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비상사태가 3년 4개월 만에 해제되고 일상 회복과 함께 문화예술교육 현장도 빠르게 회복되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등장과 보급, 기후위기와 전쟁 등 큰 사회적 변화와 문제, 사건이 연속되며 그 안에서 예술, 예술교육의 방향과 역할을 찾아가는 해이기도 했다. 예술교육가에게 겨울은 쉼 없이 달려온 한해를 돌아보며 함께한 이들과 성과를 나누고 다음을 준비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2023년을 마무리하며 올 한해 [아르떼365]가 만난 전문가들과 함께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며, 고민하고 실천했던 한해를 되짚고 새해를 전망해보았다.
 
① 2023년 나를 움직인 것은
  
② 2023년 이슈와 평가
  
③ 2024년 전망과 다짐
연말연시가 되면 한해를 어떻게 지냈는지 돌아보며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문화예술(교육)을 만드는 이들은 어떤 동력으로 한 해를 달려왔을까? 2023년의 끄트머리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바쁘게 달려온 길을 돌아보았다. 내면의 작은 다짐이 예술적 동기가 되어 새로운 시도로 이어지거나, 의지하고 함께할 수 있는 든든한 동료가 동력이 되기도 했다. ‘올 한해 나를 움직인 힘’을 되짚어 보며 다가오는 새해에는 어떤 동력으로 나아가야 할지 들어본다.
나로부터 발현되는 힘
#자기탐구 #자기돌봄 #본질 #균형
강술생

강술생
생태미술가

올 한해 나를 움직이게 한 힘은 ‘살아있음’ 그 자체였다. 살아있다는 것은 뭐라도 할 수 있는 희망의 씨앗이다. 씨앗이 발아되듯이 오로지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에 마음을 기울이는 시간이었고, 그 변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를 바랐다. 한때는 들떠 기뻐했고, 그 기쁨 뒤에 따라오는 괴로움의 순간도 맛보았다. 살아있어서 경험하는 것, 이 모두가 삶의 거름이 되어 단단한 힘이 될 것이라 믿는다. 다가오는 새해에도 여전히 ‘살아있음’이 예술적 동력이고, 동기이고, 욕구이며, 존재의 욕망이 될 것이다.

문해주

문해주
설치예술가
문화예술교육가

달리기는 나에게 큰 위로였고 일상을 지속 가능하게 해준 운동이다. 한창 바쁜 10월에 시카고 마라톤에 참여했다. ‘마라톤 참여’라는 큰 프로젝트를 스스로 기획하고 실천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미리 일 년의 계획을 두고 일정들도 조율해야 했다. 꾸준히 달리기 거리를 늘리며 나의 몸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온전히 혼자 되는 그 시간은 나를 돌보는 시간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 달리기는 나에게 일상의 큰 원동력이 되었다. 예술교육 현장에서 체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해가 넘어갈수록 느낀다. 삶 안에서 예술작업과 문화예술교육의 균형을 맞추며 실천하게 된 것도 달리기를 통해서다. 올해의 큰 목적과 방향은 작은 움직임을 하나씩 실천하는 것이었다. 신발 하나만 있으면 지금 당장 걷거나 달릴 수 있듯이 매 순간 내가 원하는 곳을 달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일상이 새롭다. 늘 지금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나에게 큰 힘인데 이것도 달리기와 매우 닮았다.

황호빈

황호빈
설치미술가

벌써 올해를 돌이켜봐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니 새삼 놀랍다. 쉴 틈 없이 달려온 한 해였다. 각종 프로젝트와 생계를 위해 어떻게든 문화예술 범주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어느 해보다 적극적으로 달려온 한 해다. 예술적 차원에서는 예술 창작의 근간을 망가뜨리지 않는 선에서 대중적 설득력을 확보하는 시도를 해왔고, 그렇게 하는 동기, 욕구, 욕망이라고 하면 성취감을 얻고 좋은 삶을 살고 싶고 행복하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어떤 삶이 좋은 삶이고,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는 올해 내가 창작의 직접적인 주제로 다루기도 한, 현재 내 삶과는 다른 차원에서 직면한 숙제다. 그 자체로 동기가 되고 동력이 된다. 나의 삶 안팎을 면밀히 관찰하고, 당장 가지고 있는 여건에서 최선으로 개선하기, 마음의 건강을 크게 해치는 것이 아니라면 예민한 득실 계산은 생략하고 명랑하게 임하기. 무엇보다-경제적 성취도 중요하지만- 나는 결국 좋은 예술을 탐구하기 위해서 살고 있음을 항상 체크하는 것이 올해 생활을 잘 이겨내면서 회상할 때 기분 좋은 에피소드를 많이 만들 수 있었던 중요한 자세였던 것 같다.

이선철

이선철
감자꽃스튜디오
대표

서울에서 강원도로 이주한 지 20년 차가 넘어간다. 서울에서는 예술가, 작품, 관객, 마케팅 등이 내 일의 본질이다 보니 예술과 시장이 나를 움직인 동력이었다. 지역으로 온 이후에는 문화예술교육, 지역문화, 문화도시 등의 영역이 더 커지며 문화와 정책의 비중이 더 커졌다. 그러나 이제 다시 순수 예술로의 복귀가 갈급해졌다. 공허한 구호나 자의적 성과로의 문화가 아닌 전문적이고 실체적인 예술을 위한 일에 힘을 쏟으려한다. 지역에서 예술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지역의 문화는 하향 평준화나 도구화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경험에 기인한 것이다. 그래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순수예술 영역의 이들과 작업에 집중하고, 예술이 지역에서 다양한 가치를 창출하는 역할에 매진할 것이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 위축되었던 국제 교류나 협업을 확대할 생각은 내게 힘을 더한다.

사람과 관계가 만드는 힘
#동료 #만남 #관계 #공동체 #협력 #네트워크
김인규

김인규
공연예술가·작가

올해 친척 두 분이 돌아가셨다. 건강하셨던 두 분이었지만 너무 급작스럽게 돌아가신 바람에 올해 중반까지 막연한 허무감이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그 때문인지 가족과 동료처럼 실제 손에 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의지하며 그동안 그들과의 관계에서 지금까지 문화예술과 창작을 지속 할 힘과 이유를 다시 확인할 기회를 가졌다. 이런 힘과 이유가 내년에도 이어질 것 같다.

김준기

김준기
세손가락
협동조합
대표

나와 다른 손가락들은 평등과 연대를 먹고 자란다. 이 맛있는 것을 나누어 먹으며 공동체를 만든다. 심지어 손가락이 아닌 다른 팀들에게도 닿으며, 수많은 편 가르기 속에서도 우리 편을 만들어나갔다. 우리의 목적을 이해하고, 서로가 도움을 청하고,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들을 만드는 것이 올해의 목표였다. 우리가 먼저 편이 되어주고 싶은 다양한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강릉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나에게 겨울은 보릿고개다. 코로나 때의 겨울엔 보리조차 자라지 않았었다. 그러나 2023년 다양한 공동체를 만나며 문화예술교육자가 아닌 창작자인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이번 겨울은 문화예술(교육)계에서 일하며 타인의 표현(교육)과 생계에 치여 미뤄뒀던 나의 표현에 집중해 보려 한다.

서은덕

서은덕
문화기획자

문화기획 일을 할 때 갖고 있는 나름의 사명감은 ‘예술가가 예술가로 하루라도 더 살게 하자’이다. 지역의 이야기와 일거리 그리고 반짝이는 예술가가 딸깍하고 만나는 모멘트는 늘 나를 두근거리게 한다. 다가오는 새해에도 소위 문화예술 인력소(?)가 실속 있게 움직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혜영

혜영
사진작가·
성평등교육
활동가

정의와 책임감을 놓아버린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내내 이어진 한 해였다. 돈이 되고 입맛에 맞는 예술만을 위하겠다는 정치인에게 분노했고 비겁하고 허세에 익숙한 거짓된 관계에 화가 났다. 분노가 스스로를 망치지 않고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보면서 움직일 수 있도록 노력한다. 사진 작업과 교육활동을 병행하면서 나를 사로잡는 정서와 생각, 시대의 현상들을 해석하려고도 하지만 나의 활동에 참여하거나 나와 연결된 관계들의 분노와 무기력, 그 원인과 구조를 살펴보려고 애쓴다. 그것이 이 감정을 해소하는 움직임이 되고 위로가 된다. 분노할 수조차 없어 무력해지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연결의 방법을 고민하며 새해에는 이 공통의 분노와 슬픔이 조금이라도 해소될 수 있길, 무력함에 잠식되지 않길 바라고 있다. 그것이 시작의 계기가 되고 동력이 되기도 한다.

관심과 사랑으로 탐구하는 힘
#새로운_창 #영감 #호기심 #관찰과_탐구
박유신

박유신
전국미디어리터시
교사협회회장·
서울삼광초 교사

‘어린이’는 올 한해, 내가 움직이고, 생각할 수 있게 도와준 가장 큰 힘의 원천이었던 것 같다. 풀기 힘든 문제를 만났을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궁금한 점이 있을 때, 또 개인적으로 지치거나 어른의 문제로 의욕을 잃었을 때도 교실에 오면 언제나 어린이들이 달려와서 무한한 사랑과 에너지를 베풀어 주었다. 또, 어린이는 언제나 내가 답을 구하는 지혜롭고 유능한 존재이다. 교육자로서 어린이에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기보다는, 어린이에게 수업을 통해 답을 구한다.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경청하면, 다양한 문제에 답을 얻을 수가 있다. 풀기 어려워 보이는 수업이나 예술적 아이디어도, 어린이들과 함께하면, 의외로 모든 것이 멋지게 해결된다.

설동준

설동준
담빛학교
공동교장

2023년 내의 관심을 자극한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인공지능이고, 다른 하나는 주식시장이다. 인공지능은 거대언어모델이 출현했다는 것이 주는 흥미진진함이 있었다. 언어는 뇌의 신경구조를 특정한 상태로 만드는 일종의 신호(sign) 같은 기능을 한다. 거대언어모델은 기존의 이미지 식별 인공지능으로 발달했던 딥러닝과 달리 인간의 언어를 핵심 학습 자원으로 삼았다. 즉, 언어를 매개로 사회문화적 상징과 비물질적 세계, 생물학적 두뇌, 기계적 두뇌(인공지능)가 모종의 연관을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이 지점이 포스트 휴먼 담론에 관심이 많은 문화기획자로서 매우 흥미로웠다.
두 번째 관심사는 주식시장이었다. 주식에 투자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주식이라는 창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게 흥미로웠다. 이런저런 회사 주식을 1~2주씩 사서 세상의 큰 사건과 그것의 영향을 관찰하면서 재미를 느끼는데, 이게 마치 바다 위에 띄운 부표를 보면서 파도와 물길을 파악하는 것은 같은 느낌을 준다. 아무래도 예술 분야 안에서 탈자본주의나 반자본주의 같은 정서를 당위나 소양처럼 생각하고 살아온 탓에 주식을 정신 나간 탐욕이라 치부한 면이 있는데 (실제로 그런 면이 많지만) 대형 서점의 평대에 놓인 책 표지에서 대중 담론의 트렌드를 읽는 것 같은 마음으로 보면 주식도 세상과 인간의 욕망, 도덕과 이익의 갈등 지점을 관찰하는 흥미로운 채널이다.

양혜정

양혜정
연극놀이 전문가

다양한 지역을 오가며 예술가들의 감각과 상상을 깨우는 트레이닝을 실행하면서 현장의 이모저모, 예술가들의 고민을 피부로 마주할 수 있었다. 특히 개별 예술가들의 삶의 이야기와 예술작업을 엿보는 일은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었다. 나의 작업에서 현장과 만나는 것은 동시대성에 대한 감각을 체감하는 일이다. 그것은 살아있는 현장에서 구체적인 사람과의 만남과 교류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 경험이 지금, 내일의 작업과 긴밀하게 연결되는 것 같다. 아울러 놀이와 예술의 관계에 대해 다른 예술가와 협력하면서 흥미로운 연구를 시작했다. 대학에서 예술전공자들을 가르치면서 새로운 세대의 달라진 감각과 변화를 목격하고 어린이들의 연극적 상상놀이가 변화된 시대와 문화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이어지는가에 대해 새롭게 질문하면서 집필을 시작했다.

임상빈(임체스)

임상빈
(임체스)
미술작가

눈먼 사랑, 덕후의 세계에 좀 더 깊이 발 담그면 세상 시름으로부터 잠시 벗어날 수 있어 정신건강에 좋다. 더욱이 몰랐던 세계에 빠져들어 뭔가를 탐구하다 보면 전혀 다른 맥락에서 세상이 이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덕질은 앎의 즐거움에 머무르지 않고 취향의 발견으로 확장된다. 뭐든지 처음엔 눈먼 상태로 시작하지만, 깊어지는 어느 순간엔 눈뜸으로 안목이 높아지는 경지를 맛볼 수 있다. 이때부턴 뭔가를 아는 척하는 단계에 접어든다. 좋은 말로는 남들과 공유하고 싶어 저절로 입이 열리는 수다쟁이가 된다. 발견의 기쁨은 이런 것이다. 어쩜 이것은 교육자의 태도이고 예술가의 시선이 만든 행동 심리일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사랑하지 않고는 만날 수 없는 세계이기 때문에 한 번쯤은 눈멀어보기를 추천해 본다.

참여하신 분(가나다순)

강술생 생태미술가
김인규(모글리) 공연예술가·작가
김준기 세손가락협동조합 대표
문해주(월광) 설치예술가·문화예술교육가
박유신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 회장·서울삼광초 교사
서은덕 문화기획자
설동준 담빛학교 공동교장
양혜정 연극놀이 전문가
이선철 감자꽃스튜디오 대표
임상빈(임체스) 미술작가
혜영 사진작가·성평등교육활동가
황호빈 설치미술가
프로젝트 궁리
정리_프로젝트 궁리
썸네일사진_‘2023 대한민국 문화예술교육 축제’ EBS 협력 특별전 《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