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제의 근원이자 해결책이 ‘교육’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아무리 생각해도 교육이 변하면 세상이 나아질 것만 같았다. ‘내가 교장이 되어 학교를 운영한다면 이따위는 아닐 거야’ 하는 치기 어린 감정에 빠지곤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사범대학에 진학했다. (당연히, 이내 그 꿈 따위 까맣게 잊어버렸지만.) 대학에 다니는 동안 단 한 번도 교사나 기자 같은 게 되어야겠다 생각한 적은 없지만, 교사 독자들을 위해 월간지를 만드는 출판사에서 기자로 일을 하게 되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전국의 수업 베테랑 교사들을 만나고, 학급운영 달인들의 글을 다듬으며 ‘세상에 이렇게 훌륭한 교사들이 많은데 나는 왜 한 명도 만나지 못했을까?’ 생각했다. ‘성찰’ ‘업그레이드’ ‘교육과정’ ‘학력’ ‘학교’ ‘자치’ ‘수업’ ‘학급운영’ 등의 언어에 둘러싸여 지내던 그 시절 덕에 나는 아직도 교사에 대한 기대, 학교에 대한 기대, 교육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지도 모른다.
  • 『매일 교사가 되는 중입니다』
    (임광찬, 창비교육, 2020)
  • 『삶의 시간을 잇는 문화예술교육』
    (고영직, 살림터, 2020)
교사는 누구인가
35년차 교사, ‘선생님들의 선생님’으로 불리는 임광찬 교사는 다음과 같은 말들로 교사를 설명한다.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 ‘학생들이 의미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 ‘화분이 아니라 화단을 가꾸는 사람’ ‘미래에 이바지하는 사람’…. 하지만 내 아이의 학교에서, 우리가 사는 마을에서 그런 교사를 만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학교의 벽은 높고, 그 벽 밖으로 기꺼이 걸어 나오는 교사들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왜 우리 동네에는 그런 선생님이 없을까?’ 한탄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래서일까.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수업/활동으로 어린이·청소년들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교사의 마음’을 환기시키는 장치를 마련하는 일, 혹은 그런 마음을 가진 이들이 교육적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일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누구나 마음속에는 ‘진짜 교사’가 되고픈 유전자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함께 놀이터를 운영하는 학부모들이, 까페에서 소규모 워크숍을 진행하는 주민들이, 중학생들과 밴드 워크숍을 진행하는 청년 음악가들이, 우리 학교 학부모회가, 아이들과 독서모임을 꾸려가는 내가 그런 존재가 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당장 ‘진짜 교사’와 접속할 수 없다면 우리들 주변에 ‘교사의 마음’들이 더 많이, 더 활짝 꽃 피울 수 있도록 서로를 도우면 된다. 그리고 우리들이 ‘진짜 교사’에 한 발짝 다가가면 될 일이다.
교육철학, 수업 준비, 수업 재구성, 관계, 연수와 학습, 평가, 성찰, 혁신이라는 8개의 키워드로 ‘교사되기’의 지혜를 풀어낸 『매일 교사가 되는 중입니다』는 일차적으로는 학교 교사들을 위해 쓴 책이지만, 수업이나 활동이라는 형태로 누군가의 ‘의미 있는 경험’을 이끌어내는 모든 사람들이 읽어도 좋을 만하다. 그중에서도 ‘성찰하는 존재’ ‘연구[학습]하는 존재’로서의 교사, 그래서 함께 공부하고 의지를 굳건히 하는 조직[모임]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눈에 들어온다.
“성찰은 머물지 않고 흐름을 이어 가겠다는 것이다. … 그 무엇에 대한 대답에 머물지 않고 질문하겠다는 뜻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로 배우면 배울수록 ‘알아야 할 것’, ‘공부해야 할 것’이 늘어난다고 자각하는 것이다.”(162p.)
“‘교사의 힘’은 교과서에서 나오지 않고 ‘재구성’에서 비롯한다. 그러기에 재구성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이다. 재구성하려는 의지를 굳건히 가지려면 연구회 같은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65p.)
– 임광찬, 『매일 교사가 되는 중입니다』 중
필요한 것은 마을이다
농촌지역 학교에서 좋은 문화예술강사를 만날 가능성은 좋은 교사가 마을로 뚜벅뚜벅 걸어 나오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학교에서 문화예술강사들은 주로 방과후 교사로 활동하게 되는데, 이 방과후 수업을 기능주의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이 너무나 어렵게 느껴진다. 강사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지원도 보이지 않거니와 이들의 학교 내 지위는 일종의 ‘그림자’에 가깝다. 학교가 원하면 수업 시간의 반은 발표회 준비에 ‘올인’ 해야 하고, 학부모와 학생들의 평가가 좋지 않으면 언제든지 재계약이 안 될 수 있는 존재들이 바로 문화예술강사들이다.
반면 학교는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는지’에 대한 안내는 없이 ‘피아노’와 ‘바이올린’ 중에 무엇을 더 배우고 싶은지 묻는다. 10명 중 7명이 바이올린을 원하면 방과후 수업에 바이올린을 배우게 되는 식이다. 바이올린 강사를 구한다고 공고를 내고 백방으로 찾아보아도 오겠다는 강사가 한 명도 없을 때엔, 아쉽지만 바이올린 대신 우쿨렐레 수업을 할 수밖에 없는 게 지금 농촌지역 학교문화예술교육의 현실이다. 어찌 보면 지금 시골의 방과후 문화예술교육은 기능주의의 끝판왕이다.
“상품화, 시장화, 경쟁을 철저히 내면화한 교육 현장에 필요한 것은 돌봄, 사랑 그리고 연대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학교와 지역이 분리되고, 교육과 사회가 분리되며, 배움과 운동이 서로를 외면하는 사회에 미래가 있는가. 그런 사회의 교육은 교육이라 쓰고 축산업이라 읽어야 마땅하다. 아이들의 교육을 생각할 때, 필요한 것은 마을이지 쇼핑몰은 아닐 것이다.”(56p.)
– 고영직, 『삶의 시간을 잇는 문화예술교육』 중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교사-학부모-예술교육가-마을교사-행정가-기획자-활동가 간의 만남이 필요하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어떤 것이 좋은 삶인지, 어떤 배움을 기획해 마을의 아이들과 좋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것인지 대화하고 상상하는 학습공동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영직 문학평론가의 『삶의 시간을 잇는 문화예술교육』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깃거리와 공부할 거리를 던져준다. 고민하는 교사들과 교사가 아니지만 교사인 사람들에게 이 책은 분명 큰 용기와 울림을 줄 것이다. (책 속에 언급된 수많은 책의 제목과 저자를 수첩에 끄적거리며 ‘꼭 읽어봐야지’ 다짐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덤이다.)
우리는 ‘누구를’ 만나려 하는가. 만나려 하는 이들을 ‘이해’하고 있는가. 이 책을 읽으며 깊이 성찰해 보자. 그래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태도”의 변화이다. 태도란 곧 ‘상대방을 대하는 마음가짐’이렸다. “결국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저자의 말을 곱씹으며 속으로 되뇌어본다.
‘그래, ‘진짜 교사’가 되는 길은 마음가짐에 달려 있는 거야.’
어쩌면 당신과 나는 ‘매일 교사가 되는 중’인지 모른다.
이미지 제공 _ 살림터, 창비교육
이은진
이은진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함양교육지원청에서 학부모지원전문가로 일하고, 해 진 뒤, 혹은 파랗고 빨간 날엔 ‘빈둥’이라는 카페에서 동네 친구들과 이런저런 작당을 하거나 ‘카혼’ ‘우쿠렐레’ 같은 악기랑 놀며 지낸다. 코로나 덕분에 간만에 가정적인 직장인 엄마로 조용한 인생을 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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