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이 매우 극사실적이다. 실제 주사위가 수면 위에서 튕기는 것 같다. 물방울도 그렇고 영롱하게 반짝거리는 주사위가 매우 매력적이다. 크게 확대 출력한 사진 같기도 하지만, 또 가까이에서 보면 사진보다 더 실재 같다.
내 작품은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 회화이다. 하이퍼리얼은 실재보다 더 실재 같다는 의미를 지니는 개념이다. 요즘은 휴대폰으로도 고화질 사진을 찍을 수 있고, 가정에서도 8K TV 모니터로 영화나 각종 영상 콘텐츠를 관람한다.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사진보다 더 생생한 세계를 만나고 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그림을 그리고, 대상을 재현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AI로 쉽게 이미지를 생산할 수 있는 요즈음 시기에 단지 리얼(real)하다거나, 실재 같다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질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진정한 하이퍼리얼은 무엇인가 질문하게 되었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땀이 묻어 있는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작은 1호나 0호 붓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그 붓이 만나는 2차원 평면은 구상이 아닌 색상으로 넘쳐나는 추상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러한 2차원 평면은 3차원의 환영인 가짜 이미지를 만들면서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하이퍼리얼의 회화를 그리다 보니 페인팅(painting)이 아니라 메이킹(making)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왜 페인팅이 아니라 메이킹인가? 그 둘은 어떠한 차이를 지니는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대상을 재현하는 것이라면, 메이킹으로서의 행위는 실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실재보다 더 실재같이 그리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주사위를 만들어 붙이기도 하고, 그림자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실제 오브제로 인해 그림자가 생기도록 한다. 따라서 실재와 가상의 환영이 혼합된 하이브리드(혼종)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작품들은 인공지능과의 협업이 계기가 되어 발전된 것이다. 따라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아닌 예술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닌 예술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면서 예술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나의 땀이 섞인 육체적 활동으로 그 과정과 결과를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예술은 세계의 재현이 아닌 그 이상의 것으로 ‘제작’하는 것으로서 창작이라는 설명으로 이해된다. 나아가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Simulation) 개념과 함께 영화 <매트릭스>가 떠오른다. 구상과 추상은 현실과 가상과의 경계와 연결되고 혼합되는 것으로 생각하니 두민 작가의 작품이 더 잘 이해된다. 2019년도에 진행한 AI와의 협업 프로젝트는 그러한 맥락에서 현실과 가상 융합의 확장 버전으로 진행된 것인가?
우연한 계기였다. 연말에 미술 관계자와 스타트업 회사들이 참여하는 행사에 초대를 받았다. 그 자리에서 만난 한 스타트업 대표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이미지를 생성하는 인공지능을 개발하고 있는데 프로젝트를 함께하자고 제안했고, 예술가이다 보니 호기심이 생겨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난 그 프로그램도, AI도 잘 몰랐지만, 기획이나 방향은 예술가인 내가 진행한다는 것을 전제로 협업을 시작했다. 작품 제목이 〈Commune with… 독도〉이다. 독도 실상 부분을 내가 그리고 수면 위에 반영된 가상의 이미지를 AI가 그리도록 하여 독도 기념일에 공개했다. 내가 그린 바다 위의 독도는 유화이고, 수면 위에 비친 독도는 AI가 한국화 기법으로 그리도록 하여 이를 연결해서 함께 디지털 프린팅으로 완료했다. 실제 나는 한국화를 그릴 수 없었기에 AI와 협업을 통해 진행하는 것이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유화로 그린 독도의 반영 이미지를 AI가 하루 수백 장씩 그려내면 그중에서 내가 선택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일주일 정도를 반복해서 얻은 결과다.
그런데 왜 협업이라고 표현하는가? 그냥 AI를 활용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인공지능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하는 것도 필요했고, 그래서 함께 작업하는 협력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러한 과정에서 예술가로서 나와 AI의 차이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AI와 관계를 맺는다고 생각해야 그 차이를 느낄 수 있고, 그러한 경험 속에서 예술가로서 나 자신을 깨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을 깨워봐야겠다’라는 표현이 흥미롭다. AI와의 협업 프로젝트 이후 작품 개념 등이 더욱 구체화되고 확장되었다고 했는데, 협업 이후 변화가 궁금하다.
AI와 협업 이후 나는 더 명확하게 ‘화가가 아니라 예술가이고 싶다’고 말한다. 결국 AI와 다른 점은 내가 선택을 할 수 있는 인간이며, 끊임없이 질문하는 예술가라는 점이다. 나아가 나의 예술 활동 영역이 확장되었다. 작품활동도 평면에서 입체로, 미디어아트, 설치 프로젝트 등으로 확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시를 기획하고, AI 교육자와 강연자를 넘어 개념을 이야기하는 철학자의 영역까지 확장되었다. 고지식하게 그림만 그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창의적 활동으로 폭넓게 고려하게 되었다. 즉 예술 활동 바깥의 영역도 예술이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오히려 예술가로서 더 많은 자유로움을 얻게 되었다.
다소 놀랍다. AI를 경험하고서 예술 활동 영역과 예술가로서 역할이 확장됐다고 인정하고 표현하는 것이 다른 면모 같다.
맞다. AI가 나를 깨워줬다고 생각한다. 내 안에 내재해 있었던 것이지만 미처 몰랐던 나를 발견하게 해 준 것이다. AI와 다른 인간으로서, 예술가로서 나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인데, 나에 대한 ‘유레카’와 같은 것이다.
결국 ‘예술이 답’이라는 이야기 같다. 최첨단 기술이 핵심이 아니라 예술적인 것을 만들어내고 이해하는 과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인가?
그렇다. 결국엔 사람의 영역이라는 것을 증명한 계기인 것이다. 그래서 예술가로서 나는 그것을 해석해서 관람객에게 제시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기술 환경 속에서 예술가나 예술교육자는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할까?
AI를 기술적으로만 배우는 것에 그치면 안 된다. 기술교육이 아닌 예술적 과정으로 만들어야 한다. ‘왜’라는 질문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AI를 배우고 익히는 교육프로그램이 아닌 그것을 통해 예술작품으로 만들도록 해야 한다. 나는 교사가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질문해야 하는 사람인 것이다. AI는 질문을 할 수 없다. 그것이 큰 차이이다. “너는 왜 이걸 그렸어?” “너는 왜 이런 과정과 방법으로 만들었어?”라는 질문과 답의 과정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두민 작가는 기술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것 같다. 기술과 인간의 차이를 강조하면서도 AI와의 협업이라고 표현하는 면이 그렇다. 그렇다면 기술 지배 현상에 대해 많은 사람이 공포감이 있고, 예술가들도 설 자리가 없다고 우려한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대상을 인정하는 것부터 예술이 시작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대상을 인정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인간으로서, 예술가로서 자신감, 정체성도 그러한 과정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예술가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AI 기술을 인정하기 때문에 협업 대상으로 관계 맺을 수 있었고 독도 프로젝트에서 내가 할 수 없는 한국화 기법의 그림을 AI에 부탁한 것이다. 내가 할 수 없는 역할을 부여한 것이고, 나아가 서로 다름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한 과정 속에 ‘왜’라는 질문이 더욱 활발히 생성된다. 바로 그때 질문은 ‘나는 예술을 왜 하는가’로 귀결되었다. 새로운 기술이 생겨났을 때 예술가들은 새로운 것을 본능적으로 구현해 냈다. 사진기가 나왔을 때 인상파 회화가 등장하였고, TV와 비디오가 발명되었을 때 백남준은 비디오아트를 만들어냈다. 따라서 지금의 기술 환경은 더 즐겁게 놀 수 있는 새로운 놀이터가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AI와 협업한 작품이나 새로운 미디어아트 등을 감상할 때는 어떠한 태도여야 할까? 관람객의 입장에서 설명을 부탁한다.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것을 그대로 이해하려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고흐나 피카소의 작품을 수동적으로 이해하고 관람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능동적인 관람 방식, 적극적인 참여의 방식으로 예술을 감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반복되지만 예술작품에도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AI와 같은 고도의 기술 환경에서도 예술가와 같은 주체로서 더 건강한 대중이 만들어질 것 같다. “왜(Why)?”를 외칠 수 있는 관람객이 되기를 바란다.
발터 벤야민과 대화하고 있는 것 같다. (웃음) 피카소와 같은 회화에 대해서 가졌던 가장 낙후된 태도가 새로운 예술작품을 통해 가장 진보적 태도로 바뀐다고 설명하는 대목이 그렇다. 결국 비판적 태도로 예술을 관람해야 한다는 설명 같다. 나아가 인간으로서 주체적인 태도를 가지고 예술이나 다른 행위들을 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알고리즘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나의 행동 패턴에 의한 알고리즘인지 아닌지 여러 가지 의문이 든다.
내가 선택을 한 것인지, 선택을 당하고 있는 것인지 질문이 필요하다. 비판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예술가도 그렇고 우리는 모두 늘 깨어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리셋’ 버튼을 누를 수 있다. 그러한 용기가 필요하다. AI는 스스로 선택해서 작동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것을 잊고 살아가는 것 같다. 분명히 말하지만, 인간은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내 작품으로 돌아가 보자. 나는 주사위를 그리는 정물화 화가가 아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루비콘강을 건너면서 한 말인데, 그 후 그는 로마의 황제가 되었다. 나는 주사위를 주제로 삼은 것이다. 예술가를 선택한 나를 긍정하는 것이다. 나에게도 주사위는 던져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선택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우리에게는 선택할 용기와 우리의 선택을 긍정하는 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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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창희
- 미학연구자. 감성정책연구소 소장. 서울대학교, 건국대학교 출강, 부산광역시립미술관 소장품수집위원, 시각예술정책 및 문화도시 조성 외 학술, 정책, 현장 등에서 광범위하게 활동하고 있다. 「랑시에르 사유에서 예술과 노동의 문제」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예술을 통한 함께 살기에 관한 연구 및 실천적 활동 등을 수행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mediaaura@hanmail.net - 인터뷰 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작품 사진 제공_두민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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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갈림길에서, 각성한 예술가의 질문
두민 미술작가·두민아트스튜디오 대표
잘 보고 가네요
선택의 갈림길에서, 각성한 예술가의 질문
두민 미술작가·두민아트스튜디오 대표
기대만점입니다
작품이 너무 멋있어서 와… 하고 봤네요!! 실제로 꼭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작품입니다!!
두민 작가님의 작업은 단지 기술과 예술의 경계를 넘는 것을 넘어서, 인간 존재와 예술가의 본질, 그리고 ‘왜’라는 질문 자체를 되묻는 철학적 성찰의 여정을 보여줍니다. AI와의 협업을 ‘활용’이 아닌 ‘관계’로 이해하고, 기술을 두려워하거나 거부하기보다 자신을 발견하는 거울로 삼는 태도는 지금 시대 예술가에게 꼭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나는 화가가 아니라 예술가이고 싶다”는 선언이 가슴 깊이 와닿습니다. 예술은 이제 단순한 표현이 아닌,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이유를 묻고 스스로를 깨우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두민 작가님을 통해 다시 한 번 느낍니다.
기술에 대한 공포보다, 그것을 마주하며 ‘왜’라는 질문을 놓지 않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이 진정한 창작의 출발점이라는 메시지… 긴 여운을 남깁니다.
깊은 인터뷰와 귀한 이야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