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문화예술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한 국제적인 담론의 장을 형성했던 ‘서울 어젠다: 예술교육 발전목표’가 채택된 지 10주년이 되었고, 「문화예술교육 지원법」 제정으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본격화된 지도 15년이 지났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문화예술교육을 받았던 어린이·청소년들은 자라서 청년이 되었고 사회인으로서 같은 분야에서 활동하는 동료가 되기도 했다. 문화예술교육은 이들에게 어떤 기억과 영향을 주었을까? 앞으로 이들이 만들어갈 시대에 문화예술교육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문화예술교육과 함께 성장한 청년에게 문화예술교육의 필요성과 역할, 방향에 관하여 들어본다.
 
① 김도연 청년협동조합 뒷북 조합원
  
② 최진성 안무가·댄서
  
③ 김선혁 협동조합 문화예술단 꾸마달 이사장
  
④ 김나예 예술교육 생명나무 예술가 교사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얼마 전 이사한 집에서 첫 독립생활을 만끽하고 있는 20대 백수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이사하게 되어서 혼자만의 공간에서 생활해보고 있다. 작은 집을 요리조리 정리하고 밥 해 먹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돈벌이에 대한 고민이 많다. 2014년에 경기도 의왕에 ‘뒷북’이라는 청년공간을 만드는 일에 함께했고, ‘청년협동조합 뒷북’이 된 2016년부터 지금까지 뒷북을 자주 오고 가는 조합원이다. 뒷북은 청년들이 지역에서 일과 자립에 대하여 함께 놀며 고민하고자 만들어진 공간이다. 다양한 활동이 있지만 나는 이곳에서 청년 잡지를 만들고, 페미니즘 공부 모임을 열며, 방학이면 북아트로 사진앨범을 만들거나 뜨개질로 귀도리(귀마개)를 만드는 강좌를 열면서 지내고 있다. 최근에는 청소년과 함께하는 미디어교육 ‘스마트폰도 잠이 필요해’ 사업을 진행 중이다. 청소년들이 스마트폰과 자신의 관계를 되돌아보고, 스스로 그 관계를 재설정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자신이 필요한 몰입을 하는 동안 때론 집중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는 스마트폰을 재울 수 있는 이불패드를 손수 바느질해 만드는 수업이다. 주로 중고등학교에서 수업하고, 스마트폰 이불패드 키트를 따로 판매하기도 한다. 최근 오프라인 개학이 불확실한 상황이라 사업을 활발히 하지 못하고 있다.
처음 문화예술교육을 받았던 때를 기억해본다면? 언제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했는지 궁금하다.
경기도 의왕의 중고등 통합 대안학교 더불어 가는 배움터 길학교(이하 ‘길학교’)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중학교 1학년 때 학생들의 요청으로 필름사진 수업이 열려서 재미있게 듣기 시작했다. 이외에도 목공, 펠트와 같은 만들기 수업도 꾸준히 있었다. 미술수업에서는 다양한 방식의, 자기만의 스타일을 표현할 수 있는 드로잉을 배웠다. 같은 수업에서 석수동 시장에 생기를 불어넣는 공공미술 수업도 했다.
2009년 고등과정에 들어가면서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 팀이 진행하는 문화예술 수업을 들었다. 그 전부터 다른 선생님들과 비슷한 형식의 수업을 쭉 해왔기 때문에 새로 시작한 문화예술 수업이 그렇게 낯설지는 않았다. 수업 주제는 ‘공간 프로젝트: 내가 만드는 학교’였다. 당시 학교가 새 건물을 지어서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새로운 공간에서 학생들이 자신들의 공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꾸미길 원하는가를 현실로 반영하는 수업이었다. 공간을 구성하기 위해서 먼저 다양한 활동을 통해 몇 주간 우리의 촉각과 청각 등의 감각을 깨웠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알아가고, 을지로에 재료도 보러 갔다. 이 수업은 학년별로 진행됐고, 우리 학년은 자신들의 키높이에 맞는 길쭉한 사물함과 카페 바 테이블을 만들었다.
문화예술 수업이 청소년기의 자신에게 영향을 준 부분이 있을까?
학교 건물 1층 카페에 사용할 카페 바 테이블을 만들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학교의 새 건물 1층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다가 카페를 만들어 운영해보기로 했다. 공간 운영에 관심 있는 친구, 커피에 관심 있는 친구, 베이킹에 관심이 있는 친구(나) 등이 모여서 <카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와 연계하여 ‘공간 프로젝트: 내가 만드는 학교’ 수업에서 카페 공간에 사용할 바 테이블을 제작했다.
단지 도구적으로만 뚝딱뚝딱 목공을 한 건 아니었다. 실제 카페에서 어떤 바 테이블이 사용되는지 조사하고, 우리들의 키높이와 동선을 고려하며 스케치를 했다. 앞으로 어떻게 쓰일 것 같은지, 어떻게 쓰였으면 좋겠는지 의논하는 과정에서 좀처럼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리트머스) 선생님들도 기존의 바 테이블을 비틀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며 의견을 쌓아갔다. 오랫동안 이야기 나눈 끝에야 합의된 스케치를 완성할 수 있었다. 어느 한쪽도 포기하지 않고 충분한 논의 과정을 거쳐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직접 나무를 자르기 전에 의견을 쌓고 스케치를 좁혀가던 장면이 특히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러한 경험은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나를 팀워크를 통해 성장시켰다. 학교 이름에도 더불어 간다는 말이 들어있는 만큼 길학교의 교육과정은 협동과 연대를 중요시했는데, 나의 기질은 종종 이와 충돌하곤 했다. 또 문화예술 수업을 통해서 다양한 방식의 존재들을 접하고 상상력을 키울 수 있었다. ‘옳다, 그르다’는 이분법적 기준이 아닌,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을 수 있다는 폭넓은 시각을 제시해주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그 안에서 나만의 눈,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준 데에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의견, 자신의 해석을 스스로 믿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지금의 삶이나 일에도 그때의 경험이 도움이 되는지 궁금하다.
청소년기의 이러한 경험은 문화예술에 대한 친밀감을 높여주었다. 나를 표현하는 것,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에 거리낌 없게 해주었고, 자신의 의미를 담아내는 법을 배운 것 같다. 혼자서 전시회를 즐겨 다닐 수 있는 취미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나는 대학에서 사회학과 정치학을 전공했고, 앞으로 사회과학 분야에서 일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문화예술 분야를 메인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청소년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앞을 향해 나아가는 길 사이사이에 문화예술 부분에 발을 하나 걸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뒷북에서 그러한 활동을 많이 서포트 받는다.
뒷북에서 청년잡지 [뒷구르기]를 발행하고 있다. 편집팀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청년의 이야기들을 모아 독자에게 전달하는 데에 의미를 두고, 그림, 수필, 인터뷰, 리뷰 등을 모아 소통의 장을 제시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편집장 역할을 하며 각기 다른 작업물들을 하나의 지면으로 대담하게 모으고 엮어내는 것에 청소년기에 받았던 문화예술교육이 영향을 미쳤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부담스러웠지만 4년간 그 역할을 해내는 지구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남들과 비교하거나, 다르다는 이유로 쉽게 무너지지 않아도 되는 확실한 이유를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배운 것 같다.
사소하게는 내가 좋아하는 취미를 이어가고, 더 나아가 그것을 확장해볼 수 있었다. 손으로 뭘 만들기를 좋아했던 나는 청소년기부터 북아트, 마크라메(매듭공예), 뜨개질, 도예, 베이킹 등의 분야에 관심이 있었다. 재미있고 즐거웠던 모든 것이 10대 후반이 되면서는 진로냐 아니냐의 기로에 놓이는 느낌이었다. 그 기로에서 이 관심사들로부터 눈을 뗄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러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은 분명 문화예술교육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내게 재미있는 일을 곁에 두고 오롯이 내 것으로 즐길 수 있는 힘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취미에 머무는 것을 넘어 뒷북에서 북아트, 뜨개질 강좌를 개설해 강사로 활동하는 기회도 가져볼 수 있었다.
  • 북아트 수업


  • 청소년과 함께하는 미디어교육 ‘스마트폰도 잠이 필요해’
뒷북에서 활동하면서, 그리고 앞으로의 활동에서도 놓치지 않고자 하는 관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문화예술 수업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길동무 교사(예술교육자)들이 학생들을 대하는 자세(stance)였다. 물론 길학교에는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분위기의 수업이 거의 없었지만, 문화예술 수업의 길동무 교사들은 학생 하나하나의 의견을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귀 기울이며 사려 깊게 함께 고민해준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결과물로 이끌어 내야 했던 수업의 특성도 있었겠지만 이러한 부분에서 참 많이 배웠고 따듯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것은 내가 ‘스마트폰도 잠이 필요해’ 사업을 진행하면서 만나는 청소년들과 관계를 맺고 수업을 진행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대한 참여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고 귀 기울이는 것, 그것이 작업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교육자의 역할임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미미한 관점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인상적인 모습은 문화예술 수업 교사들의 다양한 스타일이었다. 특별히 더 튀었다기보다는 궁금증을 유발했다. 청소년 시기에는 색다른 모습을 한 선생님들의 존재만으로 다양한 미래를 상상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모습 자체만으로도 자신의 훗날의 모습을 이렇게 저렇게 확장해서 꿈꿔볼 수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유아를 만나는 일을 하는 남성 친구는 머리를 기르고, 청소년을 만나는 일을 하는 여성 친구는 탈색한 짧은 머리를 유지한다. 이것은 ‘스마트폰도 잠이 필요해’ 수업에도 대입된다. 수업을 나가기 전, 팀원들과 “너무 얌전하게 입지 말자”고 농담 삼아 말하곤 한다. 우리가 받아왔던 교육에서는 그러한 것들이 강제되지 않았고 오히려 청소년기였던 우리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교실에는 다양한 선생님이 필요하다.
그간의 경험과 활동을 돌이켜볼 때, 문화예술교육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문화예술교육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달라.
문화예술교육은 다른 과목들과 동떨어져 있는 장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생활과 연결되고 자아와 연결되는 분야다. 자기표현을 배우고 다양성을 경험한다는 면에서 꼭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청소년기뿐만 아니라 최대한 많은 이들이 문화예술교육을 많이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의 경우는 ‘대안학교’라는 접점이 있어서 비교적 어렵지 않게 문화예술교육을 접했지만 말이다. 나아가 내가 속한 공동체를 운영하고 지속하는 데에도 문화예술이 필요하다. 훨씬 더 다채로운 방식으로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작은 단위들에서 문화예술교육이 이루어지고, 발현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문화예술교육을 받은 뒤에 크게 느낀 것은 문화예술이 그다지 유난스러운 별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전의 나는 문화와 예술을 동경하고 선망했지만 오히려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것은 저 멀리에 있는 별똥별이 아니라 그냥 내 일상이라는 걸 알아갔다. 가까운 단위에서 실현할 수 있는, 나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 교육의 전반적인 분야에 문화예술이 스며들 수 있으면 좋겠다.
김도연
김도연
경기도 의왕에 있는 중고등 통합 대안학교 더불어가는 배움터 길학교 1기 졸업생이자 청년협동조합 뒷북 조합원이다. 뒷북에서 지역 청년의 학습과 자립을 고민한다. 청년잡지를 만들고, 페미니즘 책 모임을 하고, 방학이면 뜨개질이나 북아트 강좌를 연다. 최근에 출간한 독립출판물 『좋은 일 하시네요』(2020)에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대학에서 배운 사회학과 정치학을 지역에서 실현할 방법을 모색 중이다.
인터뷰 글 & 프로그램 사진 _ 김도연 청년협동조합 뒷북 조합원 water01210@gmail.com
인터뷰 사진 _ 이재범 POV스튜디오 andy45a@naver.com
정리 _ 프로젝트 궁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