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문화예술교육 지원법」 제정으로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공식화되면서 학교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이 급속도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양적 확대에도 불구하고 학교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아쉬움은 늘 있었다. 모든 국민을 위한 보편적이고 균등한 문화예술교육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어린이집, 유치원을 비롯한 학교에서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행하여지는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이 매우 크지만, 종합적인 관점에서의 교육 방향과 접근방식에 대한 논의와 방법론은 부재했다는 반성의 목소리가 「문화예술교육 종합계획(2018~2022)」에 담기기도 했다. 하지만 정책적 한계와는 별개로 현장에서는 학교 문화예술교육을 고민하고 개선하려는 크고 작은 실천과 움직임이 계속되었다. 충북문화재단 문화예술교육 연구개발사업 ‘헬로우 아트랩’도 그중에 하나이다.
지역에 밀착한 연구와 실험
충북문화재단은 2017년 파일럿 사업과 함께 「2017 충북 ‘헬로우 아트랩’ 생태계 전략 구축 연구」를 진행하며 장기적인 안목으로 지역 중심의 문화예술교육을 모색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2018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신규단체발굴랩, 지역공간거점랩, 주제랩, 교강사랩 등 세부 내용을 조금씩 조정하며 문화예술교육 연구개발 지원사업 ‘헬로우 아트랩’을 시행하고 있다. 말 그대로 지역 문화예술교육 생태계가 생성되는 토대로서 단체 간 협력을 지지하고 다양한 문화예술교육을 모색하는 실험실이다. 그중 교강사랩은 교사와 예술가(단체)가 만나 기존에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문화예술교육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협업을 통해 더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궁극적으로 아이들의 삶에서 예술을 만나도록 하는 교육 방법을 발전시키고 확산해 나가는 연구와 실험을 2017년부터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2019년 교강사랩에는 5개 예술단체와 8명의 현직 교사가 참여했다. 실험실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준비(Ready)-탐색(Explore)-도약(Jump)-함께하기(Together) 등 단계별로 연구 프로세스가 마련되었다. 실험을 추동하는 퍼실리테이터로 미술교육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활발히 작품 활동과 예술교육을 하고 있는 성정원 설치미술작가와 2002년부터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교사극단을 이끌고 있는 정창환 교사가 참여했다. 이들은 이 실험에 참가한 교사와 예술가(단체)의 공동의 목표를 더욱 공고히 하고 각자의 전문성과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서로 다른 입장을 조율하며 실제 실행한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하는 등 연구 프로세스의 내용적인 부분을 든든하게 담당했다.
“초등교사의 경우는 가르치는 과목이 많다 보니 수업 안에 상상력이나 미적 경험을 위한 어떤 장치를 만들지 세세하게 준비할 시간이 별로 없다. 중·고등학교의 경우에는 음악 미술 시간을 줄여서 최소로 남겨놓은 상황이다. 그래서 헬로우 아트랩 같은 시도가 필요하다. 삶의 한 양식으로서의 예술교육이 이뤄지려면 이에 대해 고민하는 교사와 예술가가 만나서 학교 시스템과 예술가의 방법론, 철학 등이 어우러져야 한다.”
– 정창환 소이초등학교 교사, 2019 교강사랩 퍼실리테이터
“사실 예술가 중에 학창 시절 학교를 좋아했던 분은 많지 않을 거다. (웃음) 그동안 학교와 너무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학교 시스템을 잘 모르는 부분이 있었고, 우리가 보기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학교에선 민원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다. 예술가가 학교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교육과정이나 기본적인 체계를 알아야 활용하거나 변형하는 것이 가능하다. 학교 예술교육의 벽을 허물려면 일단 예술가와 교사의 교류가 많아져야 한다.”
– 성정원 설치미술작가, 2019 교강사랩 퍼실리테이터
기능적인 분업이 아닌 적극적인 협업
교강사랩의 문제 인식과 가설은 교사와 예술가가 기능적인 분업이 아닌 적극적인 협업을 하면 더 나은 학교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헬로우 아트랩 공통으로 진행된 특강과 캠프, 성과공유회뿐 아니라 교강사랩 참가자 중심의 워크숍을 거치면서 실험 설계를 조금씩 구체화하였다. 교사들은 학교 시스템과 교육 과정, 교육 목표 등을 소개하면서 교과 과정에 예술이 개입하기를 바라는 의지를 보였고, 예술단체는 그간 진행했던 프로그램을 소개하며 예술적인 전문성과 지향을 밝혔다. 또한 교강사랩에 참여하게 된 동기-학교 예술교육에서 느끼는 아쉬움과 고민을 나누며 함께 협업하고 실행할 교사-예술단체를 매칭했다. 특히 예술단체의 프로그램 실행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면서 전체 예산의 20%까지 역량 강화 비용으로 책정할 수 있게 함으로써 연구개발과 기획 과정을 독려했다.
학교 예술강사 지원사업에서도 기획사업으로 기존의 수업과는 다른 방식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사업이 있지만, 교강사랩이 그것과 다른 특별한 지점은 예술가(단체)와 교사의 ‘만남’을 독려한다는 것이다. 학교에서의 예술교육이 중요하고 그렇기에 지금과는 조금 더 달라져야 하며, 교사와 예술가의 진지한 협업이 학교 내에서 이루어지는 예술교육의 수준과 질을 높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교사와 예술가(단체)가 만났고, 만남이 거듭될수록 서로에 대한 신뢰가 깊어졌다. 공식적인 6차례의 워크숍 외에도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개별 모임을 하기도 하고 전화 통화, 이메일, SNS를 활용하여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경험과 지식을 나누었다. 서로의 전문성에 대한 인정을 바탕으로 공동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기 위해 역할을 분담하고 기획하고 실행했다.
“자기의 예술 형식을 다른 활동과 결합할 수 있는 포용성이 강한 예술가와 그 개성을 존중하는 교사가 만나면 더 큰 시너지가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서로 호기심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인간의 삶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교육이 아니라 예술 활동으로도 만날 수 있다. 예술교육이 아닌 수업에서도 가치나 지향이 뭔가 다른, 예술적인 부분을 발견할 수 있지 않나. 그런 것으로 접점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 성정원 작가
“교사가 더 많은 예술가를 만나고 자신의 삶에 예술을 받아들이면 훨씬 더 풍성한 수업이 자연스럽게 일상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헬로우 아트랩을 통해 더 많은 예술가가 학교에서 교사와 협력하는 시스템을 만들면 좋겠다는 의도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여기 참여한 교사들을 깨우는 데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좀 더 넓게 생각하고 수업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정창환 교사

  • 문화공화국 BT&S 수음썸타

  • 부용-아지트 메이커스
학교-예술-교육, 실험을 키우고 이어가기
파트너가 된 예술가(단체)와 교사는 함께 교과를 분석하고 활동을 구체화하며 6~8회차로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2학기가 시작된 9월부터 11월 사이에 실제 학교 현장에서 풀어냈다. 프로그램 기획과 진행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없지는 않았지만, 학생들의 호응이나 학교 내부의 반응이 무척 좋은 편이었다. 교사와 예술단체도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한 것에 만족하고 이 실험을 지속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교사와 예술단체가 협업하여 교과와 예술을 융합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낸 것 자체만으로도 뿌듯한 일이지만 완성도나 확장 가능성에서도 주목할 만한 프로그램이 여럿 나왔다고 하니 더 좋은 일이다.
그 과정에서 어렵고 힘들더라도 예술과 학교의 접점을 찾아내고자 2~3년간 계속 교강사랩에 참여한 예술단체와 교사들이 나왔고, 부족한 프로그램 실행 예산의 일부를 학교 측에서 지원한 사례도 있었다. 교강사랩 참여를 계기로 예술꽃 씨앗학교 지원사업에 신청한 부용초등학교는 2020년 신규 운영학교로 선정되기도 했다. 예술가(단체)와 교사의 만남으로 만들어낸 교과 통합 예술교육 프로그램의 수도 지난 3년을 되짚으면 상당할 것이다.
이러한 교강사랩의 실험 성과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까. 예술단체 입장에서 교사와 학교라는 익숙지 않은 상대를 만나 협력적인 활동을 통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이 사업은 다른 지원사업에 비해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또한 매년 다른 학교, 다른 학년, 다른 교과목을 연계하여 새로운 프로그램을 내놓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교사로서도 수업과 학생 생활지도, 행정 처리에도 빠듯한 시간을 빼서 연수 시간이나 평가점수에 반영되지 않는 활동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학교 입장에서는 프로그램 진행 방법을 교사가 직접 익혀서 언제든 수업에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할 수도 있지만 여러 예술가가 참여하여 예술적 요소와 특성을 담은 진행 과정을 모두 옮기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렇게 어렵게 개발한 프로그램이 사장되는 것은 예술단체나 교사 모두 바라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학교에서의 (예술) 교육이 달라져야 한다는 이 실험의 전제에 동의하는 더 많은 교사와 예술가(단체)가 동참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고, 학교와 예술이 만나서 더 좋은 교육을 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를 크게 확산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예술단체 입장에서 아쉬웠던 점은 일회성 프로그램이 되어버리는 거다. 예술단체와 교사가 함께 쏟은 노력과 시간, 에너지를 생각하면 한 학교에서 6~8회 수업한 후에 끝나고 다음 해에는 다른 것 만들어야 하는 게 너무 아쉽다. 연속성의 측면에서 여러 가지 고려할 점이 있겠지만, 교사 연수로 가져가거나 후속 연구를 통해 체계화하는 방안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 성정원 작가
“예술이 미술교과 음악교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국어에도 수학에도 다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국어가 지문을 읽고 해석하고 작가의 의도를 외우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책 읽는 것, 시 읽는 것을 좋아하게 되고 문학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국어의 핵심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궁극적으로는 학교 안에 문화예술교육 기획자가 한 명씩 배치되어 교사의 예술적 역량을 높이거나 예술가를 초청해서 교육하게 하는 등 학교의 모든 문화예술교육을 코디네이팅하는 역할을 담당하면 좋을 것 같다.”
– 정창환 교사
2005년 「문화예술교육 지원법」 제정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아이는 지금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거나 사회 초년생으로 첫발을 떼었을 것이다. 이제 문화예술교육 지원 정책의 수혜를 받은 아이들이 우리 사회의 주역이 될 날이 머지않은 것이다. 학교 안팎에서 다양한 예술교육에 참여하며, 예술에는 정답이 없고 삶 또한 그렇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자란 그들이 열어갈 세상은 아마도 지금과는 꽤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 그러하기에 우리는 계속 학교 예술교육을 고민하는 것이 아닐까.
[2019년 헬로우 아트랩 교강사랩 개발 프로그램]
국민정책제안 공모 결과
예술단체 프로그램명 | 실행 학교 | 내용
문화공동체
컵CUP
‘문화공화국 BT&S 수음썸타’ | 상산초등학교 6학년 7개반 총172명
수학교과 중 원기둥 단원을 이해하고 원기둥의 길이와 음정이 연관된 것을 활용하여 파이프로 8음계 음정 악기를 만들고 합주를 진행
‘문화공화국 BT& 소소한 우리들의 이야기’ | 소이초등학교 6학년 총8명
학생들이 직접 축제를 기획하고 준비하면서 과정을 함께 나누고, 축제 진행에 필요한 요소에 교과를 접목하여 연결함
공작플러스 ‘우리는 멀티 스타즈’ | 문광초등학교 4학년, 5학년 총 20명
4학년 ‘삼각형, 사각형’ 5학년 ‘어림하기, 직사각형’ 등 수학교과를 연계하여 게임 콘셉트와 예술활동을 통해 즐겁게 몰입하는 프로그램
오직O.zig ‘부용-아지트 메이커스’ | 부용초등학교 4학년, 5학년 총 30명
학교에 비어있고 숨어있는 공간을 학생이 중심이 되어 바꿔보는 프로젝트. 디자인, 설계, 제작 등 과정에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학습 효과를 높임
‘다른 걸음 함께 걷기 시즌2’ | 상봉초등학교 특수반 4명
색, 질감 등의 소재를 이용하여 차이와 다름을 이해하는 시각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넘어 모두가 즐길 수 있도록 구성
생활문화공간 하다 ‘오예! 가을 책소풍’ | 생극초등학교 전학년 총136명
학교에서 매년 가을 진행되는 책소풍 행사를 마을의 문화공간과 연계하여 아이들이 직접 기획하면서 여러 예술장르를 활용하여 다른 시각의 책읽기를 시도
가물가물 ‘전설이 된 아이들’ | 청주교육대학교 부설초등학교 3학년 2반 총24명
미술, 국어 교과과정을 연계하여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다양한 예술장르를 결합하여 창의적인 표현 능력과 상상력을 이끌어내는 프로그램
‘아모르 파티 마을 이야기 : 우리 함께 살 수 있을까’ | 새터초등학교 2학년 1반 총 26명
바른 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 교과과정을 연계하여 다양한 가족, 이웃, 동네의 개념을 지식이 아닌 창의적 발상과 경험으로 추동하는 연극놀이 프로그램
사진 제공 _ 헬로우 아트랩 퍼실리테이터
arte365
남은정
프로젝트 궁리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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