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인프라도 부족한 중소도시로 갈수록 하나의 역할에 충실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하나의 역할만 파고들기에는 계기나 기회가 그만큼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홍반장처럼 이일 저일 맡으면서 동분서주하는 게 정석(?) 코스가 아닐까 싶은데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가?
필요에 의해서 일을 해온 것 같다. 수도권에서는 솔직히 예술에 대한 관심도 높은 편이고 그래서 관객 확보라든지 이런 것들이 되는 편인데 지역에서는 일단 관심이 낮고 관객을 확보하는 일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힌다. 문화예술은 누군가를 만나거나 관객과의 소통이 있어야 의미가 생기는데, 지역에서는 쉽지가 않다. 이걸 극복해 보려고 관광을 문화예술의 유통 방법론으로 선택했다. 경험해 봐야 그 가치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과 관광은 닮은 면이 있다. 예술은 낯서니까 관광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해보려다가 결국 교육까지 관심이 옮겨왔다.
예술에 대한 욕구나 관심이 자연스럽게 생겨나야 하는데, 이런 것들은 교육이나 경험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 같다. 지역에서는 더 접점을 만들기가 열악하니까 꼭 누군가 가르쳐주는 방식이 아니어도 다양한 경험을 통해 관점이나 태도를 바꾸게 되면 그것 자체가 교육이라 생각한다. 거제처럼 연령이 높은 분들이 많은 지역에서는 강한 충격과 경험도 교육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 자극이 되었으면 하고 활동을 해왔다. 근데 너무 사람이 없으니까 그 역할들을 어떻게든 배워나가면서 또 현장에서 익히면서 할 수밖에 없었다. 필요하니까 한 거다.
이주와 회귀로 지역을 두 번 경험하는 중이다. 거제도를 떠나 어떤 경험을 했고, 그것이 다시 지역을 바라보는 데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 궁금하다.
서울에서는 교육청이나 대학에서 저소득 가정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 캠프에서 미술교육 프리랜서처럼 했었다. 그리고 지역문화전문인력 양성사업을 시작하던 2015년 1기로 참여해서 문화기획이라는 것을 접하게 되었다. 그때 우수 교육생으로 선발되면 외국 탐방을 보내준다고 해서 욕심내서 참여했는데, 하다 보니 장관상을 받게 되면서 앞으로 이런 일을 해봐도 좋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 이후 문화기획이나 연구, 컨설팅하는 회사에 들어가서 다양한 지역사업 개발에 참여해 주민을 인터뷰하거나 리서치하고, 미디어 콘텐츠 만드는 일을 하면서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다. 돌아가는 현장을 보니까 내가 직접 해도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2019년 창업과 함께 귀향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런 경험들이 지역을 보는 직관을 길러주었다. 오히려 지역에 계신 분들이 그것이 정말 가치 있는지, 외부에서 흥미로워할 만한 것인지 보는 눈과 판단력을 가지기 힘든데, 여러 일을 경험한 것이 보는 눈이 좋아졌다. 그래서 ‘조선소 프로젝트’라든지, ‘거제도, 바다와 파도의 예술학교’같은 프로젝트를 기획할 수 있었다. ‘거제도, 바다와 파도의 예술학교’는 거제도가 경상남도에서 가장 많은 해변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라서 그 특성을 강조하고 활용하고 싶어서 시작했다. 해변을 창작의 장소로 만들어 본다면 상당히 흥미로울 것 같았다. 이처럼 지역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관심과 흥미를 느끼고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거제에서 태어나고 자라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외부로 나가서 공부하고 일하고 다시 돌아와서 생긴 장점이 아닐까 싶다.
거제도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해양이나 조선 등을 예술로 수렴해 오고 있다. 이러한 것들을 예술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나?
우선은 제 개인사에서 시작된다. 우리 집이 거제도의 블루칼라 노동자 집안이다. 아버지는 대우조선소에서 근무하시다가 퇴직하셨고, 오빠는 지금 삼성조선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내 또래인 80년대생까지는 조선소 경기가 좋을 때 태어나 회사에서 자녀 학비를 내주던 시기에 학교에 다녀서 대체로 학력이 높다. 해외 유학을 가는 경우도 많았고, 나도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미대를 다니고 졸업할 수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 내 삶에 영향을 주었음에도 잘 살펴보지 못했던 조선업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다. 직접적인 관계자가 아니면 도저히 알 수 없는 풍경들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고, 지역과 내 삶에 크게 영향을 주는 기반이자 내 가족이 일하는 곳이지만 파악할 수 없고 단절되어 있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던 것 같다.
조선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직영과 하청이라든지, 배를 인수하기 위해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들이 어떻게 지역과 연결되고 순환되는지 더 명료하게 이해해 보고 싶어졌다. 나와 긴밀하게 연결된 지역과 현장에 대한 욕구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라서 더 신선하게 봐주신 것 같다. 내부이지만 또 주변인으로서 바라보면서 어떻게 공공예술로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산업은 또 어떻게 공공예술로 수렴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다.
한편, 거제는 조선소 때문에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있는 이주민의 도시다. 저희 부모님은 대구랑 경북 분인데 조선소 때문에 거제로 오셨고 오빠랑 나는 거제에서 태어났다. 근데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리고 배를 인수하기 전까지 외국의 선주들이 거제에 머물면서 결혼하는 등의 이유로 혼혈 친구들도 생각보다 많다. 외국인 학교도 있고 미묘하게 국제도시이기도 하다. 거슬러 올라가면 유배로 인해 파생된 거제 옥씨 성도 있고, 예전부터 복합적인 구성원으로 이뤄졌던 지역의 정체성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고향이라고 해도 여러모로 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곳에서의 삶이나 활동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크게 체감되는 어려움은 어떤 것인가?
사람이 없다는 부분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뾰족해질 수 있고, 그래서 ‘나’라는 사람이 좀 많이 드러날 수 있고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해서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까 또 모난 돌처럼 정을 맞는 경우들도 생겨서 양면성이 있더라. 거제에서 나고 자란 거나 일하면서 얻은 직관 같은 것이 장점이 되어 빠르게 큰 프로젝트를 맡고 추진할 수 있었던 반면, “젊은 여자애가…”로 시작하는 편견 속에서 성과가 저평가되기도 한다. 초반에는 그럼 내가 더 보여줘야지 하고 활동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그렇다 보니 긁어서 부스럼을 만드는 사람, 떼쓰는 사람이 된다. 뭐 하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렇게까지 하고 싶다니까 한 번 해주라는 반응이다. 아무리 내가 기획서를 쓰고 설득하려고 해도 이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되었다. 그래서 보여주는 것만큼 강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어떻게든 실체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해놓고 나면 정확하게는 몰라도 무언지 짐작이 간다고 하더라. 거제로 돌아오고 보니 어렸을 때랑 별로 달라진 게 없는데, 그게 좋으면서도 싫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다른 것들을 좀 만들어보고 싶어서 회사도 만들고 활동도 했다. 거제에서 거제의 이야기를 거제스럽지 않게 해보려고 일을 만들어왔다.
조선소 프로젝트를 보면 ‘노동자 심리지원 조선소’ 같은 예술교육 프로그램도 있고, 배를 타고 리서치와 포럼을 하고 전시를 여는 등 다양하고, 규모도 적지 않아 보인다. 인력풀이 작은 환경 속에서 어떻게 파트너를 찾고 협업했나?
사람이 없어도 너무 없다. 프로젝트 시작할 때마다 제일 문제가 사람이다. 요즘 아무리 챗GPT가 좋다고 해도 질문을 하는 건 사람이고 누구랑 일하는지에 따라서 프로젝트의 질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일 잘하는 사람은 수도권에 많고 그들을 소집하다 보면 줌으로 진행한다든지 하는데, 그러면 물리적 거리감을 완전히 걷어낼 수가 없다. 결국 깊이를 구현하는 데도 한계가 생긴다. 항상 TF팀을 만드는데 잘 맞을 사람들을 어떻게든 소개받았다. 그런데 프로젝트가 끝이 나면 그 연계성도 함께 떨어져 나가게 되더라. 그렇게 반복되니까 지칠 수밖에 없고, 하면 할수록 이런 환경에서 예술로 지역에서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지역은 가능성이기도 하면서 한계이기도 한 것 같다. 결국 어떤 태도나 가치로 메시지와 파장을 던지느냐가 중요할 것 같다.
예술을 통한 교육은 엄청 오래 걸린다고 생각한다. 작년 발효 음식을 주제로 한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도 많이 느꼈는데 개인이 예술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발효과정과 비슷하다. 무언가를 경험한다고 해서 바로 결과물로 나오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계량화하기가 어렵고, 바로 발현되지 않으니까 효과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는 것 같다. 나 역시 전시를 보거나 좋은 책을 읽었다고 해서 그게 바로 기획이나 작업으로 나오진 않는다. 그런 것들을 쌓아가다 보면 나중에 복합적으로 발현이 되거나, 경험으로 이어지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 같다. 큰 영향을 줄 수도 있고,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10년 뒤에 갑자기 나타나기도 한다. 무슨 씨앗인지 모르고 뿌린 씨앗 같다. 그래서 유년 시절의 경험이 나중에는 큰 영향을 주거나 어떤 선택할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예술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아니고, 요리사나 용접공처럼 그냥 이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각자가 할 수 있는 만큼을 해내는 것 같고, 그냥 보편적인 직업 중의 하나가 됐으면 좋겠다. 예술을 좀 더 특수한 위치에 올려놓고자 하는 욕구들이 불편할 때가 있다. 나는 개인적인 욕망에서 모든 것이 시작됐고 앞으로 그럴 것이다. 지금은 지역을 다루는 프로젝트들을 해왔고 여전히 흥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 지역이라서 가지고 있는 고유성을 잘 발견하는 사람이고 싶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찾아내고 정리할 수 있으면 좋겠고, 사람들이 공감해 준다면 고마울 것이다.

인스타그램 @geojesumdo

- 박진명
- 나와 주변의 삶에서 빈틈과 씨앗을 찾아 엮고자 하는 기록자이자 문화기획자. (전)수영구문화도시지원센터장, ‘생각하는 바다’ 대표. 『딸아이의 언어생활탐구』, 『망치질하는 어머니들-깡깡이마을 역사 여행』을 썼다.
motwjm@naver.com - 인터뷰 사진·영상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사진·영상 제공_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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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지역의 이야기를, 지역스럽지 않게
김은주 섬도 대표
공감이 갑니다
지역에서, 지역의 이야기를, 지역스럽지 않게
김은주 섬도 대표
기대만점입니다
지역에서, 지역의 이야기를, 지역스럽지 않게
김은주 섬도 대표
보편적인 직업 너무 공감됩니다. 고향은 서울이지만 충북에서 문화예술을 꿈꾸는 사람으로서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문제를 직접 접하니 걱정이 앞서긴합니다.
그러나 보편적인 직업이라는 말, 왠지 위안이 됩니다. 사석에서도 많은 대화 나눠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건 나이는 제가 많치만 이 길의 선배님이기 때문일 겁니다.
얼마전에 거제도 다녀왔는데 사람이 없어서일까요?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다음엔 예술활동하는 모습도 목격하고 싶다는 작은 바램이 생기네요.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