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을 공부하고 그 뒤 사운드아트와 사운드 설치미술, 필드레코딩에 대한 공부를 더 하고 난 뒤부터 나의 활동의 폭은 더욱 넓어지게 되었다. 시각적인 영역과 청각적인 영역을 오가기도 하고 그 둘의 영역의 교차지점에 서 있기도 하면서 소리를 매개로 한 다양한 형태의 과정과 결과물을 경험하고 소개하며 시간을 보내왔다.
2017년 가을이 지나가는 시기에 ‘깡깡이마을’이라고 불리는 부산시 영도구 대평동으로 작업실을 옮기고, 전자공학과 인공지능 그리고 예술학을 공부한 다른 작가와 둘이서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다. 깡깡이마을은 부산 자갈치 수산물 시장이 맞은편에 보이는 영도의 해안가 선박수리 공업지역이다. 마을 전체가 선박을 수리하고 분해하는 등 망치질 소리와 기계 소리로 시끄러운 곳, ‘소리의 보물상자’와 같은 곳이다. 소리를 채집하러 다니는 사람으로서 이곳은 너무나 매력적인 공간이 아닐 수 없었다.
  • <순환하는 소리> 부분 촬영
  • <소리비>, 2018,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전시《날씨의 맛》(사진_김상태)
나와 닮은 – 피에조
깡깡이마을에서 작업하며 ‘피에조(Piezo, 압전소자)’를 좀 더 여러 가지로 활용하게 되었다. 2010년 정도부터 피에조를 이용해서 소리 관련 작품을 만들어 왔는데 그때는 피에조를 스피커로 활용했다. 하지만 스피커뿐만 아니라 마이크, 발전기, 압력센서, 충격센서 등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원리를 작업실을 같이 운영하는 작가로부터 배우게 되었다. 사진에서 보는 형태의 피에조는 그 크기를 달리하며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사실 잘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소리가 나는 작고 얇은 장난감이나 물건(크리스마스 카드 등) 속에, 컴퓨터 속 부저, 전자드럼 고무판 밑 등에 사용되고 있다. 깡깡이마을의 여러 소리를 녹음하러 다니던 어느 날 바닷속 소리도 녹음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방법을 알아봤더니, 일반 마이크와는 달리 수중마이크는 피에조 소자를 이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수중마이크를 직접 제작하여 녹음하기도 했다. 지금은 감도를 더 높이기 위해 아크릴판과 실리콘 스프레이 방수 코팅 재료 등으로 발전시키는 중이다.
피에조를 선택한 첫 번째 이유는 하나의 물건이 여러 가지 용도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시각 중심의 미술작가이면서 문화예술교육자가 되기도 하고 소리채집가, 사운드 설치미술가 등으로 자신을 계속 변화하게 하는 나의 모습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피에조’라는 물건에서 사고의 전환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피에조를 마이크로 활용하면 너무나 민감한 접촉식 마이크가 되기 때문에 사물의 표면에 붙여 미세한 진동도 들어 볼 수 있다. 넓고 먼 곳까지 소리를 퍼지게 하는 ‘종’이라면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생각을 확인할 겸 사찰에 있는 큰 범종의 표면에 피에조 마이크를 만들어 붙이고 범종이 듣는 세상 소리를 아이들과 함께 들어본 체험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시간을 관찰하는 – 10배율 루페
두 번째는 루페다. 생태 리서치와 지역 리서치를 하면서 숲 해설사의 소개로 구입하게 된 아이템인데, 목에 걸고 다니면서 주로 주변 식물을 관찰할 때 사용한다. 현미경처럼 초미세한 부분까지 보이진 않고 육안과 현미경의 중간 정도의 배율로 관찰할 수가 있다. 무겁지 않아서 휴대가 좋고 육안으로 관찰하기 힘든 새로운 세계로 간편하게 안내해 준다. 루페로 관찰해보면 식물과 동물은 천천히 자라고 빨리 이동하는 등, 움직임에서 시간 차이가 아주 크게 나지만, 생존과 번식 전략도 비교해 보고 길게 생각해보며 그 시간의 차이를 줄여 생각해 보면 차이가 거의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식물에도 털이 있었고, 잠자리 날개 같은 맥과 사람 피부 같은 결을 가지고 있었으며, 나의 손바닥 지문은 소나무 줄기의 껍질을 연상하게 했다.
사진제공_실상사
생명을 느끼는 – 실상사
세 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것은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장소다. 소리채집을 하러 종탑을 오르기도 하고, 악기 박물관, 낙원상가 등 여러 곳을 다니다 보니 장소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 것도 특이한 경험 중 하나였다. 그중에 남원 실상사에서의 1박 2일은 이후 몇 년 동안 계속해서 방문하여 녹음하고 음반을 발매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2014년 5월 늦은 저녁에 템플스테이가 운영되는 실상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차 문을 열고 내렸을 때 깜깜한 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보이고 땅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개구리가 울어대고 있었다. 자정을 넘기는 시간까지도 개구리들은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새벽 목탁소리와 범종소리에 잠을 깨고 아침 새소리에 날이 밝아 나가 보니 절 주변은 모두 논이고 밭이었다. 절 주변 논에서 개구리들이 그렇게 울었던 것이다.
실상사는 너른 들판 한가운데에 낮은 담과 웅장하지 않은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논밭과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사이로 지리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하천을 이루며 논을 가로지르고 있다. 절 안에서 들을 수 있는 다양한 종교적 소리뿐만 아니라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지며 살아있는 생태계 속의 작은 생물과 동물들이 내는 소리, 지리산에서 발원하여 낮은 곳으로 흐르는 하천의 시원한 물소리와 바람 소리. 생명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수많은 소리는 신기하게도 실상사 경내의 포근한 오후 햇살과 함께 평화로움을 느끼게 한다.
정만영
정만영
미술작가, 사운드 아티스트. 사운드 채집, 사운드 워크숍, 사운드 설치미술, 여행, 교육 등 소리를 매개로 여러 활동을 결합하고 있으며, 장소와 소리의 공통 지점을 연구하는 지역 리서치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16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기획전, 단체전, 비엔날레 등에 참여하였다. 필드레코딩으로 채집된 소리를 정리한 사운드 스케이프 CD 시리즈 <미얀마> <실상사> <부산원도심> <부산 중앙동 인쇄골목> <부산 초량 산복도로> 5편이 있고, <실상사 사운드스케이프-소리비>를 정식 발매했다.
nanman02@hanmail.net
사진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