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의 삶으로 ‘찾아가는’ 예술

2017 한‧영 컨퍼런스 ‘창의적 나이듦(Creative Ageing)’ 라운드테이블

고령화 사회에서 예술이 가져야 할 역할에 대해 양국 간의 지식 교류를 확대하고, 기관 간 네트워크 형성 및 협업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열린 〈한영 컨퍼런스 ‘창의적 나이듦(Creative ageing)’〉. 둘째 날인 12월 6일 행사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디지털정보실 라운지 달(DAL)에서 라운드테이블 및 워크숍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본 글에서는 라운드테이블에서 발표된 각 기관과 개인 프로젝트의 흥미로운 내용과 논의된 중심 과제들을 사례 별로 소개하고 관련 질의응답에 관한 내용을 공유하고자 한다.
‘뮤지엄 내에서의 창의적 고령화 프로그램 사례’
노팅엄 시티 아츠, ‘찾아가는 디지털 미술관- 하우스 오브 메모리’
노팅엄 시티 아츠*(Nottingham City Arts) 웰빙 프로그램 디렉터인 케이트 런던(Kate London)은 문화예술 향유의 기회에서 소외된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성공적인 프로젝트 사례로, 배링 재단**(Baring Foundation) 아트 프로그램의 지원으로 3년간 실행한 파일럿 프로그램 ‘하우스 오브 메모리(House of Memory)’를 소개했다. 본 프로젝트의 가장 큰 특징은 일반 노인 커뮤니티 지역이나 호스피스 병동, 노인 요양 시설 등에 직접 찾아가 디지털 아카이브 감상, 예술가들이 진행하는 워크숍 등 다양한 방식의 프로그램으로 미술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도운 것이다.
* 노팅엄 시티 아츠: 음악, 공연예술, 시각 및 디지털 예술 분야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단체로, 지역사회와 창의적이고 협업하는 방식으로 일하면서 특히 취약 계층에 보다 집중하고 있다.
** 배링 재단: 영국 최고의 독립 후원 기관으로 차별 및 불이익 문제 해결을 위해 국내외 시민 사회를 후원하며, 2010년부터 예술 및 노인활동을 후원하고 있다.
보통 노년층은 바깥보다 집 안에서 더 많이 활동하여 디지털 문화를 낯설고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본 프로젝트에서는 이러한 특징을 인지하여 노팅엄 뮤지엄(Nottingham Museum)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 콜렉션으로 가상의 아카이브를 만들었고, 디지털 방식(태블릿 PC)으로 노인들이 편안하고 안정감 있는 외적 환경에서 미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재단은 예술가들에게 의뢰하여 런던의 야외 공연, 지역 뮤지엄 내 야외 조각을 포함한 미술품 수집에 관한 동영상을 제작했으며, 예술가들이 직접 노인들과 같이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다. 본 프로그램에 참여한 작가 중 한명은 ‘스토리텔링 기법’ 및 영국에서 노인들의 치유를 돕는 데 많이 사용하는 ‘회상 기법’을 활용했는데, 노인들이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편안한 방식으로 미술 활동을 즐김으로써 ‘기억 나무’가 되살아나게 독려하는 방식이라 한다. 케이트는 본 프로그램을 통해 얻은 자산으로 사회적 기관들과의 파트너십과 네트워크 형성을 꼽았다. 요양원이나 기타 기관에서 노인들이 예술을 즐기려면 관련 기관들과의 협업이 필수다.
노팅엄 시티 아츠에서 진행한 웰빙 프로그램은 누구나 다운로드 받아 사용할 수 있도록 내년에 웹사이트 서비스로 제공될 예정이며(‘armchair gallery’ 사이트), ‘하우스 오브 메모리’ 프로그램 앱도 개발 중이다. 앱에서는 치매 노년 대상 프로그램뿐 아니라 노년층과 함께 사는 세대 간 교류를 촉진하기 위한 프로그램, 어린이들을 위한 게임도 제공될 예정이다. 케이트는 본 프로그램의 성공 가이드 여러가지를 제시했는데, 참여 예술가 훈련 프로그램도 언급하였다. 예술가가 노인을 위한 워크숍을 진행할 때 고려할 사항이나 커뮤니케이션 기술 등도 제공해야 성공적인 프로젝트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재정 확보를 필수로 꼽았으며, 조직 내에서 업무 활동을 지원해 줄 수 있도록 구성원 간의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표가 끝나고 이어진 질의 응답 시간에 본 컨퍼런스에 참여한 국립고궁박물관 최나래 학예연구사는 “지식의 전달을 최소화하면서 어르신들의 감성을 건드려 주고, 체험을 통해 실제로 그것을 어떻게 풀어 나가는지 기관들의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다.” 며 케이트에게 “어르신들과 같이 디지털을 통한 미술 감상 프로그램을 진행해서 어플리케이션까지 개발했는데 그 과정에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었는지” 를 질문했다. 이에 대해 케이트는 “노년층 프로그램을 할 때는 분야 선택이 항상 힘들다. 우리 프로그램의 경우도 초기 참여자는 디지털 기술에 조금 익숙한 분들을 대상으로 했으며, 앱을 소개할 때도 조심스럽게 권유했다. 앱 개발과 관련하여 노년층을 염두에 둘 때 가장 중점은 사용의 편의성, 즉 ‘얼마나 사용하기 쉬운가’이다. 청년층에게 유용한 앱이 노년층에게도 유용할 거라는 보장이 없다. 성공 요인은 참여자 개개인과 시간을 함께 보내며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노년층도 젊은 사람들 못지않게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 한다. 그들보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쉽지 않지만 활용하고 배울 수 있다.” 는 소견을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 ‘시니어 조각공원 소풍’, ‘낭만 수요일’, ‘도슨트 프로그램’
최근 1, 2년 사이 국가적으로 치매와 관련한 정책이 논의됨으로써 시니어 미술 교육에 대한 관심이 더욱 증폭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시니어 층(65세 이상의 중/장년층을 지칭)을 대상으로 마련한 특화 프로그램으로는 작품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는 ‘낭만 수요일’, 치매 어르신들과 가족이 함께 미술품을 감상하며 산책하는 ‘실내 조각공원 소풍’, ‘도슨트 프로그램’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시니어 프로그램은 시니어를 주 대상으로 하지만 가족 모두를 위한 프로그램이며, 창작자로서의 역할을 중요시하여, 참여자가 작가와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고 해석하는 과정에 참여케 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조장은 연구관은 미술관에서 많은 관계자들과 시니어 미술 교육에 관해 논의할 만큼, 노년층에 대한 관심이 사회적으로 확장되었다는 것 자체가 고무적이라는 소회를 먼저 밝혔다. 이어 노년층을 위한 창의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유년기부터 문화예술 향유의 경험이 내재화되어야 하며, 노년기에 접어든 개인이 스스로 문화예술의 가치를 발견하여 의미화하는 작업은 단기간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전 연령층을 위한 프로그램이 큰 틀에서는 창의적 나이 듦을 위한 준비 과정이라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최근 은퇴 이후 노년층이 여타 성인 대상의 강좌에도 활발히 참여하는 현상이 발견되고 있는데, 한 예로 ‘도슨트 프로그램’의 사례는 문화적 활동 안에서 풍요로운 노년을 즐기려는 수요층이 증가했음을 방증하며, 따라서 시니어라는 용어에 대한 조심스러운 접근, 세대 간 통합 프로그램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시니어가 자기 서사를 스스로 편집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해주는 것은 중요하지만, 시니어를 특화시키고 대상화하는 식의 접근은 조심해야 할 부분임을 밝혔다.
황지영 학예연구사, 홍해지 에듀케이터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시니어 프로그램의 세부 진행을 소개했다. 과천관이 보유한 소장품을 통해 진행하는 ‘시니어 조각공원 소풍’은 대한치매학회와 협력해서 운영 중이다. 2017년에는 6회 운영되었고, 회당 30명 정도가 참여하는데 10명에서 15명은 치매 환자, 나머지 분들은 보호자나 자녀들이다. 프로그램마다 의료진과 복지센터 전문가들이 같이 참여하여 매회 프로그램에 대해서 자문하고 있다. 본 프로그램에서는 야외 조각 공원을 산책하며 소리가 나는 작품의 노래를 듣는다거나, 자연 풍경과 바람 소리 등 작품 외적 요소를 함께 즐기며 작품을 감상한다. 특히 작품 앞에서 가족사진을 찍는다거나, 작품 감상 후 가족에게 편지 쓰기를 하는 등 가족 간의 유대와 감상과 창작이 병행하는 활동을 유도하고 있다.
이어 2017 국립현대미술관 고양 레지던시 입주 작가인 전명은 사진작가가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본인의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전명은 작가는 그동안 아마추어 천문가, 청각 장애인, 시각 장애인 등 특수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떠한 감각 세계 속에서 사는지를 이해하고, 그들과 어떠한 이미지를 상상하고 공유할 수 있는지를 작업을 통해 고민해 왔다. 작가는 어릴 때부터 시력을 잃은 어르신들과 함께 시를 쓰는 과정, 그들이 시를 발표하여 시집을 출간하는 과정의 프로젝트를 발표했으며 시집의 일부를 참여자들에게 낭독해 주었다. 시니어이자 장애인인 그들의 특성과 경험은 작가 자신에게 보다 확장적인 세계를 열어 주었으며, 작가가 어르신들에게 무언가를 전달한 것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새로운 창작이 가능했음을 무엇보다 강조했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조각공원 소풍’의 경우 프로그램 진행 시간이 4시간인데, 노인들이 집중하기에 다소 긴 시간은 아닌지” 에 대한 질문에 홍해지 에듀케이터는 “치매 어르신들과 같이 오는 가족 대부분은 배우자가 많고 그분들 역시 연세가 많다. 그분들의 속도에 프로그램을 맞추다 보면 한두 시간의 프로그램은 짧다. 프로그램 전체 콘셉트가 소통이므로 그 시간 동안 함께 식사도 하시고 프로그램 산책도 하신다.” 고 답했다. 또한 “진행하는 예술가는 치매 환자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그들이 치매 환자에 대한 교육을 받는지” 에 대한 물음에는 “자문위원회와 대한치매학회에서 도움을 주신다. 의사들의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의무는 아니지만 나름의 학습 시간과 시범 운영기관을 두어 진행하고 있다.” 고 답했다.

‘창의 프로그램 개발 사례’
서울시50플러스 재단, ‘신중년의 놀이와 삶, 윤기 있는 삶’
서울시50플러스 재단의 이정인 프로젝트 매니저는 현재 재단에서는 어떻게 하면 새로이 부상한 신중년이라고 할 수 있는 50+세대의 경험과 노하우를 잘 살려 사회의 동력으로 활용하고, 그들의 인생 2막을 윤택하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후 프로그램 사례로, 50플러스 인생학교 프로그램 참여자들이 만든 루덴스협동조합을 소개했다.
화려한 탱고 시연으로 발표를 시작한 유상모 루덴스협동조합 대표는 서부 인생학교 1기로 참여, 2기 분들과 ‘루덴스 탱고’라는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멤버들은 보다 즐겁고 신나게 놀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가 떠올라 같이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올 3월에 설립한 루덴스협동조합은 불과 3개월 만에 투자자를 모아(100만 원씩 투자하는 100명을 모았다고 한다.) 불광역 근처에 ‘50플러스 키친’이라는 공간을 오픈했다. 유 대표는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꾸려 나가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그 자체가 이미 성공을 의미한다며, 함께하는 것의 가치를 배우고 있는 중” 이라고 말했다.
이후 이루어진 질의응답에서는 6년째 20명이 도서관을 위탁받아 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다는 참여자가 루벤스협동조합의 운영 목적에 대해 질문했고, 이에 유상모 대표는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다. 우리 세대 대부분이 노는 것에 익숙지 않기 때문이다. 아버지 세대들은 재취업에 관심 있지 노는 것에는 방점을 두지 않는데 잘 놀다 보면 경제적으로 순환한다고 생각한다. 루벤스협동조합도 커뮤니티를 잘 유지하면 10년 후에는 사업의 매개자로 고용 창출도 되고 혜택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용기가 중요하다. 놀면 다 해결되고 놀다 죽어도 세월은 길지 않다.” 라는 유쾌한 답변을 들려주었다.
이웃상회 ‘을지금손박물관’, 도시 재생에서 가장 먼저 되살려야 할 인간의 자긍심
작가이자 프로젝트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미화 작가는 2009년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이웃과 예술로 이웃이 되는’ 작업을 진행해 왔으며, 올해 진행한 ‘을지금손박물관’(금손은 손재주가 굉장히 좋다는 의미의 신조어) 사례를 영상을 통해 먼저 소개했다. 본 프로젝트는 다시세운상가와 서울디자인재단의 후원으로 진행되었으며, 이미화 작가는 도시를 재생함에 있어 가장 먼저 재생해야 하는 것은 ‘인간의 자긍심’임을 가장 중요한 메시지로 전달했다. 작가는 ‘뜨개방’, ‘명성로렉스센타’, ‘신아주물’, ‘신광사’, ‘장공방’ 등 시계수리골목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낙후된 제조 지역인 을지로 일대 상점들을 찾아가, 그곳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창의력의 흔적들을 수집했고 그 흔적들을 모아 하나의 박물관처럼 영상에 담았다. 의류를 대량으로 생산할 때 사용하는 도구인 ‘영랍빠’(천이나 원단을 재봉질 할 때 잘 말리면서 들어가게 하는 보조도구, 표준어는 ‘홀더’)로 손자 손녀를 위한 바람개비 장난감을 만든 어르신, 청계5가 뜨개방에 나와 손자손녀들 줄 용돈을 버는 할머니 커뮤니티의 모습 등이 담겼다.
작가는 이곳에서 만들어진 목장갑, 목양말 시리즈를 상품화하여 독거 어르신들에게 수익금 일부를 환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미화 작가는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고, 유한한 시간을 보내는데 그 시간 동안 우리가 많이 모이면 시민이 되고, 도시가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고, 사람의 자긍심이 재생이 될 때 도시라는 장소도 가치 있는 것” 이라는 소신을 밝혔다.
발표가 끝나자 사회를 맡은 앨리스 트웨이트는 이미화 작가에게 이 프로젝트를 하게 된 계기를 물었고, “현대 컨템포러리아트가 가진 이기적 정서에 대한 반감으로 이웃과 함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는 소신을 전달했다.
엠마 로빈슨, 웨일스의 노년을 위한 페스티벌과 콘텐츠
영국 웨일스 지역 고령 인구를 위한 공립자선단체인 에이지 컴리(Age Cymru)의 엠마 로빈슨(Emma Robinson) 예술과 창의 프로그램 매니저는 ‘구완윈 페스티벌(Gwanwyn Festival)’과 요양원 레지던시 프로젝트인 ‘카트레부(cARTrefu)’를 소개했다. 엠마는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좋으나 너무 빤히 쳐다보거나 한 곳에 매몰되면 안 된다.”는 표현으로 메시지를 전했으며, 노년층을 조직이 직접 찾아가는 방식이 훨씬 유용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영국 50여 개 기관이 파트너로서 페스티벌을 지원하고 있으며, 플랫폼의 기능, 축제 참여자 스스로가 이끌 수 있도록 쇼케이스나 홍보도 지원하고 있다. 모든 프로그램은 납세자들이 내는 세금으로 재원이 충족되어 웨일스의 모든 지역에 혜택이 돌아간다. 영국의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겠지만, 웨일스에서는 6개 정도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며, 창의적 나이 듦(Creative Aging)과 관련한 프로그램이 주를 이룬다. 예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노년층의 건강과 웰빙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인 것이다.
봄을 나타내는 단어가 인상적인 ‘구완윈 페스티벌’은 노년층에 새로운 기회와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부정적 이슈보다는 긍정적인 ‘나이 듦’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 중이다. 올해 10년 차에 접어든 이 축제는 600개 정도의 프로그램에 1만 1000여 명의 노년층이 참여하고 있으며, 5월에만 열리는 일회적 축제가 아니라 지속적인 실행을 목표로 한다. 프로그램 사례로 엠마는 ‘카디프 코메디클럽(Cardiff Comedy Club)’을 소개했는데, 전쟁 외상후증후군을 겪고 있는 가장 높은 연령층으로 구성된 이 클럽에서는 청년들이 선호하는 파쿠르(Parkour, 한국에서는 야마카시로 통용됨)를 재치 있게 패러디했다. 이 활동에는 낙상 예방 메시지도 담고 있기도 하다. 그 밖에 카디프 병원 내 환자들이 여러 소재를 붙여 만든 콜라주 작업, 할머니들이 뜨개질로 소리를 만들어 오케스트라처럼 연주하는 세션(뜨개질을 하면 한 분에게서는 해변가의 바람이나 새 소리가 나오고, 한 분에게서는 다른 흥미로운 소리가 나오는 이 세션은 어르신들이 무료하게 뜨개질을 한다는 전형적 이미지를 비틀었다.) 엠티비(MTV) 프로그램을 차용한 ‘핌프 마이 우쿨렐레(Pimp My Ukulele)’ 등을 소개했다.
엠마 로빈슨은 이후 이어진 세션의 ‘창의 프로그램의 성과 측정’ 섹션에서 찾아가는 노년 레지던시 프로그램인 ‘카트레부’의 설문조사 결과를 요약해 발표하기도 했다. 조사 결과 희망지수, 웰빙지수, 즐거움 지수가 올라갔으며, 참여 요양 시설의 직원들의 이직률 역시 이전과 이후 감소했다고 한다. 또한 참여 작가들은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고립된 환경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에 대한 실용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체감하면서 돌봄’이 문화예술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엠마는 창의적인 작가들과 어르신들과의 소통은 이처럼 서로를 즐겁게 했고, 상상력은 쓰면 쓸수록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총평했다.
한국문화원연합회 ‘문화로 청춘’, ‘실버문화페스티벌’
한국문화원연합회 민경애 대리는 어르신을 위한 문화 프로그램인 ‘문화로 청춘’을 소개했다. 65세 이상의 어르신을 위한 전문 프로그램인 ‘문화로 청춘’은 올해로 13년 차의 사업으로 2005년에 시작하여 현재까지 10개의 시범사업이 확대되어 문화예술 교육과 동아리 활동, 축제로 이어졌다. 프로그램은 배움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나눔’이 주가 되며, 노년층이 경험한 삶을 전파하고 즐거움을 나누는 활동으로 진행되었다. 한국문화원연합회는 문화원이라는 조직 외에도 지역적 기반 안에서 콘텐츠를 채우고자 하고 있으며, 현재 ‘문화로 청춘’ 외에도 어르신 문화활동, 찾아가는 어르신 문화예술 프로젝트, 어르신-청년 협력 프로젝트, 어르신 문화 일자리 등을 진행 중이다. 대표 사례로 ‘고양 늘푸른인형극’을 소개했는데, 어르신들이 모여 인형극을 하는 봉사단 활동으로 시작한 이 단체는 일자리 창출에 성공하여 현재 예비 사회적기업을 설립했다고 한다.
이어 한국문화원연합회 조은빛 담당자가 2017년 9월 14일부터 17일까지 유니버설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진행한 ‘실버문화페스티벌’에 대해 소개했다. 4일간 열린 페스티벌에서는 자기 정체성이 강한 문화 프로그램과 페스티벌형 어르신 문화 프로그램, 전국 규모의 네트워크형 어르신 문화 프로그램, 창의적인 어르신 문화 플랫폼을 지향하고 지속성이 담보되는 어르신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으며, 대표 사례로는 ‘샤이니스타를 찾아라’, ‘어른이 행복무대’, ‘실버문화광장’ 등이 있다. 어르신들이 주가 되어 흥겹게 어울리는 프로그램 위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가족 단위의 방문이 많았다고 한다.
노년은 모든 세대의 현재를 보여 주는 ‘바로미터’
콘퍼런스를 참관하며 ‘신중년’의 창의적 나이 듦을 지원하고 개발하는 영국과 한국의 온도 차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 온도는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주관하는 기관이나, 예술가들, 프로그램 수준에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질에서 오는 듯했다. 우리 현실에서 노년기는 자신의 삶이나 문화예술을 ‘즐길’ 기회가 일부에 국한되며, 노년의 인권을 지켜 줄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많은 노인들이 원하는 것은 일할 수 있는 기회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한 일반 시민 참여 ‘도슨트 프로그램’을 통해 은퇴 후 새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는 조혜자님의 말씀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자리 문제도 해결하고 문화예술의 향유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콘텐츠를 만드는 주최로서 참여할 때, 프로그램의 성과는 높아지고 그것을 누리는 대상자들의 행복도는 더욱 커질 것이다.
더욱이 우리의 노년 세대는 루덴스협동조합 유상모 대표의 지적처럼, 열심히 일만 했지 즐겨 본 경험이 없기에 여유롭게 잘 ‘놀’ 수 있는 양적, 질적 지원이 긴요하다. 현실적으로 예술을 즐길 여건이 되지 못하는 노년들이 소외되고 있다는 점은 영국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요양 시설에서 양질의 예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노년층은 ‘디지털 문화를 접해 본 백인 중년층’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조장은 연구관이 강조했듯이, 우리 현실에서 ‘창의적 나이 듦’의 기본은 모든 세대의 삶의 질을 제도적, 문화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이 아닐까. 노년은 모든 세대의 현재 삶을 보여 주는 ‘바로미터’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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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화_독립 에디터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학과 철학과 미학을 공부했다. 다수의 재단과 문화예술 관련 매체에 인터뷰, 에세이, 미술비평 등의 글을 게재했으며, 독립 에디터로서 독립출판과 관련 프로젝트를 기획해 왔다. 비평과 창작의 사이공간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그러한 질문을 텍스트와 이미지로 표현하고 ‘존재하는 나’로서 공부하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junghwa-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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