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두려움 없이, 나답게 살기

인문과 교육

  • 『단단한 삶』(야스토미 아유무, 유유, 2018)
  • 『길 잃기 안내서』(리베카 솔닛, 반비, 2018)
새해가 되었다고 ‘무엇인가를 하겠다’고 다짐하는 버릇을 버렸다. 작심삼일로 끝난 적이 많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다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2019년 새해를 맞이하면서도 거창하고 거룩한 다짐 같은 것은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채찍질하곤 한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남에게 관대하고 자신에겐 엄격한 사람이 되자고 생각한다. 더 이상 부끄럽게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자립이란 의존하는 것이다
동양 고전 『채근담』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인 “대인춘풍 지기추상(對人春風, 持己秋霜)”의 삶을 사는 것은 쉽지 않다. 이 말은 “남은 봄바람처럼, 자신은 가을 서리처럼 대하라”라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반대로 사유하고 행동한다. 자신의 몸을 잘 지키는 보신(保身)의 욕망을 실현하는데 있어서만큼은 엄격해지려고 한다. 보신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절대 아니다. 문제는 행복이란 매우 사적(私的)인 기술이라는 프레임을 강화하는 웰니스 신드롬(the Wellness Syndrome)을 절대적으로 맹신하는 것이다. 웰빙 열풍을 대체한 웰니스 신드롬에 따르면 행복은 더 이상 타인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의 여가문화는 ‘레저’에 가까운 것이 되었고, 자본주의적 상품미학의 힘을 빌려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으며, 무엇을 발라야 더 행복한지 설파하고 추종할 따름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매끄러움’을 추구하는 웰니스교(敎)의 신도임을 자처할 따름이다.
그러나 나는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몸을 잘 지키는 보신도 필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보명(保名)’의 윤리라고 생각한다. 보명이란 ‘자신의 이름을 잘 지키자’는 것이다. 자신의 이름이 부끄러운 자리에 있지 않도록 하는 그리스적 의미의 양생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태도는 소위 말하는 자기계발 내지는 처세술과는 좀 다르다. 자신의 이름이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철학과 지향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어떤 자리 혹은 장소에 있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자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나의 전문가’를 자임하는 도쿄대 야스토미 아유무 교수의 『단단한 삶』은 무엇이 잘 사는 삶이고 스스로 자립하며 성장하는 삶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좋은 책이다.
저자는 말한다. “자립이란 의존하는 것이다”라고. 이 명제는 책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명제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립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그런데 혼자 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자립이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그런 ‘자립’의 삶을 위해 어머니와 결별하고, 아내와 이혼하면서까지 ‘나답게 살기’를 추구하고 있다. 자신의 죄의식과 불안 감정의 원천이 어머니와 아내에게 조종당하는 삶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답게 사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지향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런 문제의식을 갖고 자립, 친구, 사랑, 화폐, 자유, 꿈의 실현, 자기혐오, 그리고 성장이라는 여덟 가지의 가치에 대해 자신의 사유를 행간에 부려놓는다. 그리고 “의존하는 대상이 늘어날 때 사람은 더욱 자립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화폐를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관계를 추구하는 ‘관계부자’의 삶을 예찬하고 권장한다.
저자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중국 사막에서 현장 연구할 때 만난 주쉬비[朱序弼]라는 사람의 삶을 보고 난 후부터이다. 50년 간 사막화 현상을 방지하는 녹화활동을 하는 주쉬비는 나무 심는 식림기사이지만 나무 심는 일로 그 어떤 대가도 받지 않는다. 그런데 몸이 아프거나 하면 이웃 사람들의 도움을 기꺼이 받는다. 이웃 사람들 또한 자신의 일처럼 주쉬비를 돕는다. 그런 ‘무소유’의 삶을 살아가는 주쉬비의 삶을 보면서 저자는 자립한 사람은 혼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곤란하면 언제든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경제학자답게 화폐 같은 주제에 대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사유를 통해 “자립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 선언하며 그렇게 실천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쉽게 말해 우리에게는 ‘현금’을 맹신하는 삶이 아니라 ‘현물(現物)’을 추구하는 삶이 더 행복한 삶이라는 것이고, 그런 삶을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신세를 지며 ‘민폐’ 끼치며 살자는 것이다. 이 괴짜 지식인이 말하는 나답게 살기는 무엇이 자립하는 삶인지에 대해 탈정(脫井)의 사유와 실천을 하라는 말로 들린다. 탈정이란 작고한 인문학자 신영복 선생이 『담론』(2015)에서 강조한 의미로서 내 안의 상투성이라는 우물에서 과감히 벗어나라는 뜻과 같다.
길을 잃은 후 얻은 삶의 지도
그런데 나와 우리는 ‘나답게 살기’라는 목적지를 향해 길을 떠나지만 자주 길을 잃곤 한다. 그리고 길을 잃는 것을 몹시도 두려워하고, 길 잃기를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초라한 경제동물로 전락한 삶을 마지못해 수락하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미국 작가 리베카 솔닛은 『길 잃기 안내서』에서 그런 길 잃기의 상태를 적극 예찬하며 자신을 작가로 성장시킨 것은 무수한 ‘길 잃기’의 경험들이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말해 ‘인간의 영혼은 길 잃기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주자 출신인 할머니들의 복잡한 가계도를 비롯해 길을 잃게 만든 장소들과 길을 잃은 역사 속 인물들 그리고 펑크록, 슬램 댄싱, 블루스 같은 무수한 예술작품의 예들이 행간에 잘 녹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잃다(loss)’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는 빼어난 에세이인 동시에, 솔닛이라는 인간을 한 인간으로 키운 것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자기 비평서’라고 해야 옳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말은 솔닛이 인용한 미국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이다. “우리는 길을 잃고 세상을 잃은 뒤에야 비로소 자신을 찾기 시작한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 책을 읽으며 나 또한 여러 차례 길을 잃고 책장을 자주 덮고 생각에 잠겼다는 사실을 여기에 밝힌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그때도 의아했고 지금도 의아한 일인데, 나는 어떻게 그것들을 다 포기하고 그 대신 도시와 사람들이 주는 것을 택했을까? 동물들의 세상, 천상의 빛의 세상이 안겨주는 상징적인 질서 감각에서 벗어나느니 차라리 외로움을 느끼는 편이 덜 끔찍하지 않을까? 그러나 글쓰기는 그러잖아도 충분히 외로운 작업이다. 글쓰기는 즉각적인 대답이나 상응하는 대답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는데 먼저 고백하는 일이다. 상대가 영원히 묵묵부답일 수도 있는 대화, 아니면 긴 시간이 흘러서 글쓴이가 사라진 뒤에야 진행될 수도 있는 대화를 먼저 시작하는 일이다. 하지만 최고의 글은 꼭 저 동물들처럼 나타난다. 갑작스럽게, 태연자약하게, 모든 것을 말하면서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 없음에 가까운 말로. 글쓰기는 자기 자신의 사막, 자기 자신의 야생일지도 모른다.”
이 두 권의 책은 ‘나’라는 정체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인간은 삶 속에서 상실과 방황을 거쳐 어떻게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지 예리하게 성찰하고 실천한 사람들의 기록이다. 결국, ‘나답게 살기’는 저 먼 곳의 푸름을 찾아 ‘길 잃기’를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고, 길 잃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내면의 단단한 힘과 관계의 견고한 힘을 찾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두 권의 책은 좋은 삶을 향한 ‘매뉴얼’이 절대 아니고, 좋은 ‘지도’ 노릇을 하는 책 또한 결코 아니다. 무엇이 진짜 나다운 삶인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가고자 한 사람들의 발자취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두 사람의 발자취를 조심스레 더듬으며 나다운 삶은 무엇인지 생각하고 행동하고자 할 때 참조하면 된다. 상실과 방황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장소의 에로스를 추구하려는 정신을 배우면 된다. 더 이상 공허한 미래주의에 현혹되어 무엇을 위한 삶인지조차 생각하지 않고 ‘더 높이, 더 멀리, 더 빨리’ 달려가는 삶이란 더 이상 나답게 살기가 아니고, 좋은 삶도 아니라는 점을 깨달으면 된다. 한 해를 보내고, 한 해를 맞이하는 전환의 시간에 두 권의 책을 읽으며 ‘아직 늦지 않았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미지제공 _ 유유, 반비
고영직
고영직
문학평론가. 경기문화재단 전문위원을 지냈으며, 문학웹진 [비유] 편집위원, 문화예술교육 웹진 [잇다] 편집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자치와 상상력』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공저) 등을 펴냈다.
gocriti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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