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는 오해의 시작’이란 말이 있습니다. 현대에 와서 그렇게 이해된 오해를 받고 있는 것이 속담입니다. 지어낸 이야기가 속담의 유래인 양 오해하고, 속담 속 단어를 잘못 알기도 하며, 외국 속담을 우리 속담인 줄 착각합니다. 또한 속담 하나로 우리 민족성까지 폄하합니다. 이번에는 잘못 이해한 우리 속담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근거 없어도 그럴듯한
지금 비가 쏟아질까 아닐까를 두고 옛사람 둘이 소 내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생긴 말이 ‘소나기’의 사투리 ‘소내기’입니다. 이런 근거 없이 그럴듯한 어원을 민간어원설이라고 합니다. 사람이란 모르는 바를 어떻게든 이해하고자 하는 심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는 정보가 적으면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서라도 쉽게 이해해버립니다. 속담에서도 이런 민간어원이 작용합니다.
속담 ‘호박씨를 까다’의 유래담은 익히 아는 가난한 선비 부부의 슬픈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속담의 본모습이 ‘뒷구멍(항문)으로 호박씨를 까다’인 걸 알게 되면 앞서의 슬픔과 감동은 무색해집니다. 이 속담의 키워드는 호박씨입니다. 호박씨는 납작하고 잘 까지지 않아 귀찮으면 껍질째 씹어 먹곤 합니다. 그런데 호박씨 껍질은 소화되지 않아 똥에 그대로 섞여 나오죠. 보릿고개 때면 송기(松肌, 소나무 속껍질)와 풀뿌리부터 벌레까지 닥치는 대로 먹어 굶주림을 채웠습니다. 그러니 호박씨인들 남아나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집엔 좀 남았다 칩시다. 누가 보고 달랠세라 껍질 깔 새도 없이 얼른 씹어 삼켰겠죠. 하지만 똥에 껍질이 섞여 나오니 뒤로 남몰래 제 실속 챙긴 인성 껍데기가 홀라당 까인다는 설정입니다.
‘독장수구구는 독만 깨뜨린다’는 속담의 유래담은, 산더미 같은 독 지게 받쳐두고 얼풋 잠든 독장수가 부자 되는 꿈에 기뻐, 잠결에 활개 치다 지겟다리 탁 쳐서 비싼 독들을 다 깨트렸다는 이야기입니다. 독장수는 그렇다 치고 ‘구구’는 어떻게 설명할 건가요. 이것은 우리가 흔히 주먹구구식이라고 할 때의 그 구구입니다. 5단 이하는 암산으로 하고 6단 이상은 손가락을 꼽고 펴서 계산했습니다. 6×8이면 양손 각각에 6과 8을 꼽습니다. 그런 다음 펴진 것끼리는 더하고(1+3) 꼽힌 것끼리는 곱합니다(4×2). 그럼 48이 나오죠. 이게 주먹구구입니다. 이거 다 팔면 얼마 남으려나, 걸어가며 신나게 주먹구구로 따져봅니다. 게다가 ‘독장수구구에 박(머리) 터진다’는 속담도 있을 만큼 독 팔면 주먹구구로는 어림없는 큰 이윤이 남는데요. 아무튼 그렇게 눈앞의 손가락셈만 쳐다보다 자기 발치는 못 보고 돌부리에 걸려 와장창 자빠집니다. 당장의 지금은 안 보고 먼 미래만 섣불리 셈하다 큰 낭패를 보는 셈이지요.
이렇듯 저 어릴 때 못 들어본 얘기들이 요즘 어린이 책에 갑자기 나오는군요. 혹시 출판사가 작가 고용해서 지어낸 이야기는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근거를 따지면,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한테 들었다! 하면 끝일 테니까요. 아무튼 연산군 폐위 모의와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낙동강 전투와 ‘낙동강 오리알’ 등 거의 모든 유래담은 속담에 맞춰 그럴듯하게 지어낸 것들입니다.
단어를 오해한 속담도 많습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를 그린 어린이 속담 책들에선 징검다리를 손으로 두드리고 있습니다. 징검다리는 그 돌다리가 아닙니다. 그리고 발로 탁탁 디뎌보는 것도 ‘두드리다’ 입니다. <꼬꼬마 텔레토비>들은 배에 화면이 머리에 서로 다른 모양의 안테나가 달려 있습니다. 고양이 낚싯대 장난감 같은 게 꼬꼬마니 훌륭한 번역이었지요. 그래서 되레 ‘꼬꼬마’를 ‘꼬마’의 다른 말로 착각하게 만든 발단이 됩니다. ‘종의 자식을 귀애하면 생원님 수염에 꼬꼬마를 단다’는 속담에 꼬꼬마 대신 꼬마를 대입하면 하나도 안 맞습니다. ‘동아 속 썩는 것은 밭 임자도 모른다’에 나오는 ‘동아’라는 커다란 열매를 모르니 밭 둘레에 친 동아줄이 썩는 거로 오해합니다. 그리고 이 속담을 처음 수집한 사람도 오해했습니다. ‘밭 임자’가 아니라 ‘밭의 임자’로 수록했어야 맞습니다. ‘밭의’가 ‘바투’와 발음이 비슷한 걸 이용해 만든 속담이거든요. 바투, 즉 바로 곁에 있는 임자(아랫사람을 높여 부르거나, 나이 지긋한 부부끼리의 호칭)도 홀로 속 썩는 마음은 모른다는 뜻이니까요. 속담에 나오는 단어는 단 하나도 허투루 들어가지 않습니다. 줄이고 생략하면서도 끝까지 남긴 단어라 한 글자도 허술하게 볼 수 없습니다.
우리 거 같은, 우리 거 아닌 속담
<신데렐라>의 구두가 <콩쥐팥쥐>에서 물에 빠트린 꽃신으로 스며들었 듯, 외국 속담이 우리 속담인 양 버젓하게 유통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게 ‘혹 떼러 갔다 혹 붙여 왔다’입니다. <혹부리영감> 이야기에서 유래한 속담이죠. 그런데 이 이야기는 조선 통신사도 보고한 일본의 오래된 민담입니다. 그것을 일제강점기 문화침략을 위해 국어 교과서에 은근슬쩍 집어넣어 우리 전래 이야기인 양 오해시킨 것입니다. ‘한 치 벌레에게도 닷 푼의 결기가 있다’는 속담도 아마 일본 속담이 넘어왔을 것입니다. 일본에선 ‘한 치 벌레에게도 닷 푼의 혼’으로 쓰입니다. 우리 속담보다는 일본 속담의 배열과 더 가깝습니다. ‘청개구리 같다’는 말도 아마 중국에서 넘어왔을 것입니다. 떠도는 이야기를 모은 당나라 때 책에 엄마 청개구리와 아들 청개구리 이야기, <청와전설>이 나오거든요(일본에선 이 이야기가 한국에서 넘어온 줄 압니다). 요즘 외국 속담이 물밀 듯이 들어와 우리 속담처럼 쓰입니다. 대표적으로 ‘금수저 물고 태어났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가 있지요. 또한 ‘돌 하나로 두 마리 새를 잡는다’도 서양 속담(Kill two birds with one stone)이 일본에 들어가 ‘일석이조(一石二鳥)’로 직역되어 한자성어인 척 자리를 잡았습니다. 원래 동양 3국은 ‘일거양득’만 써왔습니다(지금은 중국에서도 일석이조를 꽤 쓴다는군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을 들어 시기심 많은 민족성이라며 부끄러워합니다. 인간 사는 곳에 시기심 없는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카인과 아벨도 있고, 독일어에는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남이 잘못돼서 고소해하는 마음)’라는 단어가 있으며,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도 “시기심 많은 이는 이웃이 살찌면 제가 마른다”는 명언을 남겼는걸요. 이렇듯 ‘우물 안 개구리’로 외국 사정은 모르면서 우리만 이런 속담이 있다며 창피해합니다. 사촌이 땅을 사서 배가 아픈 상황을 모르니, ‘사촌 땅에 똥거름 주려면 어서 배가 아파야 하는데’였다는 미담으로 둔갑시킵니다. 옛날에도 친척이 모이면 우리 애가 이번에 과거에 급제했다는 둥, 장사가 잘돼서 땅을 샀다는 둥 자식 자랑에 침이 마릅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맏이는 여태 장가 못 가서 어쩌우? 우리는 막둥이도 애 봤는데.” 생색내기로 걱정합니다. 할 말 없는 부모는 속 쓰리고 곁에서 듣는 자식은 배알이 꼴립니다. 형제가 잘되면 다른 형제에게 도움이라도 되련만, 사촌 잘돼봤자 이쪽에 돌아올 건 아무것도 없지요. 사람들 입방아로 속 터지는 비교만 당할 뿐입니다. 속담들이 만들어진 상황을 잘 파악해야 상황에 맞게 집어넣고 맛을 더할 수 있습니다. 어느 속담의 그 상황을 지금의 장면으로 풀어갈 수도 있겠지요.
창작은 근거 있는 상상
흔히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라고 하지만 이젠 안 맞는 말입니다. 인터넷은 얼토당토않은 거짓 정보들이 Ctrl+C, Ctrl+V로 인해전술 펼치는 오보(誤報)의 바다입니다. 어디를 뒤져도 ‘(다식)판에 박은 듯이’ 똑같이 나오니 “인터넷에서 그렇게 나와!” ‘채반이 용수 되도록 욱인다[우긴다]’ 그대로, 합리적 의심 없이 곧이 믿고 생짜로 우기게 되지요. 진짜 정보는 너른 바다가 아니라 깊은 바다에 있습니다. 창작은 상상력을 필요로 하지만 판타지 소설조차도 근거를 갖춥니다. <반지의 제왕> 호빗족이 쓰는 문자는 아일랜드의 고대 라틴어 문자인 ‘룬 문자’를 변형시킨 것이고, <소가 된 게으름뱅이> 이야기를 만든 사람은 클라이맥스의 ‘이리 살 바엔 차라리 무 먹고 죽어버리자’를, 소가 무 먹으면 배탈이 난다는 사실에서 차용합니다. 나무에 핀 버섯을 보고 아름다운 공생이라 쓰면 망합니다. 나무껍질 속 체관과 수관을 장악한 버섯의 실체, 그 균사 덩어리로 숨 막혀 죽어가는 나무로 써야 옳습니다. 오해하고 잘못 쓴 단어 하나로 문장과 작품이 빛을 잃듯, 사전적 풀이와 피상적 생각으로 속담을 가져다 쓰면 그 문장은 죽습니다. 속담의 근원적 실체를 모르면 페미니즘 소설에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처녀, 새색시)’를 넣는 오류를 저지릅니다. 속담을 시쳇말로 넣은 글은 맛이 없습니다. 속담을 아는 것은 지식이지만 속담을 간파하는 것은 세상을 꿰뚫는 지력입니다.

김승용
김승용
우리말 탐험가. 익숙한 말이 늘 낯설어 재미로 골머리를 앓는다. 관용구도 시쳇말에서 건지려 밤낮 곰파고 있다. 10년에 걸쳐 『우리말 절대지식: 천만년을 버텨갈 우리 속담의 품격』을 썼으며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트위터 (속담) @madein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