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교육, 그 접점
인간 발달의 필수적이고 근본적인 요소인 문화와 교육은 유네스코 창립의 근간을 이루는 이념이다. 이 두 분야의 상호 보완적인 관계는 「1974년 국제이해, 협력, 평화를 위한 교육과 인권, 기본 자유에 관한 교육 권고」 , 「2001년 유네스코 문화 다양성 선언」 그리고 「2003년 무형 문화유산 보호 협약」과 같은 문화 및 교육 분야의 유네스코 국제규범에 잘 나타나 있다. 문화와 교육의 두 분야가 만나는 예술교육 분야는 유네스코 창립 초기에 주목을 받아, “학교 안 예술교육”에 대한 프로젝트가 문화국과 교육국의 협업 아래에 진행되었다. 그러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프로그램으로 발전하여 안착하지 못하였다. 그 이후에도 예술교육만을 위한 규정집이 발간되거나 협약이 만들어지는 일은 없었고, 각 분야의 규정집이나 권고문에서 부수적으로 언급되는 데 그쳤다.
개인의 전인적 발달뿐만 아니라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있어서 예술교육은 아주 중요한 의제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여긴 유네스코는 2006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2010년 서울에서 예술교육 세계대회*를 개최하였다. 세계대회를 통해 국제 사회 관심을 끌어냈을 뿐 아니라 「예술교육 로드맵 (2006)」(이하 리스본 로드맵)과 「서울 어젠다 (2010)」라는 유네스코 공식 문서를 채택하여 예술교육의 방향과 실행 방안을 제시하였다. 리스본 로드맵이 예술교육에 대한 비전과 개념, 그리고 범위를 제안했다면, 서울 어젠다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러한 비전을 달성하고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목표와 실천적 전략을 제시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참고자료)
* 필자가 사용한 ‘예술교육 세계대회’의 개최영문명이 ‘World conference on Arts Education’였다, 2010년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과 동일한 행사다. 현재 예술교육에서 문화예술교육으로의 프레임워크 전환이 이루어지고 3차 대회가 문화예술교육 세계대회(World Conference on Culture and Arts Education)로 개최되기 때문에, 맥락 정보 제공을 위해 필자가 제시한 행사명 그대로로 기재한다. (원문 편집자 주)
프레임워크 개정의 배경
2021년, 유네스코는 서울 세계대회 이후 약 10년 만에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하게 된다. 그 근거에는 아랍에미리트가 발의하고 유네스코 집행이사회가 만장일치로 채택한 문화예술교육에 관한 새로운 결정문이 있다. 주요 내용은 리스본 로드맵과 서울 어젠다를 잇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인 문화예술교육 프레임워크 개정이다. 개정의 배경에는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패러다임의 거시적인 변화가 있다. 세계는 현재 기후 변화의 문제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경제적 위기, 인도주의와 인권의 후퇴에 직면하고 있다.** **2021년 발간된 「함께 그려보는 우리의 미래 – 교육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은 언급된 교육분야의 전반적인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1972년 유네스코의 「포르 보고서 – 존재하기 위한 학습: 교육 세계의 오늘과 내일」와 1996년의 「들로르 보고서 – 학습, 그 안에 숨겨진 보물」에 이어 나온 국제 교육계의 중요한 문서이다. 19세기 산업 혁명 이후의 학교 모델과 교육과정, 교수법 등의 교육 시스템을 현재의 기후 위기와 사회 불평등과 같은 현실 상황에 맞게 변화시키고, 인류와 자연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선택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삶의 환경이 급변하면서 문화와 교육에 대한 관점 또한 달라져야 한다는 의견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지금의 교육 시스템은 어린이와 청년이 변화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참여하는 데 필요한 내용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 사회가 이전보다 더 다양해지면서 문화와 예술이 가진 가능성을 최대한 발현시켜야 할 필요성도 커졌다. 이를 반영하는 국제 사회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기도 하다. 일례로, 국가라는 틀에 기반한 근대적 시민성 개념을 벗어나 공통의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고 상호 연결된 세계에서 공존을 모색하는 세계 시민교육(Global Citizenship Education) 프로그램은 다양한 문화적 환경과 맥락에 최적화된 커리큘럼 및 학습 자료의 개발을 강조한다. 유엔은 2021년을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창조경제의 해로 지정하고 유엔 무역 개발 회의(United Nations Conference on Trade and Development)와 유네스코를 필두로 유엔 기구, 정부 간 기구(Intergovernmental Organizations), 비영리기구(NGO)와 함께 문화 창조산업을 지속 가능한 발전 목표 전반을 달성할 수 있는 중요한 부문으로 인식하기를 촉구하였다.
프레임워크 개정 과정
유네스코는 2022년 3월부터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규모로 문화예술교육 프레임워크의 개정을 시작하였다. 그 첫 단계로, 서울 어젠다가 채택된 이후 약 10년간의 문화예술교육 분야의 변화와 발전 상태를 짚어보고자, 2022년 3월 회원국과 유네스코 석좌 및 유니트윈(UNITWIN) 네트워크, 정부 간 기구, 비정부기구를 포함한 관련 분야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글로벌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이어서 같은 해 5월 24일과 25일, 2022년 세계문화예술교육주간을 맞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지원으로 서울에서 전 세계의 문화예술교육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현재의 우선순위, 기회 및 과제 등을 되돌아보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두 예비 조사 단계를 통해 프레임워크 개정의 전반적인 목표와 범위를 설정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다음 단계에서 세부적인 사항들을 논의할 수 있었다.

2022년 서울 전문가회의
올해 1월과 2월에는 문화예술교육의 지역 동향과 특수성 그리고 그에 따른 권고 사항 등을 논의하기 위해 지역별 협의회가 개최되었다. 회원국이 직접 선정한 문화예술교육 분야 전문가 350여 명을 포함한 700여 명의 관련 종사자들이 참석하여 심도 있는 논의를 하였다. 3월에는 교사와 교육자들을 대상으로 한 글로벌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는 유네스코와 파트너십을 맺은 5개 NGO 네트워크인 세계예술교육연맹(World Alliance for Arts Education) 공동 프로젝트로, 문화예술교육 최전선에 있는 전 세계 교사 및 교육자들의 당면 과제와 요구 사항을 파악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국제 교사 태스크 포스(The International Task Force on Teachers for Education for All) 및 유네스코 학교 네트워크(UNESCO Associated Schools Network, ASPnet)를 포함한 두 기구의 광범위한 국제 교육 네트워크를 통해 설문이 배포되었으며, 그 결과 113개국에서 1,300명 이상의 교사와 관련 직종 종사자들이 응답하여, 프레임워크를 다양한 관점에서 발전시킬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다.
또한 2023년 세계문화예술교육주간을 기념하며 한국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지원으로 5월 25일과 26일 유네스코 본부에서 문화예술교육에 관한 다자회담(Multistakeholder Dialogue)이 개최되었다. 지역 협의회 과정 전반에 걸쳐 우선순위로 떠오른 10개 주제를 중심으로 교육자, 정부, 민간 부문 및 시민 사회 전문가 약 150명이 토론하여 일련의 개정 권장 사항을 제시하였다.
프레임워크와 2024 문화예술교육 세계대회, 그리고 그 이후
여러 차례에 걸친 양적, 질적인 조사를 바탕으로 유네스코 문화국과 교육국 공동 집필팀이 9월 프레임워크의 초안을 완성하였다.(각 과정에 대한 보고서는 세 차례에 걸쳐 집행이사회에 제출되어 전 회원국에 보고되었다) 해당 초안은 연말까지 두 차례에 걸쳐 회원국들의 피드백을 받을 예정이며 최종본은 2024년 2월 13~15일로 예정된 문화예술교육 세계대회에서 의해 유네스코 공식 문서로 채택될 예정이다.
그렇다면, 2024 프레임워크는 2006 리스본 로드맵 그리고 2010 서울 어젠다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첫째, 프레임워크는 개인과 사회의 총체적 교육을 변혁할 힘이자 핵심 요소로서 문화 다양성의 가치를 강조하는 인본주의적 비전을 제시한다. 둘째, 문화유산에서 창조산업에 이르기까지 문화의 광범위한 차원을 포착하는 동시에 교육 시스템 내 학제 간 관점을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교류를 촉진한다. 셋째, 문화 창조산업의 디지털 기술부터 창의성, 공감, 비판적 탐구, 사회 및 정서적 학습, 평화와 정의를 위한 주체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령대의 학습자에게 현 세계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넷째, 모든 연령의 학습자에게 형식, 비형식 그리고 무형식의 교육을 포함하는 모든 방식의 문화예술교육을 차별 없이, 공평하게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 다섯째, 프레임워크는 변혁 교육의 정신에 맞춰 기존의 학습 시스템과 구조를 재고하고 재구성할 것을 촉구한다. 이에 대한 전략 목표로 (1) 문화예술교육의 접근성, 포용성 및 형평성의 확보, (2) 맥락 주의적인 양질의 평생 교육의 제공, (3) 문화적 다양성과 비판적 참여역량의 증진, (4) 회복력 있고 공정하며 지속 가능한 미래를 형성하는 기술과 능력의 함양, 그리고 (5) 문화예술교육 생태계의 형식화 및 가치화를 제시한다.
유네스코의 문화국과 교육국은 지속적인 협업을 통하여 각각의 분야에 대한 전문성, 네크워크 그리고 기존 프로그램들과의 연계성을 최대한 반영하여 프레임워크의 후속 작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먼저, 프레임워크를 보완하기 위해 국제 문화예술교육 전문가가 지역별, 테마별 백서를 집필 중이다. 일련의 과정 전반에 걸쳐 우선 나타난 분야별 과제들과 지역별 특성을 보다 전문적으로 심도 있게 탐구함으로써 프레임워크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도모하고 세계대회 이후에 있을 다양한 프로그램들과 방향성을 설정하는 것이 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2024년 2월 세계대회 이후에는 프레임워크 최종본과 10종의 백서를 토대로 구체적인 프레임워크 이행 가이드라인을 개발할 계획이다. 이 전략집의 목적은 분야별, 지역별 특성을 반영하여 프레임워크의 비전을 바탕으로 더욱 구체적인 이행 지침과 권고안 등을 담을 것이다. 유아 교육부터 직업교육, 평생 학습에 이르기까지 회원국의 국가 교육 정책 및 프로그램 전반에 걸쳐 문화적 중요성을 반영하고 문화 부문 전반에 걸쳐 교육 전략 및 이니셔티브를 강화하는 데 있다.
14년 만에 다시 개최되는 2024 세계대회는 앞선 두 번의 대회와는 그 결을 달리한다. 이전 세계대회는 유네스코 문화국의 주도로 관련 종사자들을 초청한 이벤트였다면, 이번에는 문화국과 교육국의 긴밀한 협업 아래에 문화부 장관과 교육부 장관들이 모여 문화예술교육 정책을 함께 논의하고 실질적 전략을 채택하기 때문이다. 문화예술교육 프레임워크와 2024 세계대회는 전 세계 문화예술교육의 새로운 미래를 향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대한민국은 2010 서울 세계대회 이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을 필두로 국내외 예술교육의 부흥과 발전을 위해 여러 방면으로 힘써왔다. 서울 어젠다를 바탕으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다양한 방면에서 확장해 왔고, 개발도상국 지원사업도 펼치고 있다. 또한 국제 포럼을 꾸준히 개최하면서 리포트와 논문을 발간하고, 최근 들어서는 유네스코 프레임워크 개정을 위한 2022년 전문가 회의와 2023년 다자회담 개최를 지원하여 국제사회 기여도를 높여 왔다. 2024 아부다비 세계대회 이후에도 유네스코와 지속적이고 긴밀히 협업하여 문화예술교육을 중심으로 문화와 교육계에서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이 더욱 높아지길 기대한다.
* 이 기사가 수록된 「2023 문화예술교육 기획리포트 1호: 변화를 모색하는 문화예술교육」은 아르떼 라이브러리 연구자료실에서 전문을 내려받을 수 있다.
백선경
백성경
현재 유네스코 문화국에서 일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 팡테옹 소르본대에서 문화연구 석사 과정을 마친 뒤, 파리 누벨 소르본대에서 「예술영화의 가치화 : 프랑스의 예술실험영화관과 한국의 예술영화전용관」을 주제로 2019년 9월 문화예술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문화창조산업과 관련된 정책, 제도와 대중 수용의 역학관계에 관심을 두고 있다.
sk.baik@unesco.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