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알고 때에 맞게 살아가기

절기 생태 놀이

“누구에게나 봄은 오지만 아무에게나 봄이 되지 않습니다. 희망찬 아름다운 봄은 봄을 미리 알고 준비하는 자에게만 얻을 수 있습니다.”
– 유종반, 『때를 알다 해를 살다』

보통 어른들은 사리 분별하지 못하고 생각 없이 살아가는 아이에게 ‘참 철이 없구나’ ‘넌 철부지구나’ ‘언제 철들래?’ 말한다. 이때 ‘철’이란 여름철, 겨울철과 같은 계절, 때를 말한다. 철이 없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계절, 즉 절기를 모른다, 때를 모른다는 뜻으로 시도 때도 없이 아무렇게나 산다는 말이다. 실은 산다는 것은 시간을 쓰는 일이다. 시간이란 때를 말한다. 하루의 삶은 24시간의 때, 한 달의 삶은 30일의 때, 일 년의 삶은 365일의 때를 쓰는 것이다. 잘 산다는 것은 자기 때를 알고 그때 맞게 사는 것이다.
성찰을 위한 필수적인 삶 ‘절기살이’
내게 주어진 삶의 때는 무한대가 아니다. 지나간 때는 다시 되돌리거나 다시 반복하며 쓸 수 없다. 인생은 사전답사나 연습이 없듯이 내게 주어진 때, 기회는 단 한 번뿐이기에 자기 때를 알고 준비하며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주어진 때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과 결과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내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삶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진지하게 성찰하면서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 ‘절기살이’이다.
그럼 절기란 무엇일까? 24절기는 한국과 중국 일본 등 계절이 비슷한 지역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역법이다. 지금 우리는 서양에서 들어온 12개 달력을 쓰기 때문에 24절기력은 옛사람들의 유물처럼 생각하여 거의 무시하고 지나간다. 산업화 이전 농업인구가 많았을 때는 그래도 절기력이 유용했지만, 농업인구가 전인구 대비 5%도 안 되고 기계식 농법으로 사는 지금은 절기력이 거의 유명무실한 상태다.
하지만 24절기는 인간을 비롯한 자연 생명이 살아가는데 벗어날 수 없는 생존에 필수적인 환경이다. 기후 흐름인 절기는 생명이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 생존을 위한 진화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인간을 비롯한 자연 생명의 삶을 이해하는데 절기 이해가 매우 중요하며, 그래서 24절기는 과거 유물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한 생명 생존과 직결된 것이다. 또한, 지금 우리 생명과 생존에 가장 큰 위협을 주는 코로나19나 기후변화위기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고 본다.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절기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한 때이다.
한로의 열매와 같이
절기 놀이는 절기 의미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삶을 살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절기 중 ‘한로(寒露)’는 여름 동안 뜨거운 햇볕의 기운으로 크게 키운 열매를 찬 기운을 가진 이슬이 부드럽고 맛있게 익히는 때이다. 뜨거운 기운이 가득한 열매가 찬 이슬로 어떻게 잘 익히는지 놀이로 알아보는 것이다. 이 놀이 목적은 열매는 뜨거운 햇볕과 찬 이슬이 있어야만 열매는 잘 익을 수 있다는 한로 절기의 의미를 알게 하는 것이다.
놀이준비물은 참가자 수만큼 열매와 햇볕, 이슬 그림이 각각 있는 3종 나뭇조각 세트, 열매 스티커, 잘 익은 과일(참가자 수만큼)을 준비한다. 장소는 실내외 모두 가능하고 6세 이상이면 할 수 있다. 놀이 방법은 1) 열매·햇볕·이슬 나뭇조각을 한 세트씩 참가자들에게 나누어 준다. 2) 참가자들은 돌아다니다가 3명이 모이면 동시에 ‘열매를 익혀라’ 하고 외치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나뭇조각 하나를 내민다. 3) 3명이 내보인 나뭇조각이 각각 열매와 햇볕과 이슬이 있으면 진행자에게 가서 손등에 열매 스티커 하나를 붙이고 다시 다른 사람을 찾아서 3명이 똑같이 놀이한다. 만약 3명이 내민 나뭇조각이 열매나 햇볕이나 이슬이 하나라도 중복이 되면 열매 스티커를 붙일 수 없고 다른 사람을 찾아가 3명이 모인 뒤 다시 놀이하면 된다. 정해진 시간이 지난 후 열매 스티커를 가장 많이 모은 참가자를 ‘열매왕’이라 하고 잘 익은 과일을 상으로 주고 함께 나누어 먹게 한다.
놀이가 끝난 후 함께 이런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 한로는 어떤 절기인가? 한로 절기에는 어떤 열매들이 보이는가? 한 알의 열매가 만들어 익기 위해선 어떤 것들의 도움이 필요한가? 봄에 뿌린 나의 열매는 지금 잘 익고 있는가? 나는 누구에게 도움을 받고, 누구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가? 열매를 키우는 뜨거운 햇볕과 열매를 익히는 찬 이슬은 어떤 의미인가?
사실 절기 놀이는 놀이가 목적이 아니라 놀이를 통해 절기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 절기를 통해 삶의 지혜를 얻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놀이 후 이야기 나눔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 24절기마다 다양한 절기 현상, 절기 속담, 절기 음식 등도 함께 알아두면 좋겠다.

24개의 생명의 힘, 에너지의 흐름
24절기는 단순한 일 년의 시간 나눔의 의미가 아니고, 일 년 동안 자연의 변화, 흐름을 말한다. 절기(節氣)의 한자어 ‘기(氣)’자 뜻처럼 시간보다는 힘이나 기운의 흐름을 의미한다. 절기는 자연 생명이 일 년 동안 잘 살아가게 하는 생명의 힘이나 에너지 흐름을 24개 이름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본다. 왜냐면 해님이 만든 햇볕 없이 자연 생명은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나무는 추운 겨울 때를 지나면서 씨앗 속 생명력을 단단하게 응축시켜 힘차게 새봄을 맞이한다. 그리고 봄의 때에는 잎과 꽃을 내어서 자기 열매를 만단다. 여름의 때에는 뜨거운 햇볕으로 자기 열매를 제 모양대로 키워나간다. 가을의 때에는 여름에 키운 열매를 찬 이슬과 서리로 잘 익힌다. 이처럼 자연 생명은 때마다 자기 때를 알고 때에 맞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자기 삶의 열매를 완성하게 된다. 우리 인간도 나무의 절기살이처럼 자기 삶의 열매를 만들고 키우고 익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때를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 년 절기마다 나타난 때의 현상, 즉 절기 흐름을 느끼고 그 절기가 주는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덥고 춥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이슬과 서리가 내리고, 꽃피고 열매 맺고 잎이 나고 지는 모든 절기 현상은 의미 없는 때의 현상이 아니라 그 속에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절기를 깊이 관찰하고 느끼며, 절기마다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빨간 감 (유종반)
둥글고 탐스럽게
감나무에 매달린 빨간 감을 보니
감이 해님인 것을 알았지요
열매는 나무에 매달린 해님
뜨거운 불덩어리 해가 가을엔
열매마다 가득 채워져 사라지니
그래서 겨울엔 추워진다네요
열매는 나무에 매달린 해님
봄 되면 뜨거운 불덩어리
열매 속 다시 나와 꽃으로 활짝 피어
그래서 여름엔 뜨겁게 되지요
유종반
유종반
1973년 인천녹색연합을 설립하여 환경운동을 해오다가 생태교육의 중요성을 알고 인천녹색연합 교육전문기구로 (사)생태교육센터 이랑을 2014년 설립하여 지금까지 절기 인문학, 절기 놀이교육 등 생태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절기인문학 『때를 알다 해를 살다』(작은 것이 아름답다), 절기생태동화집 『도토리할아버지 왜 춥고 더운거예요』(다인아트), 절기생태놀이집 공저 『놀자 놀자 해랑 놀자』(목수책방)가 있다.
greenyjb@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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