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서 이루어지는 작업에 대한 믿음이 있어요. 그래서 AI 시대의 위험성을 함께 자각할 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예술이 가진 인간성이고, 그 인간성을 지켜내기 위한 지원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선 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예술교육이 단순히 감성을 다루는 영역이 아니라 기술이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인간성의 영역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예술은 인간을 다시 인간답게 만드는 경험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이 계속 이어질 때, 현장에서 자라난 생각이 사회로 확장되고, 그 과정이 곧 예술교육의 미래를 준비하는 길이 될 것이다.
김선 대표를 만나 사다리연극놀이연구소가 오랜 시간 쌓아온 철학이 지금의 현장에서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그 안에서 예술교육이 여전히 살아 움직이며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질문하고 고민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모습을 지켜갈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김선 대표의 말처럼 함께 질문하고 길을 찾아간다면 예술교육은 앞으로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좋은 비평’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질문을 멈추지 않고, 그 질문에서 다시 생각을 확장해 새로운 방향을 찾아가는 것. 김선 대표가 말한 것처럼, “즐겁게 수다 떨 듯 기록하고 질문을 남기는 일”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김선
사다리연극놀이연구소 대표. 서울대학교 화학교육과,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호서대, 상명대, 서울교육대학교 등 여러 대학에서 교육연극 강의했으며 아동청소년연극협회(아시테지) 한국본부 사무국장을 역임했다. 어린이 연극놀이 프로그램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아르떼아카데미, 사다리연극놀이아카데미 등 예술교육가를 위한 워크숍, 아카데미를 기획하고 강의했다. 사다리연극놀이연구소는 2025년 문화예술교육 정책 20주년 기념 문화예술교육 발전 유공자 장관포상에서 연극놀이 분야의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했다.
· 사다리연극놀이연구소 www.playsadari.com
· 사다리연극놀이연구소 www.playsadari.com

- 이현경(이도경)
- 2008년부터 배우(이도경)이자 연극강사(이현경)로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사업을 비롯해 다양한 예술교육 현장에서 여러 세대와 만나며, 예술과 교육이 만나는 자리에서 사람의 이야기를 찾아가고 있다. 현재는 무브먼트당당 배우이자 예술단체 ‘작당모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연극을 통해 사람과 예술, 그리고 배움이 만나는 지점을 꾸준히 탐구하고 있다.
lhkapdlf@naver.com
인스타그램 @dalligi0321 - 인터뷰 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프로그램 사진 제공_사다리연극놀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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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고 질문하는, 성찰과 성장의 과정
김선 사다리연극놀이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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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고 질문하는, 성찰과 성장의 과정
김선 사다리연극놀이연구소 대표
기대만점이네요
현장과 이론이 부딪히며 만들어지는 감각이야말로 진짜 교육이라는 말이 오래 남는다
저는 교사는 아니고 일반 직장인이지만 연극놀이에 관심이 있어 혼자 공부하고 방과후에 봉사활동으로 아이들과 연극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혼자 수년간 수업을 해오다 지난번에 김선 선생님의 연극놀이 지도자 입문 과정을 들었었는데요
연극놀이에 관심이 많은 후배 예술가들의 대화의 장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교육에 참여하는 아이들의 입장이 되어 연극놀이도 즐겨보는 과정이 몹시 행복했습니다.
앞으로도 연극놀이 저변 확대를 위해 노력해주세요. 후배들도 열심히 나아가겠습니다. 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