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여행지로서 베트남을 찾는다. 여행자들에게 그들의 삶의 형태나 현지 아이들의 움직임은 모두 남기고 싶은 추억이 된다. 그래서 셔터를 눌러댄다. 그곳의 아이들은 기꺼이 여행자들의 추억이 되어주지만, 정작 자신들의 추억으로 남겨두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카메라를 챙겨 들고 라오까이를 찾았다. 아이들에게 사진을 통해 소통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다른 이들과 동등한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 지난 해, 문화예술교육 공적개발원조 사업을 계기로 라오까이의 아이들과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어쩌면 운명적이었는지도 모를
사파로의 여정

 

사파에서 깟깟가는길에 보이는 풍경

 

다시 도착한 하노이의 밤기차에 덩치만한 짐들을 실었다. 컴컴하고 느릿한 기차는 12시간을 쉼 없이 달려 아침 햇살과 함께 기차역에 닿았다. 그때부터 다시 차를 타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휘감아 돌면 드디어 최종 목적지에 도착이다. 짐을 풀고 거리에 나선다. 이른 아침 천천히 나선 거리의 한 가운데에서 짙은 안개를 더듬는다. 거리의 끝에 여행자들로 가득한 타운이 보인다. 타운을 벗어나자 한적한 길이 보이고, 길을 따라 걸으니 수확을 끝낸 논두렁에 인근 산악 소수 민족이 보인다. 베트남 북쪽 중국 국경이 있는 곳, 베트남 중에 겨울눈이 있는 곳. <무진기행>이 떠오르는 곳 안개 속 마을, 다양한 소수민족의 마을. 그렇다 바로 이곳이 우리의 목적지인 사파(SAPA)다.

 

눈 내리는 사파

 

걸어왔던 길을 되짚어 걸으며 처음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했던 때를 떠올렸다. 선배를 따라 곁눈질로 문화예술교육을 접했던 26살, 스스로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했던 29살. 그렇게 꼬박 5년이 되던 해에는 일도, 교육도 쉬고 싶었다. 서른 중반이 되어 버린 나 자신도 그렇거니와 일에 대한 회의감도 들었다. 문화예술교육에 관련된 고민과 열정은 어느 순간 점점 매너리즘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다시 만난 아이들

 

그렇게 34살의 나를 위해 여행을 떠났다. 인류학 조사를 하는 선배의 권유로 태국 매솟으로 향했다. 매솟은 미얀마(버마)와 태국의 국경도시이다. 난민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국가와 NGO 단체들의 활동이 많았다. 그 중 교육 봉사활동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다양한 매체가 한곳에 어우러져 그들을 지원하고 있었다. 특히 문화예술에 관련된 다양한 행사와 교육이 활기차게 이뤄지고 있었고, 교육 주체와 대상자들은 활력이 넘쳤다. 내가 이곳에 있었다면 어떤 교육 활동을 할 수 있었을까?

 

사파호수가로

 

얼마 후, 스페인 산티아고를 여행하고 있을 때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메일을 보낸 황다경(익산공공영상미디어센터)씨는 자비로 인도에서 미디어 교육을 진행했던 인물로, 그 경험을 바탕으로 베트남 ODA 교육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이메일을 통해 보내온 ODA 사업과 교육 내용은 흥미진진했다. 서둘러 한국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여행이 끝날 때까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수업을 준비했다. 산티아고의 여정이 끝날 때 즈음에는 이 긴 길이 끝났다는 안도감보다 베트남에서의 ODA사업에 대한 설렘이 나를 휘감았다. 결국 한국에 도착해 여행의 짐들을 다 풀기도 전 다시 베트남으로 떠났다.

 

수업이 궁금해서 매번 다른 학생들이 수업이 진행중인 교실을 바라보고있음

 

나를 찍는 사진 말고
내가 찍는 사진

 

베트남은 참 흥미로운 나라였다. 한 번도 전쟁에 패배해 본 적이 없는 나라. 세대 교체로 구성원들이 모두 젊은 나라, 미국을 이긴 유일한 나라. 그러나 오랜 전쟁과 내전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다른 부분보다 교육 분야와 문화예술에 관련된 성장은 더뎠다. 하지만 그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문화, 예술, 그리고 교육에 관련된 사랑과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기도 했다. 베트남, 특히 이곳 라오까이성은 베트남 북부에 위치한 지역적인 한계 탓에 계층 간 소득격차가 심했고 이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 경험이나 특히 문화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나 경험이 없는 곳이었다.

 

라오까이성에서 지난해 4개월동안 라오까이 사범대 매개자 교육과 사파 초ㆍ중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했다. 라오까이 사범대에서는 문화예술교육 사례를 중심으로 한 수업에 참여해보며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사파로 올라와서는 이곳 학생들과 함께 사진을 중심으로 한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했다. 그동안 이곳 학생들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직접 경험하기 힘들었고, 이곳에 여행 온 이방인들의 피사체는 되어 보았지만, 한번도 촬영 주체가 되어본 적이 없었기에 사진 교육은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초등학생은 카메라를 통해 다양한 자기 이야기를, 중학생은 나를 주제로 친구, 가족, 마을 사람들, 마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진을 잘 찍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나와 우리를 생각하게 했던 수업 방식들은 우리에게도 그들에게도 소중한 시간으로 남게 되었다.

 

이제 다시 시작되는
라오까이에서의 시간

 

올해 라오까이 사범대에서는 현지 초ㆍ중학교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작년보다 심화된 매개자 교육을 진행한다. 작년 문화예술교육에서의 핵심이 문화예술교육에 관련된 내용들을 서로 이해하는데 있었다면, 올해는 이 교육 방식이나 내용들이 지속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돕는 것에 교육의 핵심이 있다. 초ㆍ중학교 교육에서는 사진과 미술 교육을 접목해 다양한 통로로 참여자들의 표현 가능성들의 폭을 넓혔고, 작년 수업을 경험했던 초ㆍ중학생을 대상으로 동아리 교육을 진행한다. 작년의 경험을 대상으로 그들 스스로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기획하고 실행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작년을 토양으로 올해는 단단한 줄기를 올리고 있는 셈이다.

 

수업 스케치
수업 스케치

 

작년에 이어 올해 수업을 준비하면서도 고민은 계속된다. 이곳에서의 문화예술교육은 어떤 의미로 전달될까? 매 수업이 조심스럽다. 다만 이곳에서의 문화예술교육이 우리에게 잠재된 새로운 재능을 찾아내는 시간이기를, 몸과 마음이 이야기하는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교육의 기회가 삶의 높낮이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기를, 이곳이 지속적 교류를 통한 교육이 실현 되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

 

수업 스케치
수업 스케치

 

마을로 돌아왔다. 눈을 감고도 훤히 다 돌 수 있을 것 같은 마을이 내 나라 외에 이국에 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한 아이가 곁을 스치고 지나갔다. 급하게 뛰어가던 아이는 나를 뒤돌아보고는 다시 달려와 엄지와 검지로 네모난 프레임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나를 부른다. “신짜오 타이 장~~!”


장작

글, 사진_ 장작(장근범)
일과 작업, 문화예술교육을 병행하며 살고 있다.


문화예술교육 공적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사업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문화예술교육 공적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사업은 수원국의 문화 존중과 주인의식(ownership)이 강조된 문화예술교육을 제공함으로써, 공적개발원조의 본래 목적인 인도주의적•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것은 물론, 국제사회 내 ‘지속 가능 발전 교육으로서의 문화예술교육 가치 확산’에 기여하고자 2013년에 시작되었다. 올해는 세 명의 예술강사(장근범, 김민지, 여한아)가 베트남 라오까이성 사파현 초ㆍ중교육과 사파에 처음으로 결성된 동아리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베트남 지원사업은 2017년까지 5년간, 지속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ㅇ주최 : 문화체육관광부
ㅇ주관 :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ㅇ문화예술교육ODA 사업단 : 익산공공영상미디어센터
ㅇ협력기관 : KOICA 베트남 사무소

 

* 이 시리즈는 문화예술교육 공적개발원조 (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사업을 위해 베트남으로 떠난 예술강사 3명의 이야기로, 총 4회에 걸쳐 소개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