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이 있듯 대중매체에는 온통 서울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서울은 블랙홀처럼 사람과 문화 등 모든 자원을 집어삼키고 그 이외의 지역은 주변부가 된다. 하지만 서울이 아닌 곳에도 사람이 있고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찾아 나서는 지역 잡지들이 있다. 동네의 골목에, 옆집 이웃에, 오래된 건물에 있는 이야기를 발굴하며 지역 상생을 꿈꾸는 잡지들을 소개해본다.
“혼자 말고 항꾸네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전라도닷컴]의 이 구수한 매체 소개는 소박하지만 원대한 바람을 담고 있다. ‘항꾸네’는 ‘함께’라는 의미의 전라도 사투리다. 모든 지역의 이름 없는 삶과 작은 문화들이 똑같이 존중받는 세상으로 나아갔으면 한다는 지향점을 ‘함께 잘 사는 세상’으로 표현한 것이다. [전라도닷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지역 잡지들 모두 조화롭게 공존하는 삶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월간토마토]의 이용원 편집국장도 ‘행복한 삶은 함께하는 삶’이라고 홈페이지 매체 소개란에서 밝히고 있다.
아예 매체의 이름에 지역의 고유성과 공동체의 지향성을 담기도 한다. [iiin(인)]은 ‘I’m in island now’(나는 지금 섬에 있다)의 약자이면서, ‘있다’ ‘~이다’라는 뜻의 제주도말을 이르기도 한다. 섬 주민이란 정체성과 존재의 의미를 잡지 이름에 담고 있는 것이다. [사이다]는 사람과 사람, 마을과 마을의 ‘사이’를 이어준다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소소한 골목의 이야기에서 소통의 가치를 발견하고자 하는 목표가 드러난다.
“할망에게 고라봅서”
지역 잡지에는 일상에서 만나는 익숙한 공간과 친근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사이다]는 수원에만 몇십 년 째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싣고 있다. 수원역 매표소에서 35년간 근무한 철도공무원 이웅렬 씨와 전쟁 피난민으로 수원에 내려와 한약방을 운영하는 박순옥 씨의 사연을 읽고 있으면, 과거 수원 골목의 풍경이 눈앞에 선명히 그려지는 듯하다. [사이다]의 인터뷰 끝에는 항상 인터뷰이의 연보가 있는데, 길게 정리된 한 사람의 연보를 보고 있자면 사람의 역사가 지역의 역사이자, 하나의 유산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편 [토마토]에서는 지역의 오랜 원주민은 물론 충남대학교 흑인음악동아리 대표나 직장인 동호회 회원들과 같이 지역 젊은이들의 삶도 조명하고 있다.
지역 잡지만이 할 수 있는 소소한 소통 콘텐츠도 있다. [iiin]의 인기 코너인 ‘할망에게 고라봅서’는 독자들의 소소한 고민에 제주 할머니들이 현답을 해주는 콘텐츠다. 작은 아이디어로 지역 주민들 간 소통을 이뤄내며 소셜네트워크상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다. [전라도닷컴]의 5월호 기획특집 ‘나의 오월 읽기’는 지역 잡지가 지역의 역사 아카이빙은 물론 현재와 과거를 잇고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길라잡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본보기이기도 하다. 1980년 5월 광주의 기록들이 나열된 5월호 목차 사이로 자리 잡은 세월호 5주기 추모제 기사는 지역의 이야기가 비단 해당 지역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사이다 시민기록학교
[사진 출처] 골목잡지 사이다 페이스북
재주상회의 사계생활
[사진 출처] iiin매거진 페이스북
잡지 넘어 지역 콘텐츠 플랫폼으로
지역 잡지 모두 단순한 잡지 발간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기존에 존재하는 이야기를 종이에 옮겨 기록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지역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일례로 [전라도닷컴]은 광주시립민속박물관과 함께 매년 ‘아름다운 전라도말 자랑대회’를 열어 전라도말의 가치를 일깨우고 있다. 또 올해는 도쿄에서 5·18 기획전시로 ‘전라도 정신, 광주 정신을 듣는다’란 주제의 전시회를 열어, 그동안 기록해 온 자연, 사람, 사투리 등을 통해 광주와 전라도 정신을 돌아보는 자리를 가졌다.
[iiin]의 잡지 발간으로 출발한 콘텐츠그룹 재주상회도 로컬 콘텐츠 전문 기업 어반플레이와 함께 카페 ‘사계생활’이란 공간을 운영하며 잡지와 연계한 북토크와 전시회를 열고 있다. 제주 내 문화예술인과 주민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내며 관광지 이상의 제주의 모습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또 [월간토마토]는 불공정한 산업구조에 맞서 콘텐츠를 생산, 수집, 유통하고자 2017년 공정여행사 ㈜공감만세와 합병하였다. 현재 그들이 운영하는 북카페 ‘이데’는 지역의 공연장이자 전시장으로서 문화예술인들의 쉼터 역할을 해내고 있다. [사이다]의 발행사인 ㈜더페이퍼 역시 공공예술 프로젝트 기획, 지역 문화 콘텐츠 개발을 통해 사회적 공공서비스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이야기는 그 자체로 남다른 힘을 가진다. 지역의 일상과 사람, 공간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지역이 가지는 독특한 에너지와 가능성을 이끌어낼 수 있다.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탐구해나가는 지역 잡지들이 담게 될 앞으로의 이야기가 기대되는 이유다.
이미지제공 _ 전라도닷컴, 월간토마토, 더페이퍼, 콘텐츠그룹 재주상회
- 프로젝트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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