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기지촌을 원형에 가깝게 유지하고 있는 곳이 있다. 고산동 ‘빼뻘마을’이라고 불리는 곳인데, 그 이름의 유래에는 주변 배나무밭이 많아서 그렇다는 설과, 뺑이라는 식물이 많아서 그렇게 부르게 됐다는 설, 한 번 들어오면 발을 뺄 수 없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세 가지 다 빼뻘을 설명하는 데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경기 북부는 문화 소외 지역으로 분류되곤 한다. 국가 안보를 위해 지역이 희생한 시간이 그만큼 길었기 때문이다. 빼뻘마을은 한국전쟁 직후 미군기지 캠프 스탠리와 함께 자연 형성되었으나 평택으로 기지 이전이 본격화되면서 점차 쇠락의 길을 걷는다. 빼뻘은 한국 근현대사의 단면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음에도 기지촌이라는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외면당하고 있고, 재개발이나 토지분쟁 같은 지역적 과제도 산재한 곳이다. 또한 젊은 층이 외부로 빠져나가면서 남아있는 마을 주민 대부분이 고령자이거나, 저렴한 집값을 찾아 들어온 외국인 노동자로 구성되어 있어 상호 교류가 어려운 지역이기도 하다.
이름을 부르고, 시를 읽고
A.C.클리나멘(김현주, 조광희, 강현아, 이선애)은 지역 내에서도 고립되어 있고 주민들 끼리도 교류가 많지 않은 빼뻘로 들어가 관계 맺기를 시도하였다. 문화예술 향유의 경험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주민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그들의 신체와 인생에 주목할 수 있는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였다. 시를 매개로 한 <詩_시도 때도 없이 부르는> 프로그램은 이데올로기와 각종 이해관계에서 비롯한 갈등, 도시화로 인해 소외된 기지촌 지역민의 삶을 시를 통해 재발견하고 감각을 확장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매회 주어지는 시어들은 일상에서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사물이나 사건에서 발견되는 것들로 노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끌어내어 보편적 관심사를 만들어 낸다. 각 회차는 고유한 리듬을 가지고 운영되며 10회에 걸친 만남을 통해 참여자 자신이 스스로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서 작은 발견이 일어났다. 그렇게 프로그램은 참여자 안에서 서서히 자생력을 갖게 되었다.

생계 이외의 문제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사람들이 참여한 만큼 시간 맞추어 교육장에 오는 것부터가 사실상 본격적인 수업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빼뻘마을은 고령의 참여자가 많아 예술가들이 개별 가정에 일일이 방문하여 모시고 오기도 하고, 마을 방송 장비를 이용하여 안내하는 등, 별도의 노력을 기울였다. 사업 초반에는 참여자 수가 일정치 않고, 매번 새로운 참여자들이 나타나기도 하는 등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데 적지 않은 고충이 있었으나 회차를 거듭할수록 프로그램의 주축이 되는 고정멤버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총 10회로 구성된 <詩_시도 때도 없이 부르는> 프로그램은 ‘몸 열기 – 이름 부르기 – 시작 시 – 주제 시 – 주제 활동 – 마침 시’의 동일한 구조를 반복한다. 시를 함께 낭독하며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마치는 단순하고 반복적 행위는 활동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고 프로그램의 전반적인 흐름을 익히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이 과정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예술가들의 독려만큼이나 교육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삶의 에너지를 발견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럴 때 참여자들이 지속적 참여 의지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빼뻘마을은 공동체를 위한 별도의 시설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공간 섭외에도 어려움이 따랐다. 마을회관처럼 구성원들이 일상적으로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없다 보니 킹클럽이라는 기지촌의 유산과도 같은 공간을 정비하고, 내부에 남겨진 무대와 의자 등을 적절히 활용하여 운영해야 했다. 10여 년간 방치된 시설이다 보니 환기가 되지 않아 곰팡내가 나는 등 교육활동으로 적합한 공간은 아니었으나 예술가들이 장기간에 걸쳐 지저분한 물건들을 정리하고 공간 구석구석의 묵은 때를 벗겨내는 지난한 노동의 과정을 거치며 점차 쓸모 있는 모양새를 갖추어 갔다. 그리고 당신들의 가까운 삶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목격하면서 주민들도 조금씩 호기심을 나타냈다.

  • <詩_시도 때도 없이 부르는> 열일곱 빼뻘

  • <詩_시도 때도 없이 부르는> 꿀잠
빼뻘마을의 주름진 근현대사
A.C.클리나멘 김현주, 조광희 작가는 2019 농산어촌 이동형 문화예술교육 ‘움직이는 예술정거장’ 사업(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하 ‘움직이는 예술정거장’)과 경기북부 문화예술 지원사업(경기문화재단)을 기반으로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빼뻘의 모습을 아카이브하고 마을의 역사를 증언해줄 수 있는 주민들을 인터뷰하는 ‘빼뻘주름프로젝트’를 기획, 진행하였다. 오랜 기간 고립되다시피 한 마을의 경우 외지인에 대한 경계심이 높은 편이다. 삶의 형태를 바꾸는 일에 거부감이 크기 때문에 참여 대상자와의 긍정적 라포 형성에도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하다. 예술가 팀은 마을 초입에 있는 오복식당 주인과 시청 소속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았다. 마을에 대한 이해가 높고, 주민들의 실질적인 고충을 해결해주는 매개자가 있어 신뢰를 쌓는데 유리한 지점을 확보할 수 있었다.
A.C.클리나멘과 예술가들은 주민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유의미한 미시사적 사료(史料)로서 발굴해냈다. 과거 업소를 운영하던 식당 주인, 기지촌 여성이었던 할머니, 타 지역에서 이주해 온 외국인 노동자, 미군 부대에서 세탁 일을 하던 할아버지의 이야기. 근현대사와 맞물려 주름진 굴곡에서는 황해도 지역부터 시작한 이야기가 저 남쪽까지 이어지고 그 시간은 한국전쟁을 넘어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도저히 한 곳에 담길 수 없을 것 같은 이런 이야기들은 빼뻘마을에 남겨진 채 조용히 발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기지촌 형성 이전부터 살고 있는 주민을 비롯해 외국인 노동자와 저소득층 시민들이 새롭게 정착해 살고 있는 빼뻘마을은 구심점 역할을 해줄 만한 커뮤니티가 사실상 거의 와해되었다는 것을 인터뷰 과정을 통해 발견할 수 있었다. 기지촌 자체가 생계를 중심으로 형성된 특징을 갖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마을에서는 신‧구 주민들과의 관계부터, 주민과 지역 사이의 관계, 또 자신과 삶의 관계를 다른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는 일상에서 분리된 시간이 필요했다. 나와 상대, 지역과 더불어 자신의 삶까지도 대상화하기 쉬운 패턴에서 벗어나 ‘나’와 ‘너’가 경험을 통해 재발견 될 수 있는 관계라는 점을 환기하고자 하였다.
예술가들은 교육활동이 이루어지는 그 시간만큼은 어떤 목적도 가지지 않고 순수하게 그 활동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평소와 다른 근육을 사용하여 사고할 수 있도록 시와 같이 은유적이고, 복합적인 매개를 활용하였고, 삶 속에 끈끈하게 녹아들 수 있도록 베개나 꽃등 같이 일상생활에서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대부분이 고령자임을 감안하여 다과를 마련하는 일에서도 조금 더 세심한 배려를 기울였다. 전체 10회차 프로그램 각각이 주제별로 유기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한 기획자의 역량과 더불어 빼뻘마을과 같은 험지를 향해 찾아든 예술가들의 사명감에 가까운 열정이 없었다면 이 지역에 첫발을 내딛기조차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것 이면에 주민들과 만나는 길을 찾기 위해 애쓴, 너무도 많은 고생의 흔적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빼뻘주름프로젝트 오프닝
고단한 골목에 불어넣은 예술의 숨결
11월 16일 ‘빼뻘주름프로젝트’ 전시 오프닝 날, 고산동 빼뻘마을을 찾은 나는 자연스럽게 오복식당 문을 열었다. 주인은 처음 보는 외지인인 나에게 “김현주 씨가 하는 ‘그거’ 때문에 온 것이냐”고 물었고, 안에 계시던 분과 함께 식당 밖으로 나와 킹클럽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 주었다. 그렇게 도착한 킹클럽에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예술가들과 검은 비닐봉지에 박카스 두 병을 담아 가지고 온 할머니가 계셨다. “김현주 씨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닌다는 할아버지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을 위한 자리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다수의 참여자가 그 옛날 미군 클럽 시절부터 이어져 온 의자 위에 줄지어 앉아계셨다.
교육 프로그램은 구체적 목적하에 진행되기 마련이다. 대상자들을 가려내고 그 과정에서 효능감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해 고민한다. <詩_시도 때도 없이 부르는> 프로그램은 기지촌 노년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전쟁과 가난으로 척박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교육활동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얼마나 많았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경계심을 허무는 일부터 안정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공간의 확보,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일 등. 마을 투어 때 수락산으로 이어지는 길목 초입에서 한 할머니를 만났다. “김현주 씨, 마을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데 내가 같이 못 해서 미안해. 마을 발전을 위해서 같이 해야 하는데.” 프로그램명까지는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좋은 일임을, 그리고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함께 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해 말씀하고 계셨다.
쪽방촌을 이어 붙여 만든 고단한 골목에 불어넣은 예술가의 숨결이 이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과 관계의 싹을 틔우기 위해 아주 얕지만 가능성 있는 어느 지점에 씨앗이 뿌려졌음을 알 수가 있었다. 예술교육 현장에는 때로 삶의 위로가 필요하기도 하고, 어떤 곳에는 놀이가, 어떤 곳에는 배움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움직이는 예술정거장’은 물리적 이동만이 아니라 참여자가 필요한 모든 지점에 멈추어 설 준비가 돼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분단의 아픔을 넘어 평화의 시대로 향하고 있는 이 시점에 우리는 경기북부 어느 마을이 어떤 상흔을 간직하고 지금까지 버텨왔는지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일상에서 분리된 시간, 무목적을 지향한다는 것, 자신을 위한 놀이, 새로운 숨결, 서로를 불러준다는 것, 이러한 사소한 것들이 예술과 만날 때 관계는 결실을 맺는다.
<詩_시도 때도 없이 부르는> 프로그램에서 매회 낭독했던 마침 시를 인용해본다.
시도 때도 없이 당신의 이름을 부릅니다.
시도 때도 없이 우리의 이름을 부릅니다.
시도 때도 없이 참 좋은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사진 제공 _ A.C.클리나멘
김유리
김유리
의정부문화재단 아트캠프운영실에서 전시 및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청소년 멘토KB! 다문화 미술학교’를 기획했으며, 2018 올해의 성평등 문화상 신진여성문화인상을 수상했다.
academy92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