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야기를 들려줘

책으로 읽는 문화예술교육

나는 마을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이하 ‘문탁’)의 회원이다. 십 년째 문탁을 드나들며 공부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마을인문학공동체의 공부와 활동은 어떤 것일까. ‘앎과 삶의 일치’ ‘자기 삶의 연구자’라는 모토 아래 우리는 정해진 커리큘럼 없이 동서양의 고전과 사회과학 서적을 용감하게 횡단하며 공부했다. 십 년의 세월은 우리만의 커리큘럼을 만들어 『문탁네트워크가 사랑한 책들』(북드라망, 2018년)로 출간되기도 했다. 제도나 시스템에 따라 학력을 인증해주는 학위나 자격증은 없지만, 우리는 나름의 체계를 갖춰 ‘강좌-세미나-에세이 발표회-인문학 축제’ 등과 같은 공부법과 의례를 만들었다. 문탁은 국가와 시장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지향하며, 마을경제, 마을교육, 마을공유지 등 ‘좋은 삶’에 대한 담론 생산과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자체발광> <청년예술프로젝트> <녹색다방> <주술밥상> <고전대중지성> <인문약방>은 내가 문탁에서 해온 공부와 활동들의 이름이다.
‘선물, 우정, 환대, 공통개념’은 문탁의 공부와 활동을 생산하는 열쇠말이다. 이것은 무엇으로 국가와 시장, 제도와 시스템을 넘어 자율적인 인간과 공동체가 될 것인가 하는 질문 앞에서 우리가 찾은 답변들이다. 마르셀 모스, 이반 일리치, 칼 폴라니, 공자, 바뤼흐 스피노자, 질 들뢰즈 등을 읽고 쓰며 벼린 개념과 사유들이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은 진짜 그러할까? 언제부턴가 회의가 지루하고, 비슷한 말을 돌려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고 동료의 말이 듣기 싫은 간섭처럼 다가왔다. 우리의 말들 사이 균열과 간극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문탁의 분위기는 ‘안녕’하지 못하다.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아 답답해하는 내게 두 권의 책이 배달되었다.
  • 『듣기의 윤리』
    (김애령, 봄날의박씨, 2020)
  • 『박경리의 말』
    (김연숙, 천년의 상상, 2020)
말에 드리우는 그림자
철학자 김애령의 『듣기의 윤리』는 계속해서 “그것으로 충분한가?”를 질문하는 책이다.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세계 안에 한 명의 행위 주체로 등장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이야기를 품은 삶이 있다. 그러나 누구나 자기 삶을 이야기로 구성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삶의 이야기 자체를 박탈당한다. 그래서 우리는 말하지 못하는 주변화된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정치적 올바름’으로 제시한다. 그런데 저자는 과연 그것으로 충분한지 질문을 던진다. 공적 공간에서 말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발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들릴 수 있게 말하기 위해서는 승인된 담론 체계 중 하나를 선택하여 자기를 설명해야 한다. 여기엔 어쩔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경험, 표현을 초과하는 삶, 언설로 담기지 않는 고통이 누락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관점을 전환한다. 어쩌면 문제는 말하기가 아니라 어떻게 들을 것인가에 있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중요한 것은 말에 ‘충분히’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 ‘그렇다’와 ‘아니다’를 가르지 않으면서, 그렇게 그 말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훌륭한 경청은 그 말에 드리운 그림자를 빼앗지 않는 것이다.”
– 김애령 『듣기의 윤리』 중
저자는 파울 첼란(Paul Celan)의 시에서 ‘그림자’를 가져와 말하기와 듣기의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출구로 삼는다. 말로 표현되지 못한 침묵, 한숨, 머뭇거리는 손동작, 난처한 표정 등 말에 드리우는 그림자를 말로 포획하지 말고 그대로 둘 것을 요청한다. 확증편향과 인지 부조화가 혐오 담론과 가짜 뉴스를 확대 재생산하는 ‘포스트 트루스’(post-truth, 탈진실) 시대, 우리의 곤궁은 그림자가 사라진 말들의 위기로 보인다. 우리는 명확하지 않은 것을 명확하다고 판단하고, 성급히 진영을 나누고, 반대의견에 곁을 주지 않는다. 어쩌면 최근 몇 년 사이 내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가 정체되고 있다는 위기의식도 이와 동일한 연장선상에 있는지 모른다. 우리를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자극했던 ‘선물, 우정, 환대, 공통개념’이라는 말이 언제부턴가 질문되지 않고 관용구처럼 쓰이고 있다. 스스로의 공부와 활동을 돌아보며, 긴장하고 머뭇거리게 했던 말들이 언제부터 분명해지고 공허해진 것일까?
스며드는 말
『박경리의 말』은 독특한 책이다. 오랫동안 대하소설 『토지』를 연구해온 저자 김연숙은 『토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말과, 프란츠 카프카, 조지 오웰, 리베카 솔닛 등 또 다른 작가들의 말과, 저자 자신의 말을 겹쳐 놓는다. “산다는 거는…… 참 숨이 막히제?”라는 등장인물 ‘한복’의 말은 의료사회학자 아서 프랭크(Arthur Frank)의 고통과 연결되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죽음을 맞은 김 군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도 이어진다. 뿐만 아니라 작품 밖에서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말하는 박경리의 말들도 빼놓지 않고 함께 싣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다층적으로 말을 겹쳐 놓음으로써 한국 문학사의 기념비적 작품이 된 『토지』의 의미를 현재적인 시점에서 질문하고 대화하게 한다. 그래서 독자는 이 책을 통해 박경리의 말도 ‘작가’라는 권좌에서 내려와 여러 목소리와 함께 발화되는 한 ‘사람’의 목소리로 귀 기울여 듣게 된다. 이러한 배치를 통해 박경리의 말들은 가까이 있는 사람의 말처럼 독자들에게 스며들게 되고, “아…… 나도 그런 때가 있었어!”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인생에 대한 물음, 진실에 대한 물음은 가도 가도 끝이 없어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끝이 없게 그 물음에 매달리는데 ‘모른다’라는 그 말만이 확신한 것이죠.”
– 김연숙 『박경리의 말』 중
특히, 나에게는 「‘모른다’라는 확실한 말」 장이 스며들어왔다. 작가는 쓰는 사람인데, 모르는 것에 관해 쓴다는 말은 형용모순처럼 들린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토지』 한 작품에 26년간 매달릴 수 있었던 힘은 ‘모른다’라는 각성과 계속 ‘질문해야 한다’라는 작가의식에서 나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익숙해 보이는 것에 대해 ‘모른다’라는 공백을 부여하는 작가의 힘은 세계를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재해석의 의지로 읽힌다.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는 태도
7월의 마지막 날, 문탁에서는 『듣기의 윤리』를 쓴 김애령 선생과 ‘저자와의 만남’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3주에 걸쳐 꼼꼼히 책을 읽었다. 저자는 한나 아렌트, 폴 리쾨르, 가야트리 스피박, 자크 데리다, 주디스 버틀러, 매리언 영의 이론을 경유하며 말하기와 듣기를 둘러싼 정치와 환대, 타자의 윤리와 정의의 난제들을 짚어나가는데, 읽기가 쉽지는 않았다. 저자는 어려웠다는 우리의 하소연에 대해 웃으며 친절하게 대답해주었지만, 태도에 있어 ‘어떤’ 단호함을 보였다. 듣기의 윤리란 무엇인가? 섬세한 듣기, 침묵까지도 헤아리는 경청, 쉽게 예단하지 않는 과정적/맥락적 해석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듣기의 윤리는 단지 공감의 문제도, 선의의 실천도, 감수성의 훈련도, 예민한 성찰도 아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물을 수 있어야 하고 기꺼이 물어야 한다. 생각을 나누고, 의견을 보태고, 때로 이견과 충돌까지 감수하지 않는 한, 우리가 듣고 응답했다고 할 수 있을까?”
– 김애령 『듣기의 윤리』 중
김애령의 이러한 논리 기반에는 주체와 타자 모두 불완전한 존재라는 취약성이 전제되어 있다. 주체는 타자만 낯선 것이 아니라 자신도 낯설다. 내 이야기에는 너의 이야기가 들어와 있다. 우리가 서로에게 “너의 이야기를 들려줘”라고 묻고 응답할 때, 우리는 이야기의 행위 주체가 될 수 있다.
삐거덕거리는 문탁 이야기로 마무리하려 한다. 최근 우리는 회의 방식을 바꾸고, 운영에 대한 의논을 전개하고 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공통점보다는 차이가 드러나는 듯한 느낌은 피로를 가져온다. 우리 이야기에도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우리는 서로의 애매모호함과 답답함을 참아낼 수 있을까? 우리는 의견의 차이와 간극이 만들어내는 긴장을 견뎌낼 수 있을까? 오랫동안 공부하고 천천히 책을 써나간 두 저자에게서 나는 한 가지 태도를 배웠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둘러 단정하고 포기하는 조급함이 아니라, “이것으로 충분한가?”하는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는 태도이다.
박연옥
박연옥
마을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회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강사. 플라톤의 ‘국가’에 대한 에세이 『영혼과 정치와 윤리와 좋은 삶』을 출판했고, 팟캐스트 <인문약방, 호모큐라스를 위한 처방전>을 진행하고 있다.
http://moontaknet.com/
이미지 제공 _ 봄날의박씨, 천년의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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