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월 20일은 법정기념일로 공식 지정된 ‘장애인의 날’이다. 또한 장애인식 개선 교육이 법정 의무 교육으로 지정되어 학교와 직장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장애에 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없애고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다름과 닮음을 이해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이지만, 일회성 캠페인이나 숙제처럼 느껴지는 점이 아쉽다. 지속적으로 일상에서 재미있게 경험할 수는 없을까. 놀이를 통해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을 마주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교육용 보드게임을 소개한다. 재미와 메시지를 동시에 전해주어 더욱 오래 기억하게 하는 장애 인식 개선 게임을 통해 장애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 한 발짝 나아가 보자.
리무빙 배리어스 보드게임
[사진출처] 토야 워즈워스 유튜브
보드 위에서 펼쳐지는 다양성의 경험
사회운동가 토야 워즈워스(Toyah Wordsworth)는 장애 당사자로서 장애를 이해하고, 자신의 삶에서 어떻게 활용할지 꾸준히 고민한 끝에 보드게임을 개발했다. ‘장벽을 제거한다’라는 뜻을 가진 <리무빙 배리어스(Removing Barriers)>를 통해 다양한 유형의 조직에 맞는 교육을 제공하고자 했다. 장애인 입장에서 서비스와 시설 접근성을 고려하여 현실의 문제가 무엇인지, 장애인들이 직면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운다. 그는 “<리무빙 배리어스>가 여러분이 누구든 간에 장벽 없이 삶을 살 수 있는 영감을 주길 바란다”라며, “장애인이 된다는 것은 비록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다른 접근법을 써야 할 수도 있지만, 모든 것(everything)과 모든 것(anything)이 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라고 말했다.
게임은 두 팀으로 나뉘어 질문과 답변을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정답과 가장 가까운 답을 하는 팀에게 토큰이 주어지며, 가장 많은 토큰을 얻은 팀이 이긴다. 장벽 제거(Removing Barriers), 지역사회자원(Community Resources), 장애 유형(Institution), 접근성(Accessibility)을 주제로 한 4개의 카드로 구성되어 있다. 카드에 따라 예시 상황 속 장애를 고려하여 이동 방법을 제안하거나, 장애에 관한 인식을 확인할 수 있는 OX 퀴즈, 장애 유형에 관한 이해와 장애인을 위한 시설과 서비스 접근 방법에 관해 토론한다.
예를 들어 보드판의 각 칸에는 특정 상황이 설명되어 있다. A는 청각장애가 있고, 짐을 운반해야 하는 상황이다. 택시를 타려고 하는데 택시 기사와 어떻게 소통을 할지, 그 과정에서 생기는 어려움은 무엇인지 이야기 나눈다. 그리고 각자만의 해결 방법을 제시한다. 게임이 종료된 후 참여자들과 시간을 내어 게임을 통해 무엇을 인식했는지, 전과 생각이 달라진 점이 있는지 이야기 나누길 추천한다. 게임 속 제시된 상황들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장애인이 직면하는 장벽을 좀 더 이해하고, 자신의 관점 변화를 짚어볼 수 있다. 또한 장애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과 가까이 있음을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리무빙 배리어스는 2008년 장애 교육 분야에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게임을 개발한 공을 인정받아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뤄낸 청년들에게 주는 프린스 트러스트 어워드(Prince’s Trust Awards)를 받았다.
‘함께 가기’ 위한 연습 게임
“아동을 대상으로 하면서 장애 유형을 교육 차원에서 넣어 만든 게임은 세계 최초이지 않을까 싶다.”
2019년에 개발한 <굿투고> 장애 인식 개선 게임 제작에 참여한 고정욱 동화작가의 이야기이다. 앞서 살펴본 <리무빙 배리어스>가 의료, 교육, 서비스 종사자인 성인을 대상 게임이라면, <굿투고>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보드게임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가기 좋다’라는 뜻을 가진 <굿투고>는 즐거운교실문화연구소가 고정욱 작가와 함께 개발한 게임으로 알록달록 눈길을 끄는 색상과 그림이 담겨 있어 재미를 더한다. 2019년 코리아 e마케팅 페어에서 소셜임팩트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장애를 체험하는 ‘고’ 카드와 장애 관련 퀴즈가 적혀 있는 ‘굿’ 카드에 알맞은 정답과 미션을 수행하면 트로피를 획득할 수 있는 방식이다. 장애 유형을 이해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15가지 장애 유형과 수어를 소개하여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 미션을 수행하는 고 카드에서는 청각장애 액션으로 수화자모표를 보고 자신의 이름을 표기해 본다. 추가 미션으로 다음 차례까지 말을 하지 않으면 아이템 토큰을 얻을 수 있다. 여기에 <굿투고>만의 특징을 보여주는 규칙이 있다. 주사위를 굴리기 어려울 경우 다른 참여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미션을 끝까지 수행한 두 사람 모두 아이템 토큰을 획득한다. 자연스럽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협동을 끌어내며, 참여자들은 구체적이며 주체적으로 장애인이 마주한 상황을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장애 인식 개선은 거창하고, 어려운 개념이 아닌 그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작은 이타심에서 출발하지 않을까.
교육 대상의 특성에 맞는 참여형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은 점차 문화예술과 연계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개발되고 있다. 놀이를 통해 장애 감수성을 배우고, 다름을 이해하고, 일상생활에서 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의 무게를 깨닫는다. 딱딱한 법령도 놀이로 접하면 한결 기억에 오래 남지 않을까. 낯선 법률 용어로 이해하기 어려운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의 내용을 알기 쉽게 풀어 쓴 매뉴얼북 『반갑다, 발달장애인법』(2015년, 한국장애인개발원)이 나왔다. 창작그룹 비기자는 이 매뉴얼을 활용하여 발달장애인법을 카드놀이로 쉽게 풀어낸 <다른 시간>을 제작했다. 총 32개 법 조항의 설명을 돕는 그림을 넣은 카드로 구성되어 다양한 놀이를 상상해 볼 수 있는 창작프로젝트다. 발달장애인법을 친절히 소개해 주면서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발달장애인법이 삶 그 자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
김수연_프로젝트 궁리 에디터
김수연_프로젝트 궁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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