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담긴 사회의 얼굴을 읽어낼 때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예술을 읽는다는 것

“사회학적 상상력은 우리들로 하여금 역사와 개인의 일생, 그리고 사회라는 테두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 바로 이것이 사회학적 상상력의 과제이며 약속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라이트 밀스가 1959년에 펴낸 저서 『사회학적 상상력(Sociological Imagination)』의 구절이다. 출판된 지 반세기가 훌쩍 넘었음에도 사회학을 처음 만나는 이들에게 가장 권하고 싶은, 내게는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물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바라보는 눈을 열어준 책이다. 사회적 상상력과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이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예술의 힘은 사회학적 상상력과 맞닿아 있다. 상상력이 아직 실현되지 않은 것, 보이지 않는 것을 머릿속에서 그려내는 힘이라면, 사회학적 상상력은 어떤 현상을 개인의 삶과 사회 구조, 그리고 역사적 맥락 속에 새롭게 위치시켜 이해하는 힘이다.
사회학적 상상력을 장착하고 1930년대 한국 소설계를 대표하는 이태준 작가의 단편 『까마귀』(1936)를 읽어보자. 이 소설은 세련된 문장 외에도 아름다운 여주인공이 결핵에 걸려 죽어가는 과정을 기품 있게 그림으로써 ‘죽음의 미학화’를 지향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백지장처럼 창백한 얼굴, 가녀린 몸매, 잠이 오는 듯 나른한 표정과 조심스러운 몸짓, 그리고 힘없는 여린 목소리까지.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결핵 걸린 여성은 이처럼 가엾고 애달프지만 그러면서도 무언가 낭만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존재로 묘사된다. 나도향의 『환희』, 김유정의 『만무방』, 이상(李箱)의 『봉별기』 등 한국 근대문학 속에는 결핵에 걸린 주인공이 유난히도 많이 등장한다. 결핵을 ‘한국문학이 가장 사랑한 질병’이라 규정할 정도로 말이다.
왜 하필 결핵이었을까? 작가들이 유독 결핵에 취약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볼 수 있다. 창작을 직업으로 하니 더 예민하고, 혹은 위생을 담보할 수 없는 열악한 집필 환경 때문에 결핵에 쉽게 걸리지 않았을까. 그러나 당시의 문인들이 결핵에 걸려 사망하는 비율이 높았던 이유, 그리고 당대의 문학작품에 유독 결핵에 걸린 사람들이 많이 등장했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결핵이 당대의 유행병이었기 때문이다. 결핵은 1960년대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사망률을 기록하던 치명적인 질병이었고, 당시 일제강점기를 겪고 있던 조선은 여타의 다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결핵으로 인한 사망률이 특히나 높은 나라였다. 1930년대 후반 한국의 결핵 환자는 40만 명 정도였던 것으로 추산되며, 결핵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해마다 4만 명에 달했다.
문학 작품 속 결핵 환자는 단순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한 시대의 사회적 풍경을 반영한 존재였다. 더 나아가 창백하고 연약한 여성 결핵 환자의 모습은 당대 사회가 여성에게 기대했던 순종적이고 희생적인 이미지를 그대로 투영했다. 즉, 문학은 개인의 병을 그리면서 동시에 사회의 욕망과 시대의 불안을 담아낸 것이다. 사회학적 상상력은 예술작품을 단순히 미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을 넘어, 그 안에 담긴 사회적 맥락과 권력 관계, 그리고 역사적 조건을 함께 읽어내도록 이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 능력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현대 사회과학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인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에 따르면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은 개인이 지닌 체화된 문화자본이다. 그리고 개인이 성장한 가정의 경제적·문화적 수준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경제적·문화적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말을 떼기 전부터 부모와 함께 클래식 음악을 듣고, 방학마다 미술관을 찾는 아이는 자연스럽게 순수예술에 익숙해지고 감상할 수 있게 되며, 사회로부터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취향을 지닌 사람으로 인정받게 된다는 것이다.
문화자본의 격차는 사회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주요 요인이 된다. 부르디외는 바로 이 지점을 지적하며, 문화예술교육이야말로 계층 간 문화 격차를 완화하고 누구나 문화적 감수성과 비판적 해석 능력을 체화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통로라고 강조했다. 문화예술교육은 체화된 문화자본을 길러내는 장(場)인 셈이다.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우리는 예술작품을 아름다움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와 역사 속에 배치된 의미망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습득할 수 있어야 한다. 축적된 문화자본은 개인적 교양의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사회학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으로 확장되며, 더 나아가 시민으로서 사회적 책임과 참여를 가능케 한다.
오늘날 문화예술교육의 과제는 단순한 예술 향유가 아니라, 예술을 매개로 사회와 역사,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를 새롭게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내는 데 있다. 예술은 개인의 눈을 열고, 교육은 그 눈을 세상을 향해 돌린다. 문화예술교육은 그 시선을 사회로 확장한다. 예술 속에 담긴 사회의 얼굴을 읽어낼 때, 우리는 단순한 감상자가 아니라 시대와 함께 숨 쉬는 시민으로 성장한다. 사회적 상상력에 기반한 체화된 문화자본을 함양시키는 것, 바로 문화예술교육의 궁극적 의미이다.
최샛별
최샛별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예일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로 연구와 강연을 하고 있다. 연구 관심 분야는 문화사회학, 예술사회학, 대중문화연구, 문화예술정책이며 현재 한국 사회의 문화 자본과 상징적 경계에 대한 연구, 세대문화연구, 한국‧미국‧중국‧일본 4개국 사회정체성 비교 연구를 수행 중이다. 사회현상은 문화의 프리즘으로, 문화예술은 사회학의 프리즘으로 분석하기를 즐긴다.
choseta@ewha.ac.kr
3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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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10월 21일 at 11:24 AM

    예술에 담긴 사회의 얼굴을 읽어낼 때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예술을 읽는다는 것

    공감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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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10월 21일 at 1:35 PM

    예술에 담긴 사회의 얼굴을 읽어낼 때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예술을 읽는다는 것
    기대만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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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현 2025년 10월 25일 at 1:18 AM

    문화예술교육은 사회학적 상상력과 문화자본을 길러내어, 예술을 통해 개인의 삶과 사회 구조, 역사를 이해하고 능동적인 시민으로 성장하게 하는 중요한 통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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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10월 21일 at 11:24 AM

    예술에 담긴 사회의 얼굴을 읽어낼 때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예술을 읽는다는 것

    공감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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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10월 21일 at 1:35 PM

    예술에 담긴 사회의 얼굴을 읽어낼 때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예술을 읽는다는 것
    기대만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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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현 2025년 10월 25일 at 1:18 AM

    문화예술교육은 사회학적 상상력과 문화자본을 길러내어, 예술을 통해 개인의 삶과 사회 구조, 역사를 이해하고 능동적인 시민으로 성장하게 하는 중요한 통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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