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로 문화예술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한 국제적인 담론의 장을 형성했던 ‘서울 어젠다: 예술교육 발전목표’가 채택된 지 10주년이 되었고, 「문화예술교육 지원법」 제정으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본격화된 지도 15년이 지났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문화예술교육을 받았던 어린이·청소년들은 자라서 청년이 되었고 사회인으로서 같은 분야에서 활동하는 동료가 되기도 했다. 문화예술교육은 이들에게 어떤 기억과 영향을 주었을까? 앞으로 이들이 만들어갈 시대에 문화예술교육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문화예술교육과 함께 성장한 청년에게 문화예술교육의 필요성과 역할, 방향에 관하여 들어본다.
- ① 김도연 청년협동조합 뒷북 조합원
- ② 최진성 안무가·댄서
- ③ 김선혁 협동조합 문화예술단 꾸마달 이사장
- ④ 김나예 예술교육 생명나무 예술가 교사
2009년 고등과정에 들어가면서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 팀이 진행하는 문화예술 수업을 들었다. 그 전부터 다른 선생님들과 비슷한 형식의 수업을 쭉 해왔기 때문에 새로 시작한 문화예술 수업이 그렇게 낯설지는 않았다. 수업 주제는 ‘공간 프로젝트: 내가 만드는 학교’였다. 당시 학교가 새 건물을 지어서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새로운 공간에서 학생들이 자신들의 공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꾸미길 원하는가를 현실로 반영하는 수업이었다. 공간을 구성하기 위해서 먼저 다양한 활동을 통해 몇 주간 우리의 촉각과 청각 등의 감각을 깨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알아가고, 을지로에 재료도 보러 갔다. 이 수업은 학년별로 진행됐고, 우리 학년은 자신들의 키높이에 맞는 길쭉한 사물함과 카페 바 테이블을 만들었다.
단지 도구적으로만 뚝딱뚝딱 목공을 한 건 아니었다. 실제 카페에서 어떤 바 테이블이 사용되는지 조사하고, 우리들의 키높이와 동선을 고려하며 스케치를 했다. 앞으로 어떻게 쓰일 것 같은지, 어떻게 쓰였으면 좋겠는지 의논하는 과정에서 좀처럼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리트머스) 선생님들도 기존의 바 테이블을 비틀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며 의견을 쌓아갔다. 오랫동안 이야기 나눈 끝에야 합의된 스케치를 완성할 수 있었다. 어느 한쪽도 포기하지 않고 충분한 논의 과정을 거쳐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직접 나무를 자르기 전에 의견을 쌓고 스케치를 좁혀가던 장면이 특히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러한 경험은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나를 팀워크를 통해 성장시켰다. 학교 이름에도 더불어 간다는 말이 들어있는 만큼 길학교의 교육과정은 협동과 연대를 중요시했는데, 나의 기질은 종종 이와 충돌하곤 했다. 또 문화예술 수업을 통해서 다양한 방식의 존재들을 접하고 상상력을 키울 수 있었다. ‘옳다, 그르다’는 이분법적 기준이 아닌,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을 수 있다는 폭넓은 시각을 제시해주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그 안에서 나만의 눈,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준 데에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의견, 자신의 해석을 스스로 믿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뒷북에서 청년잡지 [뒷구르기]를 발행하고 있다. 편집팀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청년의 이야기들을 모아 독자에게 전달하는 데에 의미를 두고, 그림, 수필, 인터뷰, 리뷰 등을 모아 소통의 장을 제시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편집장 역할을 하며 각기 다른 작업물들을 하나의 지면으로 대담하게 모으고 엮어내는 것에 청소년기에 받았던 문화예술교육이 영향을 미쳤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부담스러웠지만 4년간 그 역할을 해내는 지구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남들과 비교하거나, 다르다는 이유로 쉽게 무너지지 않아도 되는 확실한 이유를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배운 것 같다.
사소하게는 내가 좋아하는 취미를 이어가고, 더 나아가 그것을 확장해볼 수 있었다. 손으로 뭘 만들기를 좋아했던 나는 청소년기부터 북아트, 마크라메(매듭공예), 뜨개질, 도예, 베이킹 등의 분야에 관심이 있었다. 재미있고 즐거웠던 모든 것이 10대 후반이 되면서는 진로냐 아니냐의 기로에 놓이는 느낌이었다. 그 기로에서 이 관심사들로부터 눈을 뗄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러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은 분명 문화예술교육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내게 재미있는 일을 곁에 두고 오롯이 내 것으로 즐길 수 있는 힘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취미에 머무는 것을 넘어 뒷북에서 북아트, 뜨개질 강좌를 개설해 강사로 활동하는 기회도 가져볼 수 있었다.
미미한 관점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인상적인 모습은 문화예술 수업 교사들의 다양한 스타일이었다. 특별히 더 튀었다기보다는 궁금증을 유발했다. 청소년 시기에는 색다른 모습을 한 선생님들의 존재만으로 다양한 미래를 상상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모습 자체만으로도 자신의 훗날의 모습을 이렇게 저렇게 확장해서 꿈꿔볼 수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유아를 만나는 일을 하는 남성 친구는 머리를 기르고, 청소년을 만나는 일을 하는 여성 친구는 탈색한 짧은 머리를 유지한다. 이것은 ‘스마트폰도 잠이 필요해’ 수업에도 대입된다. 수업을 나가기 전, 팀원들과 “너무 얌전하게 입지 말자”고 농담 삼아 말하곤 한다. 우리가 받아왔던 교육에서는 그러한 것들이 강제되지 않았고 오히려 청소년기였던 우리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교실에는 다양한 선생님이 필요하다.
내가 문화예술교육을 받은 뒤에 크게 느낀 것은 문화예술이 그다지 유난스러운 별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전의 나는 문화와 예술을 동경하고 선망했지만 오히려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것은 저 멀리에 있는 별똥별이 아니라 그냥 내 일상이라는 걸 알아갔다. 가까운 단위에서 실현할 수 있는, 나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 교육의 전반적인 분야에 문화예술이 스며들 수 있으면 좋겠다.

- 김도연
- 경기도 의왕에 있는 중고등 통합 대안학교 더불어가는 배움터 길학교 1기 졸업생이자 청년협동조합 뒷북 조합원이다. 뒷북에서 지역 청년의 학습과 자립을 고민한다. 청년잡지를 만들고, 페미니즘 책 모임을 하고, 방학이면 뜨개질이나 북아트 강좌를 연다. 최근에 출간한 독립출판물 『좋은 일 하시네요』(2020)에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대학에서 배운 사회학과 정치학을 지역에서 실현할 방법을 모색 중이다.
인터뷰 사진 _ 이재범 POV스튜디오 andy45a@naver.com
정리 _ 프로젝트 궁리
아니 이 분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