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업의 조화를 향한 끈기 있는 모험

플러스마이너스1도씨

“우리는 기획자로서 기획할 때, 아무것도 미리 기획하지 않기로 했다.” 플러스마이너스1도씨(이하 ‘플마1도씨’)의 탄생 배경과 약 10년간 이어온 활동의 일관성을 살펴볼 때, 이 자기 선언은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스스로 기획자로서 자각함과 동시에 ‘기획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기 질문이 발화됨을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
기획하지 않는 기획자들
플마1도씨의 김지영, 유다원 공동대표는 2010년 설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꾸준한 자기 성찰을 통해 변함없이 ‘지역의 일상 속 발견된 기획’을 자기 주체성으로 발현하고 있다. 이들은 2006년 공공미술 영역 내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우연히 만났으나 돌이켜보면 운명적인 조우였다. 사회초년생으로서 첫 흥미를 끈 활동에 대해 순수한 열망이 가득했고 함께 협력하여 가치를 빚어내는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만족감이 컸기에 충분히 행복했다. 그러한 까닭에 약 4년간 다양한 프로젝트를 치열하게 함께 고민하고 동고동락하며 수행할 수 있었고, 동료들 간 관점의 다양성과 경험의 차이점이 인정되는 협업 관계가 밀도 있게 축적되면서 업무 외적으로도 신뢰감과 유대감이 제법 두터워졌다. 그러나 조직의 활동 범위 확장과 구조의 변화 속에 개인 업무가 점차 파편화되며 역할이 과중해질수록 자기 본연의 욕망은 시나브로 박탈되어갔다. 삶의 의미가 표류하고 업의 요령만 늘어갈수록 조직의 옷은 점차 자기 몸에 맞지 않아 결국 중차대한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업에 앞서 우리의 삶을 우선 돌보자.” 이제 ‘기획하는 업’에서 벗어나 ‘기획하는 삶’으로 전환하기 위해 채워진 것을 비워내고 내면의 온전한 굴곡을 오롯이 들여다보기로 한다. 단짝처럼 만난 동료들은 그간의 관성이 묻어난 활동을 기꺼이 멈추고 먼저 우리의 삶이 정착할 곳을 함께 찾기 시작했다. 군더더기 살이 빠질수록 뼈대의 골격이 드러나기 마련이듯 봄기운처럼 약동할 ‘자기 기획’의 미래가 어느새 민들레 홀씨처럼 2010년 서울의 어느 한 동네 골목 구석에 조용히 닻을 내렸다.
누군가가 “왜 모기동(행정구역 상 서울시 양천구 목2동을 뜻하는 애칭)에 오게 되었나요?”라고 묻는다면, 장소성에 대한 ‘왜’라는 이유가 명확히 존재하는가를 설명하기보다는 이미 머무르고 있는 모기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행위에 대해 ‘왜’라는 이유로 차분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플마1도씨 다울 것이다. 장소성에 대한 궁금증은 지나온 활동 과정의 맥락을 연결 짓다 보면 자연스레 이해될 수 있다. 인과율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자기 정체성을 찾아 나가는 현재 진행형의 여정 하에 지역의 삶 속에서 주체적 삶과 업의 조화를 끈기 있게 탐색 중인 플마1도씨의 출발점에는 한 가지 문제의식이 깊이 자리해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모기동 마을축제
상호 욕망이 상생하는 관계 역학
기획 프로젝트에서의 관계성 결핍과 일회적이고 소모적인 반복에 참을 수 없이 짙어진 회의감에 대한 반작용으로 기획의 의지마저 휘발된 채 아무 바람도 없이 그냥 모기동에 살고자 했던 마음이 2010년 카페 숙영원 운영이라는 첫 단추로 표출되었다. 이는 기획의 측면에서 자기 성찰의 고된 반증이다. 그래서 그저 카페를 열었을 뿐이고, 찾아온 손님 중 동네 이웃이 생겼고, 동네에서 알게 된 사람들 간 만남이 잦아질수록 상호 관계를 증진하고픈 욕망이 서서히 샘솟았다. 마침내 이전과 다른 결의 호흡이 찾아낸 연결성으로 지역 내 관계망을 이루며 자기 욕망뿐만 아니라 상호 욕망이 교감하는 과정이 녹아들면서 비로소 ‘자기 기획’이 움트기 시작했다. 이는 2011년 무엇이라도 해보자는 상호 공감을 촉발해 곧 축제 ‘궁여지책’이 탄생 되고 이로 말미암아 우리의 비전이 응집된 커뮤니티 씨앗이 잉태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때마침 마을예술창작소 사업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기획하지 않는 기획’, 즉 지역 속 관계 내 상호 교감과 공감이 발아한 씨앗을 골라내고 자라날 수 있도록 곁에 서는 기획의 서막이 열렸다. 실은 시작이 반이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기획자의 태도이지 않을까.
다만 기획 대상에 대해 긴밀한 접근을 멀리하고 자기 상상 속에 갇힌 짝사랑의 기획은 지독히 위험하다. “마주치는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난 아직 몰라 난 정말 몰라” 트로트 가수 주현미의 <짝사랑>에서 ‘기획자의 진솔한 고백’을 읽는다. 잠시 마주하고 뇌리에 새겨진 인상을 전부인 양 성급한 일반화로 단정하거나, 주변 상황의 맥락과 흐름을 읽지 못하고 대상에만 과몰입한 콩깍지가 씌어 제대로 곁에 서지 못한 기획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머리로만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가슴으로 기획하는 것은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바라본다는 것이지 않을까.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너와 같이 함께 라면 모든 게 달라질 거야” 지금은 고인이 된 가수 신해철의 <일상으로의 초대>에서 일상에서 꾸준히 ‘담백한 관계 속 기획’을 하는 플마1도씨만의 남다른 자세와 시선을 헤아려본다.
맹자가 말했던 역지사지(易地思之)는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기’를 뜻하는데, 기획에서 자기중심의 관점이 아니라 상대의 시각에서 사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실제 기획을 할 때 방법론 측면에서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을 고려한다. 그러나 이에 선행해야 할 것이 있다. 단순히 전적으로 상대를 위한 이타성만을 발휘할 때 활동이 지속 가능할까. 자기 욕망이 거세된 기획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했던 말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기획자로서 오만함을 버리고 스스로의 무지를 자각하고 성장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자신을 들여볼 때, 비로소 타인의 입장을 자기 입장처럼 세심히 살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이 자리를 튼 기획을 염두에 둔다면, 대상화의 과정에 자신과 타인 또는 자신과 지역의 입장을 분리해서 서로 다른 마음으로 바라볼 이유가 없다. 객관화된 실체에 자기 욕망과 공통된 필요성이 어우러져 이미 상호 영향 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에 작은 하나하나를 아우르는 큰 하나의 기획 의도가 선명히 자라난 셈이다. 즉, 우리라는 공동체가 구 단위 큰 마을처럼 형성되어 있더라도 동 단위 동네의 개별 독립성이 보존되어야 하고, 그러나 상호 긴밀한 영향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에 따로 떼어놓고 볼 수 없다. 이러한 불가분의 인식 과정을 철저히 겪은 플마1도씨는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이제 더 이상 부유하지 않고 모기동에 서서히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다.
  • 예술×동네 콜렉티브
  • 모기동 문화발전소
삶과 업의 유기적 결합
플마1도씨의 가장 강렬한 인상은 바로 ‘뿌리 깊은 기획’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과 과정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지금의 삶이 목격된 순간에 있었다.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카페 숙영원을 자체 운영하였다면, 2012년부터는 그곳을 사랑방 삼아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동네 사람들의 커뮤니티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어느 시점에서인가 모기동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가 가족과 같아졌다. 그러나 자기 욕망이 명확해지고 활동의 폭과 빈도가 늘어날수록 카페 운영은 점차 버거워졌다. 그러한 까닭에 카페를 그만두려 할 때, 당시 동네 사람들의 자발적 제안으로 카페마을 협동조합이 형성되었고, 카페는 이름만 바꾼 채 여전히 사랑방의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10인의 조합원 중 한 구성원으로 역할이 조정되어 ‘우리’라는 연결고리를 더욱 끈끈히 하는 힘을 길렀다.
주체가 바뀌어 가는 공간의 변천사도 놀라웠지만, 동시대 문화예술업의 기획자들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활동의 증거는 주거에 대해 뜻이 일치하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 공동의 선명한 목적하에 협동조합을 만들어 업의 터전이 분명한 모기동에 삶의 터전도 더불어 일구었다는 사실이다. 일상의 만남 속 신뢰와 믿음이 켜켜이 쌓여 형성된 울타리는 향후 모기동에서 플마1도씨의 삶과 업의 유기적 결합에 굳건한 근간이 되리라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개인과 지역의 상생을 예술로 발현하는 플마1도씨의 일상 문화 기획에 뜨뜻한 끈기를 끊임없이 불어넣을 뿐만 아니라 지역 문화 기획의 올곧은 이정표를 매일 상기토록 하는 중요한 알람이 되리라 예감해본다. 덧붙여 자기만의 휴식이 일상을 벗어난 일탈에 있지 않고, 오히려 이웃과의 수다나 동네 한 바퀴의 산책 등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삶의 충전이 일어난다는 고백은 삶과 업이 조화로운 기획자가 체득할 수 있는 ‘자가 동력’이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2018년부터 플마1도씨는 모기동이 속한 양천구로 시야를 확대하고 활동의 폭을 넓히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관점에서 볼 때, 그해 양천구의 문화적 환경을 파악하고자 제작된 ‘양천구 문화예술 지도’는 거리감을 좁히고 관계망을 이으며 상호 이해의 바탕을 만드는 선발대 역할을 했다. 이후 양천지역 문화 네트워크 공동운영단 <살롱장>, 양천지역 문화에 대한 다양한 공론장 <소셜살롱>, 분야별/관심사별 작은 모임인 <한뼘살롱>, 각자의 삶 속에서 하고 싶은 일을 기획하는 힘과 근력을 기르기 위한 <일상문화기획학교>, 지역과 일상에 새로운 상상력을 더하는 <예술×동네 콜렉티브> 등 현재 활동의 주효한 결실은 지난 ‘모험가적 기획 선언’과 ‘상호 욕망이 상생하는 관계 형성의 태도’ 그리고 ‘삶과 업의 유기적 결합’이라는 튼실한 뿌리에서 자라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플마1도씨의 실현 가치가 담긴 비전을 향한 발판이다.
  • 지역밀착 예술프로젝트 《CITY GAME》
  • 느긋한 시장
초심과 비전이 견인하는 변화와 성장
최근 도시 정책과 교통의 발전 등 생활환경의 변화로 인해 모기동에 새로운 기류의 낯선 바람이 유입되고 있다. 대중교통 접근도가 향상되면서 임대료가 일부 상승하고 역세권 범위에 빌라들이 차츰 생겨났다. 그리고 아직 교류의 물꼬를 트기 힘든 이주민들의 등장은 시간이 흐르면서 동네에 변화를 일으켰다. 이제 플마1도씨 역시 변화가 필요한 때이다. 다음 10년을 바라보는 플마1도씨는 그 해답의 실마리를 초심으로 돌아가 뿌리에서 찾을 것이 자명하다. ‘일상에 뿌리 깊은 기획’은 일상을 배제하지 않고 사람을 제외하지 않는다.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더욱 깊이 고민한다. 어쩌면 위기로 보일지 모르는 지금의 변화는 플마1도씨가 ‘일상에 뿌리 내린 기획’으로 그간 부단히 길러온 ‘끈끈한 힘과 뜨뜻한 끈기’를 재확인하고 진가를 드러낼 수 있는 기회이다. 그리고 모기동으로만 국한된 시야에서 벗어나 양천구로 확장된 활동을 통해 안과 밖의 경계를 오가며 문제점을 진단하고 양천구에 잠재된 다양한 유형의 자원을 연결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요컨대 구체적 해법의 가장 중요한 단서는 플마1도씨의 10년간 경험이 응집된 7가지 키워드-기획, 예술, 일상, 문화, 축제, 마을, 커뮤니티 등에 대한 단체의 가치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중 발견되었다.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상 속 활동들 그 자체가 예술 작품이라 생각한다.” 그 말 자체로 묘한 울림이 있었다. 예술이 가진 힘은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공감을 일으키고 감동을 선사하는 예술처럼 관계망 속에서 일어나는 문화예술 활동 행위를 예술 작품이라 읽어낼 수 있는 까닭은 결국 플마1도씨가 표방하는 ‘마음의 거리를 가까이’ 하겠다는 따뜻한 신념을 강건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끝으로 자크 랑시에르가 『무지한 스승』에서 말하고 있는 ‘교육’에 대해 ‘가르치는 자의 주입식 지식 전달이 아니라, 배우고자 하는 이의 의지를 촉발해 스스로 지식에 접촉하게 만드는 활동’이라 이해해본다면, 플마1도씨의 문화예술 활동은 곧 문화예술교육의 현장이지 않았을까. 일상 속 문화예술로 씨줄과 날줄이 촘촘히 엮인 생태계를 만들어 관계를 형성하고 욕망을 잇고 비전을 빚어 사건이 일어나고 무엇인가를 기억할 수 있게 만드는 모든 행위가 광의의 측면에서 ‘교육’의 산 역사이다.
사진제공_플러스마이너스1도씨
영상_박영균 영상작가 infebruary14@naver.com
서상혁
서상혁
2005년 축제 분야에서 ‘기획’을 처음 경험했다. 2014년 분야와 장르의 경계 없이 ‘자기 기획’을 통해 삶을 주체적으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소재와 형식으로 ‘후즈 페스티벌(Whose Festival)’을 진행하고 있다. 2016년부터 ‘기획과 연출의 경계’를 서성이다가 2018년부터 ‘이머시브 시어터’ 창작 활동에서 경계를 넘나들기 시작했다. 새로운 유형의 예술 창작을 탐구하고 시도하는 ‘후즈살롱’의 대표(크리에이티브 프로듀서)이며 현재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에 위치한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을 운영하고 있는 문화예술콘텐츠랩 축제행성의 대표(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다. ‘지구에 소풍 온 우주 보헤미안’이라는 관점으로 살아가고 있다.
astrobohemian@gmail.com
(프로필 사진 ⓒ 김경록 포토그래퍼)
1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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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3년 03월 06일 at 4:50 PM

    삶과 업의 조화를 향한 끈기 있는 모험
    플러스마이너스1도씨
    기대만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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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3년 03월 06일 at 4:50 PM

    삶과 업의 조화를 향한 끈기 있는 모험
    플러스마이너스1도씨
    기대만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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