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고향이지만 밥장 님이 태어난 곳은 아닌데요, 40대에 통영에 오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어릴 때부터 통영 이야기를 많이 들으며 자랐어요. 아버님은 대학 졸업 후 서울로 올라오셨고, 통영에 가까운 가족은 없었지만, 어머니도 은퇴 후 통영에서 살고 싶다는 말씀을 종종 하셨죠. 성인이 되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았을 때, 본적이 ‘충무시’(현 통영시)라고 적혀있는 걸 보고, 통영이 나와 관계가 있는 동네라고 느꼈어요. 이후 일러스트레이터가 직업이 되면서 전국에서 벽화 작업할 기회가 생겼고, 그 과정에서 서울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도 좋은 곳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나이가 들면 지방에서 프로젝트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디로 갈지 계속 둘러보면서 다녔는데 그때 염두에 둔 장소가 통영이었죠. 어릴 때부터 들어온 이야기들이 통영을 제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게 했던 거 같아요.
통영에 처음 와 본 것은 언제였어요?
처음 온 건 대학생 때였어요. 그때는 지금은 사라진 충무관광호텔이 있었고 항남동도 번성했었죠. 항남동에 있던 포트극장에서 영화를 본 기억도 남아 있어요. 그 후 2010년에 다시 통영을 찾았고, 제대로 살아보겠다는 마음으로 죽림(동)에 집을 얻고 3개월 동안 살았어요. 그리고 2016년에 집을 사서 내려오게 되었어요.
2010년에 3개월을 살고, 2016년에 다시 내려와 첫 번째 공간인 ‘믿는구석통영’을 마련했는데요. 공간을 열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2010년 통영에서 3개월을 살면서 느낀 것은 단순히 그곳에 산다고 해서 그 지역, 그 동네와 친해지기 어렵다는 점이었어요. 예를 들어, 연고가 전혀 없는 포르투에서 3개월을 산다고 해서 포르투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보고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이 한계가 있고, 결국 관광객일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다음에 통영에 오면, 통영이 아니더라도 다른 지역에 가면 사람들과 교류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살 집(믿는구석통영)을 마련한 후 적극적으로 통영 친구들을 사귀고 집으로 초대해 밥을 먹고 술도 마시며 친분을 쌓아갔어요. 그리고 서울 사는 지인과 친구를 통영으로 초대했죠. 그러다가 한 달에 한 번씩 옛 수다(현 삼문당) 공간을 빌려 과학 강연 프로그램을 운영했어요. 통영 사람에게는 통영에서 만나기 어려운 과학자를 만날 기회를 제공하고, 초대한 과학자(지인)에게는 통영에서 저 없이도 교류할 수 있는 친구를 만들어주었죠. 이런 관계망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면서, 단순히 사는 공간이 아니라 함께 어울리고 노는 공간이 있으면 더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공간을 찾아다닌 끝에, 지금의 내성적싸롱호심을 만들게 되었어요.
내성적싸롱호심은 어떤 공간인가요?
내성적싸롱호심은 노는 공간입니다. 서울에 있을 때도 ‘믿는구석’이라는 6평짜리 작업실을 만들어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교류했던 적이 있는데, 내성적싸롱호심은 그 확장 버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공간의 슬로건은 “통영에서의 새로운 경험”입니다. 그 의미는 두 가지로 나뉘어요. 첫 번째는 통영 사람들에게는 통영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거나, 듣기 힘든 이야기를 듣고, 보기 어려운 것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통영을 찾는 사람들에게 통영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며, 이곳에서 준비되고 기획하는 새로운 내용을 접할 기회를 주는 거죠. 내성적싸롱호심은 지역 안팎의 사람들이 만나고 교류하며 새로운 경험을 나누고 즐기는 공간입니다.
‘통영에서의 새로운 경험’이라는 슬로건에 맞춰 어떤 활동을 주로 했는지 궁금합니다.
내성적싸롱호심을 열고 다양한 분들을 초대해 강의를 진행했어요. 과학자, 작가, 여행 작가, 시인 등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강연했고, 맥주를 만드는 사람처럼 통영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직업을 가진 분들도 초대했어요. 그리고 통영 분들을 위해 ‘그림일기’ 클래스를 열었고, 관광객에게는 봉수골을 소개하는 장소로서 역할을 하기도 했어요. 통영에 내려온 이야기로 책을 출간했고, 하우스 콘서트도 개최했죠. 예상치 못한 코로나도 있었지만, 내성적싸롱호심을 통해 북토크, 강연, 공연, 막걸리 시음회, 시 낭송 등 다양한 유료 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하며 사람들과 연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내성적싸롱호심에서 그림일기 클래스를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그림을 직업으로 삼거나 취미가 있어야 그리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죠. 그 이유는 ‘나는 그림을 못 그린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는 건 보통 기술적인 부분인데,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1학년 때는 미술 시간에 각자 알아서 재미있게 그렸던 말이에요. 그런데 학년이 올라가면 그림에 평가 기준이 생기고 그림을 못 그린다는 생각이 내면화되면서 그림에 흥미를 잃게 되죠. 그림은 잘 그리고 못 그릴 것도 없이 내 안에 뭔가를 표현하고 꺼내놓는 재미있는 방법이고 과정입니다. 그림일기 클래스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림을 새롭게 보고 즐기는 법을 배우며, 다른 사람의 그림을 감상하면서 단순히 기술적 완성도가 아닌, 마음에 와닿는 포인트나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찾게 되는 거죠. 그림과 일기라는 두 가지 방법을 통해 한 달 동안 숨겨진 자신을 표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면의 이미지를 꺼내고 드러낼 수 있어요.
통영에 내려온 지 올해로 9년째가 되었는데요. 처음 왔을 때와 비교해 보면, 통영의 문화예술 환경이 어떻게 변화했다고 느끼나요?
통영에서 행사를 열면 거제, 창원, 울산 등 주변 도시에서 많이 찾아와요. 왜 이렇게 먼 곳까지 오셨냐고 물어보면 “우리 지역에는 이런 프로그램이 없어서요”라고들 해요. 그만큼 통영은 도시 규모에 비해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그래서 늘 재미있고, 가능성이 많은 도시라고 생각해요. 소도시가 지속적으로 매력을 유지하려면 새로운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어내야 합니다. 특히 인간적인 교류,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부분이 중요해요. 그중에서도 통영만이 가진 정신적·문화적 자산이 핵심이 될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통영은 이미 많은 강점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도 충분한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11월, 경상국립대학교 글로컬 프로젝트로 ‘놀이하는 도시 통영’을 주제로 한 달 동안 강연했는데요. 어떤 내용이었는지 궁금합니다.
통영 시민을 대상으로 통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놀이’를 주제로 도시를 보는 방법에 대해서 강연했어요. 보통 사람들은 ‘놀이’를 여유가 생길 때 하는 가벼운 활동으로 생각하는데,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중요한 가치들이 놀이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아요. 창의성, 삶의 질 향상 같은 요소들이 놀이와 연결되어 있죠. 그래서 저는 놀이의 관점에서 통영에서 할 수 있는 의사결정과 정책 방향에 관해 이야기했고, 시민과 의견을 나누며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통영이 더 창의적이고 매력적인 도시가 되려면 ‘놀이’를 도시의 중요한 요소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중앙일보]에 ‘밥장의 통영놀이’란 제목으로 연재도 하셨는데요. ‘놀이하는 도시 통영’도 같은 맥락에서 ‘놀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가요?
우리나라 인구 구조를 보면, 1964년부터 1974년 사이 태어난 2차 베이비붐 세대가 있어요. 저 역시 그 세대 속하는데요, 요즘 그 세대가 은퇴하는 시기와 맞물리고 있어요. 한꺼번에 많은 인구가 은퇴하면, 이후 삶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가 사회적 화두가 될 거예요. 은퇴 후에도 재취업을 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한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그 시간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이제부터는 잘 놀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즐겁게 노는 방법을 찾아야 하죠. 책을 읽거나, 산책하거나, 예술 활동을 하면서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해요. 결국, 도시는 사람들이 잘 놀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해요. ‘놀이’가 전제되는 도시가 되면, 건강, 여가, 심리적 충만감, 경제적 부담 절감 등 여러 측면에서 효과를 얻을 수 있고, 그런 시각에서 도시를 바라보면 정책도 더 재미있고 창의적으로 세울 수 있지 않을까요? 혼자 글을 쓰거나 자기 생각을 표현하거나 새로운 것을 배운다든가 정적인 활동들은 충분히 예술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놀이하는 도시’는 통영과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2025년은 문화예술교육 정책이 수립된 지 20년이 되는 해입니다. 문화예술교육이 학교를 넘어 삶의 현장에서 자리 잡기 위해 필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가 10대라고 생각해요. 10대에 듣던 음악, 읽던 소설, 보던 영화들은 나이가 들어도 계속 좋아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감수성이 풍부한 10대에게 우리는 과연 충분한 기회를 마련해 주고 있을까요? 우리 삶을 표현하는 것은 영어, 수학 같은 과목이 아니라 음악, 미술, 체육이에요. 음악은 노래방에서 노는 것처럼 일상에서 즐거움을 주고, 미술은 디자인을 통해 우리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으며, 체육은 건강과 연결되어 평생 영향을 미치죠. 이처럼 정서적인 부분은 이미 우리 삶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학교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학교에 수영장을 만들어 수영을 배우고, 교복은 학교 밖에서 입고 학교 안에서는 자유롭게 입도록 하는 것도 변화의 시작일 수 있어요. 교복은 아이들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니 오히려 학교 밖에서 입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국, 문화예술, 놀이, 감수성이 존중받는 환경이 필요해요. 의사 결정권자들의 변화, 다름에 대한 인정, 쓸모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학교뿐만 아니라 지역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성적싸롱호심이 예술적인 삶의 현장에서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앞으로 내성적싸롱호심은 사람들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공간으로 지속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내성적싸롱호심이 있는 이 동네, 봉수골이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통영 사람들은 봉수골을 예전부터 소풍 가던 섬, 특별히 볼거리가 없는 동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서울에서 온 사람들은 이곳을 다르게 보더라고요. 미술관도 있고 책방도 있고, 밥집도 옹기종기 모여 있어 이곳에서 살고 싶어 하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이곳에서 스스로 재미있게, 그리고 무리 없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런 모습이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 인생을 통째로 예술로 만들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의 멋진 삶이고 하나의 작품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은 거죠. 누군가가 제 삶을 보며 ‘이렇게 살아도 괜찮구나’ ‘이런 공간에서 대화하며 지내는 것도 멋지네’라고 느낀다면, 자연스럽게 이곳에서 살고 싶어지지 않을까요? 그렇게 된다면 결국 문화예술 삶의 현장도 조금씩 변화할 거로 생각합니다.

인스타그램 @salon.hosim

- 정은숙
- 남해안 소도시 통영에서 동네여행사이자 통영풍경을 담은 블렌딩티를 제작하여 판매하는 빗자루탄마녀를 운영하고 있다. 빗자루탄마녀는 소도시마다 오랜 시간 누적해 온 삶의 방식을 온전히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로컬 콘텐츠를 기획, 컨설팅, 제작, 판매하고 있다. 문화와 관광의 경계에서 지역의 삶을 발견하고 가치를 재해석하여 사람과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고 있다.
wsaram@naver.com
인스타그램 @k_traveling_witch - 인터뷰 사진·영상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사진 제공_장석원(밥장) 내성적싸롱호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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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하는 도시에서, 삶을 예술 작품 삼아
장석원(밥장) 일러스트레이터·내성적싸롱호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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