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예술
아이들이 나무토막에 이쑤시개와 면봉 따위를 활용해 헝겊을 고정해 만든 ‘걱정 인형’을 손에 들고 친구네 집을 방문한다. 집은 의자 뚜껑 안에 마련한 작은 미니어처 형식의 보석상자(cassette) 같다. 아이들은 저마다 개성을 한껏 살려 자기집을 꾸미고 인형을 만들어 손님을 맞이하고 친구네 집들이에 마실을 간다. 손님과 주인은 자기 분신(分身)과도 같은 인형을 마주하며 시시콜콜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아무 방’이라고 이름 붙인 아홉 살 김병준 군은 “내가 하고 싶어 하던 일이어서 더 빠져든다.”며 즐거워한다. 신난 것은 아이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네 살짜리 아이와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한 도연이 엄마는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제가 더 신나서 열심히 한다”고 계면쩍은 웃음을 짓는다.
수다와 수업의 경계를 허무는 공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소꿉놀이에 빠져드는 참여자들의 모습에서 차분한 명랑함의 기운이 느껴진다. 지아정원의 <우리는 가족이야, 아니야?>는 소꿉놀이 형식을 빌려 옆 친구와 얼굴을 익히고 인기척을 느끼며 우애로운 마주침의 순간들을 연출하는 프로그램이다. 아이들의 무구한 표정을 보노라면 자기 앞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한순간의 경험을 의미하는 에피파니(epiphany)의 순간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작고한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이 「소꿉놀이」라는 동시에서 “돌담 너머 / 대추나무 밑이 / 따사해서 / 아이들이 꼬마 살림 차렸다”라고 쓴 것도 그런 에피파니의 순간을 노래한 것이라고 간주해도 좋으리라.
2016년 <타인의 자리>에 이어 진행되는 2017년 지아정원의 <우리는 가족이야, 아니야?> 프로그램은 서로가 서로에게 곁을 내주며 선물이 되는 절대적 환대를 경험하게 한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어느 문화인류학자가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김현경)라고 말한 것처럼, 참여자들은 소꿉놀이라는 유구한 놀이 형식을 통해 다른 사람의 존재를 상상하고 사회적 성원권(成員權)을 이해하는 문화예술교육 프로젝트로서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오로지 사람으로 인정된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만 가능하다는 점을 깊이 생각하고, 실제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지아정원의 <우리는 가족이야, 아니야?>는 2016년 경기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사업에 처음으로 참여하며 진행한 <타인의 자리>의 연장선상에서 구상되었다. <타인의 자리>는 참여자들과 함께 의자를 제작하고, 제작한 의자를 멋지게 꾸민 후에, 가면을 쓰고 의자에 앉아 ‘그 사람’이 되어 전하고 싶은 사연을 말하는 장르통합 프로그램이다. 자신이 만든 의자가 놓인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소소한 감정을 표현하는 글을 발표하는 모노드라마 형식은 뭉클한 감동과 재미를 주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은 아이는 같이 소풍 가서 놀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적었고, 병석에 누운 친정어머니를 자주 찾지 못해 미안해하는 마음을 간직한 딸은 엄마에게 편지를 띄웠다. 어쩌면 그런 사소한 말들의 풍경이야말로 저마다의 진심(眞心)이었다고 확언할 수 있으리라. 결국, 의자를 만드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고, 가까운 타인을 생각하고 그 사람의 자리place를 잊지 않으려는 교육 프로젝트였던 셈이다.

혈연에 기초하지 않은 가족의 가능성
“아이들은 소꿉놀이를 통해 생존의 기술, 관계의 기술을 배운다. 아이들이 자신의 분신인 걱정 인형을 들고 누군가의 집들이에 가는 형식에서 관계의 기술을 익히게 되기를 희망한다.”
– 정인교 l 지아정원 기획자, 강사
물론 ‘흑역사’ 시절도 없지 않았다. 2015년 경기문화재단 CoP사업을 통해 처음 문화예술교육에 입문한 지아정원 이현정 대표와 정인교 기획자 모두 아이들과 함께하는 교육 경험이 적어 처음에는 참여자들과 아이 콘택트하는 것조차 버거워했다. 이론과 실제 현장의 사정은 달랐던 셈이랄까. 당시 첫 수업 때 현장 모니터링을 했던 나는 지아정원의 두 강사가 무대 위에서 ‘독백’을 하는 배우 같다는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데 두 사람의 분투는 놀라웠다. 안산 강서고등학교 동창인 두 사람은 가르침(teaching)의 관점이 아닌 참여자들의 배움(learning)이라는 관점에서 문화예술교육에 대해 고민하며 문제를 하나씩 풀어갔다. 아마도 그때 두 사람이 지지고 볶으며 싸운 이야기를 잘 정리만 해도 한 사람의 (예술)교사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하는 측면에서 흥미 있는 ‘간증 자료’가 될 것이라고 나는 지금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여하튼 2016년에 진행된 교육 경험은 2017년 프로그램 설계와 운영에도 적잖이 영향을 미쳤다. 의자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식기와 식탁을 만들며 함께 밥을 먹는 가족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구상했다. ‘드루와’의 환대가 가능한 조각보 가족, 다시 말해 패치워크 패밀리(Patchwork Family)로서의 가능성을 적극 모색하고자 했다. 여기에는 정인교 강사의 초등학생 조카가 성별이 다른 한 쌍의 부부와 자녀 둘을 보통의 가족이라고 가르치는 초등학교 2학년 교과서 내용에 의문을 제기한 사건이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조카가 “삼촌, 우리는 가족이야 아니야?”라고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두 사람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아이들의 소꿉놀이와연계해 혈연에 기초하지 않은 가족의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했다. 실제 아이들은 집주인으로서 자기 주도성이 커지는 경험을 맛보았다. 초등학교 3학년인 형 이은수와 같이 참여한 1학년 이은성은 미니어처로 만든 음료수를 자랑하며 손님과 대화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런데 약속이나 한 듯이 정인교 강사가 아이들 집을 방문하면 은근히 ‘디스’하며 딴청을 부리는 것이었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친밀한 적’이 되었을 만큼 친해진 셈이랄까.

존중과 환대가 있는 주말 부족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지아정원의 프로그램은 수업 때 만나고 마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안산에 사는 두 사람은 아이들과 일상적으로 자주 얼굴을 보며 지낸다. 이현정 대표는 한부모 가족이든 조손 가정이든 간에 프로그램에 참여한 모든 아이들의 집을 직접 가정방문을 할 계획이다. 평소에도 자주 아이들 집을 오가는 사이여서 어려움은 없다. 정인교 강사도 평소 아이들과 함께 연극을 관람하는 등 자주 어울리며 지낸다.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에서 만난 작은 인연이 서로의 관계를 바꾸고, 동네를 바꾸는 마음의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다. 그런 아이들은 회복 탄력성이 높은 아이들로 성장할 수 있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믿을 놈 없다’ 따위의 적자생존식 가치를 맹신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 사이의 연계와 사회적 네트워크 형성 그리고 호혜성과 신뢰의 규범을 더 신뢰하게 된다. 그런 아이들은 자신의 노력 부족을 능력 부족으로 결코 착각하지 않는 마음의 습관을 형성하며 건강한 마음생태학을 갖게 된다. 흥미 있는 점은 또 있다. 2017년의 경우 2016년에 비해 아이들 아빠들의 변화가 눈에 보인다는 점이다. 지난여름 캠프에는 아빠들이 여럿 참여했고, 아빠와 아이가 함께 식탁을 만드는 교육과정 또한 후반부에 배치했다. 내 시간을 들여 땀 흘리며 수고해 제작한 식탁에서 사람들과 함께 밥 먹는 행위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설레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그런 행위야말로 서로에게 주는 뜻깊은 선물이 되고, 큰 밥상공동체[大同]로 가는 작은 실마리가 될 수 있으리라. 교육철학자 존 듀이(John Dewey)식으로 말하자면 그런 경험은 하나의 불꽃놀이처럼 ‘어떤 하나의 경험’을 이루게 될 것이다. 전체 과정을 잘 정리해 지난해처럼 전시회도 할 생각이다. 정인교 강사는 “결과를 중시해서 전시회를 여는 게 아니다. 오히려 과정을 더 중요시했기 때문에 여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안산시 상록구 한양대학교 에리카캠퍼스 앞 석호 상가 지하에서는 매주 토요일마다 주말 가족이 모였다가 흩어지며 가족 밖 가족을 이루어가고 있었다. 가족 밖 가족 구성원이라는 성원권을 존중하며 절대적 환대가 이루어지고 있고, 이 사회가 하나의 신뢰의 서클을 이루는 가족일 수 있다는 인식이 조금씩 자란다고 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안산 지아정원 <우리는 가족이야, 아니야?> 참여자들은 지금 ‘주말 부족(部族)’으로 공진화(共進化)하는 중이다!
단체 ㅣ 지아정원
삶과 예술과 놀이의 순환 고리를 찾아 삶을 예술처럼 누리고 예술을 놀이처럼 즐기며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함께 성장해 나가는 공간을 만들고자 2015년 설립했다. 자연파괴, 관계의 와해와 삶의 의미상실, 그 이면에서 작동하는 공통의 힘을 인식하고 예술을 통해 극복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프로그램 ㅣ 우리는 가족이야, 아니야?
전통적인 가족 개념이 점차 약화되어가는 현실 속에서 타인과의 만남에 이름을 부여하는 프로그램이다. 의자와 식탁, 식기를 만들고 함께 밥을 먹는 과정을 통해 교과서에서는 다루지 못했던 수많은 형태의 가족-애정과 혈연에 기초하지 않은 가족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그것을 통해 관계의 근원을 살피고자 한다.

고영직
고영직_문학평론가
문화예술교육 웹진 [지지봄봄]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경희대 실천교육센터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자치와 상상력』, 『 노년 예술 수업』(공저) 등을 펴냈다.
gohyj@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