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상적인 모습이 되었고 사람들은 외부 활동보다는 자신의 공간과 실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해 외부와 소통하려고 노력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반려식물을 키우고 그 모습을 SNS에서 소통하는 일이다. 같은 식물이어도 키우는 사람의 환경, 생활습관 등에 따라 다르게 자라나는 모습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고의 노력으로 버텨내고 적응하는 사람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도시에서 자라는 식물은 일반적으로 사람의 목적과 상황에 따라서 양육되며, 대부분 ‘화분’이라는 인공적인 거처에 자리 잡는다. 이렇게 정착한 식물은 양육자가 이주하면 환경의 변화를 경험하고, 뿌리가 자라나서 분갈이하면 거처의 변화를 경험한다. 식물의 이러한 상황은 이사로 난민 생활을 겪고 있는 나와 비슷해 보였으며 자연스레 작업과 교육 활동의 주제나 소재가 되었다.
  • 명륜동 정원
  • 식물 증명사진
나의 식물
내가 태어나고 유년기를 보낸 고향집에는 외할머니와 큰이모가 가꾸던 큰 정원이 있었다. 어머니가 근무하던 기업의 관사 같은 곳에 관리인 자격으로 대가족을 이루고 살았다. 그곳에는 소나무 50여 그루와 100년이 넘은 감나무, 그리고 50평이 넘는 큰 정원도 있었다. 어른들은 그 정원에서 온갖 꽃과 관상용 식물을 키워냈고 해마다 수많은 꽃과 식물이 무성했다. 성인이 되어 서울로 이주하고 독립적인 주거 공간(고시원)이 생겼다. 나는 이곳에서도 작은 화분들을 창가에 두었고 이사를 할 때면 식물을 키울 수 있는 주거 공간을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사 다니면서 새로운 지역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오는 불안한 심리를 해소하고자 식물을 키웠던 것이다.
화분에서만 식물을 키우던 나에게 처음으로 작은 정원이 생겼다. 외부로 노출된 채 방치되어 있던 정원을 청소하고 새 흙과 퇴비로 개간했다. 다른 주민들은 자신의 집 앞에 방울토마토 상추 대파 등의 작물을 키웠지만, 나는 해바라기 장미 칸나 같은 관상식물의 씨앗을 뿌리고 늘 정원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개간 이후 정원에서는 일련의 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정원에서 자라나던 식물이 뽑히거나 훼손되었고, 설치해놓은 펜스마저 사라지는 일이 빈번했다. 경고문을 붙이고 펜스를 재건했지만 훼손 사건은 줄어들지 않았다. 나는 정원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기 위해 감시카메라를 설치했다. 3개월 동안 녹화된 영상 속에는 많은 일이 있었고, 이 기록을 모아서 <서울시 종로구 명륜3가 1-987번지>라는 영상 작업을 만들었다. 주민들의 이러한 행동은, 자신들과 달리 관상식물을 키우는 외지인에 대한 막연한 경계심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고, 외부에 노출된 정원에서 피어난 식물을 공공재로 생각하는 경우도 볼 수 있었다.
정원을 지켜보는 행위로 시작한 작업 이후 고양시의 오래된 아파트 단지로 이사했다. 이곳에서 시작된 <이사하는 정원> 프로젝트는 큰 화분 갈이를 하기 어려운 연세가 높은 어르신들의 식물을 아파트 주차장 한구석에서 함께 키우면서 시작되었다. 사업이 망해서 연락 두절인 아들의 사무실에 있던 고무나무에 얽힌 이야기, 길 가다 우연히 마주친 풍선덩굴의 씨앗으로 놀던 어린 시절 이야기 등 식물에 관한 기억과 이야기는 소소하지만 소중한 작업의 소재가 되었다.
요즘은 400여 개의 선인장과 다육식물, 관엽식물 등과 먹고 남은 씨앗으로 발아시킨 아보카도 등을 키우고 있다. 혼자 살다 보니 되도록 나와 생활 패턴이 비슷한 식물들을 키우고 있는데, 이 반려식물들을 관리하느라 일주일 이상 여행도 못 하고 고향 집에도 가지 못한다. 또한 이사를 하려고 새로운 집을 알아보는 과정에서도 식물을 잘 키울 수 있는 공간을 선호했다. 이렇게 애지중지 키워온 나의 반려식물들은 항상 나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주고 있다.
<당신의 정원> 드로잉, 전시 풍경
당신의 정원
“식물은 말을 할까요?”
내가 항상 작업과 연관된 워크숍이나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참여자들에게 묻는 말이다. 물론 식물은 사람의 언어 혹은 동물의 방식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하지만 식물은 무늬와 색감, 형태로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신호를 보내고 말을 걸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간혹 식물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 온다고 하는 참여자도 있다.)
2020년, 서울시립미술관 북서울관에서 진행한 <당신의 정원> 프로젝트에서는 봄부터 가을까지 미술관 미화팀 근무자들과 정원을 가꾸었다. 보통 공공기관에 식재하는 정원수나 예쁜 꽃이 아니라 참여자들이 원하는 작물, 어린 시절 추억이 있는 식물을 씨앗이나 모종부터 키워냈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냥 단순한 작물이지만, 모두 저마다의 이야기와 추억이 담겨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다 같이 정원 가꾸는 일정은 축소되었지만 참여자들과 식물에 대한 기억과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마음을 잠시나마 어루만져 줄 수 있었다.
같은 해, 구로문화재단과 진행한 <꿈꾸는 정원사> 프로젝트에서는 나의 작업 중 하나인 <미모사> 프로젝트 ― 지인들에게 똑같은 미모사 모종 30개를 나눠주고 각자의 공간에서 다르게 자라나는 미모사를 다시 모아서 전시함 ― 를 발전시켜서 구로구 주민의 환경과 사정에 맞는 반려식물을 찾아보았다. 이 프로젝트도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의 격상으로 인해 최소한의 대면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후반부에는 거의 비대면 온라인 소통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일단 자신이 원하는 식물을 키워보고, 과연 그 식물이 자신의 반려식물로 적합한지에 대해 실험을 했다. 이 과정에서 참여자들에게 식물이 건강하게 혹은 그렇지 않게 자라는 과정을 관찰하며 자신의 환경을 다시 한번 살펴보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자 하였다.
  • 미모사 모종
  • <꿈꾸는 정원사> 프로젝트
그리고 우리 모두의 정원
지금까지 모든 프로젝트에서의 ‘식물’과 ‘정원’은 일반적으로 개인과 개인, 공동체와 공동체, 인간과 자연환경의 상호 관계를 함께 고민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워크숍, 교육 프로젝트 등을 통해서 참여자가 식물을 키우게 된 계기와 돌보는 과정에 얽힌 사연을 경청한다. 나는 이 과정에서 식물이 걸린 병의 원인을 진단하기도 하고, 참여자와 함께 식물을 잘 키울 방법을 다각적으로 고민하는 상담사 역할을 맡기도 한다. 식물의 생장에 문제가 생기는 데에는 식물을 키우는 사람의 생활방식이나 심리적 문제에서 비롯된 경우도 있어서, 참여자와의 상담 과정은 모든 면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많은 사람이 식물의 생태적 특징에 대하여 잘 모르면서 식물을 쉽게 키우고 빈번하게 죽인다. 반려동물을 입양할 때 반려동물에 관한 관심과 공부가 필요한 것처럼, 식물을 키우는 데에도 식물에 관한 관심과 공부가 필요하다.
나의 작업은 거시적인 차원에서 보면 시장가치에 함몰되어 사라진 식물의 사회적 가치의 행방을 찾는 활동이다. 이때 프로젝트 참여자와 교류하는 형식의 작업 과정을 선택하고 발전시켜나가고자 했던 이유는, 식물 키우기가 정서적으로 도움을 준다는 일반적인 이야기를 넘어서 참여자와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타인의 다양한 삶의 일부분을 읽어내려는 노력이었다. 비록 사소하고 작은 관계에서 시작된 미미한 활동이지만, 언젠가 이러한 활동이 발전하여 관계 맺은 타인과의 상징적인 영역에서 어우러진 “상상의 정원”이 만들어질 때, 현대 사회에서 사라져 잊고 지냈던 부분에 대한 사회적 가치를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식물은 조용하다. 하지만 끊임없이 우리를 지켜봐 주고 있다.”
김이박(김현영)
김이박(김현영)
타인의 식물을 치료하는 <이사하는 정원>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의뢰자-식물-작가”의 정서적 유대와 의뢰자의 환경이 식물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찾아가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아픈 식물을 치료하는 것만이 아니라 식물과 의뢰자를 둘러싼 주변 환경을 두루 살핌으로써 식물과 관계 맺는 각각의 요소의 상호관계성에 주목하며 그것을 표현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식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치료사의 역할과, 의뢰자와 식물의 상황을 인지하고 조사하는 연구자의 역할이 복합적으로 공존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드로잉과 설치, 영상, 퍼포먼스 등으로 풀어가고 있다.

이메일 kim2park@gmail.com
홈페이지 https://kimleepark.modo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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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