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과 감상, 토론의 산실-수업 박물관을 상상하며

교육의 미학과 비평의 공동체

2024년 나는 청주교육대학교 총장 임기를 끝내고 연구년을 보내며 오랜만에 미국과 유럽의 여러 미술관을 돌아볼 수 있었다.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 런던의 테이트 모던, 파리의 루브르, 오슬로의 뭉크 미술관 등이 그 일부이다. 각 미술관은 진귀한 소장품으로 수많은 관객을 불러 모았다. 나 또한 진본의 아우라를 맛보는 소중한 체험을 했다. 뉴욕 현대미술관의 <별이 빛나는 밤> 앞에서는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푸른 소용돌이 속에서 고흐의 인생을 생각했다. 파리 루브르의 <모나리자> 앞에서는 신비로운 미소를 뒤로하고, 현대의 테크놀로지가 창조의 비밀을 조금씩 밝혀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었다. 오슬로의 뭉크 미술관에서는 익숙한 <절규>뿐 아니라 알지 못했던 작품들을 통해 인간 존재의 다양한 내면을 더듬어 볼 수 있었다. 평소 예술에는 다소 문외한이었던 나에게 미술관 여행은 인간과 자연의 여러 면모를 창조적으로 포착하는 예술의 근원적인 힘을 느끼게 한 산 경험이었다. 처음 보는 작품은 처음 보는 대로, 익숙한 대작은 원본이 가진 아우라로 내 감정과 사고에 잔잔한 진동을 전해 주었다.
그런데 미술관 여행은 오래전부터 내 마음속에 있던 생각 하나를 더욱 간절하게 만들었다. 각 시대의 예술가들이 남긴 작품을 소중히 수집하고 전시하는 미술관이 있듯이, 인간만의 고유하고 독특한 활동 양식인 수업 실천 또한 수집하고 전시하는 수업 박물관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의 시초는 내가 동료 학자들과 함께 ‘수업 비평’이라는 장르를 개척하면서 품게 된 것이다. 문학비평이 출판된 문학 작품을, 연극비평이 공연된 연극을, 영화비평이 상영된 영화를 분석 텍스트로 삼듯이, 수업 비평은 수업 현상을 분석 텍스트로 하여 그 의미를 드러내는 작업이다.
수업을 비평한다는 생각의 근저에는 ‘수업도 하나의 예술’이라는 은유가 자리하고 있다. 수업 활동을 예술로 보는 관점은 다소 낯설게 들릴 수도 있지만, 좋은 수업과 좋은 예술이 지닌 친화적 속성을 떠올려보면 그 말의 의미를 금세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좋은 수업은 창의성을 본질로 한다. 훌륭한 교사는 동일한 교육과정과 교육 목표 속에서도 놀랄 만큼 독창적인 실천을 만들어 낸다. 다음으로 수업은 즉흥성을 본질로 한다. 무대 위 공연이 관객과의 호흡 속에서 끊임없이 변주되듯이, 수업 또한 매번 다른 빛깔을 지닌 학생들과 공명하면서 교사와 학생의 공동 참여 속에서 완성된다. 셋째, 좋은 예술처럼 좋은 수업은 참여자의 이성을 고양하고 감정을 울리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확장시킨다.
이런 점에서 좋은 수업과 그 의미를 탐색하는 수업 비평은 예술 작품과 예술 비평처럼 이중의 경이(驚異) 체험을 선사한다. 첫 번째 경이는, 동일한 교육과정을 소재로 삼더라도 교사마다 전혀 다른 수업의 예술을 창조해내는 세계에 대한 경이이다. 두 번째 경이는, 다양한 비평의 시선을 통해 수업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경험의 경이이다. 안타까운 것은, 수업 비평이 한국에서 시도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훌륭한 수업 실천 사례를 수집하고 전시하는 박물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수업 박물관이 실현된다면,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의 행위를 넘어 미학적 실천이자 문화예술의 한 영역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수업의 기록은 평가의 근거가 아니라, 교육의 미학을 전승하는 문화적 유산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교사는 표준적 지식을 전수하는 기술자가 아니라, 존 듀이가 말했듯이 학생과 함께 의미를 빚어내는 최고의 예술가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생각을 조금 더 확장해 보면, 문화예술교육이 음악·미술·체육 등 전통적인 예술 교과에만 머물 필요는 없다. 국어 시간에 문법의 논리성과 표현의 미학을 음미하고, 역사 수업에서 인류 문명과 문화의 서사를 되새기며, 수학 시간에 수와 도형의 질서 속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과학 수업에서 자연의 변화와 신비에 감탄하는 것도 모두 예술적 체험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모든 좋은 수업은 학습자가 자신과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고 표현하는 문화예술적 경험이 된다. 그렇다면 좋은 수업이 이루어지는 교실과 학교는 매일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는 전시장이요, 예술관이 아닐까.
그러나 이 상상은 학교 교사들에게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문화예술교육자들 또한 자신이 진행한 수업과 교육 활동을 하나의 작품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공개하고 나누며, 동료들과 함께 비평하고 성찰하는 비평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예술가가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비평을 통해 스스로를 새롭게 발견하듯이, 예술교육자도 자신의 교육 장면을 나누고 되돌아보는 과정을 통해 예술교육의 지평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의 수업 박물관은 단순히 교실의 기록을 보존하는 공간이 아니라, 교사와 예술교육자가 함께 서로의 실천을 감상하고 토론하며, 교육과 예술이 만나는 열린 미학의 장으로 거듭날 것이다.
이혁규
이혁규
청주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로서 수업, 학교 혁신, 민주시민교육에 관한 연구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좋은 수업은 예술이다’라는 관점 아래 ‘수업 비평’이라는 연구 장르를 동료들과 함께 개척했으며, 교사 전문성과 시민적 성장을 연결하는 교육 담론을 제시해왔다. 청주교육대학교 총장을 역임하며 공교육과 교사교육의 혁신에 힘썼다. 현재는 민주주의의 위기 시대에 모두가 존중받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회, 함께 연대하고 공존하는 민주주의의 성숙을 고민하며 연구와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한국의 교육생태계』 『수업비평가의 시선』 『한국의 교사와 교사되기』 『민주주의 위기 시대, 교육의 응답』 등이 있다.
lhk97@cje.ac.kr
4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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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11월 05일 at 2:29 PM

    실천과 감상, 토론의 산실-수업 박물관을 상상하며
    교육의 미학과 비평의 공동체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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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현 2025년 11월 06일 at 11:00 PM

    수업도 전시되고 감상될 수 있는 예술이라면 교실에서의 매 순간 역시 소중히 남겨야 할 작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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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희 2025년 11월 07일 at 10:32 PM

    수업박물관, 수업미술관… 수업의 개념을 이렇게 확장시켜 본 적이 없어 넘 참신했습니다. 수업을 성찰, 성찰, 감동의 박물관, 미술관으로 만들어 보고자 하는 열망이 생긴 기사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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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11월 12일 at 1:42 PM

    실천과 감상, 토론의 산실-수업 박물관을 상상하며
    교육의 미학과 비평의 공동체

    기대만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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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11월 05일 at 2:29 PM

    실천과 감상, 토론의 산실-수업 박물관을 상상하며
    교육의 미학과 비평의 공동체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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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현 2025년 11월 06일 at 11:00 PM

    수업도 전시되고 감상될 수 있는 예술이라면 교실에서의 매 순간 역시 소중히 남겨야 할 작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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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희 2025년 11월 07일 at 10:32 PM

    수업박물관, 수업미술관… 수업의 개념을 이렇게 확장시켜 본 적이 없어 넘 참신했습니다. 수업을 성찰, 성찰, 감동의 박물관, 미술관으로 만들어 보고자 하는 열망이 생긴 기사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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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11월 12일 at 1:42 PM

    실천과 감상, 토론의 산실-수업 박물관을 상상하며
    교육의 미학과 비평의 공동체

    기대만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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