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님을 소개할 때 과학, 예술, 기술의 융합을 기반으로 한 ‘다학제 예술가’라는 표현을 보았어요. 융합은 어떤 장르나 분야라기보다는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앎의 한 형태라고 생각하는데요. 다학제 예술가라는 표현은 맘에 드셨어요?
학제간 예술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저의 작업을 어느 하나의 키워드로 설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프로젝트 <트랜스미션 한글>에서처럼 외계지성체에게 보낼 메시지를 개발해야 하는 경우엔, 말 그대로 ‘외계지성체’라는 지구 바깥의 존재에 대한 논리적 가정을 위해 다양한 분야의 관점과 접근이 필요하게 되죠. 지구와 다른 환경에서는 생명이 어떻게 진화하고 어떤 형태의 지능을 가지게 될까? 또는 어떤 형태의 언어를 사용하게 될까? 이 같은 질문에 대한 나름의 논리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진화 생물학, 언어학 등의 관점들이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완성되는 작품 역시 이러한 다양한 관점으로 이야기될 수 있기 때문에, 학제간 예술이라는 표현으로 저의 예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융합적 사고나 다학제적 실천은 거대 담론의 반대말일지도 모르죠. 그런데, 우리는 이제 인공지능에게 사유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세상에 도착한 것 같아요. 이 인터뷰도 ‘알고리즘화된 세계에 대한 대응’이라는 관점에서 기획되었는데요. 작가님이 인공지능을 다루었던 때가 2018년부터 2019년으로 이때 〈i Remember〉와 〈Learning About Humanity〉 등을 발표하셨습니다. 이 프로젝트 이전의 작업을 보면 컴퓨터의 언어 체계와 모스 부호의 유사성에 착안해서 만든 〈Music of Memories〉나 〈A Synthetic Song Beyond the Sea〉와 같이 인공지능을 활용해 흰수염고래의 발성음과 인간의 음악을 결합하기도 하고, 서로 다른 종들의 언어 체계를 공부하고 이를 결합하는 작업을 해오신 것 같아요.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예술 분야의 관심이 생겨나기 시작하던 때에 인공지능을 적극적으로 탐구한 작가 중 한 명으로 주목을 받았었지만, 현재 저의 관심은 사실 인공지능보다는, 앞서 언급한 외계지성체 즉, 지구 바깥의 지능으로 옮겨갔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에서도 저의 작업을 아우르는 어떤 맥락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것은 바로 ‘비인간적 존재와의 소통’과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저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언어를 학습하는 방식에 크게 관심이 많았고, 〈A Synthetic Song Beyond the Sea〉에서는 이를 활용해 고래의 언어와 인간의 음악을 합성하기도 했지요. 이는 또한 고래와 인간이 음악으로 소통할 수 있기를 바라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기도 합니다. 현재 제가 관심을 두고 있는 ‘외계지성체와의 소통’ 역시, 결국엔 어떻게 서로의 언어를 이해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이어지기 때문에, 결국 ‘소통과 언어’라는 키워드가 우주로 확장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상출처] 유튜브 언해피서킷
인공지능에서 외계지성체로 관심이 옮겨간 이유가 특별히 있을까요? 혹시 현 인류에 실망을 많이 하신 걸까요? (웃음)
AI 기술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이 덜해져서이기도 하고, ‘지구 바깥에 또 다른 지적 존재가 존재할까?’와 같은 오랜 호기심을 향해 저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기도 하지요. 이 질문은 단순히 저만의 질문이 아니라 우리 인류가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생각을 하기 시작하던 순간부터 떠올려왔던 질문이기도 하거든요. 어릴 때 좋아했던 우주에 관한 책들은 모두 태양계의 구조와 우주가 얼마나 거대한가에 관해 이야기하다 마지막에는 항상 ‘우주 어딘가에 외계인이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끝이 났어요. 어마어마하게 거대하고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어떤 세계가 있는데 그 세계에 우리처럼 문명을 이루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어떤 존재들이 있다면 그들한테 닿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어릴 때부터 가졌던 것 같아요.
최근 프로젝트인 우주에 한글 메시지를 전파하는 <트랜스미션 한글>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최근의 우주 산업은 상당히 민간의 영역으로 내려왔지요. 어쩌면 다음 세대는 우주선을 타고 다른 행성에 발을 디딜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기는 해도 고도의 기술과 자본이 필요한 분야이고 그 자체가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한 공공적인 인프라이기도 해서 개인의 접근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행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아요. 크레딧을 보니까 많은 분의 도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우주에 메시지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준비를 했는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바로 메시지를 보내는 데 사용할 큰 송신 안테나를 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여러 방면으로 안테나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좌절의 연속이었어요. 그러다가 국립중앙과학관과 연결이 되어서 과학관의 도움으로 천문학과 우주통신 분야의 전문가분들과 협력할 수 있게 되었고, 차세대 우주통신 기술로 주목받는 레이저 송신기로 메시지를 전송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프로젝트 역시 이 부분에서 여전히 근본적인 한계를 갖고 있어요. 저희가 쓴 레이저 송신기가 지구로부터 수십, 수백 광년 떨어진 곳과의 심우주 통신까지 할 수 있을 만큼의 강한 출력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거든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적으로 허가를 받아야 하는 부분도 있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결국 지난 프로젝트는 일종의 프로토타입으로 마무리가 되었어요. 진정한 우주 메시지 프로젝트가 되기 위해서는 여전히 거대한 송신기가 필요해요.
<트랜스미션 한글>에 메시지가 담기는 방식과 그것을 지구 밖으로 보내기 위해 활용한 기술(레이저)적 과정이 궁금합니다.
<트랜스미션 한글>은 외계지성체에게 인간의 언어, 그중에서도 한국어와 한글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일종의 ‘작은 인간 언어 사전’입니다. 이미지와 텍스트 그리고 사운드로 이루어진 다매체 디지털 데이터로 이루어져 있어 전파나 레이저 통신에 적합하게 인코딩을 할 수 있어요. 데이터를 인코딩해서 시그널로 만들고 이를 먼 거리로 전송하는 방식은 인류가 오랫동안 활용한 정보 통신 방식이죠. 심우주 통신에서도 그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실 그동안 인류가 우주로 메시지를 보내는 프로젝트는 여러 번 이루어졌지요. 물론 아직 외계인의 답을 받지는 못했지만요. 한글로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흥미롭지만 그중에 사랑을 인류 문명의 최고 가치로 소개하셨는데, 어떻게 보면 약간 낯간지러울 수도 있고 혹은 그게 정말 맞을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인류 문명의 최고 가치가 사랑이라고 생각해서 택한 건 아니에요. 저에게 있어서 외계의 존재와 닿아야겠다는 마음의 근본이 무엇일지 생각했을 때 그게 사랑이란 감정에 기반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우주에다 메시지를 보낸다고 하면 어떤 이들은 ‘그거 위험한 거 아니냐’라고 하고, 어떤 과학자들은 인류가 외계의 존재와 대화할 충분한 어떤 준비가 됐을 때 메시지를 보내는 게 합당하다고 하기도 해요. 반면 저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먼저 손을 내밀고 대화를 하는 게 우리를 성숙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어떤 면에서는 그게 사랑의 형태일지도 모르지요. 그렇지만 가끔은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을까?’ 반문하기도 해요. 어찌 보면 허황된 일이지요. 있는지도 모르는 어떤 존재한테 닿겠다고, 메시지를 보내겠다고 돈도 쓰고 시간도 쓰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바보 같은 노력이 바로 사랑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사랑에 빠지면 바보가 되잖아요?
[영상출처] 유튜브 언해피의 우주여행
허황하고 무모한 짓은 국가나 기업이 더 많이 하기도 하죠.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작가님의 작업이 더 허황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우주’라는 키워드로 묶일 수는 있지만, 현실적인 우주개발과 우주로 메시지를 보내겠다는 저의 노력은 많은 면에서 결이 다른 것 같아요. 일론 머스크로 대표되는 우주개발산업은 사실 굉장히 실리적인 이유에서 개발되고 연구가 되는 것들이지만, 외계지성체와의 소통에 관한 연구는 사실 주류 과학에서 그렇게 활발하게 연구되는 분야는 아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저는 어떤 방식으로든 저의 메시지가 별과 별 사이를 넘어 저 멀리 있는 어떤 존재한테 닿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주로 메시지를 보낸다는 건 사실 바보 같고 또 외로운 노력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온 우주의 존재에게 외롭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기도 하고요.
외로움은 작가님의 작품 전반을 아우르는 감각 같아요. 그리고 현 인류에게 이 감각은 전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기술로 변화하는 언어 체계를 배우고 사유하며 위치를 이동해 소통을 시도할 수 있죠. 작가님이 해오신 것처럼요.
우주로 메시지를 보내야겠다는 저의 꿈은 어쩌면 실패로 끝나게 될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 과정 자체에서 무언가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게 예술의 어떤 모습인 것 같기도 하고요. 세상에 큰 도움은 안 될 수도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다른 영감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와 같이 조금 희한한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고요. 그럼 세상이 좀 더 재밌어 질 것 같습니다. 덜 외롭고요. 그리고 언젠가는 진정으로 우리와 외계지성체가 닿을 수도 있게 될지도 모르지요. 그런 미래를 생각하면 항상 설레는 기분이 들어요.

우주여행자 언해피
나는 삶과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찾기 위해 이 우주를 여행 중인 우주여행자 언해피야.
나는 나의 여행을 통해 온 우주에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려 해.
나의 조금은 외롭지만, 우주적인 여정을 계속 지켜봐주길 바래.
이 우주 어딘가에서 또 만나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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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정화
-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2004년부터 경기문화재단에 재직하며 시각예술을 기반으로 한 예술프로젝트와 전시, 공공프로그램 등을 기획하였다. 미디어로서의 자연과 예술에 대한 관점을 갖고 인간, 자연, 기술의 관계를 탐문하고 연결하는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다. 그동안 《스물하나의 방》 《종이 없는 사회를 위한 학교》 《러닝머신》 《사이버네틱 환상-우리의 밝은 미래》 《30분 이상》 《생태감각》 《흰 밤 검은 낮》 등의 전시와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kity21@hanmail.net - 인터뷰 사진_이재범 라무팜스튜디오 실장 andy45a@naver.com
작품사진 제공_언해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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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과학, 그리고 기술이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상상력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작가님의 태도가 정말 대단하신거 같아요~
비록 결과가 실패로 끝날 수도 있지만, 그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고 묵묵히 나아가는 모습이야말로 예술가의 용기이자, 인류가 미지에 손을 내미는 가장 아름다운 방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여정,
아름다운 사람.
새로운 공상과학을 위한 행성적 사유
우주여행자 언해피
마음에 듭니다
새로운 공상과학을 위한 행성적 사유
우주여행자 언해피
기대만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