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대표적인 한국의 관광‧휴양지이기도 하지만 제주시와 서귀포시 일대를 제외한 모든 지역이 농‧어촌지역이다. 읍·면·리사무소를 중심으로 마을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고 한라산 중산간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기점으로 해안마을과 중산간 마을로 분류된다. (중산간 위로 19개의 마을은 4·3으로 인해 모두 사라졌다) 2010년을 기점으로 제주도의 유입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한해 2만 명에 달하는 이주 열풍은 2016년 정점을 찍고 조금씩 줄어들고 있지만 육지에서 섬으로, 도시에서 시골로 삶의 터를 옮기는 이주민들의 발길은 끊이질 않는다. 제주도에서는 이주민을 ‘이민자’라고 부른다. 같은 언어를 쓰지만 그만큼 적응하기 힘든 이국의 땅과 같다는 말이다. 이민자의 증가는 땅값 상승과 개발 붐으로 이어졌고 곶자왈과 숲이 빠르게 파괴되었다. 지하수의 고갈로 농사에 어려움이 생기고 오수정화 시설의 부족으로 바다가 오염되니 해녀들의 수입도 점차 줄어든다. 환경문제는 사회적 문제로, 제주도민의 문제는 다시 이민자의 문제로. 제주도는 현재,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relaxinfo.ch
서귀포귀농귀촌협동조합 마을기업 제주살래의 북카페와 녹음실, 강연장이 있는 남원읍 수협 3층의 사무실을 찾았다. 남원읍은 17개의 마을로 이뤄졌다. 면적만으로는 서울시의 세 배지만 이주 열풍에도 불구하고 인구는 2만 명을 넘지 못했다. 한라산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해안마을에는 여전히 물질하는 해녀 어머니들이 계시고 중산간 마을은 전국에서 읍 단위의 농가 수입으로는 한 번도 일등을 놓친 적이 없는 감귤농장들이 분포해있다. 꽃이 필 무렵에는 차도가 꽉 막히는 동백군락지, 유채밭과 메밀밭, 청보리밭이 철마다 제주다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중산간 너머 초원지엔 고려 시대부터 말을 진상하던 말목장이, 언덕과 오름엔 풀어 키우는 소를 볼 수 있는 소목장이, 관광객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서귀포귀농귀촌협동조합의 이사장·마을기업 제주살래의 대표 안광희(49) 씨가 십년 전, 제주도 정착을 위해 7개월간 32개 마을의 이장님을 만나며 정착할 마을을 찾다가 남원에 터를 잡았다. 13년간의 외국 생활을 끝내고 삶의 가치인 공동체를 이룰 마을을 찾은 것이다. 고등학교 때 금관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영화학도로 필름깡에 라면을 끓여 먹던 충무로 마지막 세대였던 안광희 대표는 생의 전부라 생각했던 영화를 접고 한국을 떠났다고 한다. 국가보안법철폐, 스크린쿼터제 운동 등 뉴욕으로 이주해 지내는 8년 동안에도 밤에는 클럽을 운영하며 뉴욕 노사모의 대표를 역임할 정도로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치열한 삶 속에서 서른여섯에 만난 『로치데일 공동선구자 협동조합 역사와 사람들』(조지 제이콥 홀리요크 지음), 책 한 권이 협동조합의 꿈을 키웠다.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협동조합과 공동체에 대한 사례를 공부했다. 현장이 있다면 그곳이 북미든 남미든 유럽이든 남태평양의 사마리아 군도든 찾아다녔다. 협동조합의 발화 지역인 영국의 맨체스터에서 8개월간 지내면서 한국의 사회적 문제를 협동조합의 방식으로 풀어나갈 것을 결심했다.
문화공동체의 태동, 남원북클럽
매일 찾던 남원의 제남도서관 옆에 ‘문화공동체 서귀포’라는 카페 겸 사무실을 열었다. 1995년에 이주해 2002년부터 제주에서 독서운동을 해오던 안재홍 목사와의 만남은 동지를 찾던 그들에겐 필연적 만남이었다. 문화의 근간인 독서를 통해 사람을 바꾸고 지역을 세상이 바뀌리란 믿음은 책 읽는 모임이 되었다. 두 사람의 만남이 네 사람이 되고, 때마침 ‘책 읽는 서귀포’를 선포한 서귀포시가 독서 모임을 지원했다. 2012년은 제주도가 귀농귀촌교육 정책을 실시한 해다. 안광희 대표는 서귀포 귀농귀촌 1기 교육을 수료했다. 귀농귀촌한 이민자들과 제주도민이 합류하면서 모임이 커졌다. 4·3과 해녀 문화, 돌담과 감귤 농사,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책을 통해 배우고 함께 읽은 책으로 ‘마을 독서 기행’을 떠났다. 앎과 삶이 일치되는 순간을 경험했다.
모두의 문화적 놀이터이자 실천의 장, 마을기업
2012년 한국에선 협동조합 기본법이 생겼다. 누구든 다섯 명이 모이면 조합을 만들 수 있는 법이다. 책 읽는 공동체 남원북클럽은 협동조합 스터디를 통해 2013년 ‘아름다운 제주를 닮은 공동체’를 지향하는 서귀포귀농귀촌협동조합으로 거듭났다. 같은 해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과 문화를 삶과 철학과 실천을 통해 지키고 발전시키며 사회적 경제의 가치실현으로 마을과 사람을 위해 지속가능한 공동체의 풍요와 희망을 만들어 내겠다’는 기업 비전을 내고 안전행정부지정 마을기업 ‘제주살래’를 설립하게 된다.
협동조합 기본법이 생기고 삼 년 만에 한국에 1만 개의 협동조합이 생겼다. 대부분의 협동조합이 경제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서귀포귀농귀촌협동조합은 이웃공동체, 생활공동체를 지향하는 협동조합이라는 점에서 출발에서부터 달랐다. 협동조합은 지역주민과 이민자들이 함께 만드는 공공의 놀이터이자 앎을 삶 속에 실천하는 장이다. 조합의 유지를 위해 수익사업을 하고 있지만 수익을 배분하지 않는다. 조합원이 되는 것은 까다롭다. 6개월 간의 인턴 기간이 필요하고 조합의 방식에 동의해야 한다. 현재 조합원은 33명이고 회원은 약 300명이다. 사업은 크게 세 가지로 경제수익 사업과 교육문화사업, 지역공헌사업이다.
서귀포귀농귀촌협동조합을 만들고 마을기업 제주살래에서 처음 시행한 사업은 ‘사랑의 감귤공급 사업’이다. 사랑의 연탄, 사랑의 쌀 사업에 착안한 사랑의 감귤 공급사업은 지역특산물인 감귤을 복지재로 확보하고 이민자의 도시 네트워크를 활용한 ‘겨울철 보편적 복지사업’으로 따뜻한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며 큰 사업적 성과를 냈다. 2016년 ‘엄마의 바다 향초 사업’은 은퇴 해녀인 제주 어머니들이 자신이 살아 온 바다와 삶을 직접 표현하여 향초를 만들며 제주 해녀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알리는 사업이다. 제품의 생산과 판매 및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역 어르신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노인 세대의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도우며 문화공동체의 삶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 그림 그리는 해녀

  • 남원북클럽
서로의 삶에 도움이 되는 문화적 실험들
같은 해 지역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남원읍 어린이 미래과학교실’에서 시작한 드론과 가상현실 교육은 주목할 만한 첨단산업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춘 미래형 산업이다. 2017년 JDC(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와 협약을 맺고 성인으로 교육 대상을 확대, 초중급 기초교육에서 국가공인 자격증 취득 과정, 재난 안전과 환경감시, 치안, 교통 등의 전문교육과 사업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경제수익 사업에서 얻은 수익은 교육문화 사업과 지역공헌 사업의 기반이 된다. 2014년도에 중고차량을 개조해 17개 리를 순회한 찾아가는 문화복지 사업 ‘청춘극장’이 협동조합의 첫 지역공헌 사업이다. 마침내 영화관이 없는 남원읍에 100석 규모 5.1 채널의 시설을 갖춘 마을극장이 생겼다. 매주 목요일 7시, 남원읍사무소에서는 영화를 상영한다. 2016년 ‘남원읍 어린이문화예술학교’은 지역의 아동청소년의 교육 불균형을 해소하고 지속가능한 문화적 변화와 교육적 발전을 위해 열게 되었다. 재능기부를 통해 주민 참여형 교육사업을 꾸준히 실행하고 있다.
“경제적 이유로 모인 조합이 아니라서 매년 사업계획을 세울 때마다 재미난 안들이 많이 나와요. 누구나 방송을 만드는 팟캐스트를 해보자는 제안에 교육문화 사업 ‘마을방송국 제주살래’를 개국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서울 동작구에 있는 ‘동작에프엠’을 알게 되었고 전국 마을방송국 전도사를 자처하는 양승렬이라는 시민문화활동가를 만나 도움을 받았습니다. 통화하고 직접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바로 다음 날 서울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국가지원 사업으로 경제적인 지원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순환 구조로 가기 위해서는 협업을 통해 성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동작에프엠을 통해 배운 것들을 이달 말, 산불 발화지였던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마을방송국 개국에 전달하기 위해 떠납니다. 마을방송국 도시사례는 많지만 지역사례로 성공을 거둔 사례가 많이 없어서 찾아오셨더라고요. 공사와 장비 설치, 교육 등 12월 개국을 목표로 준비 중입니다. 즐거운 실험이고 의미 있는 결합이라고 생각합니다.”
– 안광희(서귀포귀농귀촌협동조합 이사장)
2015년 개국한 ‘마을방송국 제주살래’는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며 일상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실천하는 시민문화예술교육지원 사업 ‘시시콜콜’의 지원을 받았다. 지원금 600만 원으로 사회적 경제의 가치를 실현했다는 평이다. 영화인이었던 안광희 대표의 영향인지 마을기업 제주살래의 사업 중엔 유달리 영상과 관계된 사업이 많다. 안광희 대표가 전체 총괄했던 해녀다큐 <그림 그리는 해녀>는 2015년 휴스턴국제영화제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안 대표의 오랜 숙원을 풀게 해주었다.
“수많은 사진가들이 제주도의 해녀를 찍지만 해녀 할머니들에게 카메라를 들려주고 자신들의 시선으로 삶을 찍는다면 기술적으로는 부족할지 모르지만 시민문화예술로서는 대단한 가치를 지닙니다. 해녀 어머니들의 언어 자체가 시(詩)에요. 그런 것들을 세상에 더 알리고 지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 안광희 이사장

  • 우리마을 팟캐스트

  • 마을방송국 제주살래
안광희 대표는 이주민들에게 집중되는 정책에 회의적이다. 제주도민과 이웃이 되어 생활에 안착하지 않고서는 제주도가 당면한 여러 사회적 문제를 풀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민자의 귀환을 막을 수 없다. 통계상 많은 수의 이민자들이 제주 정착에 실패하여 육지로 돌아가고 있다. 정책과 예산을 제주도 전체의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활성화하는 것에 지원을 확대해서 제주도민의 문화적 소양과 시민의식을 함께 끌어올리는 방법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민자들 역시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4·3과 해녀, 돌담을 공부하지 않고 이국적인 풍경에 끌려 이주를 결심하는 것은 제주도민과 이민자들에게 상처를 남긴다.
제주도에는 ‘수눌음’이 있다. 더불어 농사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던 제주도만의 전통문화이다. 협동조합은 수눌음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서귀포귀농귀촌협동조합 마을기업 제주살래는 협동조합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경제적 이익이 아닌 서로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즐거운 실험을 거듭하고 있다.
영상 _ 박영균 미디어작가 infebruary14@naver.com
강선제
강선제
문화잡지 보일라의 발행인으로 십년을 살다가 2015년 제주도로 이주했다. 반려견 세 마리, 소설가 서진과 매일 감귤 과수원과 콩밭에서 일한다.
페이스북 www.facebook.com/sleepings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