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아니면 도”
지난 약 4년간(2014~2018) 부천시 삼정동 소각장(정확히 말하면, 소각장 공장과 그 부지) 재생 과정은 초기부터 대외적인 큰 이슈 파이팅을 만들기보단, 내면적이고 비교적 조용히 진행된 측면이 있다. 그 과정에서 종종 오가거나 듣게 되었던 일종의 속담 또는 클리셰가 바로 “이건 모 아니면 도”였다. 기피시설을 넘어 혐오시설이었던 장소, 공공행정과 주민들 간 갈등과 저항의 거점이자 다이옥신 파동의 발생지, 대중교통편이 좋지 않고 상업적·문화적 활력을 상상하기 어려운, 유동인구가 거의 없는 도시의 주변부라는 입지, 주변의 아파트형 산업단지가 주는 반복되는 일상과 마른 감정의 풍경… 개척정신이 작동하지 않으면 안 될 프로젝트였다. 이걸 하긴 하는데, 과연 누가 할 수 있을까,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 그 결과가 통상적인 상상의 범위를 넘어선 과제였기 때문이다.
“모 아니면 도”는 잘되면 대박, 잘 안되면 쪽박이라는 양극단의 얘기이기도 하고, 잘 될 수도 있고 잘 안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승부를 걸어야 할 때를 의미하기도 하고, “될 대로 되라”는 심정과 상황이기도 하다. 그런데, 자칫 이것을 ‘질문’으로 오해하고 둘 중 택일로 답을 내리는 것을 피해야 한다. 당장의 답이 의미가 없는 질문에서는 비껴가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다양한 층위의 욕구들이 상존하는 공공 프로젝트(다른 말로 하면 정치적 프로젝트인데, 이걸 정치인들의 프로젝트로 오해하면 안 된다.)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주관적 욕망이나 당위적인 장담은 실제 일을 할 때 그다지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긴 어렵다는 것이 삼정동 소각장 재생 과정에서 배운 점이다. 이는 아직 실체가 드러나기 전 장르명이라던가 몇 개의 트렌디한 용어만 갖고 문화예술공간을 접근하면 피상적인 동어반복의 신세를 면키가 어렵다는 것이며, 창의적이면서도 분석적이어야 하며, 한두 걸음 앞서서 일의 전개가 어떻게 될지를 끊임없이 예측하고 사고해야 하는 과정이다. 즉, 상투적인 질문에서 벗어나 질문을 새롭게 다시 만들어가며 해법을 찾아가는 연속적인 과정이었다.
도시재생 붐 현상과 거리두기
삼정동 소각장(현, B39-부천아트벙커B39)의 리노베이션 건축 설계를 한 김광수 건축가(스튜디오 K-works 대표, 커튼홀 공동대표)는 최근 잡지 [공간] 9월호에 쓴 기고문 「도시재생시대 공공건축의 프로세스」의 서두에서 “도시재생은 계획적으로는 선형의 과정을 추구할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비선형의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무수한 복병들을 만나고 어쩔 수 없이 경로를 우회하다 망하기도 하고 뜻밖에 흥하기도 한다. 책임소재도 불분명하다. 아니 그 과정 모두가 책임을 불분명하게 하기 위한 과정처럼 보이기도 하다. 불일치의 과정들이 모호하게 용해되어 협치의 과정으로 불리는 영역이기도 하다”고 했다. 체감으로 동의하며, 실행가로서 또는 (자신이 기여한 일이라도) 그 과정과 실행을 기록하고 비평적으로 읽을 수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자격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삼정동 소각장 재생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던 2014년만 해도, ‘도시재생’이 지금만큼 광범위한 이슈가 되기 전이었다. 적어도 피부로 느꼈을 때는 말이다. 언제나 거대담론은, 그게 뭔지는 잘 몰라도 왠지 써야만 할 거 같고 너도나도 열심히 그 말을 쓰다보면 얼마 못 가 공허함을 공통적으로 느끼고 정작 ‘왜 하는가’ ‘무엇을 했는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무엇이라고 말하진 않았는가’ 등 허무감에 사로잡히곤 한다. 감정과 기분을 넘어서는 성찰로 진화되기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기도 하지만, 매우 빠른 사이클로 도는 들뜨고 가라앉기, 낙관과 비관 사이의 급격한 심리적 함정에 빠지는 것도 주의해야 할 것이다.
삼정동 소각장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도시재생’이라는 선전(?) 또는 사용을 자제했고, 질문을 구체적으로 다시 바꿔가다 보니 그 용어를 굳이 쓸 필요를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오히려, 이 건축물은 재생할 만한 구조와 상태에 있는가부터 시작해 공공 프로젝트로서 공공건축과 디자인(하드웨어)을 상당한 비중으로 중요하게 다뤘다. 콘텐츠와 프로그램의 전문성과 대중성이 어떻게 공존하게 할 것인가, ‘관습적인’ 마케팅 타겟 설정이 과연 지금 유의미한가, 왜 이 지역에 문화예술공간이며 그럼으로써 이 도시와 어떤 상관관계를 맺을 것인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 역할과 책임이 합치되어 있는가, 이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바람직한 자질과 역량은 무엇인가 등 실체를 마주하고 하나하나 풀어가는 것이 중요했다. 공공 프로젝트에 있어 민-관, 민-민 간 설득과 협의는 대치된 구조 속에서는 작동이 불가능하며 서로의 입장 바꾸기부터 시작해 법과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해결 방법도 함께 찾아야 한다. 때론 자질구레해 보이기까지 하는 무수한 질문과 자칫 파트너 간의 신뢰를 저해하는 단계별로 등장하는 난관과 장애물이 있기에 공공 프로젝트는 ‘용역비와 용역 기간’을 넘어선 헌신과 인내심을 기본적으로 필요로 한다. 그 관계가 창의적인 파트너십이고 일방적이지 않다면 공공 프로젝트에서 얻을 수 있는 개개인의 학습과 훈련, 경험과 보람은 그 무엇과도 견주기 어려울 것이다.
공공 프로젝트에서의 ‘크레딧’
삼정동 소각장 재생 프로젝트가 주목과 관심을 받은 데에는 한국의 여느 공공시설 프로세스와는 달리 민간 운영 주체를 먼저 선정하고 건축가, 부천시 행정 공무원들과 함께 하나의 테이블에서 소통하며 기본설계 단계부터 전 과정을 함께하고 연속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는 것일 것이다. 얼핏 들으면 당연한 거 아닌가 할 수 있겠지만, 아마도 그게 너무 어려운 프로세스라는 것을 아는 분들이 있기에 나오는 말이기도 하다. 보통은 그 반대로, 건물은 지어놓고 운영에서 막히거나, 공공이란 ‘주인이 없다’는 말이기도 해서 지역에 좋자고 한 일이 되레 운영 단계에 접어들어 시민들 간 이해 갈등을 촉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 과정의 단계 단계가 분절되어, 다 사람이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단계마다 참여하고 노력한 사람은 잘 안 보이고 결국 목표와 방향을 잃고 예산 집행 시간 맞추기에 급급해지는 일들이 비일비재해서이기도 하다.
공공 프로젝트일수록 책임 소재가 모호하다는 말이 그래서 일리가 있다. 이는 민간 영역의 프로젝트 참여 방식이 ‘용역’의 한계 안에 있고 좀 더 높은 목표 설정이나 내용의 질 관리보다는 정해진 예산과 기간을 절차대로 맞추기만 해도 무사한 일이기도 해서, 우리는 민간 영역의 분야별 기업 및 전문가들(도시, 건축, 문화, 예술, 기술, 디자인, 도시 및 문화 정책 자문 등)과의 협업과 그 협업 경험의 지속성에 세심한 공을 들였다. 운영주체를 먼저 선정한다는 의미는 그 운영 주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가 아니라, 함께 일하는 민간 영역의 파트너들과 행정의 협력이 가능하도록 중간에서 코디네이터로서의 역할을 현명하고 충실하게 해야 하는 역할과 책임이 부여된 것이다. 그래야 프로젝트의 실패와 성과도 ‘용역’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진 사람들이 아니라, 공유하고 평가받을 수 있는 크레딧으로 살릴 수 있다.
‘모두를 위한 문화를 만든다‘는 것
사실, 엄밀히 말하면 모두를 위한 문화예술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요즘처럼 ‘모두가 모두를 위하겠다’가 횡행하는 시대에서는 더욱 무딘 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B39는 한국의 예술가 또는 크리에이터들에겐 활력과 영감을 주며 일하기 좋은 공간이길 바라며, 시민들 즉 대중들에겐 남녀노소 모두에게 배제됨 없이 문턱이 낮아야 하며, 엣지있고 세련된 멋과 향을 풍길 때도 있지만 푸근하고 정다운 곳이기도 해야 하며, 특정 장르 향유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경험으로서의 예술이길 바라며, 익숙하지 않거나 어려운 것도 있고 좀 더 친근하고 쉬운 것도 함께 있어야 하며, 문화-예술-교육-경제(산업) 분야와 사람들이 이곳에서 만나 교류하고 교차하는 공간이 되길 바라며 노력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를 위한 문화를 만든다’는 말을 썼다. 이는 언젠가 공간 디자인을 함께 하는 파트너들과 이야기할 때 ‘그 냄새나고 아픈 기억이 있던 소각장이었다는 것을 잊을 만큼 쾌적하고 멋이 있는 공간이어야 하며 또 한편으로는 이곳이 소각장이었음을 기억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과 일맥상통하며, 그 구현의 형태와 방식은 국내·외 많은 창조적인 사람들과 함께 여전히 많이 남아있는 이 공간의 쓰임을 재발견해가는 과정과 맞물려 사람이 있어 진화하고 또 새롭게 업데이트가 되어 갈 것이다.
소각장 부지로 들어서는 정문 게이트는 2017년 12월 준공 이후 2018년에 디자인해 만들었다. 기존의 소각장 입구가 버퍼 존이 없이 지저분하고(불법 주차 및 불법 광고 현수막들의 보금자리), 차들이 쌩쌩 오가는 소각장 사거리에서 사각지대가 형성되어 진입을 위한 자동차 및 사람의 도보가 위험해 보이는 요소, 게다가 입구의 커뮤니케이션 툴이 전혀 없는 상태를 부천시 문화예술과 문화시설팀과 협의해 시간은 촉박하지만 오픈 전까지 새로운 정문 게이트를 세우기로 결정했다. 정문 게이트를 포함한 B39의 모든 그래픽 디자인과 공간환경 디자인은 ‘랄라라’가 함께 했으며, 디자인 구조물의 설계와 시공은 ‘그루 스튜디오’가 함께 했다. 건축물 전면부와 측면의 수퍼그래픽 작업은 모두 실측을 통해 손으로 그린 작업이며 조성진 PM과 정석모 화가가 작업했다.
‘Mosquito’. 낭트 메트로폴의 소도시 르제의 철과 전자를 다루는 FER 어소시에이션의 업사이클링 아티스트이자 블랙스미스 뤼도와 제롬, 그리고 소각장 리모델링 공사에 참여한 부천시의 50대 후반–60대 중반 남성 참가자들이 함께 공사 중 나온 폐기계의 철을 재료로 직접 단조 작업을 하여 만들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그들의 연륜에서 오는 이해와 오랜 현장경험에서 갖춘 감각과 노하우가 없었다면 공사 중인 현장에서 가능하기 어려웠을 작업이다. 추운 겨울 뤼도가 가져온 와인을 마시며 열정적으로 작업했다. 그들의 주축이었던 한병학 씨는 소각장 바로 인근 동네에 살고 있는 주민이기도 하며, 이 프로젝트를 계기로 현재는 노리단의 B39 시설관리팀 직원이 되었다.
사진제공_부천아트벙커B39
- 류효봉
- 2011년부터 사회적기업 ㈜노리단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노리단은 2013년부터 프랑스 낭트시 및 낭트 메트로폴 거점으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대표적으로 부천아트벙커B39를 기획운영하고 있다. 류효봉 대표는 2014년 삼정동 소각장 재생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함께했다.
ryu@norida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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