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기초 문화예술교육 활성화를 위한 함께 이야기하는 집담회’가 11월 11일 오후 청년문화공간 주(JU)에서 열렸다. 100여 명의 참여자들은 지역 문화예술교육 활성화를 위한 방안들에 귀를 기울이고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며 집담회의 내용을 채워갔다. 집담회를 준비했던 구성원 중 한 명으로 가장 우려했던 것은 집담회가 패널들만의 말 잔치로 끝나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그런 걱정은 기우였음이 밝혀졌다. 개인 참여자, 기초와 광역문화재단 관계자를 막론하고 관심은 뜨거웠으며 논의 역시 끊임없이 이어졌다.
<‘2019 기초 단위 문화예술교육 활성화를 위한 집담회’ 현장>
기초단위 문화예술교육을 기획, 촉진하는 거점
집담회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나눈 사안은 2020년부터 예비지원을 계획하고 있는 기초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 대한 것이었다. 센터의 역할과 위상은 어떠해야 하는지, 실제 활동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그것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 다양한 논의들이 오갔다. 아마도 이날 가장 많이 회자된 문장은 ‘센터라 쓰고 활동이라 읽는다’였을 것이다. 사실, ‘기초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이하 ‘기초센터’)라는 명칭이 주는 경직성으로 인한 오해가 적지 않다. ‘센터’라고 하면 우선 번듯한 공간 인프라와 지원사업 등을 떠올리게 하는 현실이 견고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초단위 거점으로 활동할 신생 단위를 지칭하는 명칭으로 센터를 대체할 말이 마땅찮은 것도 현실이다. 그래서 실제로는 ‘센터’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활동에 대해 강조하는 방식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 말은 현재 기초센터와 관련한 논의의 단면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 여는 말을 맡은 강승진 히든어셈블 대표는 기초센터의 성격을 ‘기초단위 문화예술교육을 기획, 촉진하는 거점’으로 소개했다. 다시 말하자면, 기초센터가 시설과 예산을 통해 지역의 문화예술교육을 서열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초 지자체 내에서 벌어지는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어떻게 역동적으로 재구성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단위라는 뜻이다. 강승진 대표는 지원조직이 아닌 실행 조직으로서의 매개 기능을 강조하며 센터의 활동 방향을 ‘중앙의 공급자 중심에서 지역의 수요 중심으로’ ‘프로그램 지원에서 현장 주체들의 활동과 네트워크 지원으로’ ‘행정 전달체계에서 현장 실행체계로’ ‘균형 발전에서 지역별 특화 발전으로’ 등 대표되는 변화로 설명했다.
경쟁 아닌 강점을 공유하는 협력 방안 필요
이날 논의는 기초센터의 핵심가치로 꼽힌 ‘협력’ ‘지역 맞춤’ ‘지속가능성’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양혜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예술정책연구실장은 기초센터의 가장 중요한 활동 방향 중 하나로 협력적인 실행과 협력적인 기획을 꼽았다. 이어 협력이라는 키워드를 설명하기 위해 누구와 협력할 것인가, 무엇을 협력할 것인가,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 어떻게 협력을 지속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인가, 어떻게 다양한 협력모델을 확보할 것인가 등의 질문을 바탕으로 논의를 이어갔다. 양혜원 실장은 지역 문화예술교육의 확산과 실질화를 위해서는 협력의 대상을 예술강사와 문화예술교육단체를 넘어 문화기반시설과 학교, 평생교육기관, 복지와 청소년 영역, 농림부나 국토교통부의 사업단위까지 다층적 구조로 확대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인적 자원과 공간 자원, 정보 협력 및 공유, 참여자에 대한 협력 등 지역의 자원을 공유하는 방식을 제안했으며, 이를 위해 협의체와 워킹그룹을 통해 상시적 협력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협력의 지속성을 위해 시간과 비용, 에너지를 실질화하는데 필수적인 인력과 예산, 지자체의 관심을 중요한 요소로 꼽았으며, 민간 단위 모델과 기초문화재단 등 공공영역 모델에 대해 장단점을 거론하며 다양한 운영모델이 실험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지역의 협력 구도가 자칫 기존 시스템으로 회귀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걱정이 제기되기도 했다. 인천문화재단 관계자는 “광역센터 초기에 지역에서 교사, 예술가, 지역 유관기관 등의 논의 테이블을 만들었으나 결국 지원사업으로 수렴되고 말았다”며 공모 형식의 지원사업을 넘어서지 않으면 기초센터의 협력이 다시 기존의 시스템으로 복귀하게 될 것을 우려했다. 현재 공모사업으로 일원화된 구조에 대한 염려는 다른 참여자에게서도 제기되었다. 지역에서 공모사업을 두고 경쟁하는 단체 간의 협력은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겠느냐는 진단이었다. 공모사업이 예산을 볼모로 지역의 단체들을 서열화시킨다는 비판은 오랫동안 제기되어 온 것이다. 이런 현실은 지역의 한정된 자원을 두고 단체들이 경쟁하기보다는 협력할 수 있는 방안들이 다각도로 모색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집담회에서는 단체들이 공동으로 지역을 읽는 연구를 진행하는 방안, 사업의 결정구조 자체를 참여단체들이 결정하는 것을 통해 서로의 강점을 공유하고 협력을 촉진하는 방안 등이 거론되었다.
종로문화재단에서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활동가는 지역과의 연결점 마련에 있어, 다른 단체들과 만나 고민을 나누며 문제들을 풀어간 사례를 공유해 주었다. 함께 활동할 수 있는 공동의 목표가 있을 때 정서적으로 가까워지고 협력과 신뢰가 나온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소중한 협력의 경험이기도 하다.
협력과 지역 맞춤이 지속가능성을 만든다
‘지역 맞춤’에 대해서는 최지만 삶지대연구소 대표가 논의를 이끌었다. 최지만 대표는 사전신청을 통해 나온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했다. ‘지역에 맞는 계획을 누가, 어떻게 세울 것인가’라는 질문에 민간 영역에서 기존의 관성화된 시스템을 다른 방식으로 변모할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보였다. 다양한 그룹들이 기초센터를 공론화하고 합의된 언어를 도출하기 위한 노력을 쏟는다면 지역의 이슈를 잘 담아내는 방식의 기초 센터가 구성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역 현황의 이해로부터 출발하는 문화예술교육’에 대해서는 지역별 편차를 담아내기 위해 센터의 조건과 유형을 최소한으로 제시하고 1년간의 예비기간을 두어 지역을 충분히 읽을 수 있도록 논의 중임을 강조했다.
현재 전국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문화도시 사업에서 채택하고 있는 예비단계 지정과 거버넌스를 강조하는 상향식 의사결정 방안 등의 적용에 대한 논의도 함께 진행되었다. 원주시 창의 문화도시지원센터에서는 그림책을 기반으로 시민들의 거버넌스를 짜고 다양한 활동을 조직해 낸 사례를 공유해 주목을 받았다.
‘지속가능성’은 한국문화의집협회 우지연 이사가 논의를 이어갔다. 우지연 이사는 기초센터를 만들어나가는 과정 자체가 지속가능성을 만드는 것이라는 자각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지속가능성은 결국 생태계의 문제이고, 따라서 어떤 성과를 얻은 후에 따라오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기초센터의 핵심가치로 꼽고 있는 ‘협력’과 ‘지역 맞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지속가능성이다. 기초에서 다른 상상을 하기 시작하면 지역 안에서 판단, 계획한 내용을 가지고 광역이나 중앙에 역으로 제안할 수 있는 과정이나, 지역의 필요에 따라 예산을 배분하는 방식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연장선상에서 지역의 현실을 잘 담아내는 구조를 위해서 매칭 방식을 바꾸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제안도 있었다. 인천문화재단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사업 방식이 ‘정책 전달 체계’가 아니라 몇 가지 사업을 세팅하고 지원금을 뿌리는 통로가 되는 ‘정책 사업 전달 체계’라고 규정하며 동일한 구조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기초센터 역시 바텀업(상향식) 방식이라면 지역의 자발적인 재원 조성과 사업구성에 대해 중앙정부가 매칭하는 방식이 더 적절할 거라는 주장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기초지자체가 선도적으로 예산을 배정하는 경우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적절한 밸런스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덧붙여졌다.
한편에서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간 진행되었던 기초센터에 대한 평가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초기의 문화예술교육 채널을 기초단위에서 계속 구성해 왔다면 지금은 지역 단위에 더 많은 주체와 활동이 건강하게 분포되어 있을 거라는 아쉬움의 표출이었다.
영화 <기생충>에서 대책 없는 가장 송강호는 말한다. “계획이 없는 게 계획이다”. 계획을 세워놓으면 계획을 벗어나는 요소가 나와서 결국 실패하게 된다는 게 그의 논리였다. 기초센터와 관련해서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초지자체의 상황은 한두 개의 분류나 규정으로 정리할 수 없을 만큼 복잡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지역의 특성을 모두 담아낼 수 있는 계획을 잡기는 어렵다고. 기초센터와 관련한 구체적인 계획을 내어놓거나 고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다. 지역의 다양한 결을 하나로 고정하려고 하는 시도는 결국 실패하고 말 것이다.
전환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올해 초, 12곳의 지역을 순회하며 간담회를 진행할 때부터 꾸준히 이야기했던 것은 지역이 정책전달의 말단으로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생성하고 발신하는 주체가 되는 방법에 대해 머리를 맞대보자는 것이었다. 물론, 어떤 면에서 기초센터 논의는 전달체계의 완성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광역단위를 중심으로 지역사업을 논하고 진행해 오는 데서 지역화의 한계가 있었다면, 그것을 기초단위로까지 확산 시켜 더 많은 이들이 문화예술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확장한다는 차원에서 그렇다. 그러나 동시에 기초센터는 지역이 자기의 목소리를, 지역의 현황에 가장 걸맞은 필요한 형식과 내용을 갖춘 활동을 어떻게 창출해낼 것인가를 가장 중요한 포인트로 상정하고 있다. 공모사업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곤 하는 것이 지역의 질서가 아니라 중앙의 지침에 따른 사업구성이 불러오는 경직성과 지역성이 탈각되는 상황이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에겐 문제와 상황을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는 단일하지 않고 한 번에 생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복잡하고, 수많은 상황은 나름의 문제를 심화시킨다. 문화예술교육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문제의식을 쪼개고 전체 상황을 재구성하지 못한다면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잡는 것도 점차 멀어질 수밖에 없다. 협력, 지역 맞춤, 지속가능성을 지렛대로 지역을 깊이 읽고 들여다보는 과정, 기존의 관성을 넘어서는 전환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는 또한 문화예술교육의 질적 심화를 위한 하나의 과정이 될 것이다.
안태호
안태호
협동조합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사단법인 한국문화정책연구소,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활동가를 시작으로 웹진 [컬처뉴스] 편집장, 부천문화재단, 제주문화예술재단 팀장 등을 거쳤다. 함께 쓴 책으로 『나의 아름다운 철공소』 『노년예술수업』 등이 있다. 스무 살 무렵 빼어난 재능들에 주눅 들어 창작에서 도망친 후, 예술 동네 근처에서 얼쩡거리며 문화정책과 기획 관련 일을 해왔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왕성한 문화 소비자가 꿈이며, 여전히 만화를 보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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