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업은 재료가 될 쓰레기를 구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나는 야생에서 먹을만한 열매를 채집하는 야인이 되어 길바닥을 샅샅이 살피며 출근한다. 어제는 왼쪽 골목으로 갔다면, 오늘은 오른쪽 큰길로 출근해 새로운 쓰레기가 있는지 탐색한다. 운이 좋으면 쓸만한 쓰레기를 줍는 날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날도 있다. 야생은 그런 것이니! 주운 쓰레기를 작업실에 가져가면 쓸만한지 한 번 더 살핀 후, 잘 닦는다. 그러면 드디어 나의 재료가 된다. 이렇게 모으는 재료는 예상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주운 재료와 인사를 나누고 살피며 작업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있다
처음 업사이클링 작업을 하기로 결심하고는 어떻게 폐자원을 구해야 할지 몰랐던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길에는 쓰레기가 넘쳐났지만, 원하는 폐자원을 구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았다. 차가 없는 내게는 너무 멀었지만, 당시 유일하게 다양한 폐자원을 판매했던 소재 은행에 가서 구해오기도 하고, 차를 빌려 광진구의 봉제공장에 가서 재고 원단을 실어 오기도 했다. 또 온라인 목재상에서 판매하는 자투리 목재를 박스째로 구매하기도 했다. 그러나 작은 공간에서 혼자 작업하는 내게는 이런 수급방식이 맞지 않았다.
요즘에는 나의 일상의 범위 안에서 구하기 쉬운 폐자원으로 재료 수급방식을 바꿔나가고 있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다가 괜찮은 가구가 버려져 있으면 줍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버리는 옷이나 쓰레기를 모아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가까운 곳에서 농사지은 채소를 로컬푸드라고 부르는 것처럼, 나는 이렇게 모으는 쓰레기를 ‘로컬쓰레기’라고 부른다.
쓰레기를 재료로 삼아 작업하기 시작하며 가장 먼저 만들었던 것은 모빌이다. 모빌은 여러 조각이 모여서 한 덩어리를 이룬다. 한 개체를 톡 건드리면, 다른 개체들도 연달아 움직인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모빌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빌을 만들며 작은 것, 큰 것, 강한 것, 약한 것, 누구 하나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이 없이, 우리는 모두 지구라는 집에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며, 모든 것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모빌은 주로 자투리 목재, 폐 원목 가구를 활용해 만든다. 자투리 목재 한 조각마다 알맞게 개체를 그리고 하나하나 모양 내 다듬는다. 어울리는 색을 찾아 입히고, 적당한 위치를 잡아 연결해준다. 그러면 버려질 뻔했던 작은 나무 조각들은 하나의 소중한 개체가 되고, 이 개체들이 모여 모빌이라는 하나의 작은 우주가 된다.
  • 《죽음 없는 바다》
  • 업사이클링 모빌
다음 역은 사이 숲 – 죽음 없는 바다
지난해, 영등포시장역 지하에서 진행한 전시 《다음 역은 사이 숲》은 도심 지하철역에서는 낯선 자연, 생태 등을 소재로 여러 작가가 참여하는 릴레이 개인전이었다. 나는 《죽음 없는 바다》라는 전시로 참여했다. 오롯이 인간을 위한 공간인 지하철이라는 곳에 우리가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미지의 공간, 바닷속 풍경을 가져다 놓았다. 나는 이 전시를 통해 인간이 살지 않는 바다에 인간이 만든 쓰레기가 뒤덮여 많은 바다 생명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고,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모든 전시 작품은 쓰레기로 제작했다.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에서 해변을 청소하며 주운 폐어구, 알맹상점 손님들이 모은 은박비닐봉지, 개인이 모아서 보내준 여러 쓰레기, 그리고 주변에서 발생하는 생활 쓰레기를 모아 작품의 재료로 사용했다. 쓰레기가 쓰레기로 보이지 않도록, 언뜻 보면 그저 아름다운 바다를 표현한 전시라 생각되게끔 쓰레기를 다듬고 엮어 아기자기한 바닷속 풍경을 연출했다.
전시의 영어 제목은 《I’m in the Eternal Life》라 지었다. 살아있는 것은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기에 죽음 없는 바다는 더 이상 죽을 생명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고, 영원한 삶(Eternal Life)을 사는 화자(I)는 쓰레기다. 바다로 흘러 들어간 쓰레기가 생명의 자리를 앗아가 진짜 생명은 사라지고, 인간이 만든 쓰레기만 남아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는 의미를 제목에 담았다. 자연과의 공존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무분별한 소비에 대한 성찰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 로드킬 채집 프로젝트
나는 왜 길바닥의 쓰레기가 아닌가
자동차 바퀴가 그를 짓누르며 지나갈 때마다 딸까닥 딸까닥 내가 여기 죽어있다고 소리를 낸다. 그것은 빈 음료수 캔이다. 누군가 만들었고, 구매했고, 사용했고, 버렸을 음료수 캔. 언제부터 저기에 버려져 있었을까? 이제는 아무도 소중히 대하지 않는 빈 껍데기는 쓰레기가 되어 길에 유기되었다. 길을 건너려 인도에 서 있던 나는 한참을 서서 그것을 바라보며 애도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리곤 사진을 남긴다.
음료수 캔이 쓰레기라 불리기 전을 상상해본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목마른 누군가의 목을 축였을 음료. 시간에 쫓겨 쪽잠을 자며 물건을 운송했을 화물 운송노동자.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생산라인과 멈추면 안 되는 공장 노동자들. 숲을 없애고 커피나무를 심고 노동 착취로 키워진 원두로 만든 커피와 공장식 축산업에서 어미 소에게서 송아지를 떼어내고 빼앗은 우유로 만든 음료. 거대한 기계로 지구를 파서 알루미늄을 채굴해 만든 캔. 무심하게 지나가는 자동차에 의해 끝없이 짓눌리는 쓰레기를 바라보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잇는다.
이 작업은 나의 착각에서부터 시작됐다. 그곳은 전부터 사고가 자주 나는 도로였다. 얼마 전에도 반대편 도로에서 고양이 하나가 차에 치여 죽었다.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가고 있는데, 정류장 앞 도로에 검은 덩어리가 가만히 누워있었다. 바닥에는 붉은 물도 흘러나와 있었다. 나는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고 검은 덩어리를 향해 허겁지겁 뛰었다. 곧 신호가 바뀌어 자동차가 이쪽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검은 덩어리 앞에 도착한 나는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떡볶이가 들어있던 검은 비닐봉지였다.
그 사건은 잊히지 않고 계속해서 내게 질문을 던졌다.
  • 핫핑크돌핀스
  • 옥상텃밭에 찾아 온 꿀벌
자연에 대한 예의
“당신은 자연에 잠깐 들른 손님입니다. 예의를 갖추세요.” 내가 좋아하는 예술가 훈데르트바서가 말했다. 훈데르트바서는 건축가이자 화가인 예술가기도 하지만, 환경운동가기도 했다. 그의 건축물에는 나무세입자가 살았고, 옥상에는 숲이 있었으며, 인분을 거름으로 만들 수 있는 생태 화장실이 있었다. 인간이 망가뜨린 자연에 대한 죄책감으로 숨 쉬는 것조차 환경을 훼손한다는 생각에 괴로웠던 적이 있다. 지금도 물론 그런 생각을 떨쳐버린 것은 아니지만, 잠시 지구를 빌린 손님으로서 머물다 가는 동안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지구 없인 살 수 없는 우리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환경운동가가 되길 바란다.
나영
나영
쓰레기로 무엇이든 만드는 1인 작업실 ‘로테이트’의 대표. 12살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고, 채식주의자가 된 지 4년이 되어간다. 옥상 텃밭을 일구고, 지렁이에게 음식 부산물을 부탁하는 초보 농부기도 하다.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 서울지부장, 지역정당 은평민들레당 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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