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아이들과 일상의 소리로 음악을 만들어보는 수업을 했던 적이 있다. 수업은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부터 시작한다. 학교에서 들리는 소리가 다 거기서 거기일 것 같지만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소리를 발견해온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소리를 통해 공간의 작은 디테일을 발견하게 된다. 교실 앞문은 여닫을 때마다 작은 고리가 부딪히며 소리를 낸다든지, 창문 옆에 나무가 있어 바람이 불 때면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든지, 매일 생활하면서도 몰랐던 사실들을 말이다. 소리는 풍경처럼 오래도록 머무르지 않고, 냄새처럼 바로 알아차리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한 번 귀 기울이기 시작한다면 소리를 통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 2018 청소년TA <Listen: 귀를 기울이다>
‘소리풍경’으로 알아보는 기후위기
작년부터 ‘기후위기’를 주제로 블루밍루더스와 몇 가지 프로젝트를 함께했다. 그중 하나는 2021년 1월에 있었던 ‘블루밍루더스 그린포럼’이다. 한국과 캐나다, 영국에서 동시 진행된 온라인 포럼으로 기후위기 속 예술가들의 생각과 작업을 나눠보는 시간이었다. 이 포럼에 세션 발표자로 참여하게 되면서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 관점에서 기후위기를 다뤄보고 싶었다. 소리(Sound)와 풍경(Landscape)의 합성어인 사운드스케이프는 머레이 쉐퍼(R. Murray Schafer)가 처음 창안한 개념으로서 ‘소리로 만들어지는 풍경’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지금 지구에서는 어떤 소리풍경이 그려지고 있을까? 기후위기로 바뀌어 가는 지구를 소리로도 인지할 수 있을까? 궁금증이 생겼고 리서치를 시작했다. 그중 몇 가지 인상 깊은 소리를 소개한다.
생명의 소리
바닷속 기후위기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산호초를 따라서(Chasing Coral)>는 급격한 수온 상승으로 인해 죽어가는 산호초 이야기를 다룬다. 산호초가 죽어가는 것은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주변 환경에 민감한 산호초는 수온이 높아지면 점점 색을 잃어 하얗게 변해간다. 이른바 백화현상이다. ‘바다의 열대우림’이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물고기가 산호초를 서식지로 삼아 살아간다. 산호초를 기반으로 풍요로운 생태계가 형성되는데, 백화현상이 시작되면 물고기도 떠나가고 그 자리는 황폐해진다. 그런데 소리로도 산호초의 죽음을 알 수 있다. 건강한 산호초 주변에는 물고기, 딱총새우 등 다양한 생물이 모이면서 내는 시끄러운 생명의 소리가 들리지만, 물고기들이 떠나가면 생명의 소리는 사라지고 고요해지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소리를 통해 산호초를 다시 복원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한 연구팀은 황폐해진 산호초 자리에 수중 스피커로 건강한 산호초의 소리를 들려줬더니 어린 물고기들이 산호초로 몰려들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물론 물고기가 몰려든다고 해서 자동으로 산호초가 살아나진 않지만, 자연적인 복원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처럼 소리풍경에서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소리를 통해 실제 환경 변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
같은 풍경 다른 소리
어떤 소리풍경은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사실을 말해주기도 한다. 캘리포니아 링컨 메도우 숲의 소리가 바로 그 예다. 1989년, 어느 목재 회사에서는 그들이 새롭게 개발한 ‘선택적 벌목’ 방식으로 링컨 메도우 숲에서 벌목을 진행했다. 여기저기서 몇 그루만 잘라내고 안정 상태에 접어든 나무는 남겨두는 방식이므로 다른 생물의 서식지에 전혀 해가 가지 않을 것이라고 주민들을 안심시키고 진행된 벌목이었다. 음악가이자 생태음향학자인 버니 크라우스(Bernie Krause)는 1988년 벌목이 진행되기 전 그곳의 새벽 소리풍경을 녹음기에 담았다. 메도우 숲에 사는 산메추라기, 갈색머리멧새 등 수많은 조류가 노래 부르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1년 뒤 벌목 작업이 완료되고 나서 버니 크라우스가 그곳을 다시 찾았을 때, 겉으로 보기에 풍경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소리를 녹음하는 순간 빼곡하던 새의 울음소리나 전체적인 풍요로움이 이전보다 훨씬 줄어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이후에도 20년간 그곳을 찾았지만, 음향의 활기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한다.
링컨 메도우의 소리풍경은 회복되지 못했지만, 회복이 가능했던 소리풍경도 있다. 영국의 생태음향가이자 음악가인 피터 쿠삭(Peter Cusack)은 <위험한 장소의 소리들>(Sounds From Dangerous Places)이라는 프로젝트에서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20년이 지난 2006년과 2007년에 체르노빌의 소리를 녹음해 책과 오디오 CD에 담았다. 인간의 발길은 완전히 끊겼지만, 놀랍게도 야생 생물들, 새들이 돌아온 후 번성하여 풍요로운 소리풍경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오늘날 거리를 걷다 보면 차가 지나다니는 소리, 가게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음악 소리, 스마트폰을 통해 들려오는 영상 소리 등 수많은 소리가 들린다. 가끔은 거기에서 벗어나 자연의 소리를 들어보자. 고요한 밤이나, 깨끗한 아침의 소리 같은 것 말이다. 여러분 곁에선 어떤 소리가 들리는가. 생명의 소리가 들리는가.
박다현
박다현
작곡가이자 티칭아티스트. 일상의 소리로 무언가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하며 연극, 무용 등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과 협업하며 음악을 만들고 있다. 2017년부터 서울문화재단 TA로 활동하며 음악을 만드는 동시에 음악으로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방법을 늘 고민하며 살고 있다.
bornfre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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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_필자
썸네일 출처_유튜브 University of Exeter.(2019.11.29.). Sounds of the past give new hope for coral reef restoration 화면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