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문화예술교육 지원법」 제정 이후 예술교육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는 여러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전주에서는 어떤 시도를 하였을까? 외부의 시각도 그렇지만 많은 전주 사람은 예향의 도시에 산다는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나 정작 전주는 예술교육을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정책이나 시스템에서가 아닌 지역만의 방식으로 학습된 것은 있을 수 있으나, 함께 고민하고 모두에게 골고루 혜택이 주어지는 정책의 틀은 없었다. 이것은 비단 전주만의 과제가 아니라 전국 기초자치단체의 실정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광역단위의 문화예술교육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초자치단체는 소외되어 있거나, 정책에 반영되지 못한 상태이기도 하다. 우리는 문화 분권을 주장하고 노력하지만, 아직도 문화예술교육이 지역의 중요한 일이라는 인식조차 하기 어렵다. 때론 예술교육은 교육청의 일이고, 광역자치단체의 일이라는 생각으로 지역의 논의조차도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지역 기반 생태계 구축을 위한 기초단위의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가 계획되고 있다니 희망적이다. 우리는 미래세대의 창의력과 감성을 위해 예술의 씨앗을 어떻게 심어야 할까? 예술의 가치를 어떻게 일상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이러한 숙제를 안고, 생각을 모으고, 철학을 세우고, 시스템을 만들고, 환경을 조성하는 일련의 과정을 소개하려고 한다.
삶의 다양성 회복을 위해 시민이 함께 만드는 공간
‘천 명의 얼굴과 마음’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팔복예술공장은 예술을 하는 곳으로써 ‘창작, 실험, 놀이, 교육, 커뮤니티’의 기능이 작동되는 곳으로 만들자는 의견으로 좁혀졌다. 마음을 열고 얼굴을 맞대며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매주 라운드테이블을 진행하고, 관계가 있는 그룹과 개인을 일일이 찾아가서 인터뷰하였다. 팔복예술공장의 방향과 역할, 지속가능한 운영 등에 대해 담론을 형성하는 과정은 비생산적인 지루한 작업이었지만, 지역의 대표성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의사가 결정되거나 관 주도의 사업에서 ‘동원’이라 일컬어지는 행사성이 아닌, 누구나 와서 이야기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담론이 형성될 때 지속가능한 운영을 도모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철학을 통해 인생의 가치를 발견하고 역사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것처럼, 예술은 상상하는 것을 표현하게 하고, 서로 공감하게 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발견하고, 자아를 실현하게 함으로써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예술을 그 본질과 동떨어진 ‘기능’으로 대하거나, 대학 입시에 맞춰진 예술교육에 멈춰 있다. 현재 도시환경을 보면 50% 이상이 아파트에 살면서 알게 모르게 다양성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학교 환경을 보면 메이지 유신 때 만들어진 교실의 구조가 그대로 변하지 않았다. 어쩌면 다음 세대도 여전히 똑같은 교실에서 획일화된 교육환경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놀이터 또한 안전만 강조된 채 형태만 조금 다를 뿐 거의 비슷하다. 우리는 예술가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학생에게 예술의 경험을 통해서 건강한 인생을 살게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삶의 다양성을 회복하기 위해 ‘예술의 원시성 회복’이라는 주제를 정하고 개념을 만들어 가고 있다.
어떻게 하면 예술가들의 창의적인 사고를 지속하여 경험하도록 할 수 있을까? 지금의 예술교육 시스템으로 우리가 꿈꾸는 예술교육이 가능할까? 팔복예술공장에서는 예술가들이 지속해서 예술활동을 유지하면서 예술적 사고를 전달할 수 있는 몇 가지 실험적 작업을 해왔다. 지역의 상황과 예술가들의 생각을 파악하면서 무엇이 필요한지 실타래를 풀 듯 풀어내는 시도를 했다. 우선,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시대성으로부터 멀어지고 지역의 고유성에 매몰되거나 예술이 장르로 구분된 채 고립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대안학교 형태의 ‘AA(Art Adapter)’를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작가들의 창작 작업을 위한 이론교육에 중점을 두었었는데 이론교육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2년 차에는 이론교육과 함께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자신의 작업을 발표하고 전시로 이어지게 했다.
진행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만들어 갔는데, 다양한 생각을 교류하기 위해 지역작가는 50% 이상 선발하지 않기로 했다. 또한, 선발하는 과정에서 학교와 출신에 대한 배경은 고려하지 않고 예술작업 내용만을 보고 직접 인터뷰형식으로 선발하였다. 이러한 실험과 경험은 예술교육을 위한 ‘창작예술학교’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창작예술학교는 예술가들이 예술교육 현장에 투입되기 전 필요한 일련의 교육과 관련된 고민을 해결하는 과정이었다. 매년 30명의 예술가를 선발하여 ‘예술의 원시성 회복’이라는 이념 아래 이미지, 음향, 몸짓, 언어, 조형, 매체 등 6가지 개념을 융합하고 실험한다. 이론, 실습, 프로그램 쇼케이스를 만들고 교육 현장에 투입되어 모니터링 후에 최종 참여예술가로 선발된다. 이러한 시스템은 예술교육 플랫폼의 핵심이기도 하다.
예술이 일상에 녹아드는 진화하는 공간
환경을 조성함에 있어서는 초기부터 많은 고민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예술이 일상에 쉽게 녹아들 수 있을까? 공간구성은 우리가 추구하는 철학을 담는 작업으로 창작·실험, 꿈꾸는 예술터, 향유·커뮤니티 등 서로가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창작·실험 공간은 예술인들의 창작 레지던시 공간으로 예술의 다양성과 실험에 역점을 두고 있다. 예술가가 현장에서 작업하고 전시와 퍼포먼스를 통해 자기를 표현하는 것은 시민과 학생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예술 경험이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입주 작가 중 대다수가 예술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꿈꾸는 예술터는 실험실과 같은 활동실이 내부와 외부에 다양하게 있고, 이 공간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이 짜여진다. 예술의 경험을 통하여 자아를 발견하고 실현하기 위해,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키워가기 위해, 상상력과 창의성을 기르기 위해 ‘상상하는 것을 표현하고 서로 공감한다’는 목표로 실험과 창작이 있는 곳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학습자 중심(10인 이내로 구성), 과정 중심으로 참여자의 생각과 표현을 존중하며 다양한 공간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구현하고 있다. 현재 초등학교는 5×2(개인 5회 2시간), 중학교는 8×2(1인 8회 2시간)로 기본 프로그램에 인문학과 사회학이 더해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다양한 계층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으로 건축학교, 그림책 학교, 몸의 학교 등 특성화된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또한, 유아를 위한 전용공간과 야외 놀이터를 준비하면서 토요일에는 데일리 프로그램(Daily program)을 진행하고 있다. 유아기는 인지발달과정에서 비언어적 시기로 무언가를 만드는 호기심이 많을 때임을 고려해 교수자의 도움 없이 스스로 예술을 경험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간과 일상적 재료를 활용한 프로그램을 실험하고 있다. 유아 예술교육 공간은 발달과정에 적합하도록 전용공간으로 조성되어 있고 외부에 예술놀이터가 조성 중이다.
향유와 커뮤니티 공간은 예술이 일상화하기 위한 도구로 전시와 퍼포먼스를 통해 친근하게 다가오도록 격의 없는 전시가 구성되고 예술 경험과 창작을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향유와 커뮤니티 공간은 예술이 일상화하기 위한 도구로 전시와 퍼포먼스를 통해 친근하게 다가오도록 격의 없는 전시가 구성되고 예술 경험과 창작을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디자인 개념은 ‘진화하는 공간’으로 완결된 건축이 아니라 예술가, 건축가, 참여 학생들이 함께 공간을 만들어 가기도 하고 벽의 그림을 지우고 벽을 해체하기도 하면서 공간이 프로그램의 주체로 활용된다. 또한, 경계 없는 공간을 목표로 한다. 장르와 기능으로 구분되던 공간을 사용자에 따라 공유될 수 있도록 통합하였다. 공연장이 전시장이 되고 활동실이 되고 파티장이 되기도 한다.
미래세대를 위해 차곡차곡 만들어 채워간다
일주일 전(2019. 11. 5.)에 꿈꾸는 예술터를 개관했다. 사람들은 마치 개관한 지 3년은 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마도 건축설계 전 초기부터 실험적인 파일럿 프로그램을 수차례 시행했기 때문일 것이다. 먼지가 수북이 쌓인 곳에서 청소만 한 채 18명의 작가와 전시를 하고 학교를 찾아가 예술캠프도 했다. 공장을 빌려서 대안학교처럼 20명의 예술가와 함께 수업도 해왔다. 그리고 인근 3개 초등학교, 2개 중학교와 함께 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일련의 실험과 모니터링으로 시스템을 차곡차곡 만들어 채워가고 있다.
꿈꾸는 예술터 개관 때 전주는 예술교육도시 비전 선포식을 했다. 늘 꿈꾸어 왔던 예술교육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선언이기도 했다. 이제 전주는 예술교육도시 선포가 구호로 그치지 않도록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조직과 예산이 만들어지고 조례를 준비 중이다. 또한, 전통 예술교육을 전담하는 한국전통문화전당과 연계하고 서학동 예술인촌과 연계를 논의하고 있다. 그리고 핀란드의 아난딸로처럼 전주 모든 지역에서 모두에게 골고루 예술교육이 가능하도록 네트워크를 준비하고 확장하는 계획을 하고 있다. 그리고 팔복예술공장은 예술교육의 플랫폼 역할을 하며 예술교육도시의 초석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11월 14일 ‘창조력, 상상력과 놀이, 미래세대를 위한 예술교육’이라는 주제로 ‘제1회 예술교육 전주 국제포럼 2019’를 개최하였다. 기초지자체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모든 행사에서 자리 한 번 뜨지 않는 시장님의 모습에 결연함이 보인다. 연사로 참여한 사이먼 스페인(Simon Spain) 호주 올댓위아(All That We are) 디렉터, 게르하르트 예이거(Gerhard Jager) 벨기에 ABC(Art Basics for Children) 대표 , 단 헨드릭(Dan Henriksson) 핀란드 클록리케 디터른(Klockrike Teatern) 연극극장 감독의 조언과 찬사 속에서 필자는 그동안의 작업과정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유럽이 잘 갖춰진 교육환경 속에서 수십 년 간 예술교육시설을 운영했다면, 우리는 ‘대학 입시’라는 현기증 나는 교육환경에서 이제 꿈꾸는 예술터를 시작했을 뿐이다. 토론자 중 한 분은 여기까지 온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지만 앞으로 지속가능하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방점을 찍었다. ‘지속가능’은 전주시와 시민의 숙제이자 우리 모두의 몫이다. 우린 선거 한 번 치르고 나면 조직이 와해되고 예산이 삭감되고 정책이 변하기도 한다. 우리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미래세대의 창의력과 행복한 삶을 위해 오늘 예술의 씨앗을 심는다’는 것이다. 30년 이후를 기대하면서.
사진제공_팔복예술공장
- 황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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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1996년부터 “(주)건축사사무소 바인” 을 개소하여 대표로 일하고 있으며, 인하대학교에서 겸임교수로 설계스튜디오와 융합대학원에서 문화경영을 지도하였다. 문화관광체육부 폐산업 문화재생사업 컨설턴트단장(2015~2016)과 문화도시 실무평가와 컨설턴트로 현재 활동하고 있다. 인천아트플랫폼 MA와 캠프그리브스 미군부대 재생프로젝트 MA로 역임하였고 전주시 팔복예술공장 총괄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hswvin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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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교육도시, 꿈꾸는 예술터로 도약하는 전주의 미래
전주 꿈꾸는 예술터 ‘팔복야호예술놀이터’를 개관하며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