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뒤처지거나 원 밖에 남지 않도록”

마리아 델 로사리오 안티오키아 미술관 관장

콜롬비아 메데진(Medellín)의 중심부에 자리한 안티오키아 미술관(Museo de Antioquia)은 1881년 설립된 이래 도시의 역사와 정체성을 품어온 상징적인 공간이다. 한때 폭력과 불안으로 얼룩졌던 도시가 예술을 통해 스스로 치유하고 재생해 온 과정 속에서, 이 미술관은 과거와 현재, 예술과 사회를 잇는 공공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2016년 취임하여 미술관을 이끌고 있는 마리아 델 로사리오 에스코바르(María del Rosario Escobar) 관장은 “예술이 일상 속에서 살아 숨 쉬어야 한다”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미술관이 예술의 보관소가 아닌 시민의 학습과 성찰의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그 경계를 확장해 왔다.
그녀가 주도한 ‘무세오 360°’(Museo 360°) 프로젝트는 예술을 통해 지역 공동체의 기억과 감정을 다시 연결하는 실험으로, 예술이 개인의 감수성을 넘어 사회적 상상력을 키워가는 교육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이번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으며, 로사리오 관장이 말하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상상력의 교육적 의미와 함께, 미술관이 시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배움의 장’으로 변화해 온 여정을 함께 살펴보았다.
마리아 델 로사리오 관장
Q.

2016년부터 안티오키아 미술관을 이끌면서, 지역 사회와 함께하는 미술관 운영을 강조해 오셨습니다. 미술관 운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철학과 가치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다양한 시대적·사회적 도전들은 미술관으로 하여금 예술 그 자체를 넘어, 그렇지만 언제나 예술가와 창작의 본질적인 관계 안에서 스스로 성찰하게 만들었습니다. 생존의 압력과 속도의 논리, 그리고 권력 경쟁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우리 기관이 어떻게 여전히 의미 있고 시의적인 존재로 남을 수 있을까요? 그에 대한 답을 우리는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발견하였습니다. ‘현재’는 단순한 순간이 아니라, 우리가 사유하고 판단하며 의미를 형성하는 시간이자 가치, 그리고 분석의 틀입니다. 날마다 마주하는 불확실함과 새로움 속에서 우리가 도달하고자 하는 가치는 ‘공감과 연결을 통한 애정(El afecto a través de la pertinencia)’입니다. 그러한 배경 속에서 만들어진 “누구도 뒤처지거나 원 밖에 남지 않도록 한다”라는 생각은 우리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철학입니다. 그 핵심은 애정과 공감입니다. 예술은 여러 면에서 삶으로부터 멀어졌지만, 그 차가움을 자각할 때마다 다양한 언어와 전략을 통해 그 거리를 회복하려 노력해 왔습니다.

안티오키아 미술관(Museo de Antioquia)
Q.

지역 주민들이 자신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자신을 표현하며, 타인의 삶을 이해하도록 진행했던 미술관 프로그램에 관해 이야기해 주세요.

A.

안티오키아 미술관은 예술을 통해 주민들이 자신의 상상력과 감수성을 회복하고, 타인의 삶을 이해하며, 도시의 변화를 함께 그려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Museo 360°’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미술관이 자리한 건물의 구조적 특성과 잠재력을 기반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네 개의 외벽과 80여 개의 출입구를 가진 독특한 구조를 지녔지만, 한때 전화 교환국으로 사용되며 문이 모두 봉쇄된 적이 있었습니다. 주민들의 발길이 오가던 열린 공간이 닫힌 블록으로 변하면서, 도시와 미술관의 소통도 단절되었습니다. ‘Museo 360°’은 이렇게 닫혀 있던 문들을 다시 여는 시도에서 출발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미술관과 도시, 예술과 사람 사이의 단절을 회복하고, 서로 다른 공간과 사람들을 새롭게 연결하고자 했습니다. 과거 행정청 시절 지역 주민들이 드나들던 창구였던 문들을 다시 열어, 거리와 맞닿은 전시 공간으로 전환하고, 미술관의 큐레이션 프로젝트를 주민들의 일상과 대화할 수 있는 열린 장으로 확장했습니다.
‘Museo 360°’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된 <라 콘센티다>(La Consentida) 프로그램은 지역 공동체와의 협력을 기반으로 한 레지던시 형태로 운영되었습니다. 참여한 예술가들은 약 3주 이상 미술관에 머물며, 지역 주민과 함께 도시의 기억과 장소, 정체성을 탐구하는 다양한 공동 창작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또한 일부 주민들은 미술관 소장품 가운데 자신들의 경험과 감정에 공명하는 작품을 직접 선택하고, 그 작품을 중심으로 새로운 전시 내용을 구성하는 참여형 큐레이션에 참여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주민들은 단순한 관람자를 넘어 자신의 이야기를 미술관의 서사 속에 연결하며, 기관과 지역 공동체가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주체로 자리할 수 있었습니다.

  • 「라스 비트리나스(Las Vitrinas)」 프로그램
  • 「라 콘센티다(La Consentida)」 프로그램
Q.

관장님께서는 ‘사회적 상상력’이 주민들이 공감과 연대로 이어지는 데 예술이 어떤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하시나요?

A.

인간과 공동체가 깊은 어둠의 시기를 맞을 때, 사람들은 생존의 압박 속에서 꿈꾸고, 상상하고, 혁신하며, 창조하는 능력을 잃게 됩니다. 우리 미술관은 이러한 시기에 대화와 창작의 모든 프로젝트를 통해 ‘놀이’ ‘상상’, 그리고 ‘가능한 세계의 창작 작업’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습니다. 특히 어린이를 대상으로 할 때, 이러한 ‘상상력의 회복’은 더욱 중요합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보는 일은 곧 치유의 과정이자, 고통과 갈등의 어두운 현실을 다른 형태로 전환하고 표현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이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의미 있는 대화>(Diálogos con Sentido)입니다. 매년 도심의 저소득 지역에 거주하는 어린이들이 초대되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미래를 상상하고 이상적인 세계를 구상하는 연습을 합니다. 그중 기억에 남는 한 프로젝트는 ‘도시’를 주제로 한 것으로, 아이들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네 꿈의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한 아이는 “부드럽고 폭신해서, 넘어져도 다치지 않는 도시”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아이는 “먹을 수 있는 도시, 그래서 굶주림도 고통도 없는 곳”이라고 상상했습니다. 또 어떤 아이는 “꿈이 실현되고 슬픔이 없는, 구름 위의 도시”를 그렸습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상상의 도시에 ‘바렘부리’(Baremburi)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들이 직접 제작한 모형 도시를 따라가며 전시를 관람하는 동안, 우리는 지금의 도시가 어린이들의 마음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절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Q.

최근 전 세계적으로 미술관과 박물관들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지역 사회와 소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관장님께서는 문화예술 기관들이 지역 사회와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주민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A.

콜롬비아는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는 젊은 나라입니다. 우리가 지나온 폭력의 시대는 이제 평화와 화해, 그리고 대화의 시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가라앉히고, 차분함 속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이러한 특별한 대화의 가능성은 미술관이 가진 고유한 능력에서 비롯됩니다. 미술관은 시간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멀리 떨어진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읍니다. 관광객, 노동자, 예술가, 주민 등 서로 다른 길을 걷는 사람들이 하나의 ‘항구’처럼 이곳에서 만나고 섞이며, 그 안에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서로를 새롭게 인식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예술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세계,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가능성으로 도약하게 합니다. 그리고 문화정책과 문화공간은 그 도약을 가능하게 하는 ‘도약대’이자, 우리가 평범하고 예상 가능한 일상으로부터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발판’이라고 생각합니다.

Q.

예술(교육)가들이 사회적 상상력을 촉발하고 확산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태도나 관점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관장님께서는 예술가들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A.

오늘날 우리는 듣기보다 말하기에 더 익숙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타인의 말을 듣고, 그 의미를 읽어내며, 그 말이 우리에게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는 우리 모두를 의견과 감정, 경험을 끝없이 발산하는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공동체와 함께하는 작업에는 무엇보다도 ‘적극적인 경청’과, 타인이 자신의 생각과 세계관을 펼칠 수 있도록 공간을 내어주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예술가나 기관이 발화의 권리를 가졌다고 해서 자신의 입장에서 혹은 모두를 대신해 서둘러 말하려는 태도는 지양해야 합니다.

Q.

앞으로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 간 문화예술교육 교류가 어떤 방식으로 발전하면 좋을지에 대하여 관장님의 제안을 부탁드립니다.

A.

한국의 민화와 오늘날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미술 작가들이 떠오릅니다. 두 경우 모두, 섬세한 집중력과 극도의 세밀함, 정확성, 그리고 시간의 가치를 존중하며 깊은 영적 차원을 탐구하는 장인정신이 돋보입니다. 이러한 태도와 미적 감수성은 우리 사회에서도 높이 평가되고, 배워야 할 소중한 가치입니다. 한편, 라틴아메리카는 오랜 시련과 투쟁의 역사 속에서 평화와 발전을 추구해 온 수많은 개인과 공동체의 기억, 저항, 그리고 삶의 지혜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기술이나 경제적 자원이 아니라, 사회적 혁신의 형태로 축적된 지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복잡하고 근본적인 문제들을 완화하기 위해 발휘된 이러한 창의성과 재치는 서로를 잇는 소통과 영감의 다리가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겉보기엔 상반되어 보이는 요소들의 결합은 예상할 수 없는 새로운 협력과 창조의 방식을 낳을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안에, 문화적 만남의 진정한 마법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서로의 인내와 끈기, 그리고 창의성은 태평양으로 이어진 나라들 사이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갈 것입니다.

***
예술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향한다. 닫힌 문을 여는 일처럼, 예술은 우리 안의 세계를 확장하고 타인의 삶으로 다가서게 한다. 안티오키아 미술관이 걸어온 길은 단순한 공간의 변화를 넘어, 예술이 사람과 사회를 잇는 항구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과정이었다. 이번 인터뷰가 그 ‘열림’의 의미를 되새기며, 예술을 매개로 개인의 마음과 공동체의 삶이 이어질 때, 사회적 상상력은 단순한 꿈이 아닌 함께 바꿀 수 있는 미래의 언어가 된다.
마리아 델 로사리오 에스코바르(Maria del Rosario Escobar)
마리아 델 로사리오 에스코바르(Maria del Rosario Escobar)

메데진 안티오키아 미술관 관장. 콜롬비아 UPB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과 저널리즘을 전공하고, EAFIT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인문학 석사를 취득했다. 2012년부터 16년까지 메데진시 문화국장을 역임하며 주요 문화정책을 주도했고, 2017년부터 안티오키아 미술관 관장으로 재직하며 예술과 공동체의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 안티오키아 미술관 museodeantioquia.co
인터뷰_전략사업팀
사진 제공_마리아 델 로사리오 에스코바르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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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현 2025년 10월 31일 at 12:57 AM

    폭력과 불안을 예술로 치유하고 재생해 온 메데진의 이야기와 안티오키아 미술관의 역할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애정과 공감’을 핵심 가치로 삼는 관장님의 철학이 참 따뜻하고 존경스럽습니다.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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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11월 01일 at 2:43 PM

    “누구도 뒤처지거나 원 밖에 남지 않도록”
    마리아 델 로사리오 안티오키아 미술관 관장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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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11월 01일 at 5:45 PM

    “누구도 뒤처지거나 원 밖에 남지 않도록”
    마리아 델 로사리오 안티오키아 미술관 관장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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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선희 2025년 11월 02일 at 9:04 PM

    공동체와 함께하는 작업에는 무엇보다도 ‘적극적인 경청’과, 타인이 자신의 생각과 세계관을 펼칠 수 있도록 공간을 내어주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말이 크게 남습니다. 말하기보다 듣기가 필요한 시대이고 공동체와 작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듣기가 중요하다는 데에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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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현 2025년 10월 31일 at 12:57 AM

    폭력과 불안을 예술로 치유하고 재생해 온 메데진의 이야기와 안티오키아 미술관의 역할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애정과 공감’을 핵심 가치로 삼는 관장님의 철학이 참 따뜻하고 존경스럽습니다.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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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11월 01일 at 2:43 PM

    “누구도 뒤처지거나 원 밖에 남지 않도록”
    마리아 델 로사리오 안티오키아 미술관 관장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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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11월 01일 at 5:45 PM

    “누구도 뒤처지거나 원 밖에 남지 않도록”
    마리아 델 로사리오 안티오키아 미술관 관장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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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선희 2025년 11월 02일 at 9:04 PM

    공동체와 함께하는 작업에는 무엇보다도 ‘적극적인 경청’과, 타인이 자신의 생각과 세계관을 펼칠 수 있도록 공간을 내어주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말이 크게 남습니다. 말하기보다 듣기가 필요한 시대이고 공동체와 작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듣기가 중요하다는 데에 동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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