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이후, 연결의 방식이 달라지고 만남과 접촉, 감각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문화예술(교육) 분야 역시 기존에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던 것에서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 고민이 많다. 단순히 비대면-온라인-4차 산업혁명과 과학기술 활용이라는 틀에 박힌 방식이 아니라, 어떤 만남과 연결을 추구할 것인지 성찰이 필요한 때다. 아르떼 아카데미 ‘창의적 예술교육 프로젝트’ 기획자로 참여하는 양혜정 연극놀이전문가와 이윤정 안무가를 만나 뉴노멀 시대를 살아갈 우리에게 당면한 과제는 무엇이며 예술교육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지 이야기 나누어보았다. – 편집자 주
이윤정 대담에 참여해달라고 연락받았을 때, 예술가로서 지금 시대에 관한 저의 생각을 아직 정리하지 못한 상태인데 공식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두렵다고 했었다. 그런데 우리 모두 다 처음 아닌가. 내가 경험한 것을 이야기하다 보면 비슷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의 대화가 정답이 아니고 계속 실험해봐야 하는 상황이다. 혼돈의 시간을 거침없이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한다.
양혜정 저 역시 부담감이 있었다. 누가 지금 시대의 비전을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나. 다만 우려가 되는 것은 이 와중에도 현장의 논의가 이뤄지기에 앞서 정책이 만들어지고 사업이 구상된다는 것이다. 고군분투하는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이나 시스템에 영향을 주기보다는 먼저 정책이 예술가들을 선도하는 상황인 것 같다. 문화예술교육 분야에서 지속해서 지적되었던 문제가 하향식(top-down)의 예술 정책이다. 예를 들면 온라인 콘텐츠 같은 것을 양산하는 사업이 제시되고 예술가가 그것을 쫓아가는 형태가 계속되고 있다. 한 개인이자 예술가로서, 예술교육가로서 각자 어떤 고군분투를 겪고 있는지도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어떻게 지내셨나?
뉴노멀 시대 감각의 변화
이윤정 몇 년 전부터 세포나 내장 기관, 몸 안쪽의 구조를 공부하고 있다. 사실 인간을 보호하는 거라고는 얇은 피부밖에 없고 피부 역시 모두 세포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몸은 열려 있고 굉장히 연약하다. 그동안 내 몸과 마음이 너무 외부로 향해있지 않았나 싶었고, 예술적인 욕망과 결과에 대한 욕심에 발버둥 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작년 독일에서 이와 관련한 공부를 하면서 내 몸에도 소수자 입장의 내장 기관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목의 3분의 1지점에 혀를 움직이는 근육인 ‘설근’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가장 사회화가 잘 되어있는 기관인 ‘혀’의 뿌리라는 점 역시 뭔가 딱 들어맞았다. 그렇게 1시간 동안 줄곧 혓바닥만 움직이는 <설근체조>(2019)가 탄생했고, 혓바닥 미인이 됐다. (웃음) 그 후 눈동자의 물리적인 움직임과 폭력적인 시선을 연결한 <점과 척추 사이:시선+>(2021) 등으로 이어졌다. 작업하면 할수록 공부의 부족함을 느끼게 되었다. 좀 더 본질적인 몸과 마음을 바라보고자 잠시 서울을 떠나려고 계획 중이다. 동료, 후배 예술가들에게 쉬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가 더 깊어지지 않으면 바깥에서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양혜정 저 역시 첨예한 시간을 지나고 있다. 창작하는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골방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굉장히 필요한데, 삶은 그렇게 두지 않는다. 삶도 예술도 전체를 원하지 부분을 원하지 않는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오는 9월에 올릴 영유아 연극을 준비하느라 일상 속에서 수행하는 기분이다. (웃음) 올해는 어린이·청소년 작업을 하면서 그들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적극적으로 수용해가고 있는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어린이들은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체크해 주는 바로미터같은 존재다. 가깝게는 우리 집 아이들이 그렇고, 수업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그렇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비접촉의 시대가 된 지 일 년 반이 지났지만, 문화예술교육 현장마다 개별적인 체감은 다른 것 같다. 그러나 어떤 흐름은 있다. 그중 하나가 참여자 수의 변화다. 수업 참여 인원이 줄면서 그룹 활동에서 나타나는 역동성보다는 개별성이 드러나게 된다. 개별적인 성찰, 개별적인 신체를 보게 되는 것이다. 무수한 개인의 시대가 도래한 것과 맞물리는 현상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비접촉의 시대가 된 지 일 년 반이 지났지만, 문화예술교육 현장마다 개별적인 체감은 다른 것 같다. 그러나 어떤 흐름은 있다. 그중 하나가 참여자 수의 변화다. 수업 참여 인원이 줄면서 그룹 활동에서 나타나는 역동성보다는 개별성이 드러나게 된다. 개별적인 성찰, 개별적인 신체를 보게 되는 것이다. 무수한 개인의 시대가 도래한 것과 맞물리는 현상이다.
이윤정 무용은 공연 기간이 2, 3일 정도인 데다가 사회적 거리두기로 객석이 반으로 줄어서 티켓이 3분 만에 매진되기도 한다. 다른 형식으로라도 더 많은 관객과 만나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변화한 것 중 하나는 창작 방식이다. 워크숍을 기획해서 거기서 얻어진 소스로 결과물을 만들어 관객과 만나는 ‘과정 중심’의 퍼포먼스들이 시도되고 있다. 좀 더 깊이 있게 작가의 질문을 나눌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참여 예술가와 리서치 과정을 함께 하면 과정도 결과물도 정말 다르다.
얼마 전, 독일에서 개최한 전 세계 예술가와 비평가, 철학자들이 모인 심포지엄을 온라인으로 참관하면서 우리와 매우 다르다고 느꼈다. 집합금지라고 해도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모여서 자율적으로 뭔가 해나간다. 지원사업도 영상으로 송출하거나 영상 결과물을 제출하도록 변경된 것에 대해 큰 의심이 없었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몸이라는 매체에서 다른 매체로 바뀌는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바라봐야 하는가?” 라는 질문부터 시작했다.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고스란히 나의 마음에 죄책감과 질책으로 남았다. 대면이냐 비대면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무엇을 고민할 것인지, 매체가 달라지는 것에 대한 질문이 더 필요하다.
얼마 전, 독일에서 개최한 전 세계 예술가와 비평가, 철학자들이 모인 심포지엄을 온라인으로 참관하면서 우리와 매우 다르다고 느꼈다. 집합금지라고 해도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모여서 자율적으로 뭔가 해나간다. 지원사업도 영상으로 송출하거나 영상 결과물을 제출하도록 변경된 것에 대해 큰 의심이 없었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몸이라는 매체에서 다른 매체로 바뀌는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바라봐야 하는가?” 라는 질문부터 시작했다.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고스란히 나의 마음에 죄책감과 질책으로 남았다. 대면이냐 비대면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무엇을 고민할 것인지, 매체가 달라지는 것에 대한 질문이 더 필요하다.
감각과 접촉의 열망이 향하는 곳
양혜정 중요한 이야기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은 프로그램에 대한 요구나 사업구조와 맞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작년에는 더욱 그랬다. 굉장히 혼란스러운 시간이었고, 그 틈새에서 오히려 여러 실험을 하게 되었다. 상대방과 커뮤니케이션할 때 우리는 ‘나’를 잊고 상대방에 집중한다. 그런데 실시간 온라인에서는 화면에 내가 보이고, 화면에 비친 나를 체크하고, 표정을 관리하게 된다. 나에 대한 감시다. 언어를 중심으로 한 소통, 말과 말 사이에 약간의 버퍼링이 생긴다. 그런데 예술, 특히 연극은 타이밍이고 감각 싸움이다. 온라인 소통 과정에서 미세한 감각들을 타협하게 되는 느낌이다. 감각의 열망은 우리 본성이기에 외형적인 시스템이 달라져도 어디론가 흐르게 되어있다. 그러한 욕구와 잔향이 분명히 말을 건다. 우리 안에 소통하고 싶은 욕구, 비언어적인 소통의 기쁨이 어떤 현상으로 드러나는가 볼 필요가 있다. 온라인 비대면·비접촉에 집중하기보다는 그로 인한 접촉의 열망이 어디로 가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영상이 편집예술이라면 연극은 관객이 편집해서 보게 된다. 이것이 연극과 영상의 가장 큰 차이다. 청소년들은 메타버스(metaverse, 3차원 가상세계)로의 이동만이 아니라 내가 직접 경험하여 편집되거나 조작되지 않은 세계를 만나고 싶어 한다. 리얼리티에 대한 그리움과 감각은 사실 본질적인 열망이다. 예술은 언제나 디자인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안에 우리의 숙제가 있다. 얼마나 리얼하게 디자인할 것이냐가 아니라 그 안에 어떻게 진실함을 담을 것이냐다. 감정으로 소통할 수 있는 감각을 가져야 한다. 매뉴얼대로 가면 비슷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지만, 그것은 항상 헛헛함을 준다. ‘미지의 가능성’은 예술만이 줄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을 키트, 매뉴얼로 대체한다면 프로그램 참여자는 예술의 창조자가 아니라 소비자로 전락하게 된다. 소비자로서가 아니라 창작자로서, 주체성을 가진 사람과의 만남을 어떻게 예술적으로 주선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수용자는 리얼리티의 감각을 열망하는데, 오히려 예술가가 소비자적 태도를 취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야 한다.
영상이 편집예술이라면 연극은 관객이 편집해서 보게 된다. 이것이 연극과 영상의 가장 큰 차이다. 청소년들은 메타버스(metaverse, 3차원 가상세계)로의 이동만이 아니라 내가 직접 경험하여 편집되거나 조작되지 않은 세계를 만나고 싶어 한다. 리얼리티에 대한 그리움과 감각은 사실 본질적인 열망이다. 예술은 언제나 디자인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안에 우리의 숙제가 있다. 얼마나 리얼하게 디자인할 것이냐가 아니라 그 안에 어떻게 진실함을 담을 것이냐다. 감정으로 소통할 수 있는 감각을 가져야 한다. 매뉴얼대로 가면 비슷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지만, 그것은 항상 헛헛함을 준다. ‘미지의 가능성’은 예술만이 줄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을 키트, 매뉴얼로 대체한다면 프로그램 참여자는 예술의 창조자가 아니라 소비자로 전락하게 된다. 소비자로서가 아니라 창작자로서, 주체성을 가진 사람과의 만남을 어떻게 예술적으로 주선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수용자는 리얼리티의 감각을 열망하는데, 오히려 예술가가 소비자적 태도를 취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야 한다.
이윤정 저는 작년부터 ‘감각의 재발견, 몸으로 감각하기’라는 주제로 워크숍을 진행했다. 우리가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각이 있다. 내장감각은 아프거나 배고파야만 느껴진다. 몸 안과 밖, 그보다 더 깊숙한 겉과 속을 어떻게 연결하고 감각을 느끼게 할 수 있을지 방법론을 찾는 것이다.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이라는 책에 우리가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고 나면 더이상 미지의 세계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다음부터는 또 다른 미지의 세계가 펼쳐진다는 것이다. 우리 몸은 팔이 어깨에서 끝나고 쇄골이 중간에 잘려서 갈비뼈로 가고, 갈비뼈 밑에는 폐가 있고 폐 밑에는 심장이 안겨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상상하고 믿으면 내 몸에 하나하나 불이 들어오고 보인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만드는 감각이 깨어나는 거다. 우리가 이 미지의 세계를 다 알 수는 없지만, 몸에 불이 켜진 채로 만나 조금이나마 나와 타인의 몸을 존중할 방법을 찾는다. 사람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몸이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몸이 훨씬 더 많다. 저 역시 키가 작아서 무용수로 선택되기 힘들었다. 펴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는지, 나의 몸으로 할 수 있는 춤을 모색하다 보니 열심히 몸을 구기게 되었다. 그 안에서 ‘나’라는 사람의 구겨진 감정과 구겨진 몸이 만났을 때 엄청 통쾌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바라보는 힘을 나눠주는 것이 이 시대에 예술교육자의 중요한 역할인 것 같다. 요즘 ‘진심’이라고 이야기하면 구세대적인 발상이거나 질척거린다고 하는데 조금 더 원초적인 감정을 들여다보면 그게 사실은 (예술)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양혜정 그 이야기를 들으니 생각나는 것이 있다. 어린이·청소년과 작업하다 보면 아직 자신을 잘 모르는, 모호한 시간의 아름다움을 보게 된다. 그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고, 자신의 모호함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검색과 영상매체라는 도구는 아이들로 하여금 모호한 시간을 빼앗는다. 끊임없이 시선에 노출되고 모든 것이 박제되고 전시된다. 이것을 문제라고 말하는 것을 넘어 예술을 경험한다는 것, 감정과 감각은 무엇인지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 변화의 흐름과 다양성 속에서 무엇이 우리 삶의 탐구 주제가 되는지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미 교육계에서는 대면 교육은 고급교육이 될 거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대면해서 감각을 만나는 교육이 소수를 위한 고급교육이 되지 않게 하려면 어떠한 지향을 가져야 할지, 소득수준과 상관없이 어린이·청소년들이 다양한 감각을 경험할 수 있도록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원초적 감각에 집중하는 창조적 고립
이윤정 오는 8월부터 진행하는 아르떼아카데미 ‘창의적 예술교육 프로젝트’에서도 감각, 만남, 연결을 다룬다. 작년에는 코로나로 하지 못했지만, 2016년 아르떼 아카데미 상반기 의무연수를 시작으로 2017년부터는 통합예술교육 프로그램 ‘창의적 예술교육 프로젝트’ 8개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개발했다. 연극 연출가 남인우 선생님, 예술교육가 김소리 선생님과 함께 수업을 연구하고 있다. 예술가가 예술교육가가 되는 과정과 현대 예술과 동시대성을 가진 예술교육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으로 2박3일을 함께했다. 저는 몸의 감각, 몸을 운영하는 방법, 소통하는 방법을 나눴었다. 이번에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할 것 같다. 예술가, 예술교육가, 시민으로서 갖는 태도와 나이듦의 태도 등 모든 태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를 나누려 한다.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몸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다른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계시는 정원철 선생님과 ‘창조적 고립’에 관해 이야기했었다. 우리가 사회 시스템 안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잘 들여다보고, 괴롭고 슬프고 힘든 것보다 더 깊이 무엇을 바라보고 질문할 것인가를 나누려 한다. 고립에는 시간과 공간이 주어진다. 저의 작업 방식으로 집의 개념, 몸의 개념, 몸 안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을 어떤 식으로 바라볼 것인가에 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예전에는 몸을 운영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방법을 제시했다면 이번에는 한 단계 더 심화하여 내 몸을 더 깊이 바라보고 난 후 다시 만났을 때의 경험을 나누고 싶다.
양혜정 저는 창의적 예술교육 프로젝트에 두 번째 참여한다. 마임이스트 유홍영 선생님과 함께 몸의 움직임과 즉흥을 중심으로 이번에는 바디퍼커션 아티스트가 함께 참여할 예정이다. 비대면 비접촉 시대에 영유아와 작업을 하다 보니 올해는 ‘원초적인 감각’을 많이 생각하게 된다. 정원철 선생님이 제안한 주제인 ‘고립의 재구성’과 연결하여 자궁이라는 공간을 떠올렸다. 사실 태중(胎中)에는 엄마와 아기 사이에 끊임없이 접촉과 소통이 일어난다. 몸의 기억이다. 즉흥적인 만남, 원초적인 감각을 깨우는 이야기, 창조 신화를 바탕으로 한 프로그램이 될 것 같다.
한편, 코로나로 인해 증폭되었지만 이미 개인의 시대는 시작되었다. 개인이 자신의 감각과 감정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면서 심리학과 인문학에 관한 관심도 커졌다. 예술이야말로 개별적인 감수성, 감정, 감각과 뗄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것은 어쩌면 무수한 ‘나’들이 태어나고 그 많은 ‘나’들이 비슷한 콘텐츠화 되는 것을 넘어서서 타인과 구별 짓는 정체성 대한 진정성을 찾아가는 여정이 되지 않을까.
한편, 코로나로 인해 증폭되었지만 이미 개인의 시대는 시작되었다. 개인이 자신의 감각과 감정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면서 심리학과 인문학에 관한 관심도 커졌다. 예술이야말로 개별적인 감수성, 감정, 감각과 뗄 수 없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것은 어쩌면 무수한 ‘나’들이 태어나고 그 많은 ‘나’들이 비슷한 콘텐츠화 되는 것을 넘어서서 타인과 구별 짓는 정체성 대한 진정성을 찾아가는 여정이 되지 않을까.
이윤정 춤에서 몸을 도구화했던 시기가 지나고 현대예술로 넘어오면서 춤 이전에 몸, 몸 이전에 재료와 물질에 관하여 더욱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는 개별의 몸에 집중하는 시기가 되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몸의 변화와 몸에 대한 감각이 굉장히 중요한 이슈다. 촉각, 시각, 청각이 아니라 총체적인 감각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그것이 생각인지, 마음인지, 마음 이전의 기억인지를 얘기하면 굉장히 철학적인 질문이 나오게 된다. 감각은 어떤 재료보다 동시대성과 현장성을 갖는 재료다. 그래서 많은 예술가가 몸(감각)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양혜정 결국 ‘창의성’이 무엇인지에 관한 이야기다. 예술은 상상하고 소통하는 것인데, 자꾸 온라인이라는 방식만 이야기하니까 재미가 없는 거다. 연극을 온라인으로 상연하자는 대안책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기술과의 만남에 상상력을 발휘하고 긍정적으로 질문을 던져야 하는데, 지금은 비대면을 위한 영상에만 한정이 되니 상상력이 발휘되지 않는다. 그냥 ‘코로나 대비책’인 거다. 아직은 예술가가 기술자를 만나서 소통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적은 자본으로 기술과 협업하기에는 너무 멀다. 기술을 가지고 있는 측에서는 상상력을 가지고 협업하고 확장할 방법을 고민했으면 한다. 예술과 기술, 과학과 만남을 주선하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
이윤정 매체가 달라지더라도 결국 본질적인 질문이 얼마나 명확한지,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지가 중요하고, 그 과정을 보는 것은 관객이다. 정말 좋은 작업은 관객이 다 알아본다. 예술이 가진 근본적인 질문을 얼마나 더 솔직하고 깊이 있게 이행하느냐가 중요하다. 뉴노멀 시대 예술교육의 방향과 역할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다시 한번 감각을 회복하는 시간과 나눌 수 있는 장을 열어주는 것 같다. 우리가 정답을 줄 수는 없지만, 개인이 가진 특수성을 회복하도록 안내하는 것이 필요하다.
양혜정 정말 중요한 말씀이다. 이와 함께 막 시작하는 예술가들이 실험과 시행착오, 실패를 할 수 있도록 계속 인큐베이팅하는 작업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윤정 예술교육 프로그램 안에서도 실패도 하고 성공도 하지 않나. 과정을 계속 연습해보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예술가든 예술교육가든 삶을 연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멈추지 않는 울림
이윤정 최근 진행했던 워크숍에서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있었다. “눈을 마주치니 배가 따뜻해진다”라고 하더라. 눈을 마주친다는 것은 타인의 존재를 인식하는 방법 중 하나다. 저는 워크숍에서 참가자가 서로 눈을 오랫동안 바라보게 한다. 울림을 얻고 서로의 파동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면서 에너지의 형태가 달라지는 것 같다. 에너지가 교집합 되는 순간,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경험을 할 때 ‘함께’ 한다는 의미를 몸으로 느낀다. 그런 경험을 이끌기 위해서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
양혜정 예술은 표현 매체가 아니라 소통하는 방식이다. 끊임없는 울림이고 말 걸기다. 결국 예술적 소양은 표현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감각할 수 없는 것을 다르게 감각하는 것이다.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식물의 진동을 느끼고 언어를 듣고 물을 준다. 관심 두는 대상의 울림에 반응하는 감수성을 기르는 일이다. 그래서 예술은 뜬구름 잡는 몽환적인 것이 아니라, 나의 상상력을, 감각적인 세계에서의 층위를 계속 넓혀 가는 것이다. 예술은 깃발이나 총이 아니라 꽃을 들고 혁명을 한다. 꽃의 생명력을 느끼는 사람들의 마음이 흔들릴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존재해야 한다. 누구에게나-재능과 상관없이- 예술적인 마음이 있다는 믿음이 문화예술교육에 있다. 이 울림과 떨림의 감각을 잃지 않는다면 매체와 방식의 변화뿐 아니라 어떤 변화가 와도 이야깃거리와 상상력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양혜정
연극놀이전문가. 1999년도부터 어린이와 청소년들과 학교와 도서관, 미술관 등에서 연극놀이로 만나오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감각을 깨우는 수업과 연극놀이교육가를 양성하는 강의를 하고 있다. 소리감각극 <구구셈과 물방울과 씨앗>, 영유아극 <티키타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소리극 <손끝 소리탐사대> 등을 연출했으며 초·중·고등학교 교사와 예술교육가를 위한 연극놀이 프로그램 교육을 계속하고 있다. 2019년부터 아르떼 아카데미 통합예술교육 프로그램 ‘창의적 예술교육 프로젝트’에 교육강사로 참여해왔다.
이윤정
댄스프로젝트 뽑끼 대표 겸 안무가. 2012년부터 시작한 프로젝트 ‘이윤정×11월 춤 이어추기’를 통해 각 장르의 독립예술가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만나왔다. 일상의 순간을 픽업하고 고민하는 방식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안무 방법을 찾아내며 작업하고 있다. 감각과 연결성을 위한 몸의 움직임, 특히 혀의 움직임에 주목하는 퍼포먼스 <설근체조>가 ‘2019 춤비평가상’(한국춤비평가협회) 베스트 작품에 선정되었다. 2016년 아르떼 아카데미 의무연수를 시작으로 2017년부터 통합예술교육 프로그램 ‘창의적 예술교육 프로젝트’에 교육강사로 참여해왔다.
- 녹취·정리 _ 프로젝트 궁리 남은정·주소진
- 사진 _ 이재범 POV스튜디오 andy45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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