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미 예술강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마음 속에 두 단어가 떠올랐다. 바로 ‘열정과 정열’. 국어사전을 들춰 두 단어의 뜻을 비교해 보자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를 소개하기에 정말 적당한 두 단어였기 때문이다.

 

– 열정: [명사]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

 

한유미 예술강사와의 만남은 오전 9시 반에 이루어졌다. 그녀가 오전 11시부터 시작하는 라이브 사운드 엔지니어 연수에 참여해야 했기 때문이다. 1주일간 진행되는 연수 참여를 위해 홀로 경북 구미시에서 올라와 서울의 한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그녀에게 굳이 집을 떠나 연수를 받아야만 하는 일인지 질문을 해 보았다.

 

“음향엔지니어 연수는 제게 꼭 필요한 교육연수라고 생각해요. 전 한 번도 앰프(음향기기)와 떨어진 적이 없거든요. 무대에서 음향을 체크하며 음향 담당자에게 이것저것 부탁할 수 있으려면 저도 음향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번 연수도 당연하게 참여하는 거고요. 하지만 고시원에서의 생활이 솔직히 쉽지 않네요. 그래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잘 버텨야지요.”

 

한유미 강사는 국악부문 예술강사 2년차로 이번 우수교안공모전에서 ‘임진왜란과 전래놀이 ‘강강술래’를 통한 전통 음악’이라는 제목의 교안으로 대상을 차지했다. 그녀는 이러한 결과를 예상했었을까?
“교안공모전 준비를 시작한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하루도 제대로 푹 잔 적이 없어요.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느라 말이지요. 제 교안에 임진왜란에 대한 내용이 들어가기에 우동도, 통영, 진해 등도 다녀왔어요. 가서 직접 거북선도 보고 역사적 장소를 방문하기도 했는데 정말 마음가짐이 달라지더라고요. 또 평소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고 있었는데 이번 연구를 통해 더 좋아하게 되었지요. 무엇보다 대상 소식을 듣고 가장 기분이 좋았던 이유는 첫 번째 교안공모전 대상을 제가 받게 되었다는 것 때문이었어요. 첫 번째라는 것에서 남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었거든요.” 정말 열심히 준비한 만큼의 성과가 나와 만족스럽다는 한 강사의 말 속에서 그간의 노고가 전해졌다.

 

‘우리 것’에 정열적인 그녀

 

– 정열: [명사] 가슴속에서 맹렬하게 일어나는 적극적인 감정

 

한유미 예술강사가 작성한 교안의 가장 큰 특징은 국악 수업을 역사, 체육, 국어, 영어 등 타 교과와 연계해 통합 수업이 가능토록 했다는 점. 또한 그녀의 교안에는 국악 수업 하면 흔히 떠올리는 전통악기 연주도 없다. 대사가 필요 없는 구음극으로 수업을 만들어 나가기 때문에 교사나 학생 모두 부담없이 참여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 동기부여를 해 주는 것을 중점적으로 생각했어요. 또 국악은 절대로 어려운 과목이 아니라는 것도 알려 주고 싶었고요. 수업을 통해 역사에 관심이 적은 학생들도 흥미를 가지고 역사적 사건과 이야기 속에 빨려 들어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지요. 또한 국악을 가르치니 당연히 전통악기 연주법을 가르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악기 없이도 국악을 배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습니다.”

한유미 예술강사는 얼마 전 한국정보화진흥원 IT봉사단의 일원이 되어 인도네시아 포노로고 지역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현지 문화와 전통춤 등을 접하고 온 그녀는 느낀 것이 참 많다고 말했다. 골목마다 전통문화 상징물이 세워져 있고 누구나 전통 그림과 조각으로 주변을 꾸미는 모습에서 자신들의 문화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현지 여학생들에게 취미를 묻자 반수 이상의 학생들이 전통춤이라고 대답하는 모습에서 부러움도 느꼈단다. 자신들의 문화를 자랑스럽게 계승하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됐다는 한 강사.
“우리나라 국민에게 ‘한국 전통문화에는 무엇이 있을까요?’라고 물으면 아리랑, 탈춤과 같은 아주 기본적인 대답이 나오는데요. 이 사실이 조금은 슬퍼요. 국가발전의 원동력은 경쟁력, 그리고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라 하는데 우리는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을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하는 물음을 가지게 되더군요. 전통문화 예술가, 인간문화재와 같은 계승자들이 있고 이들이 국가와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활동하고 있다곤 하지만 이것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즐길 수’ 있을 때 전통문화의 숨결이 살아난다고 생각해요. 지킨다는 표현이 아니라 즐긴다는 표현이 맞다고 봅니다. 억지로 살리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전통문화가 되어야겠지요.”

 

 

오늘도 내일도 그녀의 가슴은 불타오른다

 

– 가슴이 불타다: [관용구] 마음속에 어떤 열의나 열정이 끓어 번지다.

 

‘우리 것’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자 쉴 새 없이 많은 이야기를 전하는 그녀. TV에서 흔히 반복되는 실수인 가야금과 거문고의 혼동, 악기를 거꾸로 놓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른 채 그대로 방영하는 것 등 사소한 부분부터 인식의 부재가 드러나는 요즘 현실에 그녀는 안타까움이 크다고 했다.

“참 부끄러운 현실이죠. 저는 수업을 진행하며 학생들에게 우리가 우리 것을 계속 이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해요. 예컨대 강강수월래가 그냥 기록으로만 남느냐, 아니면 생명력을 가진 민속놀이로 활성화되느냐 하는 것은 우리들 손에 달려 있다고 말하는 것이죠. 강강수월래를 부르지 않고 즐기지 않으면 언젠가 강강수월래는 없어지니 많이 불러주고 즐겁게 놀아 주자고 이야기를 하면 학생들도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해요. 수업 후 일상 생활 속에서도 강강수월래를 부르고 전통놀이를 하는 학생들을 볼 때 아이들이 제 뜻을 이해해 준 것 같아 보람이 느껴져요. 대중가요를 흥얼대듯 우리 전통노래를 쉽게 부르고 즐기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으면 합니다.” 한유미 예술강사의 이야기를 듣자, 학창 시절 전통문화 수업에서 봉산탈춤을 배우던 생각이 났다. 낯선 춤사위에 친구들과 어색해 하며 이쪽저쪽 눈치를 보고 더듬더듬 따라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왜 어색하고, 왜 눈치를 봐야 했을까. 우리 것이지만 그만큼 낯설었기 때문이 아닐까.

태권도 3단, 한국음악 전공, 국어국문 복수전공, 교사 자격증 2개, 국악실기지도자 자격증… 한유미 예술강사가 가진 무기이자 재산이다. 우리 것을 모두가 자연스레 즐길 수 있는 그날이 오기까지 자신의 능력을 아낌없이 펼치고, 또 계속해서 공부하겠다는 한 강사. 같은 예술강사로서 그녀가 정말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헤어지는 길, 그녀에게 마지막 질문으로 ‘이상형’을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외강내유’ 이순신 장군을 꼽는 그녀. “모두가 성공가능성이 없다고 말했지만 이순신 장군은 나에게 13척의 배가 있다며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였지요. 모두가 안된다고 할 때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밀고 나가는 사람이 좋아요. 꿈 크고 지조 있고 인간적으로 멋진 그런 사람 말이죠. 이상형이 이순신 장군이라고 하면 친구들이 좀 웃긴 하지만요. 하하~”

이순신 장군의 굳은 믿음처럼 자신이 가는 길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그녀의 아름다운 신념. 다음 일정을 위해 바쁜 걸음을 재촉하며 환한 웃음으로 인사하는 한유미 예술강사의 모습에서 맑고 고운 가야금의 긴 여운과 힘차고 경쾌한 장구소리가 동시에 전해지는 듯 했다.

글.사진_이지현 서울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