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축제인 생태 예술마을 모니아이브

자연을 그대로 품은 스코틀랜드 환경예술축제

지역민 모두가 모이는 시간
2년에 한번 개최되는 스코틀랜드 환경예술축제(Environmental arts festival in Scotland)는 지역의 예술가, 과학자, 요리사, 농부, 학생 등 지역민이 모두 모여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자연경관을 새로운 눈으로 함께 보고 사유하며, 대자연과 함께 사는 대안적인 삶에 대해 논의하는 축제다. 책상 위에서 벌이는 탁상공론이 아닌 예술가는 예술 작품으로, 과학자는 실험으로, 요리사는 음식을 만들며 자신들의 작업을 통해 축제라는 장 위에서 마음껏 표출하는 것이다. 더불어 서로의 삶의 방법들을 공유하고 격려하는 장이기도 하다. 축제는 스코틀랜드 남서쪽의 덤프리스(Dumfries)주에서 펼쳐지는데,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들의 멤버십 단체인 ‘더 스토브 네트워크(The stove network)’와 농촌지역 안에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탐구하는 그룹 ‘와이드오픈(Wide open)’이라는 단체가 주체가 되어 만든다. 재미있는 것은 참가자 모두 2박3일간 야생에서 공동 캠프 생활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축제의 과정이 축제가 되는
축제가 시작되기 한 달 전부터 마을 곳곳에서 주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취미로 동네 사진을 찍는 할아버지는 자신의 창고를 열어 자그마한 전시장을 만들고 ‘환경예술축제 참여작가’라고 이름을 내걸었다. 핵 발전소 반대를 지지하는 단체들의 모임도 축제가 시작되기 한 달 전부터는 이전보다 더 많은 모임들을 진행했다. 그리고 환경예술축제 안에서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캠페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동네의 걷기 클럽은 캠프 장소까지 걸어가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주민들과 함께 현장 사전 답사도 진행했다. 곧 있을 축제를 맞이하며 준비하는 동네 사람들의 모습에는 그 어디에도 수고스러움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히 인위적인 이벤트나 프레임에 갇힌 사전 프로그램들 찾아볼 수 없다. 아무리 작은 활동이라도 축제의 장 위에서 자신들의 삶을 공유했다. 축제의 과정이 축제가 되는 순간이다.
모두가 함께 만들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축제라 하더라도 그 중심이 흔들지 않도록 근간을 잡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은 누가 뭐래도 기획자의 몫이다. 이 축제의 핵심 기획자인 로비(Robbie)와 매트(Matt)는 축제 전체의 방향성과 프로그램을 아우르며 관리감독을 했다. 하지만 그들도 축제에 작품 활동을 하는 참여작가이기도 했다. 축제가 2주정도 남았을 무렵, ‘피크닉(소풍)’이라 칭하던 최종 회의에 참여했다. 그날 회의 장소는 축제 장소인 몰튼성(Morton Castle) 아래에서 진행되었다. 돗자리를 펼치고 참여작가들이 동그랗게 모여 앉았다. 집에서 가져온 따듯한 스콘과 홍차를 나누어 마시며 회의가 시작되었다. 작가들은 축제에서 진행될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고 다른 작가들의 작업들과 겹치는 부분이 없는지를 꼼꼼하게 체크했다. 나눈 이야기들은 서로의 작업에 영감을 주고 또 개선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었다. 홍보팀원들은 작가의 작품설명과 현장의 운영방식들을 꼼꼼하게 챙기고 알아가면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홍보방법들을 고민하고, 봉사단원들은 자신들이 조력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스스로 파악했다. 회의가 끝이 날 무렵 매트와 로비가 말했다. “우리는 몰튼성의 공간에 잠시 들렀다가 떠나는 방문객입니다. 축제가 끝나고 난 뒤 모든 풍경은 단 하나의 헤침 없이 이전과 똑 같은 모습으로 되돌려 놓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연 앞에서 겸손한 방문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축제는 이렇게 마을사람들의 자발적인 사전 참여에서부터, 축제의 본질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기획자와 작가들, 조력하는 팀원들의 힘에 의해 자연스럽게 그 모양을 만들어 갔다.
환경예술축제, 어떤 것들이 펼쳐지나
물안개로 뒤 덮인 언덕 위에 곧 쓰러질 것 같은 몰튼성(Morton Castle)이 호숫가를 등지고 위풍 당당 서있다. 잔디 위에서 누군가 하프 연주를 시작하자 저 멀리 또 다른 누군가가 하모니카로 화음을 넣는다. 화덕에 빵 굽는 냄새까지 진동을 하니 텐트 안에 아직까지 자던 사람들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텐트 지퍼를 가만히 열어 부스스한 몸을 밖으로 내어 자연에 던진다. 이슬이 가득 묻은 풀 위에 온몸을 뉘이니 등이 축축해지며 정신이 또렷해져 온다. 아! 자연이 이렇게 날 깨우는구나! 정신도, 마음도, 몸도 새 파란 자연이 깨워주는 그 곳, 스코틀랜드 환경 예술축제(Environmental arts festival in Scotland) 아침 광경이다. 텐트를 뚫을 것만 같던 지난밤의 폭우가 언제 그랬느냐 능청을 부리는 고요한 아침, 환경예술축제의 첫날이 밝았다.
축제의 모든 프로그램은 “우리의 이야기”라는 인식을 놓치지 않도록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로 구성되었다. 물과 같은 생존에 필요한 필수 요소를 다루는 작품 중 “크래프티드 스페이스(Crafted Space)” 라는 팀의 작품이 가장 먼저 축제의 아침을 열었다. 호수 위에 투명 공처럼 생긴 설치 작품을 양방향에 띄우고 부력을 이용해 떠 있는 투명 공 안에서 두 명의 예술가가 안무를 시작했다. 이른 아침, 호숫가 위에 띄어진 거대한 투명 공은 마치 어렸을 적 논 가에서 보았던 개구리 알이 마법을 부린 마냥 부풀어 보인 듯 해 신비했다.
지역의 시인들로 구성된 “풍경의 지도”팀은 축제 곳곳에 보물상자들을 숨겨두었다. 상자 속에 들어있던 나침반이나 연필들은 일상에서 흔히 보는 물건이지만 그날만큼은 어린 시절 맑고 순수했던 시각으로 사물을 보게 했다. 보물을 찾은 자리에 앉아 우리 자신도 하나의 풍경되어 시를 지었다. 늘 보던 것들, 사라져가는 것들, 무심하게 지나치는 것들에 대해 새로운 감각으로, 시각으로 시를 적었다. 늘지나가는 공간이지만 관심 없어 멈춰 있던 풍경에 아름다운 언어가 생기를 불어 넣었다.넘실넘실 풍경 속에서 아름다운 말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지역의 학생들도 대거 참여했다. 가상세계의 삶에 더 익숙해있는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땅을 현실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시간을 마련하는 작업이었다. 숲 속에 숨어있는 아름답고 황홀한 상상 속의 유니콘이 현실 세계에 나타나 가상과 현실 사이에 다리를 놓아 주었다.고대부터 변화의 상징이라고 알려져 온 유니콘은 축제에 참여한 십대들의 마음을 어떻게 변화 시켰을까.
점심이 되면 지역의 요리사팀으로 구성된 “불의 강”팀이 가장 분주했다. 덤프리스의 마을 곳곳에서 퍼온 흙으로 그럴싸한 화덕을 만들어 불을 지폈다. 밀을 직접 으깨 반죽을 한 뒤 참여자들이 가지고온 야채들을 올려 피자를 구웠다. 물고기들을 손질해 가져오면 요리사의 특제 소스로 간을 맞추어 구워 주기도 했다. 도란도란 앉아 생선을 굽고 반죽을 만들며 피자를 나누어 먹었다. 배만 부른 것이 아니다. 마음에 살도 알차게 찌워간다.
밤이 되자 몰튼성 주변을 둘러 다섯 곳에 캠프파이어가 지펴졌다. 밤새 토론하는 공간이다. 캠프파이어 사이트마다 주제가 달라 자신이 원하는 주제에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 어떤 이는 시로 표현하고, 노래로 짓고, 책을 낭독했다. 장작은 쉴 새 없이 타닥타닥 타오르고 참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끝이 날 줄 모른다. 이렇게 자연 속에서 축제의 밤낮이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다.
어떤 작품들은 너무 심오해서 다소 어렵기도 했고, 밤새 하던 토론은 야생캠프에 체력이 바닥나 지쳐버린 탓에 끝까지 참여하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욕심내어 하나도 빠짐없이 참석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함께하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작품의 난이도와 이해를 넘어 마을 주민들은 축제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고 그 관계를 통해 행복해 하는 것 같았다. 축제 기간 동안 지역민 모두가 서로의 삶을 위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다시 일상, 끝나도 끝이 아닌 축제
축제가 끝이 났다. 펼쳐 놓은 설치물이 많지 않으니 정리하는 시간도 금방이다. 태양열을 사용했으니 철거할 전기장비도 없고 일회용품, 현수막 사인물을 만들지 않았으니 쓰레기도 없다. 캠프 사이트에 텐트를 걷고 각자 가지고 온 짐을 챙겨 가방을 들춰 메니 기획자 매트와 로비가 피크닉 회의에서 당부했던 그 말이 떠올랐다. “축제가 끝나고 난 뒤 모든 풍경은 단 하나의 헤침 없이 이전과 똑 같은 모습으로 되돌려 놓아야 합니다.” 그들의 당부대로 참가한 모두는 자연 앞에서 겸손한 방문객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3일이었다. 지극히 예술적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축제, 2박 3일간 참여자들은 자신의 지역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체험을 하고 돌아왔다.
환경예술축제가 끝이 난지 열흘이 지났는데도 옆집 아저씨의 집에는 여전히 사진전시가 한창이다. 축제에서 창작한 시는 낭독회의 자리에서 읊어 지고 누군가의 노래가 되어 작은 음악회에서 불려졌다. 그래서 환경예술축제는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천우연_문화기획자
천우연_문화기획자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서 태어나 풀밭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어린시절을 보냈다. 학교를 졸업하고 어린이 전시와 뮤지컬을 제작하며 서울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2008년부터 2015년까지는 공공기관의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수주하는 일을 하다 2016년 일년 반, 세계 곳곳에 있는 예술마을을 여행했다. 여행 후 ‘세계 예술마을로 떠나다’ 책을 출간하고, 현재는 북촌문화센터에서 오래된 북촌의 마을 이야기로 여행 프로그램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머지 않아 고향 해남으로 다시 돌아가 마을 주민들과 예술가들과 함께 가슴 따뜻한 일을 하고픈 꿈을 꾸고 있다.
woo198304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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