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의 질적·양적 성장이 ‘진정한 성장’

2018 상반기 아르떼 아카데미 <자치와 마을 공동체 그리고 문화예술교육>

지난 1월 2018 상반기 아르떼 아카데미에서는 ‘마을 공동체’ 관련 소재로 <자치와 마을공동체 그리고 문화예술교육> 연수가 진행되었다. 연수의 주요 내용으로는 주민 자치에 의한 마을 공동체를 탐구하고 그 안에서 실행할 수 있는 문화예술교육을 기획하는 것이다. 영하 10도가 훌쩍 넘는 한파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모인 연수생들의 열정을 볼 수 있었던 2박 3일간의 프로그램 중, 셋째 날 ‘체험 및 토론 프로그램’에 참석했다.
‘마을 공동체’, ‘지역 문화’라는 키워드가 문화예술 정책으로 중요하게 떠오른 지는 꽤 되었다. 주민, 기획자, 행정, 세 개의 주체가 마을 안에서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주제로 만나면서 기획자들에게는 주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턱 낮은 기획들이 요구되고 있다. 좋은 프로그램이란 ‘기획자의 기획력’과 ‘주민의 능동적인 태도’, ‘행정과의 조화’가 자연스럽게 융화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내려놓기
강의를 이끈 문화디자인자리 최혜자 대표는 연수생들에게 마을에서 진행되는 문화예술교육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리고 스크린에 20여 개의 ‘가치 카드’ 단어들을 나열했다. 우리가 수도 없이 쓰고 말했던 ‘이해’, ‘공감’, ‘수용’, ‘소통’, ‘인정’, ‘색다름’, ‘조화’ 등이 등장했다. 비슷한 단어들을 추려내고, 추가했으면 하는 가치들을 더 적어 넣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여섯 개만 빼고 모든 단어를 다 버리란다. 어수선해지기 시작했지만 금세 연수생들은 여섯 개를 골라내기 위해 골똘히 고민했다. 그리고 뽑은 여섯 개의 단어를 포스트잇에 적었다.
그러자 그 카드 중 또 두 개를 버리고, 심지어 하나는 옆 사람에게 주란다. ‘모든 단어가 다 중요해서 버릴 수가 없다.’며 여기저기 탄성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대표는 인심 쓰듯 이미 버린 카드 중 가장 아쉬운 단어 하나를 주워 담으라고 했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버린 단어를 천천히 훑어보는 연수생들이 모습이 진지했다. 연수생들은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네 장의 카드를 꼭 쥐고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단어를 옆 사람과 왜 그 카드를 선택했는지 의견을 나눴다. 그리고 이 네 가지의 가치들을 어떻게 기획에 녹아 낼 수 있을지 토론했다.
“기획자는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요. 마을에서 문화예술을 고민한다는 것만으로도 오늘 모인 연수생들의 열정을 알 것 같아요. 하지만 잘 추려 내었으면 좋겠어요.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것을 다 해낼 수는 없거든요.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집중하고, 가끔은 중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버려진 것들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어요. 선택하는 과정에서 갈등하며 기획의 방향들을 찾아가는 거죠. 또한, 버려진 것을 다시 주울 때는 분명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거예요.”
– 문화디자인자리 최혜자 대표
“너무 많은 키워드가 스스로를 힘들게 할 때가 있었어요. 카드를 선택하면서 기획자로서 내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다른 기획자들의 생각들도 알게 되었어요. 더 나은 기획이란 어떤 것인지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정리가 되어 가는 기분이에요.”
– 이지희 연수생(아트브릿지)
우리는 카드를 버리고 다시 줍는 과정에서 조금 더 깊이 있게, 마을에서 문화예술교육이 가져야 할 가치를 곱씹어 생각했다. 진부하고 흔한 단어들이 이날을 계기로 살아있는 말로 변해 연수생들의 기획 프로그램에 진하게 드러나길 기대해 본다.

다름에 대한 수용
두 번째 활동으로 짧은 시간 안에 스크린에 사진 한 장을 보여주고 방금 본 사진을 그대로 그리는 미션이 주어졌다. 밤바다 멀리 화려한 불빛의 건물, 부둣가, 두 척의 배, 갈매기가 담긴 사진이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사진 속 요소들을 더듬어 스케치한 뒤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며 옆 사람과 비교했다. 분명 같은 사진을 보고 그렸으나 연수생들의 그림은 모두 달랐다.
우리는 왜 같은 그림을 보고 다른 기억을 했을까. 이 과정은 서른 명 남짓 되는 연수생들의 생각이 천차만별이듯이, 마을을 구성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의 영역에서 얼마나 다양성을 수용하고 있는지를 되새기게 했다. 덧붙여 실로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필요 없다고 버린 것들도 다시 한 번 집중할 필요가 있음을 전했다.
“보지 못한 것, 놓치고 있는 것들을 생각하지 못한 채, 사업의 완성도를 높이고 싶어 저 역시 늘 급한 마음이 앞섰습니다. 사업을 하려다 보니 마을 주민들을 기능적으로 바라본 적도 있었고요. 훌륭한 사례들을 접하며 나의 틈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따뜻한 마음의 눈으로 사람을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루아침에 될 일은 아니지만 20년 동안 좋은 사례들을 만들어 온 선배들은 그렇게 해내신 것 같아 스스로 반성하며 더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 권미영 연수생(문화다양성 교육연구회 다가감)
10초 남짓 바라본 사진 속에서 그제야 보지 못했던 새까만 하늘의 별빛이, 바다 물결 위의 반짝거리는 너울 빛들이 보였다. 권미영 연수생의 말대로 새로운 것을 더 찾아내려는 욕심보다 우리가 가진 것들을 얼마나 깊이 있게 조명하고 있는지, 또는 놓치고 가는 것은 없는지, 지금 현재의 우리 모습을 성찰할 필요가 있겠다.

‘내가 마을이라면’ 입장 바꿔보기
사단법인 ‘마을’의 이창환 이사는 참석자들에게 기획자라는 직업을 잠시 내려놓고 마을에서 당신은 누구인지 물었다. ‘나는 이런 주민이다’라고 포스트잇에 적은 뒤 돌아가며 자신을 소개하게 했다. ‘나는 아이 셋을 둔 아줌마입니다’, ‘나는 자전거를 타는 아저씨입니다’, ‘나는 동네 총각입니다’……. 그리고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지역 주민들에게 문화예술교육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프로그램을 만들던 연수생들에게 주민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자신이 만든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돌이켜 보게 했다. ‘고상해서 다가가기 힘든 것’,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것’, ‘취미 활동 모임 같은 것’, ‘생활의 활력소’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이어서 ‘마을 주민들에게 문화예술교육의 어려움은 무엇인가?’라며 연달아 질문했다. ‘간절함의 부재’, ‘회비에 대한 부담’, ‘넉넉지 않은 공간’ 등. 질문 내내 연수생들은 마을 주민의 입장에 섰다.
“예술교육을 통해 마을을 조금 더 나은 공동체로 만들어 가길 원한다면 행정과 기획자, 주민의 권한이 공평히 주어져야 합니다. 기획자는 주민들을 위한 최고의 프로그램을 기획하려 애쓰기보다는 주민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발견하게 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전문가의 입장에서 도움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성장은 프로그램의 완성도 보다는 매해 주민들의 주도성이 얼마나 질적, 양적으로 성장했는가 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는 여러분께 주어를 ‘주민’으로 놓고 기획을 해 보시라 권합니다. 서 있는 곳이 달라지면 보이는 것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 사단법인 ‘마을’의 이창환 이사
“제가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주민참여를 높이는 것이에요. 다들 쉽게 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이 부분이 아직도 어려워요. 주민의 입장이 되어 기획하는 습관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번 연수를 통해 그 해답에 조금 다가간 것 같아요.”
– 이지희 연수생(아트브릿지)
문화예술교육의 가치와 어려움, 해결 방안을 주민의 입장에서 천천히 다시 한 번 톺아보았다. 상상을 글로 풀고 말로 표현하여 실행까지 해내는 기획자들의 삶은 올해도 바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마을에서의 문화예술교육을 ‘일상을 발견하는 과정’이라고 말하던 최혜자 대표의 말처럼, 올 한해 욕심으로 새로운 것들을 꾸며내기보다는,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조금 더 깊이 있게 관찰하고, 소홀하게 여긴 것들을 다시 한 번 주목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덧붙여 마을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문화예술교과목임을 기억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연수생들의 끊이지 않는 토론을 지켜보며 이들의 2018년의 활동을 기대해 본다.

아르떼 아카데미(ArtE Academy)
‘아르떼 아카데미’는 문화예술교육의 창의적 리더와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문화예술교육 강사·기획자, 교원, 문화예술 관련 분야 행정가, 대학(원)생 등을 대상으로 주제별·단계별 연수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아르떼 아카데미에서 진행하는 연수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운영하는 <아르떼 아카데미> 홈페이지(https://hrd.arte.or.kr)에서 확인 가능하다.
<2018 아르떼 아카데미 연수 참여수기 공모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예술교육연수센터는 최근 3년간 연수 참여자를 대상으로 ‘아르떼 아카데미 연수 참여수기’ 공모전을 개최합니다. 아르떼 아카데미 연수를 통해 경험한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긍정적인 경험과 변화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응모자격: 최근 3년간(‘16~’18년도) 연수 참여자
* 공모기간: 2018년 2월 19일(월) ~ 3월 16일(금)
* 문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교육연수센터 (02-6209-5966, academy@arte.or.kr)
[관련링크] 2018 아르떼 아카데미 연수 참여수기 공모전 안내

천우연_문화기획자
천우연_문화기획자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서 태어나 풀밭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어린시절을 보냈다. 학교를 졸업하고 어린이 전시와 뮤지컬을 제작하며 서울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2008년부터 2015년까지는 공공기관의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수주하는 일을 하다 2016년 일년 반, 세계 곳곳에 있는 예술마을을 여행했다. 여행 후 ‘세계 예술마을로 떠나다’ 책을 출간하고, 현재는 북촌문화센터에서 오래된 북촌의 마을 이야기로 여행 프로그램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머지 않아 고향 해남으로 다시 돌아가 마을 주민들과 예술가들과 함께 가슴 따뜻한 일을 하고픈 꿈을 꾸고 있다.
woo19830411@gmail.com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비밀번호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