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는 모든 사회적 존재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다. 예술가 또한 예술 활동이나 작업 방식을 바꾸고 온라인으로 관람 방식을 확장시키면서 그동안의 관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소통 방식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급격한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는 지금,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가늠하며 계속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아가는 예술작업을 소개한다.
기록으로 연결하는 지역사회
“역사는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는 것만이 아니라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학자 오항녕이 쓴 책 『기록한다는 것』에 나오는 말이다. 기록을 남기는 일과 그것을 제대로 관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말하는 대목이다. 기록되지 못한 이야기는 쉽게 사라진다. 영국의 사진작가 아담 이스펜디야르(Adam Isfendiyar)는 일본 도쿄의 노숙자 공동체부터 길거리 패션 사진에 이르기까지 길 위에서 사람들을 만나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이동이 어려워 작업이 중단되자 봉쇄령이 내려진 런던 사람들의 생활을 관찰한 ‘창문 초상화(window portraits)’를 선보이며 사람들의 변화된 행적을 기록했다.
아담 이스펜디야르는 페이스북에서 창문 초상화 작업을 위한 지원자들을 모집하였고, 자전거를 타고 지원자들의 거주지로 가 창문 프레임 너머 그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이러한 그의 작품은 흑사병을 피해 마을 외곽으로 피난을 간 열 명이 하루에 이야기 하나씩 열흘 동안 풀어놓은 100개의 이야기를 묶은 『데카메론』을 떠오르게 한다. 아담 이스펜디야르는 “이 프로젝트는 사람들의 특별한 생활 방식을 포착하는 기회가 되었다. 이것을 통해 지역사회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외따로 떨어져 살아남고 있는 현재를 사진으로 기록하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연결하며 삶의 가치와 행복을 되묻는다.
의외성에서 발견하는 즐거움
도발과 역설, 풍자와 해학을 즐기는 이탈리아의 행위예술가이자 조각가 마우리지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은 고립된 시대에 사람들과 함께 머무르는 방법으로 미국 뉴뮤지엄(Newmuseum)에서 ‘잠자리 동화(Bedtime Stories)’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그는 여러 나라의 예술가에게 그들이 자유롭게 선택한 내용을 스튜디오, 휴대전화, 노트북 등 자유로운 방식으로 녹음해 주기를 부탁했다. 그렇게 모인 ‘잠자리 동화’는 자신이 좋아하는 책의 글귀부터 격리 중에 쓴 이야기, 직접 작성한 개에게 바치는 러브레터 등 짧게는 40초 길게는 5분가량까지 다양하다. 이 프로젝트의 묘미는 의외성에 있다. 마우리지오 카텔란이 “참여한 예술가가 어린이를 위한 동화만을 들려주었더라면 즐겁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듯 잠자기 전 아이들에게 침대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상상하면 떠올릴 수 있는 스토리가 아니라 이상하고, 내밀하며,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공유되었다. 사람들에게 예술의 영역을 제한하지 않았을 때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이 프로젝트는 6월 말까지 뉴뮤지엄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책을 읽는 것으로만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루마니아의 시각예술가 제임스 트레비노(James Trevino)와 엘리자베스 세이건(Elizabeth Sagan)은 책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예술작업의 소재로 활용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즐긴다. 책을 좋아하는 두 사람은 판타지 소설, <조커> <헝거 게임> 등 영화의 장면이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인체 비례도(Canon of Proportions)’같은 명화를 패러디하며 이야기에 상상력을 더한다. 바닥에 누워 책을 세우거나 펴고, 책 커버의 색이나 각각의 크기와 질감을 활용하여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시킨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각자의 SNS에 올리거나 공동으로 운영하는 SNS ‘마이북피처스(Mybookfeatures)’로 공유한다. 랜선으로 전해지는 그들의 유쾌한 패러디와 영감에 사람들은 클릭으로 화답한다.
초연결 시대의 예술
미술사학자이자 전시기획자인 조은정 교수는 온라인으로 <미술관 속 평화의 전사들(The Peaceful Warriors in Museum)> 기획전을 선보였다. 미술관의 휴관 기간이 길어지면서 전시에 대한 갈증을 느끼던 그는 해외에 체류하며 활동하는 네 명의 한국 여성 작가들을 SNS로 섭외하여 온라인 전시를 열었다. 서울의 김홍식, 뉴욕의 박유아, 런던의 신미경, 파리의 윤애영 작가가 바로 그들이다. 그림과 판화, 사진, 조각, 멀티미디어 설치미술 등의 다양한 분야의 작품들은 코로나19 이전에도 또한 앞으로도 변함없이 계속될 삶의 전장에서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나아가는 자세에 대한 기록이다. ‘손 씻기’라는 가장 원초적이고도 강력한 병법과 병존할 수 있는 ‘랜선 전시’로 초연결 방식으로 구축한 새로운 세상에서 인터넷망으로 연결된 연대감을 확인하게 한다. 온라인 전시는 9월까지 계속된다.
‘구글 아트 앤 컬처(Google Arts & Culture)’에서는 구글과 파트너 관계인 80개국 2,000여 곳 이상의 문화예술기관 및 예술가들과 협력하여 어디서든 온라인으로 세계의 예술과 문화유산을 감상하고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직접 방문하기 어려워진 해외의 문화예술 공간을 기술을 활용해 가상현실 스트리트 뷰로 방문하고, 미술관 안에 걸린 작품을 직접 보는 것처럼 실제 크기로 보거나 확대하여 볼 수 있다. 현실이라면 불가능한 아티스트별, 색상별, 시기별, 장소별로 작품을 모아 보는 것도 가능하다. 국립현대미술관, 국립고궁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경기도미술관 등 국내 프로그램도 만날 수 있다. 또한 예술 작품뿐만 아니라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보유하고 있는 우주 사진도 볼 수 있다. 지구에서 약 540km 떨어져 있는 행성을 허블우주망원경(Hubble Space Telescope)으로 찍은 사진을 확대하여 볼 수 있어 가닿을 수 없는 미지의 영역까지 여행할 수 있다.
비틀즈는 ‘위대한 아티스트는 시대를 통찰하고, 대중의 마음과 생각에 공감하면서도 그들을 이끈다.’라고 말했다. 지속 가능한 예술과 공동체적 교감을 나누는 것이 절실해진 지금 예술가들은 각자의 고유성과 창조성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예술의 힘으로 변화를 찾으며 시대의 변화에 대처한다. 비대면의 시대에서 새로운 연결이 가져오는 예술의 확장을 기대해 본다.
썸네일 사진 출처 :
아담 이스펜디야르 홈페이지
성효선
성효선_프로젝트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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