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자신을 믿어준다는 것은 매우 든든한 일이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신뢰가 있는 관계에서 사람들은 조금 더 용기를 낼 힘과 마음의 여유를 갖는다. 11월 초, 해외전문가 초청사업 협의와 프로그램 평가제도 조사를 위하여 미국 시애틀과 워싱턴 D.C.로 출장을 다녀왔다. 출장기간 동안 만난 기관과 현장을 되짚어보면서 출장자 모두가 공통적으로 이야기한 것은 모든 기관, 현장, 관계자에게 느껴지는 ‘여유’였다. 도대체 이러한 여유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이야기를 하면서 이 모든 여유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신뢰와 협력’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티칭아티스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활동하는 아츠콥스(Arts Corps)에서는 평가를 둘러싼 신뢰의 관계를, 청소년들만을 위한 예술아지트를 운영하는 아트랩플러스(ARTLAB+)에서는 대상에 대한 믿음의 관계를, 공교육 교사와 팀을 이루는 울프트랩(Wolf Trap)에서는 협력의 관계를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 아츠콥스 미팅
  • 아츠콥스 애뉴얼리포트 일부
평가는 자기 성장을 위한 기회
아츠콥스는 시애틀과 인근 킹카운티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교육 단체이다. 약 15명의 예술강사가 소속되어 매년 2,500명 이상의 학생을 만나고 있다. 학교와 지역에서 청소년들이 창의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예술교육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그들의 미션이다. 우리는 소속 예술가를 평가하고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 듣기 위해 아츠콥스의 제임스 마일즈(James Miles, Executive Director)와 로렌 아펠(Lauren Appel, Director of Arts Integration)을 만났다.
아츠콥스는 전문 리서치 업체와 공동으로 제작한 평가지표(Assessment Tool)를 가지고 모니터링, 평가, 설문 조사를 실시한다. 평가지표는 참여자와 예술가로 나누어 다르게 설계되어 있으며, 매년 수정·보완된다고 한다. 프로그램 운영 담당자와 학생(4학년 이상), 예술가, 교사 모두 설문 조사의 대상이다. 흥미로웠던 점은 평가에 대한 피평가자의 인식이다. 예술가들은 평가에 대해 늘 궁금해 하고 본인의 수업에서 부족한 점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긴다는 것이다. 예술가들은 아츠콥스의 평가가 지적이 아니라 사업이 잘 운영되기 위한 관리 차원이며 그들의 성장을 돕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평가요소 중 가장 중요하면서도 기본적인 부분은 안전한 학습환경(Safety Environment)이었다. 안전한 학습환경이란 물리적 안전성은 물론이고, 학생들이 참여할 때 심리적 안전함(Emotional Safety)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가에 대한 부분도 포함되어 있다. 다문화 사회인 미국에서는 사회적 정체성에 따라 주류와 비주류가 나뉘는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한편, “예술적 요소가 수업에서 잘 실현되었는지는 어떤 지표로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 부분은 평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예술가로서의 자질, 예술교육자로서의 철학에 대한 신뢰는 단체의 일원이 되는 순간 예술가와 아츠콥스 상호 간 확인한다. 아츠콥스가 소속 예술가에게 가지는 신뢰가 평가지표에 반영된 셈이다.
이머징 아티스트 인턴쉽 프로그램(Emerging Artists Internship Program)
우리는 그렇게 괴짜 전문가가 되어간다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현대미술 중심의 ‘스미소니언 허쉬혼 뮤지엄(Hirshhorn Museum)’이 운영하는 아트랩플러스는 청소년이 주도적으로 예술가와 함께 최신 기술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프로그램이다. 허쉬혼 뮤지엄에서 이 사업을 담당하는 온래이 왓킨스(OnRae Watkins)를 만나 인터뷰하고 아트랩플러스의 심화 과정인 이머징 아티스트 인턴십 프로그램(Emerging Artists Internship Program) 현장을 직접 참관하는 기회를 가졌다. 온래이 씨는 아트랩플러스의 큰 핵심 가치를 네 가지로 정의하였다. “Hang out(시간을 보내다), Hang around(기다리다), Mess around(만지작거리며 빈둥거리다), Geek out(괴짜 같은 행동을 한다)” 이처럼 청소년들이 해당 공간을 자유롭게 오가며 다양한 기술을 만지고 괴짜스럽지만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과정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기술과 예술을 바탕으로 무엇을 얼마나 만들어 내는지에 집중하기보다 청소년들이 하고 싶은 것들이 생기면 같이 해본다는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아트랩플러스 과정을 이수한 학생들 중 일부는 지원서를 제출하여 이머징 아티스트 인턴십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다. 이머징 아티스트 인턴십 프로그램은 청소년들이 소정의 비용을 지급받고 12주 동안 직접 창작을 하며, 작품을 스미소니언 뮤지엄에 전시할 수 있는 기회까지 갖게 된다. 온래이 씨는 “참여자 선정 시 기술적으로 뛰어난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아니다. 이 프로그램의 취지가 기술자를 키우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기 때문에 얼마나 학생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와 그 학생들의 성장을 지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운영하고 있다”고 답했다.
인터뷰하는 내내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담당자의 신이 난 태도였다. 온래이 씨는 자랑스럽고 즐거운 표정으로 인터뷰에 응했으며, 듣는 필자 역시 매우 흥미롭게 인터뷰와 참관에 임했다. 그 시간을 돌이켜 보면 기관이 어떤 관점에서 대상을 만날지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가 명확하다는 것이 기관의 특징이자 핵심 강점이 아닐까 싶다.
  • 울프트랩 입구
  • 울프트랩 회의
준비된 파트너십, 협력을 통해 아이들을 만나다
한국에서는 한때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의 일과를 다룬 영상이 이슈였다. 단순히 교사로서 교과과목을 가르치는 것 외에도 반을 제대로 찾았는지, 아이들을 챙겼는지 등 담임교사가 해야하는 일은 무궁무진했다. 어떤 대상이든 만나기 위한 준비는 분주하고 어려운 일이겠지만, 울프트랩은 ‘준비된 파트너십’이 돋보이는 협력을 통해 어린이들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울프트랩은 미국 워싱턴 D.C 인근 비엔나 지역의 국립공원을 활용한 공연예술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비영리 재단이다. 뉴욕, 애리조나, 마이애미 등 미국 전역에 걸쳐 17개의 협력기관을 통해 울프트랩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지원하고 있다. 수준 높은 예술을 모든 대상이 향유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하는 철학 아래, 특히 예술을 통한 영유아기 학습기관(Institute for Early learning through the arts)을 운영해왔다. 울프트랩의 티칭아티스트는 학교, 예술센터 등 다양한 현장에서 영유아들을 만나는데, 이 과정에서 특히 담당교사와의 파트너십 형성을 중요시한다.
출장 기간 중 브라이트우드 초등학교에서 6~7세 대상 수업을 참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수업 내내 티칭아티스트와 담당교사는 이미 수차례 호흡을 맞추어 온 파트너답게 여러 역할을 하나의 팀처럼 자연스럽게 수행했다. 광합성, 활엽수, 침엽수와 같은 과학의 개념에 노래, 움직임과 같은 예술이 결합한 통합교육 수업의 현장도 흥미로웠지만, 더욱 흥미로웠던 점은 티칭아티스트와 담당교사의 파트너십이었다. 티칭아티스트와 교사는 단계별로 파트너십을 만들어 가는데, 교육대상이 없이 3회 이상 미팅을 가지고 함께 수업을 구상하며 사전 준비를 진행한다. 커리큘럼 구성 과정에서 각자의 전문성을 어떻게 통합교육에 활용할지에 대해 의견을 교류하고 학습하는 시간을 갖는다. 매번 수업이 끝난 뒤에는 반추의 시간을 통해서 서로의 역할과 결과에 대해 점검하고 개선해야 할 지점에 대해 논의한다.
이 협력적 파트너십은 단순히 어린이들을 위한 통합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서로의 성장을 위한 협력 또한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주요 요소다. 울프트랩의 티칭아티스트는 협력 수업을 통해서 교사가 티칭아티스트 없이 혼자서도 예술 통합교육을 진행할 수 있을 만큼 스스로 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목표를 갖는다. 동시에 이 과정에서 티칭아티스트로서의 역량을 기르도록 서로를 돕는 것은 교사와 티칭아티스트 모두의 목표가 된다. 단순한 결합이 아닌 서로의 성장을 위한 협력을 통해 이들은 긴밀하고 준비된 파트너십을 만들어낸다. 이 준비된 파트너십이 준비된 만남을 만드는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참여자를 신뢰하고, 파트너와 협력하며, 철학을 공유하는 과정은 공간의 모든 사람들은 물론 외부의 관찰자였던 우리에게도 용기와 든든함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언제든지 자유롭게 빈둥거릴 수 있거나, 든든한 조언자와 함께 스스로를 평가할 수 있는 그런 ‘여유’가 있는 현장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관련사이트(이미지출처)
아츠콥스 www.artscorps.org
Center for Youth Program Quality(평가지표) cypq.org
허쉬혼 뮤지엄 아트랩플러스 hirshhorn.si.edu/explore/about-artlab
울프트랩 education.wolftrap.org
권재현, 이가윤, 정송희_학교교육팀
이주영 주임_교육연수센터
jylee@arte.or.kr
노서희 주임_시민교육팀
sh8013@arte.or.kr
한미소 주임_국제협력팀
smile4433@art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