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길들지 않는 공부,
서로를 지키는 활동

생활교육공동체 공룡

내가 사는 아파트는 토요일 오후 3시부터 일요일 밤 10시 사이에 재활용 쓰레기를 내놓을 수 있다. 주말 동안 주민들이 내놓은 재활용 쓰레기를 경비아저씨들이 단도리해놓으면 월요일 이른 아침 묵직한 엔진소리가 다소 시끄러운, 붉은 갈색의 수거 차량이 아파트 단지 입구를 돌며 실어 간다. 매주 보았던 풍경인데 생활교육공동체 공룡(이하 ‘공룡’)의 박영길 활동가(대표)를 만나고 온 후부터 이 수거 차량의 기계 짓을 베란다 너머 유심히 쳐다보게 된다.
먹는 일에 힘주는 사람들
박영길 활동가는 공룡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2천여 평의 밭을 일구는 일도 그의 담당이다. 활자 중독자로 책을 보고 글을 쓰는 것도 그의 활동과 생활의 일부이고 재활용 쓰레기 수거업체의 정규직 노동자로 밤부터 동이 트기 전까지 동네 골목을 누비는 것도 빠지지 않는 하루의 일과다. 공룡의 ‘대표’라고 하지만 행정적인 의미의 대표일 뿐 네 명의 활동가가 미디어, 음악 등 각자의 활동 분야(영역)를 중심으로 활동의 대표성을 만들어가는 방식이다. 박영길 활동가는 다른 활동가들의 곁에서 그들의 삶과 활동이 지속되기 위해 필요한 것을 한 발 떨어져 궁리하는 일을 담당하는 것처럼 보인다.
공룡은 농사를 짓고, 밥을 하여 상을 차린다. 오랫동안 믿고 알아 온 관계지만 서로 다른 개인들이 삶을 잘, 공유하기 위해 필요한 물리적 거리를 계산하여 살 곳을 함께 찾아주고, 여행도 각자, 때로는 함께 종종 간다. 공룡의 운영비로 말이다. 공룡에 가기 전 미리 찾아보았더니,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아는 ‘박영길’에 관한 기사와 글들을 읽으면서 특히 그가 ‘먹는 일’에 왜 그렇게 힘을 주는지 묻고 싶었다. 내가 애쓰고 귀하게 여기는 ‘먹는 일’과 그의 것은 어떻게 같고 다른지 궁금했다.
문화, 예술, 생활, 그리고 교육까지, 저마다의 맥락과 의도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고 쓰이지만, 정의하는 작업이야말로 예술을 연구하는 최선의 출발점(하버트 리드)이라는 말처럼 내가 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라고 설명(표현)할 수 있는 것은 예술의 중요한 과정이다. 작가 유시민은 인생을 두고 자기를 표현하는 과정이라 말하기도 했는데 ‘표현’이든 ‘설명’이 되었든 간에 자신의 삶과 활동의 방향을 정하고 태도를 ‘정의하는 일’ 자체가 예술인 셈이다. 자신의 삶을 정의하기 위해 하는 시도들, 증명하기 위한 노력,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만족스럽게 채워가기 위해 하는 사유와 창조적 행위가 곧 예술이지 않을까. 공룡의 활동가들에게 ‘먹는 일’을 함께 하는 것은 주요 활동인 미디어 행동, 교육, 마을 공동체 활동의 부수적인 것으로 치부되기보다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으로 정의된다.
“저희가 묘하게 용산 참사, 세월호 사건,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 제주신공항 반대 등 큰 현장에 결합하는 일이 많았는데 그곳 주민들과 연대하며 일을 하다 보면, 그 아픔이 강하게 느껴지면서, 함께 머물고 생활하는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떤 순간이 와도 같이 먹는 것을 놓치지 말자고 했다.”
– 박영길 공룡 활동가
  • 연대 활동 ‘미디어로 행동하라’
  • HCN유성기업 투쟁 ‘불방항의액션’
삶의 리듬, 매우 정치적인
공룡 활동가들의 거점공간인 마을까페 ‘이따’의 일상적인 풍경이기도 하지만 날 선 시위 현장 한 켠에서도 요리는 그런 풍경을 만들어 왔다. 박영길 활동가는 이를 두고 “삶의 리듬을 만들어 일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전한다. 삶의 리듬감을 해치지 않는 운동이라야 지속가능하다는 그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영상과 미디어 기반의 활동들이 대체로 밤낮이 바뀐 패턴 탓에 활동가 개인은 물론 함께 하는 이들에게 크고 작은 후유증을 남긴다.
일상이라는 것이 대의적인 활동과 비교하여 덜 중요하다는 생각이 보통인 때가 있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지금은 상대적으로 나아졌다고들 하지만 실제로 내가 살고 접하는 사회는 별반 다른 게 없다. 크게 달라졌다고 생각지 않는다. 일상에 대한 이러한 인식들은 생활과 활동을 안의 일과 바깥일로 구분한다. 사소한 것,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고, 이 위에 가부장적 윤리를 얹혀 그림자 노동 등 여성의 삶이 소외되는 흐름을 강화해왔다. 또 삶의 앞과 뒤가 다른, 달라도 된다는 이중적 태도가 형성되는데 가담한 혐의도 있다. 이를테면, 세상 대단한 일을 한다는 이들의 활동 뒤의 삶은 정작 구중중한 냄새가 나는 시궁창 같은 일들이 미투(#METOO) 운동을 통해서도 드러나지 않았던가. 그런 의미에서 삶의 리듬을 만들고 회복하는 것은 매우 정치적인 일상 예술 활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공룡의 ‘먹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만드는 것’이다. 요리를 좋아하는 박영길 활동가는 타고난 감각으로 국경을 넘나들며 어떤 요리든 척척 해내는 듯하다. 사람들의 마음과 상태를 살펴 그들을 채우고 위로할 음식을 먹이고 싶다는 마음은 공룡의 함께 먹는 일상, 문화의 중요한 토대가 되어 왔다. 그의 부지런한 손은 요리 외에도 머리만 쓰는 삶을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활동가들과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밥상의 재료를 마련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공룡과 이따의 활동비, 운영비를 마련하고자 하는 셈도 있었지만, 몸 쓰는 일을 해야 한다는 일상 문화에 대한 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 농사 외에도 기본적인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커피나 맥주 등 직접 생산하거나 제조할 수 있는 것들을 하다 보니 납품 요청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거절한다. 운영에 재정적으로 도움이 되기 때문에 갈등은 되지만, 언젠가 이에 응했다가 정작 활동가들의 일상과 활동의 리듬이 깨졌던 경험 이후 선택의 교훈이 되었다. 선과 후가 바뀌지 않는 것, 활동의 기본적인 원칙과 방향을 예민하게 관찰하고 조절할 수 있는, 축적된 힘이 느껴졌다.
  • 공룡 텃밭
  • 마을까페 ‘이따’
길들지 않기 위한 공부
인상적인 것 중의 하나가 활동가 개인이나 공룡이 그들의 활동, 관계에서 경험한 것들을 관성처럼 흘러가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운영비를 벌자고 원칙의 선을 넘지 않았듯, 후원회원을 관리하느라 정작 현장과 연대하는 일에 몰입할 수 없다면 후원회원을 관리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대표’를 보좌하는 ‘활동가’의 구도가 아닌, 대표가 없거나 모두가 대표인 활동가들의 네트워크 조직으로서 공룡의 조직문화를 만들어 온 사실들이 이를 방증한다. 작지만 근대성을 버리고 대안적 실천으로 묘사될 만한 이런 기획이 어떻게 시도되고 가능할 수 있었을까.
시간을 거슬러 공룡이 처음 활동이라는 것을 하면서, 아니면 그 이전부터 각자가, 또는 함께 겪은 크고 작은 사건과 경험 속에서 더 나은 삶과 실천이 무엇일지 함께 묻고 되돌아보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배움이라고 하고 성장이라고 한다. 까칠하다는 얘기도 들었을 것이고 유별나다는 비난 섞인 핀잔으로 마음 한구석 상처가 되는 일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게 오기가 되어 ‘정상’과 ‘상식’에 길들기를 거부하며 독립적으로 살고자 하는 삶의 태도들이 자연스레 쌓인 것은 아닐지. 청주시 사직동, 동네에 자리 잡은 지 20년, 그 중 ‘공부해서 용 되기’(공룡)로 마음먹고 살아온 10년의 세월을 듣다 보니 공룡이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그 이야기의 너머가 보이는 것만 같다.
그래서였을까? 박영길 활동가는 공부를 “집 대문을 넘어가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누군가 세상이라는 집, 앎이라는 집 앞에 서서, 저 안엔 뭐가 있을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기웃거린다. 주인을 불러보기도 하고 문을 두드릴 수도 있다. 인기척을 내며 그냥 슬쩍 문을 열어 조심스레 문턱을 넘어갈 수도 있겠다. 그는 그렇게 약간씩 넓어지고 낯선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고 했다. 혼자 책으로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데 누가 옆에서 알려주면 길 가다 돈 줍는 느낌이라나. 헤매고 진땀 빼며 해봐야 내 것이 되는 기분이 든다는 그는 최근 이상한(?) 책을 본다고 하여 무엇인가 했더니 건축, 미술, 음악, 인류학에 관한 것들이라고 한다. 고정된 것을 깨고 싶다는 바람, 애매한 스펙트럼을 가지려고 노력한다는 그가 집어 든 것이 예술과 문화에 관한 것들이라는 점은 우리가 예술과 문화를 왜 경험해야 하는지, 삶으로서 예술이 무엇인지 새삼 다시 떠올리게 한다.
박영길 활동가는 “예술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내가 삶에서 놓친 게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이라는 표현으로 부연했다. ‘불안’은 ‘질문’으로 바꾸어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좋은 삶이 뭘까’ 하는 질문은 공룡이 학교나 커뮤니티 등 제도화된 사회에 소속되지 않은(또는 못한) 아이들과 만나 놀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미디어로 담아내는 활동으로 이끈다. 다른 목소리, 다른 생각과 삶을 실어 나른다. 본래 다름은 충돌하는 것이다. 다름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다름이 충돌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포용이다. 그러나 다수의 세상은 충돌을 시끄럽고 불편한 것으로 여긴다. 심지어 두려워한다. 다루기 편한 입장, 같은 생각들만 모아 놓고 상식이라 주장한다. 복잡하게 얽혀 일목요연하게 정리될 수 없다는 당연함을 세상이 불안이라고 부른다면 기꺼이 불안하겠다는 것이다.
올해 코로나 팬데믹으로 예상치 못한 불확실함의 ‘시대’를 마주하면서 불안은 거둬낼 것이 아닌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아지고 있다. 이를 두고 인간중심 세계관의 반성, 정치/경제의 획기적인 전환 등 삶의 판을 다시 짤 기회라 여기는 이들도 조금씩 늘어간다. 불안과 낯섦을 창조적으로 다룰 줄 아는 공룡의 태도와 역량은 그들의 음악, 미디어 기술이 더해져 지역을 넘어 많은 현장의 부름을 받고 있다. 올해 들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 공룡은 많은 요청 중에서 응할 것과 거절할 것의 기준을 세우고, 스스로 만들어 갈 요청은 무엇인지 방향과 사이를 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 공동체 교육
  • 2019 체인지온@공룡
일상을 소중히 하는 실천
네 개의 시선으로 읽을 수 있는 공룡이 있을 것 같다. 네 명의 활동가가 일하고 놀며 만들어가는 저마다의 공룡 이야기는 어떨지 호기심이 인다. 오늘 내가 만난 ‘박영길의 공룡’은 보기 드물게 난이도가 높은 삶이다. 아니 근데, 뭐가 이렇게 쉽게 되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 오래전 드라마에서 어린 대장금이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하였을 뿐”이라던 장면처럼 ‘이런 게 필요하지 않을까 하여 이런 걸 했다’는 식이다. 실천력의 비결을 알려 달라 조르니 멋쩍게 웃기만 한다.
아마도 먹는 일과 같은 생활의 소소한 의례를 소중하게 여기며 사는 삶의 태도가 근간에 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반자본주의, 일상성, 공동체성에 대한 지향이 공허한 선언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삶이 그러하기를 추구하는 실천들 말이다. 사람과 세상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 늘 새롭고자 시도하는 용기가 몸에 배기까지 계속 요리를 하고, 힘없는 자들의 아픔에 슬퍼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기록해왔다. 모범적이지 않은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곁을 내주고 이상한 책을 보며 불온함을 연마한 그들의 삶 자체가 이미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보이지 않아도 일상의 궂은일의 의미를 알아채고 이를 묵묵히 해내며 하루하루를 사는 이들의 삶을 신뢰하고 믿는 편이다. 그런 이들의 바깥일에는 궂은일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스며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공룡의 박영길 활동가는 내가 최근에 만나 이들 중 단연 으뜸이다. 깊고 넓은 세계관과 삶의 태도에 어울리는 활동으로 뭔가 난해하고 다소 과묵한 풍경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던 것일까? 툭툭 건네는 말과 이야기의 맥락들, 웃음 사이를 오가는 무게감이 마치 불협화음처럼 갸우뚱거리게 하지만 묘하게 기분이 좋다. 자연스럽게 내 삶과 언어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사람의 여운은 오래간다. 아마 당분간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베란다에 쭈그리고 앉아 재활용 쓰레기 수거차량을 보며 다가올 한 주를 생각할 것 같다.
arte365
임재춘
문화현장 비평, 문화기획에 관한 대화, 정책과 제도에 대한 제언 등을 업으로, 삶으로 삼아 살고 있음. 내 삶이 지나치게 어쩔 수 없는 것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나를 소진하며 살지 않으려고 내 삶을 잘 돌보며 살아가고자 애쓰는 중. 6년 전부터 생활적정랩 빼꼼(becomingLab)이라는 편협한 공간을 운영하고 있음. 발효가 가진 인문, 문화적 사유와 실천의 의미들을 실험, 탐구하는 문화기획자들의 매개공간으로 역할을 해왔는데 그 쓸모를 다한 듯하여 얼마 전 문을 닫음. 독립적으로, 늙어가는 것에 관심이 많고, ‘멘토’, ‘선생님’이라 칭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막 살기도 어려워졌다고 푸념하는 시간도 늘어남.
findspring@naver.com
영상 _ 박영균 영상작가 infebruary14@naver.com
사진제공 _ 생활교육공동체 공룡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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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관현 2020년 11월 01일 at 8:15 AM

    좋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한 사람에게 큰 울림이 되어 오는 글을 읽습니다.고맙습니다.

    • author avatar
      artezine 2020년 11월 05일 at 11:30 AM

      안녕하세요 독자님, 큰 울림을 받으셨다니! 감동이에요.
      그 마음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잘 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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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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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관현 2020년 11월 01일 at 8:15 AM

    좋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한 사람에게 큰 울림이 되어 오는 글을 읽습니다.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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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ezine 2020년 11월 05일 at 11:30 AM

      안녕하세요 독자님, 큰 울림을 받으셨다니! 감동이에요.
      그 마음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잘 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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