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 것에 대한 나의 관심은 몇 해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 영도구 해안에서 식물을 오감으로 관찰하는 책을 준비하며 절영해안산책로를 오가던 때의 일이다. 산책로에서 오리나무와 사스레피나무를 관찰하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 바닷가 그늘로 들어서는데, 콘크리트 계단과 바위 사이로 반짝이는 초록의 무언가 보였다. 엄지손가락보다 작고 도톰하면서, 마름모꼴 모양의 잎을 지닌 풀이었다. 줄기마다 무성한 잎에 하나같이 오톨도톨 유리구슬 같은 돌기가 돋아 있었다. 낯선 풀을 보고 있으니, 함께 조사하던 동료가 ‘번행초’라 일러준다. 맨 위 여린 잎 하나를 똑 따서 내게 내밀었다. 맛이 궁금해 앞니로 조심스레 꼭꼭 씹는 순간 혓바닥 돌기에 강렬한 맛이 요동치며 온몸의 감각이 깨어났다. 앗, 짜다! 왜 짜지? 바닷물을 흡수해서 그런가? 해풍이 불어 소금기가 잎에 달라붙었나? 혹시 땅에서 짠맛이 올라오나? 짠 땅에서도 식물이 자랄 수 있나? 온갖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후에 알게 되었는데, 번행초는 짠 곳에서 자라는 ‘염생식물’ 중 하나다.
  • 영도 절영해안산책로에서 촬영한 번행초.
    가운데 노랗게 십자 형태로 꽃이 피어있다. 잎은 2~3센티미터 안쪽이며, 꽃은 그보다 훨씬 작다.
짠 땅에 터를 잡은 삶의 풍경
식물 대부분은 소금기를 싫어하고, 짠 땅에서 살 수 없다. 염생식물은 일반 식물과 달리 소금기가 잔류하는 바닷가의 모래나 바위틈에서 살아간다. 독특하게도 짠 성분을 다루는 데 뛰어난 재주를 갖고 있다. 일정 농도의 염도를 생장에 이용하기도 하고, 여분의 소금기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배출해 낸다. 번행초의 경우에는 잎 표면에 난 돌기로 체내 염도를 조절한다고 알려져 있다. 짠 땅에서 생존하기 위해 그들이 선택한 생존 방식이나 지혜는 부산이라는 짠 땅 위에 터를 잡고 살아온 수많은 이들의 삶의 풍경과 일면 겹친다. 바다에 기댄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에게 ‘짠’ 소금기는 과연 무엇일까? 혹은 거대한 도시 ‘부산’에서 짠 것들은 어떤 형태로 남아있을까? 그리고 무엇이 짠 풍경 속에서 서로 관계 맺으며 문화로 구축되었을까? 이런 물음은 <짠 것들의 연결망>의 단초가 되었다.
부산에는 놀랍게도 염전이 있었다. 현재 대부분 바닷가는 관광객을 위한 해수욕장 시설, 대단지 아파트 또는 산업단지, 어업을 생계로 하는 어촌계의 바닷가도 있지만, 해안 어디에도 염전은 없다. 부산의 바닷가는 전형적인 도시의 외형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때 부산 곳곳에는 소금을 생산하는 소금밭이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용호동(부산시 남구)의 분개염전(盆浦鹽田)과 낙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명지, 신호, 녹산 등 대규모 염전이 운영되었다. 용호동은 바다를 배경으로 광안대교가 보이고, 자연이 아름다운 이기대수변공원을 찾는 이들이 많다. 용호동의 분개 염전 자리에는 2000년대 이후 초고층 주상복합 단지나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섰고, 다른 지역 역시 지금은 대단지 아파트, 대규모 산업단지와 같은 전형적인 도시의 외형을 갖추었다.
이들 지역은 최소한 조선 시대 후기부터 1960년대 초까지 꽤 오랜 세월 소금을 일구는 짠 땅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곳의 소금은 천일염이 아닌 굽는 소금 ‘자염’을 생산하는 곳이었다. 장정 스무 명이 들어갈 만큼 커다란 쇠 가마에 팔팔 소금물을 끓여 하얗고 고운 결정체를 일구던 곳, 해안을 따라 짠 연기가 피어오르던 풍경은 1960년대를 기점으로 모두 사라졌다. 짠 것이 자취를 감춘 지 6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시 짠 풍경을 상상해 본다. 부산의 사라진 ‘염전’으로부터 출발하여 짠 결정체의 자취를 따라가며, 짠 것들이 어떤 것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 짠 땅은 시대마다 어떤 모습으로 바뀌었는지, 지금 우리 곁에 무엇으로 남아있는지, 짠 것들의 지형도를 찾아갈 것이다.
  • <짠 것들의 연결망> 리서치 ‘짠내 투어’
풍경이 달라져도 이야기는 이어지고
<짠 것들의 연결망>은 거대한 도시 ‘부산’에서 자취를 감춘 염전과 그곳에서 생산되었던 소금을 중심으로 생활사와 식물 문화사를 리서치하고, 소금밭에서 피어오른 다양한 생활사적 결정체와 그것으로 형성된 짠 문화의 흔적을 가늠하는 예술적 시도이다. 짠 물이 짠 땅에 스미어 짠 흙이 되고, 짠 흙은 더욱 짠 결정체인 소금으로 응축된다. 소금은 식문화, 노동, 산업, 치수, 매립처럼 우리의 도시에 크고 작은 짠 서사로 이어진다. 인간으로부터 시선을 달리하면 소금기는 염생식물, 낙동강 유역의 기수역과 삼각주, 철새, 모래톱, 어패류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아파트와 공장지대, 농경지로 변해버린 짠 땅에서 한때 하얗게 피어올랐을 짠 것과 그 풍경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전하고 있을까?
우리는 지역의 구술을 기록하는 연구자, 예술가, 향토 연구가, 생태연구자 등 각 분야의 전문가에게 짠 것의 여정에 동참하길 제안하였다. 그리고 이들과 2022년 7월부터 약 12개월 동안 부산의 염전과 관련해 다양한 정보를 조사하고, 짠 현장을 방문하고, 짠 것들을 기억하는 이를 찾아 짠 흔적을 수집하고 기록했다. 특히 염전에서 소금밭을 일구던 풍경은 많은 이에게 잊힌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소금을 생산하던 염부나 소금을 운반하던 소금 장수는 대부분 돌아가셨고, 그들의 자녀도 연세가 많아 염전의 강도 높은 노동에 대해 자세히 알 순 없었다. 그럼에도 신호도에 있던 부모님의 염전을 기억하는 따님, 소금의 짠 길을 앞서 연구해 온 향토 연구가, 변화한 짠 땅에서 또 다른 일터를 꾸려 온 여러 사람으로부터 짠 것의 다양한 서사를 들을 수 있었다.
  • 과거 낙동강 하구 섶 양식장 [소장처] 부산시 강서구청
  • 폐전한 소금밭에 자리 잡은 명지대파
짠 땅의 서사는 인간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낙동강의 긴 물줄기가 흘러 바다에 도달하는 곳에 형성된 삼각주에는 모래톱과 진흙이 적절하게 혼합된 질 좋은 갯벌이 있었다. 강물과 바닷물이 섞이면서 다양한 성질이 함유된 기수역 역시 소금의 질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그곳의 물과 뭍의 경계에는 다양한 환경만큼 다양한 동식물이 찾아 들었다. 신호도 염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어르신은 염전 주변에 다채롭고 풍요로웠던 먹거리를 기억하셨다. 펄에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밀어가며 발에 걸리는 온갖 어패류, 앞바다에서 채취한 해초, 해조류에 대해 어제의 일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들려주셨다. 하지만, 1990년대 신호도 일대의 공유수면이 메워지고 땅을 확장하는 매립 이후 대규모 공장지대와 대단지 아파트가 솟아올랐다. 신호도 사람들의 생계를 책임지던 염전도 비옥한 갯벌도 도시 아래로 사라졌다. 짠 땅은 현재도 변화하는 중이다. 변해버린 짠 땅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게 될까.
하얗게 결정을 일구던 소금의 풍경은 더는 찾아볼 수 없지만, 짠 땅은 또 다른 소금기를 피어오르게 한다. 염전에서 대파밭으로, 대파밭에서 아파트나 공장지대로, 짠 땅의 외형은 달라지더라도 그 위에 축적된 것은 또 다른 짠 문화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도시 아래 사라진 역사에 관심을 두지 않을 뿐이다. 짠 문화와 짠 유산을 되새기는 일은 우리가 살고 있는 장소에 변화를 깨닫는 경험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짠 것들의 연결망>은 짠 것이 우리에게 남긴 변화와 움직임을 따라가며 그것이 연결된 다양한 지점에서 펼쳐진 짠 풍경을 찾아가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짠 것들에 의지하는 지구의 인간과 모든 동식물에게 바다의 짠 기가 어디까지 뻗어갈지 가늠하는 하나의 시도이다.
  • 바닷물이 증발하고 남은 소금알갱이(알갱이 탐사대)
창파(김혜경)
창파(김혜경)
실험실 씨 아트디렉터, 예술노동자이자 독립기획자. 장소와 자연을 관찰하고 들여다보는 일을 즐긴다. 대표 기획 작으로 <부유의 시간>(2021), <소요의 시간>(2019, 2020), <골목의 기억 도시의 상상>(2016, 2017, 2018), 청년-장인 메이커즈 매칭 프로젝트 <비 메이커즈>(2017), <롤링1942>(2015) 등이다. 2016년부터 부산에 거주하며 한 장소에서 일정 기간 리서치하고 예술프로젝트로 발표해왔다. 2018년에는 문화예술기획팀 ‘실험실 씨’를 박미라(포레스트 큐레이터)와 만들고, 생활사·구술사·식물 문화사를 토대로 사라져가는 주변 이야기를 찾아 생활에 밀착한 리서치 예술 콘텐츠를 기획하며 로컬 큐레이팅을 실천 중이다.
labc.changpa@gmail.com
실험실 씨 인스타그램 @labc.3f
사진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