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옛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부지에 경기상상캠퍼스가 문을 열면서 다사리문화기획학교도 이곳에 자리 잡았다. 도시에서 보기 힘든 울창한 숲과 아름다운 산책로가 있는 오래된 대학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만든 장소에서 문화와 예술의 역할을 고민하고 시대와 사회의 문제를 함께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는 학교가 열리게 된 것이다. 더구나 이 학교는 재미있게 ‘노는’ 학교를 표방한다. 학생들을 강요하지도 재촉하지도 않고 ‘모두가 말하고 모두가 잘사는’ 문화기획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다는 얘기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문화기획의 성찰과 실천을 가르치는 학교, 다사리문화기획학교 김월식 교장을 만났다.
2016년부터 다사리문화기획학교를 이끌고 계신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사실 다사리문화기획학교는 2015년 경기문화재단 본관 2층에서 출발했다. 김종길 선생(현 경기도미술관 학예팀장)이 ‘다사리’라는 독립운동가 민세 안재홍 선생의 사상에 기반한 장기 과정의 학교를 만들자고 해서 시작했다. 경기상상캠퍼스로 옮겨오기 전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잠깐 4개월 단기 과정도 진행했다. 2016년에 여기서 2기를 시작하면서 비로소 학교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다.
그보다 먼저 2006년에 경기문화재단에서 매개자 양성 연구와 함께 80주짜리(!) 비슷한 과정을 했었다. 그때는 제가 젊었고 열정적이었을 때라… (웃음) 그것 때문에 다사리문화기획학교도 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때는 주로 예술가를 대상으로 예술 언어를 교육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을 운영했다면, 다사리에서는 평소에 뭔가 문화적인 취향을 가지고 조합하고 싶은데 기회는 없고,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고, 배울 곳도 마땅치 않은 분들에게 구체적이진 않지만 조금 더 자기 생각을 명확하게 만들 수 있는 과정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처음부터 문화기획자를 만들자는 생각은 없었다. 내가 요즘 좋아하는 이야기로는 문화적 실천자, 문화적으로 말할 수 있고 문화적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기획이 전면에 나오지 않는다.
주로 어떤 분들이 참여하나? 예술을 전공하신 분들이 많은 편인가?
전혀 무관하다. 오히려 예술 전공자보다 비전공자들이 더 많다. 심지어는 완전히 다른 분야, 회계사 출신도 있다. 사실 다사리문화기획학교에 와서 1년 남짓 안 되는 과정을 이수했다고 해서 문화교육자나 문화적 실천가가 되는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대학 과정과 직장 생활을 합해서 10년 정도를 투자했던 자기의 인생을 전환하고자 하는 용기를 갖고 다사리를 선택해 준 데 있어서 책임감을 느낀다. 평소 문화적 갈증이 있었고, 이 일이 훨씬 재밌다고 느끼는, 용기를 가진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분들이 문화계에서 다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전략을 좀 바꿨다. 문화계에서 활동하지 않아도 되는 문화인들을 다사리에서 양성하자. (웃음)
선생님께서 굉장히 열정적으로 강의하신다는 소문을 들었다. 전에는 여러 대학 강의도 하셨던 것으로 안다.
사실 지금 내가 써먹는 모든 강의 스킬은 입시 미술학원에서 다 터득했다. 말도 안 되는 아이들을 대학에 척척 붙여서 유명했다. 합격시키면 보너스가 대단했었다. (웃음) 기본적으로 사람을 만나서 가르치는 일을 좋아한다. 열심히 하면 학생들을 잘 가르칠 수 있다는 신념도 있었다. 계원예술대학교 겸임교수를 그만두면서 대학 강의는 모두 고사했다. 사실 대학 강의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그전부터 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는데… 실천하지 않는 학문을 가르치는 대학, 예술의 본질에 대해 외면하는 예술대학, 동료들의 침묵과 무관심, 학내 정치, 이런 것들에 실망을 느끼게 된 것이다.
다사리문화기획학교 강의와 대학 강의에 차이가 있나?
생각해 보면 크게 다른 것 같진 않다. 강의에서 중요한 게 뭐냐고 물어보면 100% 강사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선생님의 열정과 현장에서 쌓은 콘텐츠, 그것을 빠르게 학생들의 언어로 대체해 줄 수 있는 순발력 같은 거다. 수없이 모니터링하러 다니면서도 ‘똑같은 얘기도 사람이 바뀌면 다르구나’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저 사람이 하니까 대단한 이야기가 되는구나’ 하고 느낀다. 교육에서 그 사람의 삶과 경험과 지혜, 사람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강사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는 비슷하다.
미루어 생각하면 다사리문화기획학교에서는 가르치고 싶은 것을 가르칠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는 되게 좋다. 사실 예술, 특히 동시대 예술이라는 것은 뭔가 문제의식을 갖고 그 문제의식을 개선해나가거나 수정해나가는 방식이다. 때로는 그게 전면적인 전쟁 같은 일이 될 수도 있고, 풍자와 해학이 될 수도 있고, 은유와 상징으로서 계속 그런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예술인이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데 그것에 대해서 완전히 침묵하고 근대적인 탐미적인 예술관만을 이야기하거나, 세상을 향해서 예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벽을 향해서 자기 그림 하고만 얘기하니까… 이런 것들이 대학교육에 대해 기대가 깨어지고 허무함을 느끼게 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정작 여러 예술대학을 다니셨지 않나? 스스로 필요한 교육을 찾아다니셨던 건가?
아니다. 학력세탁이다. (웃음) 예전엔 ‘인덕원 아티스트’가 꿈이었다. 별로 유명해지고 싶은 꿈도 없고, 동네에서 소소하게 그림이나 그리고 술이나 마시면서 오지랖이나 늘어놓는 소시민적 삶을 꿈꾸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미술이 읽히고 예술계가 유추되기 시작했다. 읽기가 재미있고 비판이 가능한 관점 같은 것이 생긴 것 같은데, 지역과 현장에서의 몸빵이 나름대로 자양분이 되었을까? 이 막연한 유추적 감각은 확인과 점검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 확장 가능하고 넓은 네트워크로 가는 가장 쉬운 선택이 학교였다. 그러나 학교는 여전히 실망스러웠고, 그것이 예술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더 많이 던지는 계기가 되었다. 꼬깃하고 지저분한 인덕원을 빨고 다려서 공을 들인 학력세탁이라는 게 몸에 어울리지 않은 양복을 입은 불편함으로 되돌아오기도 했다. 사실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는데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머리가 너무 굵고, 시스템에 너무 부정적인 상태에서 아카데미라는 것은 그야말로 학력세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셈이 된 듯하다.
청소년문화공동체 품 게시판에 선생님 강의를 듣고 쓴 후기가 있었다. ‘세상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스스로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스스로 배운다는 것이 어떤 걸까?
오래전부터 청소년문화공동체 품의 정기후원자로서 가끔 강의 요청이 오면 나가곤 한다. 그런데 왜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 잘 모르겠다. (웃음) 그런데 이럴 수도 있겠다. 내가 나의 삶을 조금도 전환하지 못하면 타자의 삶에도 전혀 관여할 수 없다. 내가 실천하고 내 삶을 변화시켜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지, 위계를 갖고 남에게 시키는 것, 뭘 하자고 들이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스스로’는 자발적 실천과 성찰이라고 본다. 그렇게 실수와 경험이 누적되면서 스스로 터득하게 되는 삶의 지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어떻게 스스로만 배우겠나. 다 타산지석이고, 남들 통해서 배우는 것이다.
무엇으로 타산지석을 삼으시는지 궁금하다.
옛날부터 어떤 예술가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이 너무 어려웠다. 좋아하는 예술가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 질문도 비슷한 것 같다. 예를 들면, 민운기 스페이스 빔 대표의 ‘삶의 진정성’이 좋다. 너무 근사하다. 우리 다사리에서 함께 멘토를 맡아준 주성진 문화용역의 ‘유머’가 너무 좋다. 박이소 작가의 세상을 쓸쓸하게 보는 감성이 좋다. 고영직 문학평론가의 레퍼런스를 뚫고 횡으로 딱 엮는 기술 같은 것이 너무 좋다. 엊그제 『경제의 속살』이라는 책을 쓴 이완배 기자가 강의했는데 진짜 명강의였다. 정말 매력적이었다. 자신의 경험을 곱씹어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왕성한 소화력과 실천의 근육이 쌓인 사람들이 너무 멋있고 부럽다. 사람마다 장단점이 다 있다. 어차피 여러 사람과 만나 일을 할 때는 좋은 점을 보고 같이 일하는 거다.
자발적 성찰과 실천을 말씀해 주셨는데, 그게 제일 어려운 것 아닌가?
아니다. 이미 다 하고 있는데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하는 것도 선택과 실천이다. 만약 내가 약간 더럽고 냄새나지만 어제 입었던 옷을 하루 더 입는다면 알게 모르게 환경 생태계에 실천적으로 기여하는 것이다. 어느 지역아동센터에 갔더니 아이들이 집에서 센터까지 걸어 다니고 음식을 깨끗이 다 먹고 분리수거를 칼같이 하더라. 아이들이 탄소 배출량 같은 것을 염두에 두진 않았겠지만, 누가 그것을 생태교육이라고 얘기하진 않겠지만, 아이들이 이미 생태적 삶을 실천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태를 대상화하기보다는 삶 속에서 성찰하고 실천한다는 의미이다.
좋은 선생은 모든 학생에게 다 다른 생각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인터뷰를 보았다.
엄청 많이 하는 이야기이다. 특히 예술교육, 문화교육은 선생에 현혹되는 강의를 하면 안 되는 것 같다. 30명이 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면 30개의 생각 다양성, 문화 다양성을 만드는 일이지 않나. 그것처럼 확장력 있는 피라미드가 어딨겠나. 5천만 개, 5십억 개의 다양한 삶이 같이 공존한다면 그게 민주적이고, 위계적이지 않고, 갈등과 차이가 서로 공존하면서 사는 건강한 사회이다. 예술과 문화를 다양성으로 본다면 아주 기본적인 상식의 틀인 것 같다.
커뮤니티 아트 작업하시면서 ‘예술가와 주민의 상호교육’을 언급하신 걸 봤다. 예술가와 주민의 상호작용, 상호교육이 일어나게 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을까?
삶과 예술을 어떻게 보느냐이다. 삶의 독립적인 가치를 예술과 동일시하다 보면 주민들에게 배울 것이 너무 많다. 예술이 무엇이냐와 비슷한 질문과 같다. 미술관에 걸려있는 예술가의 결과물이 아니라 삶의 독립적이고 고유한 실천적 가치를 예술로 보는 것이다. 그러니 그분들의 삶이 예술과 동일하다고 보고, 그분들의 삶과 예술을 존중하고 배우는 거다. 특별한 방법은 없다. 그동안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얼마나 많은 사기를 쳤겠는가. (웃음) 사람이 최소한 잘못한 것을 알고 반성을 하고 똑같은 짓을 하면 안 되는 거다. 잘 난 척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형, 동생, 동네 총각, 동네 주민으로 사는 게 좋다. 예술가 선생이 아니라 김 씨 정도가 딱 좋은 것 같다.
[아르떼365]의 많은 독자가 문화예술교육에 몸담고 있다. 교육하면서 동시에 학습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저만 하는 얘기는 아닐 것 같은데, 예술교육자인 동시에 예술가여야 한다. 본인의 예술 작업에서 영감을 얻고 교육에 대한 다양한 철학과 접근법 등을 빌려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밑천이 있어야 장사를 하는 것과 똑같다. 밑천이 바닥난 지 오래된 예술강사가 너무 많다. 예술은 굉장히 급격한 속도로 변화되고 있고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지고 있는데, 어느새 내 모습이 예술가에서 선생으로, 선생의 입장에서 행정과 관리자의 입장으로 전환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야 한다. 현장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현장 감각을 잃지 않아야 한다.
두 번째는 제가 대학을 그만둔 이유와도 비슷한데,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예술가마저 용기를 잃으면 안 된다. ‘한 명의 시인이 되는 것보다 한 명의 시민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이야기다. 시민력을 가진 예술가가 중요한 것 같다. 자기 예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든 개인적이든 어떤 문제가 있을 때 회피하지 말고 자기 예술을 통해서 정정당당하게 발언하는 용기를 가지길 바란다. 그러지 않으면 예술은 사회와 거리가 있는, 너무나 쓸모없는 것으로 전락해버릴 확률이 높다. 다사리문화기획학교의 ‘문화적 실천’이라는 것은 결국 그런 삶을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시민력을 갖는 것이다. 시민력이 예술의 본질과 매우 닮아있다고 본다.
지원사업 심의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심의위원이나 심의기관에 적합한 교육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신념과 자기 언어를 가진 예술교육자가 되길 바란다. 심의위원과 생각이 다를 때 용기를 갖고 자기 언어로 설득할 수 있는 신념이 필요하다. 그 신념은 자기가 실천해 본 경험과 그를 통해서 쌓아온 성찰의 두께에 있다. 당신의 그 생각이 문화예술교육계를 다양하게 만든다. 자신의 언어를 갖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언어를 갖는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는 않은 일인 것 같다.
교육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으면 된다. 상식을 벗어나는 일은 없다. 스스로 얼마나 예술적・교육적 앎에 다가서고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더 낫다. 물론 타자의 시선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고 아집과 고집에 있으라는 것은 아니다. 뭔가 안 될 것 같은 실패를 꾸준히 밀고 나가면서 그 단계를 넘어서야 비로소 예술의 본질에 가까워지는데, 예술교육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얻어진 성찰을 통해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저는 요즘 <쇼미더머니>를 보면서 랩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너무 근사한 것 같다. 래퍼들은 배틀에서 열심히 경쟁하고 ‘졌지만 잘 싸웠다’라고 하지 않나. 승패와 상관없는 무대. 내 인생에서는 옳은 길을 걷고 있다는 자기 신념이 쌓인다면 근사한 삶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성찰과 실천’이 선생님의 삶에서도 계속 이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뱉어놓은 말이 있으면 그 말에 맞춰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살지 않으면서 그렇게 얘기하면 거짓말이다. 조금씩 인생을 그렇게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조금 더 정직해진 것 같고, 조금 더 용기를 갖게 되었고, 조금 더 착한 사람이 되는 것 같다.
김월식
김월식

다사리문화기획학교 교장, 무늬만커뮤니티 디렉터. 《서사의 이면》(2002), 《근육의생각》(2015) 등 네 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총체적 난 극》(2013), 《수작, 먹고 사는 기예술》(2017) 등 다양한 전시와 프로젝트를 기획・총괄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경기문화재단 등 여러 기관에서 문화예술교육 콘텐츠 기획에 참여했으며, 문화예술 특강, 심의, 컨설팅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11년 수원시 인계동의 안마시술소를 커뮤니티 아트센터로 바꾼 ‘인계시장 프로젝트’로 주목받아 제1회 일맥문화재단 일맥아트프라이즈 대상을 받았다.
사진 _ 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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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정
프로젝트 궁리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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