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하진 못하지만,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민의 일상에 변화를 주고 있는 듯하다. 최근 기사에 따르면 ‘여가 관련 카드 매출이 지난해보다 9.2%’(조선일보, 2018.10.7.) 증가했다고 한다. 신용카드사용 빅데이터를 다룬 또 다른 통계에서는 ‘공연장이나 전시장의 결제 금액 증가세도 두드러’져 ‘티켓 판매도 16.6% 늘었다.’(아시아경제, 2018.8.27.)고 한다. 그리고 ‘발레리나, 피아니스트, 플로리스트 등 여성들의 꿈의 직업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도 평일 저녁에 가능해졌다. 예체능계 학원 등록금액이 같은 기간 9억9,749만원에서 14억1,196만원으로 늘었다’(아시아경제, 2018.8.27.)고 한다. 추산하면 41.6% 증가한 셈이다. 과연 어떤 이들이 무슨 이유로 이런 수업을 듣는 것일까?
직접 답변을 듣고자 퇴근 시간이 막 지난 평일 저녁 7시에 서울 예술의전당 N스튜디오를 찾았다. 국립현대무용단이 매주 화요일, 수요일에 진행 중인 프로그램 ‘무용학교’의 수강생들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무용학교는 국립현대무용단이 관객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자 마련한 관객 서비스 프로그램 ‘오픈 업 프로젝트’의 하나로, 안무가와 전문무용수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무용 클래스의 이름이다. 찾아간 날은 현대무용단 ‘고블린파티’ 안무가 이경구의 <몸으로 만드는 지도> 수업이 있었다.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이미 몇몇 수강생들은 몸을 풀고 있었다. 문자 그대로 ‘남녀노소’가 다 섞여 있었다.



몸치, 무용을 배우다
“작년까지만 해도 여성이 대다수고, 남성은 한두 명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남성이 여섯 일곱명 정도로 점점 남성 비율이 높아지고 있어요. 10대부터 6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해진 것도 작년과 다른 점이에요”
– 임영숙(국립현대무용단 홍보마케팅 TF팀장)
무용학교는 현대무용은 낯설고 어려운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친숙한 것임을 알리고자 국립현대무용단에서 2014년부터 시작한 프로그램 중 하나로, 렉쳐(강의) 프로그램인 ‘춤추는 강의실’(구 춤추는 인문학)과 함께 가장 오래된 관객개발 프로그램이다. 국립현대무용단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봄, 여름, 가을, 매 시즌마다 11회차로 구성된 2개의 강좌를 개설하는데, 한 수강생은 올해까지 9개의 무용학교를 수강했다. 그밖에도 많은 수강생이 연속해서 수업을 듣고 있고, 출석률도 꽤 높은 편이라고.
“한 번 수업을 들으신 분들은 계속 참여하시고 출석률도 굉장히 높아요. 솔직히 초반에 취소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기술을 배우려고 오신 분들이 주로 취소하는 것 같아요. 다른 분들은 기술을 배운다기보다 즐기기 위해 오시는 것 같아요. (무용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이 대다수예요, ‘나도 할 수 있겠다, 나도 한 번 해볼까’ 싶어서 찾아온.”
– 임영숙 팀장
몸, 깨어나다
그런데 그들은 왜 그 많은 취미와 여가 활동 중 무용을 선택했을까?
“대학원에 다니고 있어요. 전공은 법학입니다. 원래 자전거를 타거나 운동 위주의 취미활동을 계속했었어요. 무용학교는 우연히 (국립현대무용단) 인스타그램을 보고 알게 됐고요. 하다 보니 운동하고는 또 다르더라고요. 현대무용 자체가. 다른 분들은 현대무용의 좋은 점을 이야기하시면서 ‘몸이 깨어난다’고 하시던데, 저는 안 믿었거든요. 구태의연해서. 그런데 하다 보니까 정말 그래요. 저도 몰랐던 몸의 상태들을 조금씩 알게 되더라고요.”
서른여덟 법학도 손성민 씨가 전한 말의 핵심은 아마도 ‘몸의 깨어남’에 있을 듯싶다. 다른 표현으로 ‘몸의 발견’. 그것은 현대무용의 핵심 중 하나다. ‘일상적인 몸이 얼마나 근원적인가를 파악하여 일상과 예술을 결합’(『철학, 예술을 읽다』, 동녘, 2016)하려는 시도가 바로 현대무용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것은 ‘감각하는 몸의 발견’으로 이어진다. 나아가 이전에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오감을 통해 감각한다는 사실은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감을 연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저는 이 수업을 들으면서 걷는 게 참 어렵다는 걸 깨달았어요. 걷기가 가장 기본적인 행위 중 하나일 텐데. 수업을 들으며 제가 항상 구부정하게 다녔다는 걸 알게 됐어요. 요즘은 생활하면서도 선생님께 배운 대로 호흡하면서 걸어보려 연습을 하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저는 무용이 일상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몸, 교감하다
‘감각하는 몸의 발견’은 무용의 근본적 기능이다. 여기서 감각하는 대상을 타인으로 두면, 감각은 공감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무용은 개인의 오감을 열게 만들어,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타인의 이해를 돕는 것이다. 사회복지 관련 사업을 하는 서른두 살 김선우 씨는 무용학교의 장점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전까지는 음악감상이나, 영화관람, 독서처럼 주로 정적인 취미생활을 해왔어요. 공연 보는 걸, 무용 관람하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수업을 받을 기회가 없었는데, 우연히 무용학교를 알게 돼 수강신청을 했죠. 수업의 장점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전 다른 분야 사람들과의 만남이 좋은 것 같아요. 직장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과는 다른, 문화예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교류를 하게 돼서 일상에 활력도 생기고 좋은 것 같아요.”
실제로 수업은 공동체성에 중점을 두고 진행되었다. 안무가 이경구는 수업 내내 둘씩, 셋씩, 넷씩 짝을 지어 접촉즉흥 수업을 진행했다. “서로 느낌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끼리 짝을 지으세요.” “짝이 나를 받아줄 거라 믿고 그대로 쓰러지세요.” “앞사람 다리를 잡아주세요. 다른 분들은 허리, 어깨, 머리를 잡아주세요. 그리고 천천히 들어 올리세요.” 서로는 서로를 믿고 기대어 서로에게 의지해 움직였다. 나중에는 수강생 전원이 군무로 장관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들의 모습에서 소통과 교감, 신뢰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몸, 꿈꾸다
그런가 하면, 무용학교를 통해 자아실현을 꿈꾸는 이들도 있다. 60대 박태원 씨가 그렇다.
“지금 환갑인데, 은퇴하기 전에 갈빗집을 경영했었어요, 한 20년. 체력이 달려서 그만뒀죠. 은퇴하기 전부터 힘이 남아있을 때 예술을 하자,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여러 가지 수업을 들었어요. 시도 배우고, 평론도 배우고. 시 쓰면서 창작의 즐거움을 알게 됐죠. 점점 작품을 만들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걸 하려면 기본이 있어야 하잖아요. 대금부터 시작해서 한국 전통무용을 한 5년 배웠어요. 그러면서 안무에 대한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이 수업의 최고 연장자인 그는 지난 여름학기부터 시작해 무용학교를 연속수강 중인 열정적인 학생이다. 열정은 물리적 거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2시간 거리의 남양주 화도읍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수업을 들으러 온다. 목표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작품을 안무하는 건 일차적 목적이다. 그 뒤에 보다 큰 목표가 있다. 그는 10년간 장기계획으로 문화예술교육자로서의 활동을 준비 중이다.



한바탕 땀 흘리게 만든 후, 이경구 강사는 학생들을 동그랗게 둘러앉게 했다. 그리고 말했다.
“이제부터 각자 가장 힘들었을 때 어떻게 그걸 극복했는지 방법을 이야기해볼까요? 저는 마음이 힘들면 몸을 먼저 챙겨요. 제 일이 계속 몸을 움직여야 하는 일이라, 저는 힘들 때 몸의 각 부분마다 하나하나 힘을 빼요. 그 방법을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어요. 먼저 누워서 눈을 감고요. 다음으로 머리에 힘을 빼는 거예요. 바닥에 떨어지는 것처럼. 다음엔 어깨, 등, 골반. 천천히 차례대로 힘을 빼는 거예요. 물속 깊은 바닥으로 가라앉는 느낌으로.”
취재차 왔던 우리도 어느새 그들과 함께 누워있었다. 아, 몸이 마음을 좌우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그러므로 모므로(몸으로).
사진 제공 _ 국립현대무용단
Photo by 박수환(Swan Park)
김일송
김일송
칼럼니스트이자 이안재 대표소사이다. 공연문화월간지 [씬플레이빌]과 서울무용센터 웹진 [춤:in] 편집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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