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터러시(Literacy)는 지금 위기인가 변동인가. 응용언어학자 김성우와 사회학자 엄기호는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에서 지금 우리 사회는 유례없는 리터러시의 위기 및 변동을 겪고 있다고 진단한다. 책을 ‘읽는’ 시대에서 유튜브를 ‘보는’ 시대로 급변하는 미디어의 변동 상황이 리터러시의 차원에서 심각한 위기 상황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문식성’ ‘문해력’으로 번역되는 ‘리터러시(Literacy)’라는 개념은 “다양한 맥락과 연관된 인쇄 및 필기 자료를 활용하여 정보를 찾아내고, 이해하고, 해석하고, 만들어내고, 소통하고, 계산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말해 다면적 능력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문자로 대표되는 ‘텍스트’의 시대가 저물고, 유튜브를 비롯한 ‘영상 미디어’가 새로운 지식의 원천이 되면서 세계를 대하는 태도가 급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모티콘과 느낌표가 내용보다 더 중요한 시대가 되면서 기존의 텍스트 중심의 리터러시에 거센 도전을 한다는 것이다. 초등학생들이 문자로는 시험공부하고, 세상 보기는 영상으로 보며, 네이버 지식인 대신에 유튜브를 검색엔진으로 이용하는 시대가 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텍스트 중심의 문해력으로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 모두의 문해력 부족을 개탄하는 것에서도 여실히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성우·엄기호 두 저자의 심도 있는 대담 형식으로 ‘리터러시’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젊은 세대 특유의 정동(affect)적 독해가 소통의 위기를 낳으면서 세대 간 혐오 문화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이 점에서 두 저자가 “리터러시를 문제 삼는 사람들의 리터러시를 문제 삼아야 한다”(엄기호)고 언급한 시각은 이 책의 특장이라고 할 만하다.
  •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김성우·엄기호, 따비, 2020)
  • 『공부는 정의로 나아가는 문이다』
    (인디고 서원 엮음, 궁리, 2020)
삶을,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
두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접하는 매체는 사고와 정서의 뼈대를 만든다”라고. 이 언급은 이 책의 기본 문제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두 저자는 네 차례의 대담에서 리터러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방대하게 풀어놓는다. 전체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은 리터러시가 ‘바벨탑’이 아니라 ‘다리’가 되어야 한다고 한 언급이다. 리터러시 자원이 많다는 이유로 타인을 깔볼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세대 간 소통의 ‘다리’를 놓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마디로 말해 ‘똑똑한 나쁜 놈’을 양산하는 교육이 아니라, 리터러시가 윤리적인 책무, 소명, 의무를 불러일으키는 데 기여하는 교육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두 저자는 사각형 질문 안에 갇힌 지금의 학력고사, 수학능력시험 제도를 비판하는가 하면, 읽기와 쓰기 교육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성찰하며 ‘다중 문해력’을 키우는 리터러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두 저자가 리터러시는 어떤 상태가 아니라 운동을 의미한다고 전제하고, ‘리터러시는 스펙트럼이다’라고 말하는 대목은 쉽게 반박되기 어려울 것 같다. 리터러시가 삶을,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가 되어야지, 배척하고 배제하는 장벽이 되어버리면 안 된다는 두 저자의 신념이 집약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왜 삶을 위한 리터러시인가. 그것은 우리가 살면서 가장 기본적으로 키워줘야 할 역량, 삶의 토대가 되는 지적·정서적·사회적 역량이 무엇이냐에 대해 지금 이 사회가 고민하기 위해서이다. 이 점에서 두 저자가 합의한 것은 우리 사회는 읽기/쓰기 교육을 제대로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쓰기보다 읽기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한 대목은 우리 교육 현장에서 깊이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시험을 위한 읽기’에서 ‘읽기를 돕는 시험’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읽기 교육에서 세계를 추상적으로 이해하고, 삶의 맥락을 종합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이걸 한번 할 수 있었으면 다른 데 가서도 해낼 수 있어야만 그걸 역량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역량은 내 몸에 쌓이는 힘이고, 그 핵심은 유연함이에요.”
이 점에서 책에 거론된 강원도 홍천여고 독서반 이야기는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도 참조할 점이 적지 않다. 서현숙·허보영 선생님이 주체가 되어 개설한 홍천여고 독서토론회는 아이들이 변하고, 학교가 변하는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두 선생님이 집필한 『독서동아리 100개면 학교가 바뀐다』에 따르면, 홍천여고 독서토론회는 학생들이 질문 자체를 스스로 만들어 비경쟁 토론을 하며 학생과 학생을 연결하는 프로그램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읽기+보기+하기’가 통합된 홍천여고 독서반 이야기는 가장 좋은 뉴스 리터러시 교육이란 직접 뉴스 생산자가 되어 다양한 미디어로 ‘변환’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물론 장애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공정성’ 담론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것에서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2019년 학생부종합전형을 폐지하고, 정시 모집을 확대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공정성 담론이 리터러시의 개념과 교육을 확장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한마디로 말해 평가의 ‘구인 타당도’가 심하게 떨어지면서 평가자의 공공성에 대한 신뢰가 없는 현실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의 공정성에서 배움의 공공성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두 저자의 주장은 쉽게 외면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런 방향에서 ‘읽기권’ 차원에서 리터러시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나는 특히 우리 사회에 대해 가장 많은 통찰력을 주는 매체로서 장애인운동 웹진 [비마이너]를 꼽는 두 저자의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한다. 다수자가 아닌 소수자의 시각, 중앙이 아닌 변방에서의 이해, 이와 관련된 실천이 리터러시 교육이 나아가야 할 주요한 방향 중 하나라는 두 저자의 주장을 전적으로 깊이 신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낯선 것들과의 ‘직면’을 통해 바벨탑을 쌓는 것이 아니라 다리를 놓는 리터러시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지금’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
이와 같은 문제의식은 인디고 서원이 엮은 『공부는 정의로 나아가는 문이다』와 통한다. 이 책은 ‘코로나 시대, 새로운 교육을 위하여’라는 부제에서 보듯이, 코로나19 시대에도 ‘비즈니스 애즈 유주얼(business as usual, 평소와 다름없다)’을 완고히 고수하려는 우리 안의 욕망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무엇이 진짜 필요한 ‘공부’인지 생각하게 하는 좋은 책이다.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을 통독하며, 코로나19 같은 재난의 시대에는 ‘지금’을 배우는 일이 진짜 공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랫동안 부산 인디고 서원에서 활동해온 이윤영·박용준과 청소년들이 쓴 글이 수록된 『공부는 정의로 나아가는 문이다』는 청소년 교육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일독할 가치가 있는 책이다.
어느 청소년이 ‘지구가 얼마나 큰지 알려주는 과학 시간도 필요하지만, 큰 지구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한 주장에 큰 감명을 받았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지식의 공공성을 역설하는 대목이 퍽 인상적이다. 그리고 다양한 책과 영화 소개 또한 단순히 지식을 쌓는 공부가 아니라, 자기 앞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기 위한 텍스트로 제시되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에서 ‘읽을 줄 앎’을 공부하며,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하는 역량을 키워가는 과정으로서의 공부를 생각한다는 것과도 이어지는 대목이 흥미롭다. 다시 말해 진짜 공부는 “사람을 해방하고 자유인이 되게 하는 자유의 도구여야 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으리라.
이밖에도 출간 직후 감동적으로 읽은 『다라야의 비밀 지하 도서관』(델핀 미누이 지음, 임영신 옮김, 더숲, 2018)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한국 최초로 인디고 서원에서 수입해 상영하고 있다고 하는데, 책과는 어떻게 다르게 영상화했는지도 몹시 궁금하다. 두 텍스트를 비교해 감상하는 것 또한 리터러시 변동의 시대에 경험하는 좋은 공부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은, 재난의 시대이다. 재난의 시대에는 무엇인가를 할 것인지를 고민하기보다는 무엇인가를 ‘함부로’ 하지 않으려는 공부가 필요할 수 있다. 두 책을 탐독하며 영원한 성장을 추구해온 근대의 근대성을 문제 삼는 진짜 공부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더욱 하게 된다. 러시아 심리학자 비고츠키가 개념화한 ‘내재화(internalization)’란 인지적이고 정서적인 발효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간이다.
이미지 제공 _ 따비, 궁리
고영직
고영직
문학평론가. 웹진 [아르떼365] 편집위원. 경기문화재단 전문위원을 지냈으며, 문학웹진 [비유] 편집위원, 춘천문화재단 [POT] 편집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삶의 시간을 잇는 문화예술교육』 『인문적 인간』을 비롯해 『자치와 상상력』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공저)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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