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작 욕구를 자극하거나 나에게 영감을 주는 물건을 주제로 원고를 청탁받았을 때, 몸을 매개로 하는 예술교육실천가인 나는 어떠한 물건으로 나를 소개하고 나의 활동을 연결해야 할지 난감하기도 했지만 스스로 마주하는 시간을 가지며 나와 늘 함께하는 것, 나를 이루는 것들을 떠올려보았다.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며 나의 거울이 되어준, 동료 같은 아이템 세 가지를 소개한다.
연필과 수첩-기록하는 습관
내가 그동안 활동하며 꾸준히 반복했던 것은 무엇인지 돌이켜보니 기록하는 일과 그 기록을 통한 성찰이 있었다. 수많은 대안을 준비해 놓아도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음을 수백 수천 번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내면의 불안을 잠재우고 실패하지 않기 위한 다양한 계획과 대안을 쭉 펼쳐놓곤 했다. 교육활동을 준비하는 것은 물론 일상에서도 계획과 기록을 붙잡으며 살아가다 보니 내가 만든 계획과 대안이 나를 옭아매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물결을 자연스레 만나게 되고 어린이와 함께하는 삶을 경험하게 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이전과는 다르게, 잘 해내기 위한 혹은 구멍 하나 없이 완벽히 쌓아 올린 담장 같은 계획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의 경험을 내 몸 안에 담아내고 그 활동의 과정과 느낌을 기록하게 되었다.
때로는 한 주에 600명 정도의 어린이와 청소년을 만나기도 하는데 월화수목금 매일 다른 장소에서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기에 모두를 기억하기 어렵지만, 가능하면 만났을 때 있었던 사소한 일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작지만 소중한 기억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 만나는 아이들과 나를 성찰할 수 있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기록하는 작은 습관, 작은 기억의 조각들이 나를 이루게 해주고 내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의 지도를 밝혀주며 나와 아이들을 연결해주는 다리 역할이 되어주고 있다.
사람-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마주하는 유연한 태도
기록의 의미와 힘도 크지만, 제아무리 준비를 많이 하고 기록한다 한들 현장은 늘 새롭고 다양하다. 어떠한 상황에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싶다고 늘 생각했는데, 딱딱하게 굳어있던 나를 잠시나마 살아 숨 쉬게 하고 유연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마주하는 것이라고 깨닫게 되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여과되지 않은 순수하고 직설적인 질문을 통해 내가 하는 활동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즉흥적으로 일어나는 상황을 통해 나에 대해 알게 되었으며, 사람과 사람들이 건네는 질문과 태도가 가장 큰 영감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날 만난 아이들의 이름과 에피소드를 기록하고 기억해내는 것이 나의 작은 다정템이며 만나는 아이들을 통해 내가 어떠한 사람인지 나다움은 무엇인지 깨달았다. 이렇게 함께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영감을 주며 나를 이루게 한다.
  • ‘못생겨도 괜찮아’ 배지
  • 소품과 손으로 만든 감자
못생겨도 괜찮아 배지-다양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보라색 가지 모양 안에 ‘못생겨도 괜찮아’라고 적혀있는 작은 배지를 가방에 달고 다닌다. 그러면 왠지 행운의 부적을 가지고 다니는 것처럼 다양한 아름다움과 중요한 가치들을 놓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에게 못생겼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일까? 채소 과일만 보더라도, 맛과 향에 관계없이 몇 가지 정해놓은 기준에서 벗어나면, 평소 마주하던 모양이 아닌 낯선 혹은 개성 있는 모양이면 외면당하는 경우가 있다. 이 배지의 메시지를 통해 다양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에 감탄할 수 있는 마음을 갖자는 생각으로 함께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발레의 매력에 이끌려 춤과 만나게 되었다. 마른 몸, 엑스 모양의 무릎, 부드러운 곡선 모양의 발등, 하얀 피부를 가져야 한다고, 그것이 아름다움의 기준이라고 듣고 자라며 점점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고 다른 세계에 사는 것만 같은 외모와 우아한 몸짓의 우리 학교의 유일한 발레 전공생 친구를 바라보며 나도 한 번쯤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특별한 친구가 하는 춤을 과연 내가 해도 될까?” “나의 몸은 춤추기에 적합한가?” “내 몸을 누군가 앞에서 당당히 드러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생겼다. 전공을 할수록 즐거움보다는 “나는 무용수가 될 수 없는 몸이구나” “춤을 아름답게 출 수 있는 적합한 몸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럼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내가 노력해온 과정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라는 고민과 동시에 나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낮아지며 내 몸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지금은 나에게는 외면이 주는 아름다움도 크지만,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름다움이 더 큰 감동을 준다. 그리고 내가 내 몸의 주인이 되고 내 삶의 경험과 신념을 몸에 담아 표현할 수 있는 것, 내 몸이 얼마나 소중한지, 내 몸에 대한 자신감, 내 몸을 긍정적으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내 몸의 고유한 움직임 그리고 그것을 발견해 내는 것이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지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기에 어린 시절의 나를 마주하게 된다면 위로하고 지지해 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나와 만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자신의 몸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다양한 아름다움을 가진 구성원으로서 민주적으로 평화롭게 서로의 몸과 마음을 존중하며 만날 수 있도록, 그러한 안전한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지금의 이 마음을 매일 새기지 않는다면 점점 흐려져 사라질 것만 같아서 가지 모양의 ‘못생겨도 괜찮아’ 배지를 달고 있다. 이렇게 나의 동료 같은 아이템들과 다정하게 함께하며 그 다정함이 나를 이루는 요소가 되길 바라며 살아가고 있다.
최서연
최서연
예술 활동에 영감을 주는 자연, 그 자연에 빚진 마음으로 살아가며 다양하고 작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자 노력하는 움직임 기반 예술교육 실천가. 지구에게 다정하게 하는 것이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게 다정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예술강사, 국민대학교 공연예술학부 무용전공 시간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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