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국가 수준에서 「탄소중립기본법」이 제정되고 그린뉴딜 정책이 쏟아질 때, 문화예술부문은 예술현장을 중심으로 기후위기 대응에서 예술의 가능성과 역할을 모색해왔다. 몇몇 예술지원기관에서 관심을 보이긴 했으나 여전히 국가나 지역 단위에서 ‘전환’의 논의에 문화정책을 접목하려는 시도는 보이지 않는 듯하다. 왜 예술현장에서는 그리고 여러 유럽 국가는 기후위기 대응정책과 문화정책의 연계에 주목하고 관련 사업을 확대하고 있을까. 이 글에서는 유럽연합(EU) 그린딜(Green Deal)의 문화적 차원으로 추진하고 있는 ‘새로운 유럽 바우하우스’(New European Bauhaus) 사례를 통해 기후정책과 문화정책의 접목, 더 나아가 전환의 어젠다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방식과 의미를 살펴본다.
탄소중립 대응을 위한 정책 패키지, 유럽 그린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International Panel on Climate Change)는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2018)에서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온도가 2℃ 상승했을 때와 1.5℃ 상승했을 때의 시나리오를 제시하면서 지구 온도 상승을 1.5℃로 억제하기 위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권고하였다. 이전부터 탄소감축을 추진해 온 EU 집행위원회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기후대응과 경제성장 정책을 종합한 유럽 그린딜(European Green Deal, 이하 그린딜)을 발표한다(2019.12). 그린딜은 1990년 수준 대비 2030년까지 순 온실가스 배출량 55% 감축, 2030년까지 30억 그루의 나무 심기 등을 주요 지표로 설정하고, 사회 전 분야를 전환하기 위해 기후, 에너지, 환경과 바다, 농업, 수송, 산업, 연구 및 혁신, 금융 및 지역개발 그리고 새로운 유럽 바우하우스 9개 분야에서 영역별 세부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 그린딜에 정신(soul)이 있다면 우리 유럽연합 전체에 창의성의 폭발을 이끄는 것은 새로운 유럽 바우하우스다”
–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EU 집행위원회는 그린딜을 생활공간과 경험에 연결하는 창의적·융합적 프로젝트로 ‘새로운 유럽 바우하우스’(이하 NEB)를 추진하고 있다. 바우하우스가 1900년대 문화예술 분야를 동시대 사회적 도전과 연계하여 산업과 굿디자인이 사람들의 일상을 개선한다는 인식과 경험을 확산시키는 문화예술 주도 사회운동이었다면, 뉴 바우하우스는 2000년대 기후위기로 정의되는 근본적으로 다른 조건 아래서 그린딜 정책을 문화적, 인간 중심적, 긍정적, 가시적으로 경험함으로써 사회 전 분야에서의 녹색 전환을 가속화하고자 하는 문화적·환경적·경제적 이니셔티브이다.
NEB는 모든 유럽인이 그들의 눈, 마음, 정신에서 아름답고 지속가능하며 포용적인 미래를 함께 상상하고 만들어가는 것을 지향한다. 구체적으로는 ①아름다움을 넘어서는, 다양하고 변화 가능한 문화적 차원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②단순히 접근성 개선이 아닌, 역량 강화와 다양한 능력을 설계하고 ③단순한 수리가 아닌, 순환의 과정을 채택함으로써 치유, 번영, 재생하며 ④취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불균형을 바로잡고 살고 싶은 세상으로의 공정한 전환을 추구한다.
  • NEB의 가치와 원칙
    3대 가치: 지속가능성, 아름다움, 포용
    3대 원칙: 과정에의 참여, 다양한 수준의 참여, 융합적 접근
  • NEB의 접근방식
    과학·기술의 세계와 예술·문화의 세계를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공동창작을 통해 복잡한 사회문제에 대한 혁신적 해결책을 모색
    [출처] ReCheck
새로운 어젠다를 공유하는 방식
NEB는 기후위기를 넘어 주변을 관찰하고 공동의 미래를 고민하는 아이디어와 사례를 수집함으로써 NEB의 방향성을 개발하고(1단계), 파일럿 사업의 모니터링 및 다양한 주체의 연계와 역량 강화(2단계)를 거쳐, 최고의 방법과 표준화 방안을 찾고 관련 시장 부문의 출현까지 지원하는 새로운 조치를 모색(3단계)하고 있다. 이를 위해 1억 유로 이상을 NEB에 투자하여 2021-2022년에는 100개 이상의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고, 600개 이상의 파트너 조직과 함께 수백만 명의 시민에게 다가가고 있다. 또한 2023-2024년에만 연구 혁신 프로그램인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 전용 기금에서 추가로 1억 600유로의 기금을 확대하여 NEB 활동이 거의 없었던 농촌 지역 및 국가에서의 NEB를 확산하고 있다.
특히 NEB는 추상적이고 거시적인 ‘전환’의 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하고, 이에 필요한 지식과 역량을 개발하며 새로운 담론과 성과를 창출하는 근간으로 교육 및 학습에 주목한다. 실제 NEB 파트너의 많은 부분이 교육 분야(대학, 연구기관 등)이며 이들을 통해 교육 장소의 변화, 혁신적 교육 방법 도입 등을 모색하고 있다. 최근, NEB 가치의 실천적 프로젝트를 장려하는 ‘New European Bauhaus Prize 2023’(6.22 발표)에서도 주요 경쟁 부문으로 교육 분야를 강화하였다. 2021년에는 교육을 포함한 10개의 주제 영역별 우수사례를 선정했으나, 2023년에는 챔피온, 라이징스타, 교육 챔피온 3개 경쟁 부문 아래 자연과의 연결, 소속감 회복 등 각각의 주제 범주의 수상자를 선정한다.
  • 1단계: 디자인 단계(~21년 여름)
    아이디어 및 사례 수집
  • 2단계: 전달 단계(21.9~22년)
    네트워크 및 지식 공유
  • 3단계: 전파·확산단계(23.1월~)
    아이디어 수정 및 확산 지원
  • NEB의 단계별 추진 전략
    [출처] eufundingoverview.be
신기후체제를 준비하는 빵 학교 ‘마드레 프로젝트’
이탈리아 ‘마드레 프로젝트(Madre Project)’는 전환기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새로운 교육 모델과 직업 및 생활 조건을 찾는 ‘빵과 장소 학교’다. 잘 상상이 안 된다. 빵과 전환이라니. 도시재생 비영리단체 테르조 파사지오(Terzo Passaggio), 빵 장인 데이비드 롱고니(Davide Longoni), 지역 밭에서 곡물을 재배하는 도시농업 운동가,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등의 협력으로 탄생한 이 프로젝트는 밀라노 키아라발레(Chiaravalle) 지역에 버려진 농장 등을 학교로 개조하고, 지역사회와 장소 그리고 실천을 연결하기 위해 빵을 중심으로 다양한 주체를 학교로 초대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물론 직업으로서의 제빵사를 훈련하는 프로그램이 메인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 대학이나 학원과는 달리 새로운 세대의 빵 장인, 지역 재생가, 활동가를 길러냄으로써 미래의 빵 가게가 새로운 지역·문화 센터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한다.
프로젝트의 중심인 빵은 지역과 주민의 관계를 연결한다. 직업이나 사업으로서의 가능성을 높이고 의도를 구체적이고 물질적으로 만들 수 있는 재료이기도 하다. 따라서 학교에서는 빵을 만드는 기술만이 아닌, 빵의 재료, 생산과 유통, 지속가능성, 지역사회의 연결성을 이해하고 거주하고 일하는 장소에 사회적·긍정적 영향을 만들어내는 활동을 배운다. 학교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교수진도 빵 장인, 대학 및 연구센터 전문가, 예술가, 공예가, 기업가, 문화기획자 등으로 다양하다. 마드레 프로젝트는 밀라노 시민 360명의 크라우드 펀딩 지원 등을 받아 설립되어, 빵과 지역 사이의 임팩트 있는 기업을 만드는 최초의 학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 실험적 교육과정-베이커리 워크숍·마스터클래스, 빵
    생산의 미래에 대한 논의, 도시탐험, 아이디어·비지니스 모델 개발
    [출처] Madreproject
  • 공개 프로그램-빵을 중심으로 인류학, 탐험, 농경 등
    다양한 경험·체험·공연 등의 프로그램 운영
    [출처] Madreproject
대전환의 시작, 우리의 커뮤니티에서 만드는 긍정적 경험
기후위기가 인간에게 커다란 위험과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대응이 필요하다는 원론적 논의에는 거의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삶에서 변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다. 기후인식과 기후행동 의도, 기후행동에서 괴리가 발생하는 것인데, 이를 개인의 의지 부족으로 탓할 것인가? NEB는 우리가 전환의 지향점을 상상하고 그것이 생활공간에서 긍정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계기를 만들고 있다. 특히 NEB의 사례들은 공동체에 적합한 창의적 방식을 함께 고안하고 실현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공동체원의 정신적·신체적 건강과 웰빙에 기여하고자 한다. 이러한 경험들은 기후위기에 대한 인지를 넘어 개인과 집단이 전환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가치를 나누는 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제 대전환을 위한 국가와 지역 정부의 노력은 산업구조, 에너지, 재개발 등의 구조적 변화를 넘어, 거대한 전환의 어젠다가 시민의 삶과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를 상상하고 실현하는 경험의 계기를 지원해야 할 때이다.
나혜영
나혜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책임연구원. 한국의 Rio+20 대응, EPI(Environmental Performance Index) 개선방안 등의 연구 경험을 기반으로 2021 ARKO 정책 혁신소위원회 ‘기후위기-예술정책’ 워킹그룹에 참여했다. 문화정책에서 환경, 포용성, 참여 등 지속가능성 어젠다가 갖는 의미와 적용을 고민하고 있다.
nhy3877@arko.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