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과 이야기가 뒤엉켜지는 어떤 지점에 노드(node)가 생겨납니다. 그 순간을 시각화하기 위해 디지털 장비를 장착하고 호기심으로 마음을 부풀려 내뻗는 발걸음으로 풍경을 채집하는 우리를 ‘노드 트리(NODE TREE)’라고 명명했습니다. 우리는 정강현, 이화영이면서 까레이와 들판이라고 불리는 것에 더 익숙합니다. 정강현은 부산광역시 대신동에서 태어나 자랐고 25살이 되던 해 작곡가가 되기 위해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작은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크고 어두웠던 공간에서 끼니를 거르며 헤비메탈 음악과 함께 일상을 보낸 어떤 시절에 꾸던 꿈이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드라마 <까레이스키>가 방영되었는데 강현이라는 이름과 찰떡이었는지 그때부터 까레이로 불렸고 지금도 그 이름을 사용합니다. 이화영은 은평구와 일산 경계 어디쯤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기억의 시작은 강원도 속초시 금호동 하얀 2층집부터입니다. 등굣길에 동네 개가 쫓아오면 무서움에 떨며 발길이 닿고 문이 열리는 이웃집에 들어가 울던 넉살 좋은 아이였습니다. 3년이 채 안 되게 살았던 그 집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아버지가 설계했고 군인들과 함께 직접 집을 지어서 이사 오기 전까지도 공사 중이었던 집으로 기억됩니다. 우리는 유년 시절 감당해야 했던 공간이 다채로웠기에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석동리에 2020년 6월에 도착해 현재까지 공간을 수선하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소개할 감성템 중 하나가 바로 ‘노드 트리 하우스’로 불리는 공간입니다.
발견된 삶터 – 노드 트리 하우스
노드 트리가 시작된 것은 2016년 여름이 끝나갈 무렵으로 기억됩니다. 정강현과 이화영은 2011년 전주에서 개최된 미디어 캠프에서 만났습니다. 전국에서 인터랙티브 미디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전주 한옥마을로 모여들었고 정강현은 전자음악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으로 사물 해킹에 관심을 두며, 여러 뉴미디어 장치와 결합해 신호를 집요하게 쫓고 있던 중 다매체 작업에 대한 갈증을 느꼈고 전주로 향하게 됩니다. 이화영은 조형예술을 전공하고 있었는데, 그해 개설된 인터랙티브 미디어 강의에 관심이 생겨 자퇴하지 않고 복학을 합니다. 프로젝트 그룹으로 활동하기도 하고 발길 닿는 데로 이동하는 성향이기에 여러 작가의 작품과 전시를 도와주며 전국의 미술관을 돌아다니던 시절 전주로 갑니다. 그때는 ‘우리’로 활동할 것이라는 신호는 없었습니다. 정강현이 2016년 고시원에서 수집한 아날로그 TV의 해킹에 성공하기 전까지는요.
신호를 찾아낸 정강현은 ‘전시’라는 것을 통해 본인이 하고 싶은 작업, 그의 표현으로는 ‘심장이 뛰는 그런 일(=작업)’을 하고 싶어 했고, 반짝이는 눈으로 말을 거는 그를 외면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전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기에 2011년 그의 시선에 닿았었고, 기억에 머물러있던 이화영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이화영은 전주에서 그때의 동료들과 차에 실려 있던 각종 공구를 사용해 설치물을 기반으로 작업을 진행했고 분명 시간이 없어 완성을 못 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말이죠.
우리는 각자 다른 의미로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기에 각자가 궁금해하는 신호를 발견하고 외부로 발신하기 위해 도시를 탈출해 보기로 했습니다. 유년 시절 감당할 수 없었던 공간이 아닌, 바라만 보는 풍경이 아닌, 풍경 안으로 들어가 그 안에서 살아가면서 신호를 찾아내고 기록하고 각자가 축적한 경험으로 시각화 작업을 지속하며 살아가자 약속했습니다. 이화영은 도시가 개인의 서사를 빠른 속도로 삭제하는 현상에 대한 궁금증으로 도시의 원형이 궁금했고, 정강현은 나의 심장이 뛰는 일(작업)을 하기 위해서 하는 선택을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우리는 도시가 아닌 곳에서 각자가 바라는 삶과 터전을 만날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우리가 부여에 도착하며 일어난 여러 사건이 예술의 영역 안에서 여러 형태로 확장되고 있기에, 나를 지지하는 1명의 동료가 있다면 상상하는 영역의 시각화가 멀리 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건네고 싶습니다.
감각과 기억의 – 향수(鄕愁, 香水)
우리가 부여에서 만난 공간은 본채, 사랑채, 외양간으로 사용되던 3개의 공간과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술로 가로지르기’ 프로젝트를 통해 여러 예술가와 친구들이 방문했습니다. 일련의 시간이 있었기에 며칠 전 김소라 작가의 개인전 《복순투어》가 스튜디오 부여에서 열렸고 전시 준비를 위해 2년 연속, 노드 트리 하우스에 머물게 됩니다. 개인전이 마무리되는 날 김소라 작가가 선물로 주고 간 향기로운 물건에서 출발하는 두 번째 감성템을 소개합니다.
향기로운 상태를 좋아하다 보니 집안 곳곳에는 디퓨저가 놓여있고 러○의 샴푸를 애정하며, ○솝의 핸드 워시를 사용합니다. 우리는 향수를 여전히 사용하지만, 예전만큼 필수템은 아닙니다. 스쳐 지나가면서 만난 향기가 각인되면 어떤 제품을 오랜 기간 사용하듯, 노드 트리에게 향기는 향수(鄕愁)이기도 합니다. 정강현은 고시원에서 아날로그 TV를 수집했듯, 지나가면서 만나는 버려진 스피커를 애잔하게 바라보며, 기어이 작업실로 가지고 옵니다. 해체 작업을 하며 여느 길 위에서 만난 유닛과 예술의 언어로 대화하기 위해 정성스럽게 보관하고 그 스피커를 사용해 작곡한 사운드를 외부로 송출합니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사물들이 작업실과 창고에 켜켜이 쌓아갑니다.
시간이 모은 – 수집사물
수집되는 사물은 노드 트리의 작업에서 주요하게 등장하는 재료입니다. 부여에 도착하기 전에는 사물을 만나기 위해 여러 도시로 이동했다면, 지금은 주로 각자의 시간을 보냅니다. 이화영은 의용소방대원으로도 활동하고, 평화통일 공부 모임과 독서회에 1달에 한 번 참석하고, 대안예술공간과 주식회사를 설립하며 부여의 여러 장소에 나타나며 달력의 빈칸을 빼곡하게 채우는 과정을 수행 중입니다. 정강현은 부여에 도착하고 1년 뒤 정규직으로 취직하게 되면서 퇴근 후 스스로 정해놓은 시간(22:00 ~ 00:30) 동안 여러 기술을 연구하고 학습하는데, 이때 그가 체득하는 미디어 기술이 주로 작업에 적용됩니다.
부여에서는 특히나 반복적인 패턴으로 생활을 합니다. 정강현의 퇴근 후부터 밤 10시까지는 공통의 시간인데 까레이, 들판, 들판의 아들인 11살 까몽이 한 장소에 모여서 각자 알아서 시간을 보내다 함께 식사 하고 청소를 합니다. 그 시간에 누군가의 방문이 있다면 그들과 함께하는데 이러한 시간층이 형성되고, 그 시간 안에 축적된 무엇들이 노드 트리의 작업 재료가 됩니다. 예전만큼 도시 간 이동이 없어 사물이 덜 수집될 것 같았는데 우리가 머무는 장소 자체가 시간이 축적되어 있고 여러 층위의 사람들과 교류가 있기에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공간으로 진입을 해보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서로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평일 대부분 시간을 보내고 있으나 여러 관계가 형성되면서 만나는 사물들이 다채로워지고 있습니다.
개인의 서사가 기록되어야 하는 이유는 기억이 예술 작업의 재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채집 과정에 놓인다는 것은 예술가가 사회로 개입하는 순간을 연다는 것입니다. 휩쓸려 보았기에 자기중심을 잃지 않도록 ‘우리’라는 2인 구조를 탄탄하게 가져가려 합니다. 우리의 삶의 방식은 최근 이야기 자리에서 들었던 근본 없는 작업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노드 트리는 근본을 스스로 세워가는 중이며, 우리의 작업 방식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나로부터 시작되는 관계는 소중하며 나의 기준점이 세워져야 다른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습니다. 노드 트리의 감성템은 사람과 사람이 이어질 수 있는 매개가 되는 공간과 사물들입니다.
노드 트리(정강현·이화영)
노드 트리(정강현·이화영)
서울과 수도권 일대 거주하며 신도시들이 복사하듯 만들어지는 현상에 관심을 두며 산업과 삶의 속도가 빨라지게 된 풍경의 서사에 주목한다. 2020년 도시를 떠나 충청남도 부여군으로 이주하여, 지역 내 시설원예 농장에서 일꾼으로 경험을 하기도 하고 직접 집을 고치며 궁금증을 유발하는 행위를 반복한다. 반복 노동과 수행으로 발생하는 관계성을 작품 재료로 만드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지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고 구전으로 떠도는 어느 장소성을 발견하고 시각화하고 있다.
웹페이지 nodetree.kr
인스타그램 @node.tree
예술로 가로지르기 인스타그램 @around_across_ab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