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고영직 문학평론가는 첫 현장 비평에서 이렇게 썼다.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지금까지 그는 꾸준히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만나며, 문화예술교육의 본질과 방향에 관한 물음을 멈추지 않았다. 단순히 현장을 읽는 행위가 아니라 잇는 행위로서, 비평을 통해 어떻게 징검다리를 놓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활동해 온 고영직 문학평론가. 지금 여기, 문화예술교육에서 비평은 어떻게 존재하는지, 그 의미와 가치를 살펴보기 위해 그를 만났다.
비평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요즘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관심사가 궁금하다.
최근에 가장 보람 있었던 활동은 수도권 소재 다섯 곳의 교도소에서 진행한 인문학 특강이었다. 나는 우루과이 작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인간의 세포는 분자가 아니라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라는 문장을 마음에 품고 사는데, 이 문장을 소개하며 “당신의 문장은 무엇인가, 당신의 인생을 통해 남기고자 하는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인가, 당신은 어떤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가”를 강조했다. 이후에 많은 사람이 이 문장에서 큰 울림을 받았다고 한 게 인상적이었다. 인간에게 ‘이야기(story)’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국 인문학자 조너선 갓셜은 인간을 ‘스토리텔링 애니멀’이라 부르는데, 우리 모두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책 『삶의 시간을 잇는 문화예술교육』에서 소개한 시 <8살의 꿈>에서 초등학생이 가고 싶은 학교(영훈초·국제중·민사고·하버드대)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전혀 상관없으나 한국인이 생각하는 성공의 척도를 너무나 잘 보여준다. 이처럼 돈이 많고 권력이 있는, 소위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서사(敍事)가 너무 상투적이다. 우리는 저마다의 이야기로 자기 무대를 연출하는 주인공인데, 왜 이렇게 상투적인 이야기만 강조되는가. 한국인이 좋아하는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 나오는 ‘가지 않은 길’은 정말로 아무도 가지 않은, 누구도 안 가는, 엄청 희박한 길이다. 문화예술교육이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인생에는 하나의 길이 아니라 여러 길이 있으니 그렇게 해도 괜찮다고,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다른 선택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줬으면 한다. 문화예술교육에서 상투적이지 않은 이야기, 낯설지만 흥미로운 이야기, 관성화된 궤도(volution)를 탈출하는 이야기처럼 각자의 서사를 만들어가는 고민이 필요하다. 그동안 강원도 춘천문화재단, 전라남도 고흥군, 경기도문화원연합회 등에서 발간하는 매거진 만드는 일을 했는데 모두 ‘이야기’와 관련이 있었다. 나는 “지역 소멸은 서사의 소멸이다”라고 말했지만, 한 개인의 삶에서 서사가 중요한 것처럼 한 커뮤니티, 한 지역의 이야기도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이자 서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역과 기관을 단순히 홍보하는 게 아니라, 지역이 얼마나 가진 것이 많은지를 이야기하고 편(便)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다루는 비평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2008년 12월에 경기문화재단을 그만두면서 ‘나는 앞으로 타동사의 삶이 아니라 자동사의 삶을 살겠다’라고 다짐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내켜서 사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다가 2012년 경기문화재단에서 발행하는 문화예술교육 비평 웹진 [지지봄봄]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으로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만났다. 당시에 문화예술교육 현장 리뷰와 비평을 다루는 매거진이 없었는데 [지지봄봄]은 발행될 때마다 현장에서 즉각적인 반응이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문학 비평과는 반응이 조금 달랐다.
문학 비평과 문화예술교육 비평의 차이는 무엇인가. 왜 반응이 달랐을까.
1980년대 문학 비평은 ‘지도비평’ ‘입법비평’이라 불리던 시대였다. 비평이 마치 권위를 가진 것처럼 현장을 계몽하고 지령 내리듯이 주장했고, 작가의 창작이나 상상력을 쥐락펴락하는 행태와 폐해를 많이 목격했다. 지금은 그런 비평의 시대가 아니다. ‘지적질’하는 비평은 쉽지만 그렇게 해서는 현장도 사람도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현장과 어떻게 대화할지 고민했다. 2012년에 처음 찾아간 현장은 경기도 연천의 한 지역아동센터였다. 열악한 환경에서 아이들은 대체로 무기력했고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문화예술교육 단체를 지적질하고 재단하는 건 쉽겠지만, 현장이라는 건 항상 울퉁불퉁하기 마련이다. 비평가로서 당장에 보이는 현장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보며 어떻게 비평을 통해 징검다리를 놓을까를 고민했다.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동료(peer)의 입장으로 믿어주려는 마음과 태도로 글을 썼더니 현장에서 이러한 부분을 좋게 봐준 것 같다. 내가 문학에 대해 비평하면 그냥 ‘썼나 보다’ 하고 관심이 별로 없었는데, 문화예술교육은 많이 달랐다. 잘 봤다는 소감과 피드백, 또 비평을 부탁한다는 요청 등 즉각적인 반응이 왔다. 나는 우리가 보이지 않는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고 느꼈다. 이러한 현장의 반응 덕분에 문화예술교육 현장 리뷰와 비평이라는 없던 분야가 등장했음을 실감했다.
‘현장의 반응’이 생동감이 있다. 선생님께 문화예술교육의 ‘현장’이란 무엇인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현장도 궁금하다.
‘현(現)’은 ‘지금’을 뜻하며 시간성이란 의미가, ‘장(場)’은 ‘여기’를 뜻하며 공간성의 의미가 있다. 현장(現場)이란 바로 ‘지금 여기’라는 뜻으로, 당대의 어떤 고민과 문제의식이 녹아 있는 곳이다. 그래서 나에게 ‘현장’은 시간성과 공간성이 결합하여 저마다 지금 여기에서 재미있고 의미 있는 어떤 일을 해 나가는 곳이다. 가장 인상적인 현장은 2021년 [아르떼365]에서 찾아간 제주춤예술원 김미숙 대표의 <춤추는 배냇저고리> 프로젝트였다. 정말 큰 감명을 받았다. 김미숙 대표는 자기 철학과 언어가 있었다. 코로나로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없는 어려운 환경이었는데, 예술가로서 아이들과 어떻게 가르치지 않으면서 재밌게 놀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모습이 퍽 인상 깊었다. 한국 전통 육아법인 단동십훈(檀童十訓) 등을 연구하며 춤을 통해 영유아 아이들과 만나고자 애쓰는 점이 좋았다. 좋은 현장은 자기 철학과 언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4~5년 동안 다닌 현장을 복기해보면, 눈이 번쩍 띄는 현장이 점점 잘 안 보인다. 문화예술교육이 양적으로 엄청나게 많아졌고 접근성 측면에서 많이 개선되었지만, 어찌 보면 좀 상투화되고 매너리즘에 빠졌달까. 이런 부분에 대해 당사자인 단체가 제일 잘 알고 있다고 느끼는데, 우리는 왜 갈수록 현장들이 재미없어지는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현재 문화예술교육에서 비평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비평은 정말 필요한가.
역설적으로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비평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코로나로 현장이 닫혀 있던 3년이었다. 많은 단체가 지원사업을 주야장천 하기보다 어떤 비전과 언어를 가지고 활동해야 하는지, 문화예술교육의 철학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이 엄청 깊던 시기였다. 비평의 ‘크리틱(critique)’과 위기의 ‘크라이시스(crisis)’는 그리스어 어원이 같다. 그러니까 위기의 순간일수록 비평 의식이 강해진다. 그러나 지금 문화예술교육 신(scene)에서 비평은 없는 것 같다. 좀 더 분명히 말하면, 논쟁이 없다. 논쟁이 없는 현장은 서서히 망하거나 크게 망하는데 아마도 현장에서도 필요성을 느낄 것이다. 모든 단체가 비평을 환영하지 않고 달가워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비판적인 발언에 대한 불이익을 염려하거나 그래봤자 안 바뀔 것이라는 불신과 냉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판과 비난을 구별해야 하고, 우리는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존재(단체)의 성장과 성숙이 어떻게 가능할까를 계속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꾸준히 비평 활동을 해왔는데, 비평가로서 변화를 맞이한 계기가 있었는가.
2006년 무렵 [녹색평론]을 발행하는 김종철 선생님(1947-2020)과의 만남이다. 2006년부터 2020년에 작고하셨을 때까지, 두 달에 한 번꼴로 10년 넘게 김종철 선생님과 밥 먹는 ‘김밥 모임’에 꾸준히 참여했다. 초기에는 선생님께 글을 좀 쉽게 쓰라고 몇 번 혼난 적도 있었다. 사실 그전에는 작품이든 정책이든 먹고 살려고 쓰거나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쓰기도 했다. 내가 혼(魂)이 실리지 않은 타성적인 글을 써왔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나는 선생님과 오만가지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집에 가면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언급된 영화나 작품 등을 찾아봤는데, 그 시간을 통해 글쓰기의 태도가 확 달라졌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생겼고 좋은 사유와 글쓰기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의식으로 확장되었다. 그래서 이전보다 세상을 좀 더 두껍게 보고, 더 깊게 보고, 뾰족하되 보드랍게 쓰려고 나름 노력했다. 그렇게 몇 년 뒤, 선생님께서 “너 글 좀 쓴다”라고 말해줘서 기분이 엄청 좋았다.
삶의 질문이 비평적인 태도와 글쓰기에 영향을 주는 게 인상적이다. 그렇다면 문화예술교육 비평에 필요한 태도와 관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결국, 자기 질문이 필요하다. 무엇이 좋은 삶이고, 이 세상을 어떻게 좋은 사회로 만들 것인가에 관한 태도와 관련이 있다. 농담처럼 ‘나는 심장이 왼쪽에 있어서 좌파고 편협하고 편파적이고 편집증이 있다’라고 말하는데, 좋은 사회를 위해 옹호해야 할 가치를 옹호하고, 그게 망가지는 것에 대해 시민으로서 때로 분노도 하는 게 좋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주셨던 김종철 선생님은 스승이라기보다 나이 많은 동료로서 가르쳐주셨다고 생각한다. 동료로서 함께 고민하고 생각을 나누는 대화였다. 그래서일까. 비평적 태도와 관련하여, ‘대화적 대화’란 말을 참 좋아한다.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은 『투게더(Together)』(2012)에서 ‘대화적 대화’(Dialogic conversation)를 강조하는데,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대화를 의미한다. 우리는 어떤 사람과 대화할 때 뚝 뚝 끊기는 대화를 경험할 때가 있다. 그런 대화에서는 수평적인 대화는커녕, 수평적인 관계가 불가능하다. 리처드 세넷은 대화를 계속 이어가려면 단정적인 표현을 쓰지 말고 ‘내가 당신이라면’처럼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갖추라고 말한다. 인간관계에서도 이러한 태도가 중요하지만, 비평의 글쓰기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이걸 해야만 해(Must be)’의 방식이 아니라 ‘함께 하자(Let’s go)’의 방식이 좀 더 수평적이다. 지적질하는 글쓰기보다 대화를 이어가려고 하는 글쓰기의 태도가 필요하다. 대화적인 대화를 하는 것, 그것이 더 생산적인 대화가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문화예술교육 비평을 위한 제언이 있다면?
예전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비상임이사(2018-2021)로 있을 때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비평 지원사업이 필요하다고 제안한 적이 있다. 문화예술교육 정책 20년 동안 전국적으로 지역과 학교 안팎에서 다양하게 사업이 확산했지만, 현장에서 의미 있는 담론이 나오지 않았다. 현장의 변화는 정책사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결국, 어떤 ‘담론’이 필요한데, 비평이 그 담론을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지금은 문화예술교육 분야에 비평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책이 거의 없다. 해마다 현장을 충실하게 리뷰 또는 비평하면서 담론을 구성하는 책이 5권씩만 쌓여도 10년이면 50권의 비평서가 축적된다. 의미 있는 비전을 공유하며 문화예술교육의 질적 도약을 꾀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저마다의 현장들에서 즐거운 분투가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gocritic@naver.com

- 장혜윤
- 기획자, 예술가, 행정가의 경계를 넘나드는 활동가. 세상의 아름다움과 비참함 사이에서 홀로-함께 도모하는 일을 좋아한다. 예술이 궁금해서 풍문으로 소문난 적 없는 <두달예술학교>를 만들었고, 광역문화재단, 기초문화재단, 공익재단 등에서 공공성을 탐구하며 일했다. 2025년 경기문화예술교육 비평 웹진 [지지봄봄]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naraapaper@naver.com - 인터뷰 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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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합니다!
대화적 대화를 잇는 비평적 태도
고영직 문학평론가
공감이 갑니다
대화적 대화를 잇는 비평적 태도
고영직 문학평론가
기댐난점이네요
대화적 대화를 잇는 비평적 태도
고영직 문학평론가
기대만점이네요
현장을 잇는 비평이라는 말이 참 좋네요. 문화예술교육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평론가님 말씀처럼 문화예술교육이 아이들에게 “가지 않은 길”도 괜찮다고 말해줘야 한다는 부분이 정말 와닿네요.
현장에 대한 ‘지적질’이 아니라 동료로서 ‘대화적 대화’를 시도하는 비평 태도가 현장의 성장을 돕는 핵심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