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비상사태가 3년 4개월 만에 해제되고 일상 회복과 함께 문화예술교육 현장도 빠르게 회복되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등장과 보급, 기후 위기와 전쟁 등 큰 사회적 변화와 문제, 사건이 연속되며 그 안에서 예술, 예술교육의 방향과 역할을 찾아가는 해이기도 했다. 예술교육가에게 겨울은 쉼 없이 달려온 한해를 돌아보며 함께한 이들과 성과를 나누고 다음을 준비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2023년을 마무리하며 올 한해 [아르떼365]가 만난 전문가들과 함께 새로운 변화에 대응하며, 고민하고 실천했던 한해를 되짚고 새해를 전망해보았다.
 
① 2023년 나를 움직인 것은
  
② 2023년 이슈와 평가
  
③ 2024년 전망과 다짐
끝없는 이슈 속 본질의 탐구
#인공지능 #기후_위기 #전쟁 #변화의_시기 #갈등의_시대 #예술의_가치
팬데믹 이후 예술(교육)계는 새로운 규칙과 변화를 만들어왔고, 먼 미래라 생각했던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AI)의 활용과 윤리의 문제까지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미묘하게 달라진 규칙과 관계, 급속도의 기술 변화, 기후 위기, 지정학적 갈등과 전쟁 등 끝없는 이슈 속에 예술은 어떤 일렁임을 만들어내고 있을까.
박유신

박유신
전국미디어리터러시
교사협회 회장·
서울삼광초 교사

디지털, 그중에서도 ‘AI’가 아닐까. 챗GPT와 생성형 AI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는 이슈가 매우 뜨겁고, 다양한 아이디어가 제안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생성성 AI는 인간의 창의성과 관련된 민감한 종류의 기술이므로, 교육 현장에 체험으로 제시하기 전에 검증이 필요하며, 기술교육에 대한 강조는 문화와 예술이 종종 뒷전으로 밀려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오히려 디지털 및 AI와 관련된 리터러시의 본질에 대한 탐구와 진지한 문화예술교육적 접근과 성찰이 필요하다.

강술생

강술생
생태미술가

올해는 섬 제주를 떠나 육지에서 작품을 선보이는 기회가 많았다. 활동 지역이 넓어진 이유는 올해 ‘생태’를 주제로 많은 전시가 기획되었고 실행되었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물질의 요소인 지수화풍(地水火風)이 기후변화와 함께 많이 다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이후 우리의 일상에서, 문화예술계에서 자연과 자연 일부로서의 사람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진, 홍수, 산불, 태풍 등의 자연재해를 우리의 삶의 태도와 연결 짓기 시작했고, 각자의 작은 행동이 지구를 지킬 수 있다는 영웅적인 슬로건을 내세우기도 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와 적극적인 실천을 유도하는 움직임은 당연하면서도 바람직하다. 다만 이러한 움직임이 잠시 유행처럼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삶에 깊이 뿌리내리기를 바란다. 모든 존재가 생태계의 한 구성원으로서 공존하는 삶의 방식을 유지하며 바르게 살아갔으면 한다.

설동준

설동준
담빛학교
공동교장

2015~2016년 이후 3~4년간 4차산업혁명 광풍이 불었다. 2020~2021년에는 코로나 광풍이 불었다. 2022년에는 포스트 코로나 광풍이 불 줄 알았는데, 기후가 변했나 싶은 느낌을 자주 받는다. 2023년은 앞서 언급한 것 같은 너무 선명한 사회적 사건들과 비교해서 문화예술계에 별 이슈가 없는 한 해였지 않나 싶다. 그런데 사실 이게 좀 슬픈 일이긴 하다. 세계적으로 보면 2023년 명백히 긴 평화(long peace)가 끝나고 갈등의 시대, 전쟁의 시대로 들어선 해였다. 문제의 심각성으로만 보면 4차산업혁명이나 코로나 만큼 커다란 세계사적 사건이지만, 그것에 대한 문화예술 분야에서의 일렁임 같은 것은 없었다고 느껴진다. 예술이 꼭 반전의 땅에 서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해보면 기이할 만큼 조용했던 것 같기도 하다. 정리하자면, 2023년은 큰 변화의 시기였지만, 문화예술계에서는 이전과 달리 눈에 띈다거나 경향이었다고 부를 만한 사건이나 이슈가 없었다고 본다.

혼자가 아닌 함께, 서로 돌보며 다 같이
#다양성 #당사자성 #공동체성 #돌봄 #자기_돌봄 #연대 #회복탄력성
예측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각자도생 사회를 만들었지만, 그것이 진정한 해결책이 아님을 직감하며 사회 구조적인 억압과 고통을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양한 주체들의 연대와 소통을 통해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게 얽혀있는 서로의 삶을 돌보고 함께 회복해야 할 때다.
김준기

김준기
세손가락
협동조합
대표

다양성, 당사자성, 공동체성. 이를 하나로 묶어 표현하자면 ‘소통’이다. 점점 세대 간 격차가 심해지는 와중에 지방 소멸과 고령화, 코로나로 인한 소통 단절과 개별화까지 문화예술교육이 풀어내야 하는 숙제(?)는 거대했다. 나조차도 소통을 잘하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기 바빴고, 각 세대가 어떻게 변했는지 파악하기도 빠듯했다. 그 안에 문화예술을 녹이고, 기술적인 교육까지 하느라 활동 회차가 부족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커리큘럼에서 다양한 시도를 했고 공동체를 중요시하는 세손가락의 색을 보여줄 기회가 많았다. 앞으로 코로나 키즈가 성장하여 청소년이 되는 시점까지 현세대가 안고 가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문해주

문해주
설치예술가
문화예술교육가

은평에 있는 발달장애 문화놀이터 피터팬클럽에서 발달장애 아동&청소년과 미술교육 활동을 통해 그들의 일상을 가까이에서 만나면서 많은 질문을 하게 되었다. “장애 당사자 옆에는 누가 있는가?” 돌아보면 늘 당사자의 보호자가 있었다. 발달장애 자녀를 둔 어머니들은 일정짜기부터 수업의 보조 역할까지 늘 그림자처럼 함께했다. 보호자(어머니)를 위한 문화예술교육을 피터팬클럽과 함께 기획하고 진행한 한해를 돌아보니 가족 구성원 모두 자유롭게 예술로 소통하고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돌봄 역할에서 잠시 거리를 두고, 각자 창작 작업을 하면서 나를 찾아갔다. 그러한 과정 안에서 서로의 관계를 들여다보고 균형을 맞추어나가며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그것을 마주할 힘을 예술을 통해 발견했다. 그 마주침의 순간과 성장의 과정을 어떻게 예술로 표현하고 드러낼 수 있는지 참여자와 함께 논의하고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혜영

혜영
사진작가·
성평등교육
활동가

나의 예술‧교육 활동에는 돌봄과 회복을 주제로 한 활동이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자본의 가치를 그 무엇보다 우선시하며 경쟁과 능력주의를 한껏 종용하는 이 시대에 돌봄의 담론이 그만큼 확장되어 논의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게 된다. 자본의 속도와 능력의 기준에서 소외나 배제를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사람들이 있다. 청년, 여성, 성소수자, 노인, 장애인, 어린이‧청소년, 전쟁 난민, 이주민, 질병인 등이다. 차별과 배제의 경험이 일상인 존재와 그 경험을 제공하는 사회는 이대로 괜찮은 것일지 자주 질문한다. 나의 ‘괜찮음’은 동료시민인 그들과 함께 평화롭고 안전할 때 가능하다고 여겨진다. 극악한 시대를 지나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구조적 폭력을 감당하며 절망과 무력감에 빠지기 쉽기에 스스로를 돌보고 돌봄의 연대를 만들기 위해 고민한다. 예술이 가진 창의력과 회복성을 믿으며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회복탄력성을 발견하기를 제안하는 것이다. 개인의 안정과 평화는 자본과 혼자 힘으로는 이뤄지지 않기에 우리가 누구의 목소리를 반영하여 나와 모두의 평화를 위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좋겠다.

삭제되지 않을 지역의 이야기
#로컬 #지역 #지역문화 #지방분권
지속적인 인구감소는 지역의 활기를 떨어뜨리고 지방소멸까지 이어지지 않을지 우려하게 한다. 한편 중앙 주도에서 지방분권으로 권한을 이양하는 정책 흐름은 지역 중심 문화예술(교육)을 구축하는 데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진정한 지방분권, 지역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해 지역을 대상화하지 않고 주도할 인력과 인프라, 충분한 권한의 확보가 중요하다.
서은덕

서은덕
문화기획자

로컬-지역. 사실 문화예술계에서 ‘지역문화’에 대한 이슈는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지역의 공간과 역사,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지역성을 살리며 문화예술이 확장되고 자리 잡길 바라는 지원과 활동이 있었다. 최근 몇 년 사이 로컬크리에이터와 창업의 영역에서 쓰이기 시작한 ‘로컬’은 관광과 연계되어 지역의 먹고사니즘으로 발전하고 있다. 지역과 로컬은 묘하게 비슷하면서 조금은 다른 느낌을 주는 단어가 되었다. 올해부터 조금 더 강해진 ‘지역을 활성화하라!’라는 명령어에 로컬과 지역이 우왕좌왕 섞이고 있다. 사람이 많이 찾아오는 지역이 되기 위해 그간 쌓은 작고 소소한 지역 이야기들이 아무것도 아닌 듯 삭제되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을 많이 모이게 한다는 안정된 성과를 위해 지역이 천편일률적으로 변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선철

이선철
감자꽃스튜디오
대표

새 정부 들어 생긴 정책 기조의 변화는 지역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런 변화는 단순한 과정에서부터 사업의 구조 수준까지 광범위하게 생기고 있다. 문화예술교육은 물론 축제, 공간, 교류, 복지 등에서 예산 삭감이나 사업 취소 등 직접적인 변동을 몰고 왔다. 타당한 측면도 있지만, 매우 이분법적으로 결정되는 정책 추진에 아쉬움이 큰 해였다. 또한 지역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었던 것은 인적 자원의 부족이다. 참신한 시도를 하려 해도 한정적인 인력 풀(pool)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일자리나 창업 환경의 열악함으로 인해 전문 자원의 공동화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역량 있고 다양한 예술가·예술교육가의 확보는 지역 재단, 기관, 단체 공통의 숙원이지만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 현실을 겪고 있다.

임상빈
(임체스)

임상빈
(임체스)
미술작가

어느 곳이든 문화 권력을 움켜쥐려는 의지가 강화되고 있다. 기관끼리의 파트너십은 오래된 이야기고, 행사는 서로 사람 뺏어오기 전략으로 열리고 있다. 기관과 기관은 여전히 경쟁적으로 적대적이며, 규모의 정치학으로 몸집을 부풀리고 있다. 연대와 결속은 조직 안에서만 강화되고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그래서 언제나 도돌이표다. 지역은 정말 사람이 없다. 그래서 믿고 맡기고 책임진다기보다는 서로 덮어주고 눈감아주는 일이 빈번해지곤 한다. 건강한 경쟁이 없으니 성장은 더디고, 예산 나눠 먹기가 권리인 양 판이 흘러가고 있다. 이것이 양적팽창을 목적으로 꾸려온 문화예술교육 정책의 진짜 성적표다. 그럼에도 숭고한 헌신과 도덕성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싹트고 움트고 꿈틀거리고 있음을 믿어야 한다는 애달픈 현실의 질문을 받는다. 너는 여기서 어찌할 것이냐.

예술(교육)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지원제도 #역량 강화 #예술가의_사회적_역할 #예술노동
예술교육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많은 예술교육가가 개인의 노력과 열정, 역량 강화를 넘어 안전한 공존의 생태계가 필요하다는 점에 마음 깊이 동의할 것이다. 정책과 제도, 공공 지원을 밑거름으로 행정가, 예술교육가, 매개자, 참여자 등 다양한 주체가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가꾸는 건강한 예술교육 생태계를 그려본다.
김인규

김인규
공연예술가·
작가

나에겐 한 초등학교 교사의 자살이 가장 안타까운 이슈였다. 교사와 예술교육가의 역할이 맞닿는 부분이 있다고 느껴서다. 내가 초중고를 다니던 때와 달리 교사의 권위적인 태도를 내려놓는 노력 덕분에 친근한 선생님, 학생들의 고민을 깊이 공감하는 선생님도 많아졌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의 학교는 학생과 교사의 소통이 원활한 이상적인 풍경은 아닌 것 같다. 내려놓았던 교사의 권위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멋대로 가져가고 학교 안팎에서 위험하게 휘둘려지고 있음을 알게 된 사건이다. 예전처럼 교사가 권위를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교육’과 ‘권위’의 거리를 어떻게 넓힐 것이며 권위에 눌리지 않을, 권위를 휘두르지 않는 현장을 상상해 보는 것이 중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양혜정

양혜정
연극놀이 전문가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방식의 문제가 많이 제기되었다. 개인적으로 예술가, 예술교육가의 개별 역량 강화에 대한 현장과 행정의 요청이 많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장에서 예술교육을 실행할 기회가 증대된 반면, 예술가가 시민과 관계 맺는 문화와 태도는 진일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실험적이고 낯선 방식의 창작을 지원하거나 요청받는 경우도 찾기 어려웠던 것 같다. 예술가의 존재, 공존의 문제가 복지 차원에서 논의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예술이 이 사회에 역할 하는 바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 그래야 예술교육이 무상복지프로그램 제공 차원이 아닌 기꺼이 일상의 삶 속에서 가치 있게 지불하는 문화 시장, 생태계가 자생적으로 열리지 않을까.

황호빈

황호빈
설치미술가

팬데믹이 종료되면서, 이전까지 어떻게 해왔고, 3년 동안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으며, 이제 다시 열린 장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문화예술계가 전반적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분명한 것은 무언가 미묘하게 바뀌었다는 것이다. 일면으로 진취적이고 연구적이고 실험적인 차분한 시도보다 보상적이고 가볍고 즐거운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많아진 것 같다. 아마도 코로나 상황 동안 사회 전반이 지쳐있어서인가 싶기도 하다. 이는 예술의 대중성에는 오히려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가는 장점도 있지만, 예술의 근간이 되는 전위적 도전정신의 건재가 우려되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까지 해야 돼?’라는 생각과 말을 적잖이 했던 것 같다. 항상 그래왔지만, 예술계의 노동은 웬만해선 일반적 상식을 벗어나는 빠듯한 일정과 많은 양이 태반이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라는 열정(페이)이 빠지면 일이 안 돌아가는 경우가 올해에도 적지 않았다. 과연 언제쯤이면 예술의 가치가 오롯이 인정받고 순수예술을 하는 행위가 더는 ‘가난’하지 않을 수 있을까?

참여하신 분 (가나다순)

강술생 생태미술가
김인규(모글리) 공연예술가·작가
김준기 세손가락협동조합 대표
문해주(월광) 설치예술가·문화예술교육가
박유신 전국미디어리터러시교사협회 회장·서울삼광초 교사
서은덕 문화기획자
설동준 담빛학교 공동교장
양혜정 연극놀이 전문가
이선철 감자꽃스튜디오 대표
임상빈(임체스) 미술작가
혜영 사진작가·성평등교육활동가
황호빈 설치미술가
프로젝트 궁리
정리_프로젝트 궁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