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스럽게 떠오르는 질문 하나
‘예술에의 좋은 경험치가 인간의 삶에 유용하다’라는 인식이 확장되고 있어서일까? 장애인, 영유아에 이어 노년층, 중년층 그리고 10대를 위한 문화예술교육까지 사회적으로 생애주기별 경험에 대한 사려 깊은 검토가 실현되고 있는 것 같아 감사한 일이다. 동시에 이러한 확대에 박수를 보내기 전에 한 번쯤 솔직하게 들여다보고 싶은 점이 있다. 바로 ‘어떤 취지 혹은 비전이 담보되어 있는가’이다. 대상의 확대 혹은 그로 인한 지원 사업 규모 확장이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성장 지표가 될 수 있을까? 아울러, 사람에 대한 이해의 확장과 맞물려 함께 가고 있을까? 그것이 문득 궁금하다.
관련하여 몇 년 전 들여다보았던 문화예술정책의 사전적 의미를 다시 한번 상기해본다. ‘정부 등의 공공 기관이 문화를 발전시키고 국민의 문화적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문화예술 활동에 개입하여 지원하는 행정 정책’. 즉, 정책이란 혜택과 살핌이 필요한 사람을 고려하는 가운데 계획되어야 하고 행정은 그것을 ‘지원’해야 한다. 그렇다면 다시, 시작과 동기가 과연 그러한지 묻고 싶다. 생애주기별 향유 대상이 확장세인 요즈음 정말 문화예술교육 정책은 안녕한지, 시작과 발현의 과정에서 여전히 사람을 우선하고 있는지 말이다.
때로는 타협보다 포기할 줄 아는 용기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재직 시절의 일이다. 도청에서 긴급회의를 요청했는데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사업신청서를 5일 안에 제출하라는 것이 요지였다. 목적, 비전, 구체적인 연간 계획, 기대 효과에 예산 구조까지. 정규직 한 명 없는 계약직원 여덟 명이 매일 야근을 하던 한해 중 가장 바쁜 5월의 어느 날이었다. 팀원들과 상의한 끝에, 연구 사업으로 시작할 것과 함께 장애인 관련 활동 경험이 있는 인력 한 명을 충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장애인을 염두에 둔 활동이 예산만 있다고 뚝딱 될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재단 내에 장애인 관련 활동이 전혀 없었던바, 활동 주체가 될 장애인의 필요를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사업 틀 안에 들어올 예술단체들과 공유할 최소한의 방향성이나 함께 가져가야 할 가치, 태도 등을 마련하는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결론은 수용 불가능이었다. 기존에 해온 방식에서 ‘대상만 바뀔 뿐’인데 무엇이 문제냐는 것이었다. 아울러 연말에 단체 지원 성과 및 참여자 수 등 정량 성과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해서 사업을 못 하겠다고 버텼다. (버틴 것이 맞다) 첫 계획과 시작의 중심에 당사자인 장애인의 모습이 그려지기보다 무언가를 위해 그들이 동원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작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무책임한 사람으로 치부되는 경험도 했다. 동시에 혼란했던 점은, 앞으로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의 사업 예산 확보가 어려울 수도 있겠다며 염려 섞인 눈치를 주던 몇몇 동료 그리고 장애인과 호흡해 본 경험이 없는 몇몇 문화예술교육 단체의 항의성 어조가 담긴 사업 참여 요구였다. 무엇보다, 돈을 준다는데도 기회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비난 섞인 안타까운 소리에 의구심이 들었다. 돈만 있으면 상대에 대한 이해가 갑자기 뚝딱 생기기라도 하는 걸까? 더욱이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을 지지하고 격려하기 위해, 향유 주체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를 가지고 사업을 실행할 담당자를 채용하는 일에 돈을 아낀다면 그 정책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사람들의 시선으로 인해 흔들림도 있었지만 지금 돌아보아도 그 결정에 후회는 없다. 포기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과 논쟁 덕분에 도리어 장애인을 활동 주체로 하는 사업에 대한 진지한 접근 태도가 생겨났고, 그 예산은 결국 의도한 대로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묵묵히 해 온 몇몇 단체의 소중한 연구 종잣돈이 되었으니 말이다. 가끔은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내려놓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하며 미덕이 될 수 있음을 이 과정에서 배웠다.
삶으로의 문화예술교육, 여전히 ‘태도’가 답이다
정책이란 사람이 사람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일임에 우리는 모두 동의한다. 그렇다면 문화예술교육 활동 속에 운영 주체로 함께 서 있는 우리는 그런 가치를 얼마나 삶으로 살아내고 있는 걸까? 초기에 예산을 세우는 사람들은 혜택을 받게 될 당사자에 대해 얼마나 고려하며 위탁 기관과 함께 그 일에 대한 적정한 실행 방안을 모색하고자 머리를 맞대고 있는가? 사업을 위탁받는 기관은 정책적으로 내려오는 사업 내용과 비전을 얼마나 제대로 감당할 준비를 하고 있는가? 혹 운영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쓴웃음을 지으며 영혼 없이 일을 받고 있지는 않은가? 애초에 문화예술교육 정책의 발현 목적이 예술가들의 생계나 활동 자체를 지원하기 위함이 아니라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건강한 향유에 집중되어 있음에 얼마나 많은 문화예술교육 단체들이 동의할 수 있을지 문득 궁금하다.
나는 여전히 정책이 ‘무조건 해라’는 식으로 떨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돈을 권력 삼거나 돈이면 할 수 있다는 암묵적인 논리를 거부한다. 그것은 모두 이기심에서 발현된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런 무례한 태도로 종합된 정책 속에서 사람이 생기를 얻을 수 있을까에 회의한다. 누구나 본능적으로 좋은 것은 알아채는 법이다.
실행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 동기가 바로 서야 비로소 어떻게 해야 할지가 잘 보이기 마련이다. 그래야 활동 내용을 가늠할 수 있고 그에 맞는 적정 예산을 수립할 수 있으며 원활한 지원 행정도 검토할 수 있다. 그래서 정책이 만들어지는 초기 과정 설계가 중요할지 모른다. ‘떨어지는’ 돈에 맞추어 성과를 내기 위해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필요와 유익을 위해 내용을 검토하는 정책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규모 있는 재정의 사용 그리고 사려 깊은 실천이 필요하다. 이것이 가능해지려면 저마다 자신의 이익이 아닌 수혜 당사자를 중심에 두고 생각하는 ‘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이야말로 앞서 말한 지극히 상식적인 문화예술교육 정책의 발현 동기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당사자로 서는 문화예술교육 정책
제주에서 봉사 활동을 하며 지내던 지난해 말, 서울문화재단이 주관하여 10대를 위한 예술교육센터를 개관했고, 기획 감독으로 초대받아 소담한 콜로키움을 진행했다. 10대를 어떤 태도로 맞이해야 할지 귀동냥을 해나가는 자리로 마련했는데, 아이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두 달 넘게 구상한 기획안을 전면 재조정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너무나 모르고 있었음을 인정하고 나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센터에서 그런 상황을 이해하고 재조정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셨다. 더욱이 그때 새롭게 알게 된 10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센터의 비전과 미션을 점검하는 실천도 감행해주셨다. 과연 나 혼자의 결정으로 가능했을까? 말하지 않아도 책임을 감수하며 묵묵히 신뢰로 서주신 기관 담당자들의 더 많은 수고가 보일 것이다.
하나의 정책은 정부 기관의 입안자나 위탁 기관의 사업 책임자, 현장의 예술단체 혹은 전문가가 각자의 입장을 주장하며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정책은 예술의 힘과 유익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중심에 두고 어떻게 그들을 잘 섬기며 좋은 것을 나눌 수 있을까에 대해 마음을 모을 때 제대로 작동한다. 그것이 정확한 원리이자 섭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활동 주체만이 당사자일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운영 주체로서 혹은 활동 주체로서, 지원 주체로서 혹은 참여 주체로서, 우리는 모두 사람을 살리고 세우는 구상 안에 격려와 지지를 주고받아야 할 당사자다. 그렇게 배려와 책임 속에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선한 동기를 공유하는 것으로부터 진정성 있는 이해와 살핌이 풀어질 것임을 직관적으로 알며, 서로의 존재와 역할을 존중하는 태도를 견지하는 과정이 결국 정책의 수준을 높이는 일임을 알고 있다. 그러니 시작에서 좋은 뜻을 확인하자. 그리고 지속적으로 수혜자를 중심에 두고 있는가를 확인하며, 함께 해나가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태도’를 갖추기 위해 치열해지자. 사람을 위한 그 일의 과정에 서 있는 나도 수혜자임을 기억하자. 그것이 문화예술교육 정책이 본연의 의미대로 선하게 작동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방식이 아닐까 한다. 결국, 문화예술교육 활동이란 사람 간에 기운을 주고받는 일이 아닐까. 그러니 잘 내어주자. 그래야 잘 받을 수 있다. 땅(바탕)이 좋아야 썩지 않고 제대로 싹이 튼다.
- 전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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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학교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석사)하고 가나아트센터 큐레이터, 출판도시문화재단 수석 큐레이터 및 기획홍보 과장을 거쳐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 경기도어린이박물관 학예팀장, 경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센터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YWAM 제주열방대학(국제선교훈련센터) 간사로 봉사 활동을 하면서, 지난해 개관한 서울예술교육센터 기획감독직을 맡아 여전히 예술, 사람(다음세대), 정책, 메시지, 태도, 소통에 관심을 가지며 틈틈이 육지를 오가고 있다.
j-cecilia@hanmail.net
메인사진 제공 _ 서울예술교육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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