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교육, 그 후 SNAAP(Strategic National Arts Alumni Project)

장기적인 예술인들의 육성을 위한 전략 수립

미국 예술교육계의 각성제
뉴욕타임즈의 ‘줄리아드 효과’
지난 2004년 12월 미국 예술계를, 정확하게는 예술교육계를 상당히 뜨겁게 달군 뉴욕타임즈의 기사가 하나 있었다. ‘줄리아드 효과, 10년 후(The Juilliard Effect: Ten Years Later)’라는 제목의 심층 르포 기사다. 데니얼 와킨(Daniel J. Wakin)과 문화와 여가(Arts & Leisure) 팀 기자들은 뉴욕 줄리아드 음대의 1994년 졸업생들을 추적하여, 그들이 졸업한지 10년 후인 2004년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놀랍게도 줄리아드 음대의 동문 중 적지 않은 수가 음악과 전혀 관련 없는 직종에 속해 있거나, 비정규직 연주자로 음악계에 종사하는 등 다른 직업으로 자신의 삶을 건사하고 있었다. 기사에서 소개된,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한 줄리아드 동문이 카드대금을 막기 위해 자신의 바순을 팔아야 했다거나, 알코올 중독과 싸우며 불안정한 음악 관련 일을 해오다 결국 세무 대리직을 준비한다는 프렌치혼 연주자 동문의 사연은 줄리아드 음대가 세계 최고의 클래식 음악 예술가를 양성한다는 명성을 얻고 있던 터여서 그 충격이 더 크게 다가왔다.
‘줄리아드 효과’ 기사는 미국 각계각층의 예술인과 예술교육기관들로 하여금 예술교육이 직면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즉 당시 미국의 클래식 음악교육, 나아가 예술교육이 너무 기술적 훈련에만 치중하여 학생들이 치열한 문화예술의 현장에 적응하는 능력을 키우는데 오히려 방해되고 있음을 반성케 한 것이다. 이러한 반성을 토대로, 미국의 예술대학에서는 예술기업가 정신(Arts Entrepreneurship) 교육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고, 줄리아드 음대의 ‘커리어 서비스 및 기업가정신 센터’(Alan D. Marks Center for Career Services & Entrepreneurship)나 맨하탄 음대의 ‘음악 기업가정신 센터’(Center For Music Entrepreneurship)와 같은 예술기업가정신 교육기관이 중심이 되어, 예술을 배우는 학생들이 기업가정신을 함양하여 졸업 후 직업적인 안정성을 도모할 수 있게 하였다.

전략적 전국 예술동문 프로젝트 스냅(SNAAP·Strategic National Arts Alumni Project)
예술 전공 학생들을 대상으로 커리어 개발과 기업가정신을 교육할 때에 자주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바로 예술대학 졸업생(‘SNAAP’에서는 이들을 예술 동문 ‘Arts Alumni’로 지칭)이 추구하거나 유지하고 있는 커리어의 현재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문화예술계 내의 다양한 커리어 기회가 지속해서 변화하며, 신규 문화예술 커리어 진입에 대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동시에 리더십의 세대교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데도, 대부분의 고등교육기관은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데이터, 즉 예술 동문들이 어떤 직업을 가지고, 학교에서 열심히 배웠던 예술을 어떻게 자신의 삶에 활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신뢰성 있는 데이터가 거의 전무한 것이다. 예술 동문에 대한 데이터 부족은 예술대학 커리큘럼의 방향성을 설정하는데 극복해야 할 중요한 문제점이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 바로 전략적 전국 예술 동문 프로젝트인 ‘스냅’(SNAAP·Strategic National Arts Alumni Project)이다.
스냅은 공연, 디자인, 건축, 문예창작, 영화, 미디어 아트, 일러스트레이션, 미술과 같은 분야를 포함하여 ‘예술’과 ‘예술 동문(Arts Alumni)’을 광범위하게 정의하고 있다. 그중 예술 고등학교, 예술 및 디자인 전문대학과 종합대학교의 예술관련 학과와 협력하는데, 2011년 졸업생들을 시작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관의 모든 졸업생이 온라인 설문지를 작성하도록 초대한다. SNAAP의 설문은 예술교육과 예술계에서의 커리어가 단절되다 이어지는 경우가 빈번한 ‘비선형성’과 다양한 예술 관련 직업을 동시에 갖는 ‘포트폴리오 커리어(Portfolio Career)’의 특성을 반영한 질문들로 이루어져 있다. 기본적으로는 졸업한 예술대학의 커리큘럼 및 과외 활동에 대한 만족도, 현재와 과거의 교육 및 고용상황, 예술교육과 직업 교육의 연관성, 교육기관에서 훈련받은 예술의 종류와 활용빈도, 졸업 후 지원의 필요성, 예술 교육자로서의 경험, 소득 및 보험을 포함한 각종 혜택, 부채 등의 기타 재정 문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냅이 특별한 이유
공동체를 위한 예술교육 영역의 확장
스냅을 통해 모인 데이터와 이에 대한 분석은 예술가와 예술교육자뿐만 아니라 예술교육기관, 정책입안자, 그리고 학생들과 자녀의 예술교육을 고려하는 학부모에게도 매우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 우선 스냅에 참여하는 교육기관들은 매년 설문조사 분석보고서를 제공받는다. 보고서는 예술 동문의 삶을 요약하는데, 예를 들어 졸업률, 예술 관련 커리어 유지비율, 소득 수준 등 주요 지표에 대한 다양한 응답자 그룹 간 비교 분석도 포함한다. 참여기관들은 또한 개별기관들의 내부 현황 분석을 위한 원데이터(raw data)에 대한 접근 권한도 주어진다.
이렇게 스냅은 예술가가 미국에서 어떻게 교육받고, 직업 사회에 진입하며,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가는지에 대한 광범위하고도 세밀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그 다음, 예술교육기관들이 제공하는 교육과 동문의 실제 커리어 사이를 연결 짓는 필수요소들을 식별하고, 더 중요하게는 동문들의 커리어를 방해하는 요소들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게 함으로써, 교육기관의 제한된 자원을 배분하는 결정에 도움을 준다. 이로써 빠르게 변화하는 예술계에서 젊은 예술가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적시에 발견하여 커리큘럼을 강화할 수 있게 도와준다.
스냅이 특별한 이유는 고등교육기관의 예술교육이 비단 예술계뿐만 아니라 비예술계를 포함한 공동체 전반에 큰 혜택을 주고 있음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는 데 있다. 이는 스냅이 매년 발간하는 보고서를 간단한 인포그래픽으로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스냅샷
(SnaapShot· http://snaap.indiana.edu/snaapshot/#dashboard)을 통해 잘 드러난다. 예를 들어 75%의 예술계 동문이 자신의 직업과는 상관없이 예술활동을 하며, 전체 응답자의 무려 80%가 예술 관련 기술과 지식이 자신의 직업(비예술계를 포함한)을 영위해가는데 도움이 된다고 응답했다. 즉 예술 관련 커리큘럼이 비예술 분야에서도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게 하여, 궁극적으로 예술교육의 사회 전반에 대한 영향을 파악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정보는 예술옹호자들이나 정책입안자들에게 특히 유용한데, 예술가가 예술 및 기타 분야에서 커리어를 추구하게 된 이유, 지역 예술인과 문화기획자를 위한 시장의 현황, 예술교육기관 졸업생들이 국가적으로 창의산업과 창조경제에 기여하는 방법, 평생에 걸친 다양한 교육 시점과 지리적 요인에 의한 예술교육 생태계의 틈새시장 등을 파악하게 해주어, 보다 효율적으로 문화예술을 옹호하는 활동을 전개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예술교육의 중요성 인식
민간이 주도하는 국가적 프로젝트
스냅의 목표는 예술교육제도를 개선하여 예술가를 교육 및 지원하고 이를 위하여 적절한 문화 정책적 지원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교육자, 정책입안자 및 다양한 후원자에게 설문을 통해 예술 동문의 교육경험과 커리어 현황을 제공하는 것이다. 300여 개에 가까운 미국의 예술교육기관과 10만여 명의 예술 동문을 대상으로 매년 진행하는 설문조사 사업이기에 비용부담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비용이 국가의 한 정부 부처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술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함께하는 민간공익재단과 협회의 지원에 의해 대부분 충당된다는 것이 스냅이 가지는 매우 큰 특징이자 장점이다.
스냅의 첫 시작도 미국의 한 민간재단의 조사연구로부터였다. 서드나재단(Surdna Foundation)은 지난 2002년 재단의 장학금 수혜자에 대한 정보 수집을 시작하고 2003년 예술단체에 대한 기부자들을 조사한 결과, 예술 동문 추적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앞서 언급한 2004년 뉴욕타임즈의 ‘줄리아드 효과’ 르포 기사는 또 다른 기폭제가 되어 2005년에는 드디어 예술 고등학교 및 예술 대학을 대상으로 한 두 가지 설문조사가 개발되어 테스트 되었다. 그 후 2007년 SNAAP의 본격적인 론칭을 위한 사업 계획이 수립되었고, 인디애나 대학(Indiana University)과 밴더빌트 대학(Vanderbilt University)의 연구소가 협업을 하여 대규모 설문 조사를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스냅에 뜻을 같이하는 트레메인 재단(Emily Hall Tremaine Foundation), 휴스턴 기금(Houston Endowment), 바재단(Barr Foundation), 클리블랜드 재단(Cleveland Foundation), 미국 교육 재단(Educational Foundation of America), 그리고 국립예술기금(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 등과 같은 다양한 층위의 공립·사립 재단 및 기금으로부터 교부금을 지원받으며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예술교육기관과 설문의 대상이 되는 예술 동문의 수를 늘려왔다. 2013년에는 286개 기관에서 총 10만 명에 이르는 예술 동문의 응답을 받게 이르러 종합적인 결과물을 제시하게 되었다.
보다 신뢰성 있는 데이터의 수집, 분석, 해석을 위하여 스냅은 국가자문위원회(National Advisory Board)를 별도로 두어 각계각층의 예술 분야 전문가 및 리더들의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얻고 있다. 위원회는 일 년에 두 번 회합하며, 회합을 통해 스냅의 전략적 방향을 지속적으로 감독하고 조언하며, 다양한 관점에서 예술의 교육현장과 실제 현장 간의 단절을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국내 현황과 시사점
목적 아닌 창의 산업을 위한 노력
우리나라에도 스냅과 같은 시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예술대학 졸업자들의 단편적인 취업현황 파악에 머물러 있다는 한계가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고용노동부, 한국교육개발원에서 대학생 취업 현황에 대한 통계자료를 발표한 바 있고, 또한 현재 대학알리미
(http://www.academyinfo.go.kr)에 취업률이 공개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통계자료에서 쓰이는 취업률 산정기준(고용보험이나 직장의료보험 가입여부 등)으로는 예술대학 졸업자들의 취업률은 낮게 측정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취업률 통계가 대학운영의 전반적인 평가를 목적으로 활용되기 때문에, 예술대학이나 예술관련학과가 중심이 되는 종합대학에서는 연구와 조사에 비협조적일 수밖에 없어 대학 커리큘럼에 반영하거나, 예술가를 지원하기 위한 유의미한 데이터를 도출하기에는 한계가 따른다. 따라서 창의 산업의 중심이 되는 예술인들의 장기적인 육성을 위해서는 스냅이 좋은 참고사례가 될 것이다.
즉 포트폴리오 커리어, 비선형성 등의 예술계 직업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취업률 산정 지표를 독립적으로 만들고 적용할 수 있도록 관련연구를 지원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한 조사가 시작된다면, 예술교육 커리큘럼 개발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의 예술계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점의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장웅조_홍익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장웅조_홍익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중문학 학사와 공연예술학 석사를 마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예술정책 및 경영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시애틀대학교의 공연예술 및 예술리더십 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소규모 예술단체 경영과 정책연구, 예술기업가정신과 관련한 연구와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현재는 한국 문화예술경영학화의 학술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6년부터 홍익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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